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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0:23-33/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54:49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十․三十一) 지난주일 둘째 예배를 필한 후에 제가 정문밖에 서서 여러 교우들과 인사한 후에 여자 대학생이 저를 좀 보고자 하기에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까, 『사람이 자기에 대해서 무엇을 먼저 구하여야 됩니까?』이런 문제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잠깐 생각되는 대로 말을 한 후에 어떤 남자 대학생이 기다리다가 저를 보고자 하기에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까 이 학생 역시 아마 법과대학 학생인 모양인데 단도직입으로 제게 묻는 말이『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죽어야 됩니까?』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두 학생의 질문을 제가 들은 다음에 제 마음 가운데 들어오는 생각은 이와 같은 의문은 다만 이 두 학생 뿐 아니고 여러 다른 학생들도 또 특별히 청년들도 이와 같은 의문이 마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리해서 이와 같은 형편을 생각하면서 이 시간에 특별히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자 하는 설교의 제목을「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이 문제를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분명한 해답을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우리 주를 믿는 사람들 특별히 장로교인 들로서 곧 대답할 만한 문제인 줄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따금 늘 보이는 성경 요리문답이 있는데 이 성경 요리문답의 제일 첫째 문제가 이 문제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아마 대답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줄 압니다마는, 혹 잊어버린 이가 있으면 제가 다시 한 번 읽을 때에 분명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니라.』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교훈에 의지해서 대답한 말입니다. 로마서 十一장 三十六절에는『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고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읽은 대로『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여라.』고린도 전서 六장 二十절에는『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일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것이 우리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본분이올시다. 우리는 인간이므로 당연한 이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피조물이올시다.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사람 누구 하나나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만든 사람은 없습니다. 자존자(自存者)는 우리가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하십니까?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의 제일 되는 목적이 자신에 있지 아니하고 그를 지으신 자의 뜻에 있습니다. 가령 여러분이 다 보시는 이 강대상(講臺床)은 피조물이올시다.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이 강대상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강대상은 만든 사람의 뜻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강대상 존재의 의미요 제일 되는 목적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지으신 바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영혼을 지으시고 육신을 지으시고 지적 생활, 영적 생활, 의지적 생활이 가능하게 지으시고 마음속에 양심을 주시고 또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그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생활로서 우리 인간을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존재의 의미는 우리를 지은 그 목적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만이 아닙니다. 만물의 존재의 목적이 역시 그렇습니다. 온 우주, 일월성신, 삼라만상이 무엇 하려고 있습니까? 존재 의미가 무엇입니까? 조물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조물주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요, 이것은 인간의 인간 된 본분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함으로써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 행동의 최고 목적이 무엇일까 하는 문제를 토론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대답이 있지마는 모든 대답을 대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대답은「자아를 실현하는 데 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내재적 능력을 온전히 실행시키는 데 있다. 또 둘째 종류의 대답은「쾌락에 있다」 혹은 「행복을 구하는 데 우리 인간 행동의 최고 목표가 있다.」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그 두 가지 대답이 다 일리가 있습니다. 먼저 그 첫째 대답을 보면 우리 인간 행동의 목표가 자아를 실현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자, 가령 여기 지금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코스모스가 있습니다. 가령 코스모스가 자아를 온전히 실현하려고 할 것이면 이 코스모스 존재의 이유는 이 코스모스가 잘 성장하여 충분히 발육이 되고 흠이 없는 꽃이 되는 데에 코스모스의 최고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온전한 꽃이 되는 것, 이것이 말하자면 자기 실현이 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꽃이 자기를 잘 실현해서 온전한 꽃이 되려고 할 것이면 어떤 요소가 필요합니까? 적당한 흙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햇빛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온도가 필요합니다. 적당한 물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온전히 자기를 실현해서 완전한 꽃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인간으로서 온전한 인간이 되려고 하는 데에도 거기에 필요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거기에 필요한 요서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경건한 신앙 생활이 사람으로서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제일 좋은 분위기가 되고 제일 좋은 요소를 구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여기 성경을 보면, 이와 같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시편 一편에 다음과 같은 말로 묘사를 하였습니다.『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고 사는 경건한 사람의 그 모습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또 시편 九十二편에는 이런 사람들을 이런 말로 묘사하였습니다.『종려나무가 번성함 같으며 레바논의 백향목(柏香木)과 같이 발육하리로다. 늙어도 결실 하여 진액(津液)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靑靑)하여 여호와의 정직함을 나타내리로다.』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고 그를 항상 즐거워하는 이의 모습을 래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종려나무와 같이 비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믿는 제자들을 향해서『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穩全)하라』고 하셨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는 길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고 사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四장 十三절에『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대까지 이르리니…』이와 같이 기록한 것입니다. 참 자아 실현의 비결은, 온전한 사람이 되는 비결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경건한 신앙생활에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여기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생활에 참된 행복이 따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구합니다. 그러나 구하지마는 얻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잘못 구하는 탓입니다.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이 자기의 경험에 의지해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습니다. 젊어서부터 지혜를 얻기를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당대에 누구보다 제일 지혜 있는 사람이 되었고 제일 지식이 많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솔로몬이 하는 말은『이것도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한 걸음 나아가서『지혜가 많으면 번뇌가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도 더하느니라』하는 의미심장한 말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가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는 자로다.』 이 결론은 二十세기에 사는 현재 사람에게 아주 적절한 말일 줄 생각합니다. 二十세기에 사는 현대 사람이야말로 과거 어떤 시대에 살던 사람보다도 지식이 제일 많습니다. 원자의 비밀을 지금은 압니다. 전자의 비밀을 압니다.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는 중에 있습니다. 어떤 시대 사람보다 지식이 제일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二十세기에 사는 현대인은 과거 어떤 시대에 살던 사람보다도 제일 번뇌가 많습니다. 제일 공포가 많습니다. 제일 불만 중에 삽니다. 그들의 지식의 결과인 원자탄, 유도탄은 현대인에게 큰 번뇌를 가져옵니다. 지식이 반드시 행복을 가져오는 것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전도서 二장을 읽어보면, 솔로몬이 자기의 경험에 의지해서 세상의 향락을 통하여 행복을 구해 보기를 힘썼습니다. 굉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아름다운 동산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노비로 일을 시켰습니다. 아름다운 처첩을 많이 두었습니다. 많은 술도 준비하였습니다. 세상의 향락을 통해서 많은 행복을 얻어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이것도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여기에 행복이 없다고 한탄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권세만 잡으면 행복이 될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단종애사(端宗哀史)를 읽어보세요. 수양대군(首陽大君)이 권세를 얻기 위해서 자기의 조카 단종을 죽이고 충신 사육신(死六臣)을 죽이고 마지막에는 왕이 되기는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왕위에 앉고 보니 여러 가지 번뇌가 머리에 들어와서 밤에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몸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번뇌를 좀 이길까 해서 지금의 파고다 공원 자리에 굉장히 큰절을 지었어도 번뇌는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겨우 十三년 동안 살고 쉰 두 살에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권세가 반드시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는 사람이 명예를 얻고 인기를 얻으면 행복이 될 줄 압니다. 여러분, 며칠 전 신문지상에서 미국에 제일 인기 있던 여가 배우가 자살했다고 하는 보도를 우리가 다 읽었을 것입니다. 인기가, 명예가 반드시 행복을 가져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들은 다 물거품 같아서 겉으로 볼 때에 그 속에 무엇이 있는 것 같지마는, 정작 손으로 잡아보면 아무 것도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바람을 잡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부산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항상 즐거워하는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게 되면 행복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물론 지식도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물질도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사실 권세도 행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없어도 이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있거나 없거나가 문제가 아닙니다. 자연히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있는 말씀과 같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힘써야 되겠습니다. 나 자신이 내 가정에서, 내 교회에서, 내 사회에서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힘쓸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힘쓸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이 말씀으로 우리 일생의 목표를 삼아야 합니다.『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죽어야 하는가?』청년으로서 마땅히 물어야 할 문제입니다. 전에 나치스 청년들은 민족이란 제단에 피를 붓고 많이 죽었습니다. 저에 파시스트 청년들 혹은 일본의 군국주의자 청년들은 국가라는 제단에 피를 많이 부었습니다. 공산당들은 전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물질이라고 하는 제단에 피를 붓고 죽는 중에 있습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지식이라고 하는 제단에 피를 붓습니다. 모두 다 제단이 없는 생활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우리의 생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생명을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제단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곧 하나님의 제단이올시다. 진리의 제단이올시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생명을 이 제단에 바치고 그 후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나라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고 민족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 있는 모든 것은 결국은 우상의 제단입니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로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불멸의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제단에 그 생명을 바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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