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3:8-14/ 위기에 처한 성도의 생활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47:17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十三․十一-十二)

『너희가 이 시기를 아나니……』우리는 우리가 사는 시기를 알아야 합니다.
성서적 견지에서 볼 때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기는 문자 그대로 말세입니다. 시대의 모든 징조가 이것을 지적합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주님의 오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주님의 날이 올 때에 큰 환난과 재앙이 먼저 온다는 것을 성경은 항상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후서 三장 十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물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들어 나리로다.』

새벽 전이 제일 어둡습니다. 이 말세적 위기에 대한 경고는 모두 사도들과 요한 계시록의 전 책이 우리에게 엄숙히 주는 교훈입니다. 또한 세계 역사적 견지에서 볼 때에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위기입니다.

十九세기이래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는 소외「유토피아」사상은 칸 마르크스나 엥겔스 같은 예언자를 만나고 레닌이나 스탈린 같은 제사장들의 지도하에 소위 과학적 공산주의사회를 실현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을 노예화한 지상의 지옥을 만들고 만 것입니다. 또는 인류의 향상과 행복의 꿈의 원천이 되는 과학은 원자탄, 수소탄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인류 전멸의 위기를 조성하게된 것입니다. 자유 진영과 노예 진영의 심각한 대립은 일촉즉발의 분화구 산상에 전 인류를 올려놓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절박한 위기가 일류 역사상 언제 또 있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국내 정세를 살펴볼지라도 역시 위기입니다. 혁명정부가 「二․二七선서」를 휴지로 만든 이래 정계는 돌연한 혼란에 빠지고 국민은 실망과 환멸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경제는 파탄되고 심각한 식량 난, 미증유의 불가고, 천재와 지변은 계속되고, 각종의 범죄와 사회악의 대두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 민족은 문자 그대로 불안과 공포와 절망의 도가지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어떤 모로 보든지 우리가 사는 이 시기는 위기입니다. 이 위기에 처한 성도의 생활이 어떠해야 되겠습니까? 여기 읽은 성경의 교훈을 통해서 몇 가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제일 먼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이 시기는 자다가 마땅히 깰 대이니……』깨라고 경고합니다. 또는 이러한 때일수록『모든 어려운 것을 벗어 버리라』고 권면을 하십니다. 또는 광명(光明)한 갑옷, 곧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간곡히 권면 하십니다.

먼저 깨라고 하는 권면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五장 六절에『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이런 위기 가운데서 자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까지 자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운전 수가 충암(衝岩)절벽(絶壁)의 험로(險路)를 지나갈 때에 졸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장이 암초가 많고 파도가 높은 바다를 향해서 나아갈 때에 졸면 그 배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우리가 지나가는 시대는 이보다 더 위험한 시대입니다. 드로아에서 사도 바울이 밤에 예배를 볼 때에 유두고라고 하는 청년은 문턱에 앉아서 졸다가 그만 상층 문턱 위보다도 더 위험한 자리라고 하는 것을 각성해야 될 것입니다.

「깨라」라고 하는 말은「근신하라」고 하는 뜻입니다.「사방을 살펴 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리고「속지 말라」고 하는 뜻입니다.「시험에 들지 말라」고 하는 뜻도 있습니다.

베드로 전서 五장 八절에『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베드로사도는 베드로 후서 二장 一절에『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 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위하는 자들이라』하고 기록했습니다.

거짓 스승, 이단과 사교에 속지 말고 믿음의 바른 길을 옳게 걸어가라고 하는 말입니다.「깨라」고 하는 말은「깨어서 기도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시기를『깨어 열심히 기도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말씀하신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사사 사무엘은 일찍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내가 어찌 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음으로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할 수가 있겠느냐.』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자기가 기도하지 아니하는 것을 큰 범죄로 생각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민족적 대 수난기에 처해서 우리 믿는 사람은 문자 그대로

민족의 제사장이 되어서 이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민족 각자 하나 하나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며, 또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을 이 민족의 머리 위에서 거두어 주시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서 위대한 지도자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같이 신임을 받을 수 있는 귀한 지도자들을 보내서 이 민족을 위기에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살기 위하여 기도할 수밖에 없고, 내 민족과 내 나라가 살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는 말씀이올시다.

그리고「깨라」고 하는 말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자기의 의무를 수행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전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았지마는 그 사명일 잊어버리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잠만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와 같은 사자가 없습니까? 책임을 맡기는 맡았지마는 무슨 책임을 맡았는지도 알지 못하고 잠자는 이는 없습니까? 집사의 책임을 맡기는 맡았지마는 무슨 책임을 맡았는지도 알지 못하고 잠자는 이는 없습니까?

집사의 책임을 맡고 권찰의 책임을 맡고 반사의 책임을 맡았지마는, 잠자는 이는 없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파수꾼의 책임을 맡았지마는 잠자는 이는 없습니까? 우리가 잠자면 이 민족과 국가를 누가 파수할 것입니까?

여러분, 요즈음 신문지상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소위「四대 의혹 사건」의 처리를 놓고 여론이 분분한 가운데 있습니다.

과연 민주주의가 이 땅에서 실현될 수 잇느냐 업느냐, 이 민족이 과연 정의와 법 아래에서의 만인평등의 정치를 할 수 잇느냐 업느냐, 이런 정치적 분위기 하에서 공명선거는 가능할 것이며 민정 이양이 사실 민정에 이양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름만의 이양이 될 것인가?

이와 같은 심각한 문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식량난으로 굶주리는 대중을 우리가 앞에 놓고 잠을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 주인인 우리는 이런 정세 하에서 깨어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모든 하는 일을 감시하며, 내가 어떤 직장에 있든지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아니하면 이 민족과 국가를 바로 건질 수가 없지 않겠는가, 염려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어떤 이들은 잠자다가 꿈꾸면서 걸어다니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잠자게 되면 큰일입니다. 꿈꾸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행히 그런 사람은 적지마는, 정신적 견지에서 볼 때 자면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걸어다니기는 하지마는 그의 영적 형편을 보면 아직도 잠에서 깨지 못하고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어떤 시대에 사는지 도 모르고, 가장으로서의 책임도 잊어버리며, 주부로서의 직책을 망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책임이 있건마는 그것도 모르고 자면서 걸어다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깨라」고, 지금은 잠잘 때가 아니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십니다.

제가 전에 어떤 병중에 계신 자매 님을 심방 했더니, 그 자매 님의 하시는 말씀이『나는 그저 그 동안 믿기 는 믿었지마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번 이 병에서 낫기만 하면 그저 모든 일을 열심히 하려고 꼭 작정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두 번이 아니고 종종 듣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대단히 감사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에는 너무 늦게 깨어납니다. 깨기는 깨었는데 너무 늦게 깨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날 소망이 없는 분들도 많습니다.

오늘 아침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 하나 하나에게 말씀을 하십니다.『지금은 자다가 마땅히 깰 때라.』연기하지 말고 오늘 아침 이 시간에 깨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어두운 일을 벗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세 가지 실례를 들어서 말씀하였습니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려, 쟁투하거나 시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은 다 어두운 데 속하는 것인데 이런 어두운 옷을 벗어버리라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절제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먹는 데 절제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얼마나 적절한 교훈입니까? 쌀을 절약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쌀이 부족해도 사실 쌀을 절약할 줄 아는 이 얼마나 됩니까? 쌀이야 모자라든 말든 술을 만들어 먹어야 합니까?

절제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 방면에 절제하려고 하면 소위 관혼상제 대사 때에 특별히 모은 연회를 절제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서는 약혼식을 하든지, 추도식을 하든지, 그 밖의 무슨 식이나 간소하고 절제하라고 규칙을 작정해서 발표했는데, 여러분 몇 분이나 그대로 꼭 순종하십니까? 성경에 보면 저희들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변화해서 새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하라고 했는데 이 세상을 따라가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없습니까?

여기 술 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떤 청년은 이런 구절을 보고 분개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아,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고만 했는데, 왜 교회에서는 아주 마시지 말라고 합니까?』

이런 분개를 국가를 위해서 한다고 하면 누구나 다 애국자가 될 것입니다. 성경 구절을 따져 말하자고 하면 잠언 二十三장 三十一절에 보니『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그랬습니다. 그런 구절도 있기는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주초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이것이 구원 문제에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구원 문제라기보다도 절제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민족과 같은 처지에 있어서 내 나라에 먹을 것이 없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동냥을 해 오면서 그래도 절제는 못하겠어요? 이런 어두운 것들을 벗어버리라고 경고합니다.

또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홀트 고아원」에 가 보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몇 번 가보니까 그저 언제든지 어린 아기들이 四, 五백 명 있습니다.

이것은 뭐「홀트 고아원」뿐만이 아닙니다. 영아원에 가 보면 이런 불쌍한 아기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 아기들이 어떤 아기들인지 아십니까? 대부분 기아입니다. 버림을 받은 사생아들입니다.

오늘처럼 한국 사회에 사생아가 많은 때는 유사 이래에 처음으로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의 청년 남녀들처럼 성도덕이 타락한 새대는 일찍이 없었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이 얼마나 통탄할 사회 현상입니까?

더욱이 산아제한이라 하니까 그저 아무렇게나 놀다가 마지막에 낙태만 해버리면 그만인 줄 아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 가는 모양입니다. 우리 한국에 옛날부터 내려오던 미풍양속 가운데 하나인 정조 관념이 현대 여성가운데서 점점 약화되는 현상입니다.

생명이 얼마나 존중 하다고 하는 이 성경의 교훈도 별로 영향을 못 주는 모양입니다. 이런 청년들의 성생활의 문란(紊亂)은 결국 인격의 파탄을 가져오고,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며,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고, 각종 범죄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멸망했는지 아십니까? 음란의 죄로 그런 멸망을 당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올시다. 옛날 사람이나 오늘날 사람이나 이 계명을 범하면 대개 합당한 보응(報應)을 반드시 받고야 맙니다.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어두운 것을 벗어 버려야 되겠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성남성녀들이 과연 성도다운 생활을 해서 빛을 비추어야 되겠습니다.

또 쟁투하거나 시기하지 말고, 화평과 단결을 힘쓰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신문에 정계에 대한 만화를 그렸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많은 것을 그려 놓고는 그 아래에다『왔다 갔다, 갔다 왔다』이렇게 썼단 말입니다.

그것이 정계의 현상입니다. 이합집산(離合集散), 변태(變態)무쌍(無雙) 합니다. 그저 왔다 갔다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어떻든지 좀 뭉쳐서 한 큰 정당으로 이 민중을 지도해 주었으면 얼마나 감사할 것입니까? 정치 얘기만 아닙니다. 우리 한국의 교회가 분열되지 않고 크게 뭉쳐 주었으면, 사회에 얼마나 더 큰 소망을 주었겠습니까? 쟁투하거나 시기하지 맙시다.

그리고 셋째로는「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그랬습니다. 제가 전에 아프리카 어떤 나라에 가니까 거리에 나가면 아직도 단정히 옷을 입지 못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러나 예배당에 가 보니까 그 교회에 나온 흑인들은 전부 다 옷을 아주 단정히 입고 왔어요.

그것을 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옷을 입을 줄 안다는 감사한 생각이었어요. 사실 옷이 귀합니다. 모든 동물가운데 옷 입고 다니는 동물은 사람밖에 없지 않습니까? 옷을 보고 사람을 압니다. 옷을 보고 군인을 알고, 학생을 알며 점잖은 사람을 알고, 천한 사람을 압니다.

요한 계시록 三장에 보면 거기 주님께서 라오디아 교회 사자에게 쓰는 말씀 가운데『너희가 부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마는 실상은 너희가 가난하고 곤고(困苦)하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 라오디아 교회 교인들 가운데 예배당에 나오기는 나오지만 벌거벗고 나온 사람들이 더러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마땅히 성도가 입을 옷대로 바로 입지 못하고, 성도의 깨끗한 행실을 가지지 못하고, 예배당에만 나온다고 하는 그 말입니다.

오늘날은 이런 사람이 없습니까?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옷을 입고 다닙니까? 그리스도를 옷 입듯 하라고 하는 말을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성품과 그리스도의 생활로써 우리 전체를 덮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이제 제가 골로새 三장 十二절 이하를 읽을 때에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구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인내, 평화, 기쁨, 찬송, 감사의 생활을 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옷을 입어야 합니다. 주일날만 입지 말고 다른 날도 입읍시다. 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옷을 어디서나 입어야 합니다.

예배당에 올 때 물론 이런 옷 입고와야 하겠지만 가정에서도 입어야 합니다. 관청에서도 입어야 합니다. 상점에서도 입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예배당에 올 때에만 이런 좋은 옷을 입고 집안에 들어가서는 벗어놓은 이들이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옷을 가정에서도 입어야 합니다.

이 옷을 우리는 어떤 계절에나 입어야 합니다. 겨울에도 입고, 여름에도 입어야 합니다. 또 이 옷은 누구에게나 맞습니다. 남자에게도 맞고, 여자에게도 맞고, 어른에게도 맞고, 아이에게도 맞습니다.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누구든지, 어디서나, 어느 때에나, 항상 광명의 갑옷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여 이런 사람이 사회에 나아가게 되면 자연히 빛이 됩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 옷은 광명의 갑옷인 까닭입니다. 이런 옷을 입고야 어린양의 잔치에 참여합니다. 이 옷을 입고야 하늘 나라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때는 위기입니다. 졸지 말고 깨라고 경고합니다. 모든 어두운 것을 벗어 버려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광명의 옷을 입되 이 시간에 입기를 바랍니다.

오늘 제가 읽은 이 로마서 十三장 하반부는 특별히 우리 교회사에 가장 유명한 교부 어거스틴이 젊어서 죄악과 싸우면서 믿을까 말까 분투할 때에 이 성경 말씀을 읽는 가운데 은혜를 받아서 온전히 변화한 동기가 되어준 말씀입니다. 어두운 것을 온전히 벗어버림으로써 광명한 옷을 입은 성 어거스틴은 천여 년 동안 기독교 사상을 지배한 위대한 교부가 된 것입니다.

누가 이런 옷을 입지 아니 하리요 마는, 제가 바라는 것은 우리 청년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직까지 이 옷을 입지 못하였으면 오늘 아침 이 시간부터 어두운 것을 벗어버리고 이 옷을 입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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