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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6:1-13/ 하나님의 인도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34:36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리로다.』(시 四十八․十四)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오늘 아침 시편 二十三편을 우리가 외웠지마는 그는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혹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목자는 양을 먹이시는 것뿐만 아닙니다. 양을 보호하시고 양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뿐더러 우리에게 신령한 양식을 먹이시며, 우리에게 신령한 양식을 먹이실 뿐 아니라, 우리를 끊임없이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잘 받아야 천성 가는 길을 바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심령 위에 은총을 더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백성을 인도하신 사실을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후에 험난한 광야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그 백성을 홀로 두신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에 기록한 대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고 합니다. 이 기둥이 떠나가면 이스라엘 백성도 떠나가고, 이 기둥이 머무르면 그들도 또한 머무른 것입니다. 잠깐 머무르면 다같이 진중에 잠깐 머물렀고, 오래 머무르면 진중이 또한 그 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기둥은 하나님의 임재(臨在)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러나 그 빛은 구름으로 둘러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나타났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황막한 광야 길을 걸어가는 백성을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셔서 그들을 인도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것은 옛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택한 백성을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 교회를 지도하여 주십니다. 교회뿐만 아닙니다. (2) 개인의 생활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냈습니다.『너는 너의 본토, 너의 친척, 너의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나가라』고 말씀한 후에 그의 일생토록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여 주셨나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아브라함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선지자들의 생활을 또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3) 성령의 인도로(신약시대)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신약시대를 살펴보면 물론 주님께서 친히 육신의 몸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는 여러 제자들을 친히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을 통하여 모든 사도들과 교회를 인도하여 주신 사실을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욥바에 유할 때에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에게 전도하러 한 것도 성령의 지도아래 가게 되었습니다. 빌립이 가사로 가는 길로 나가다가 구스의 내시를 만나서 전도하게 된 것도 성령의 특별한 인도 아래서 된 것을 우리는 읽어볼 수 있습니다. 혹은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안수하여 처음으로 외국 선교사로 파송 하게 된 것도 성령의 지도 가운데 된 것을 우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성령께서 사도들이 하려고 하는 일을 막은 적도 있습니다. 그리해서 사도행전 十六장에 보면『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이런 구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혹은『우리가 비두니아로 가기를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 치 아니하시는지라』하는 구절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사도 바울의 일행이 아시아에서 전도하지 못하고 멀리 북방 드로아로 갔더니 거기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게 되었고 거기에 성령의 지도가 있는 것을 깨달아서 해협을 건너서 유럽으로 복음을 가지고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4) 교회의 역사를 통해 볼 때, 참 신앙생활은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 아래 있었습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지도 아래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 백성을 인도하시는가? 여기 대해서 우리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이 몇 가지는 우리가 다 기억할 수 있는 줄 생각합니다. (1)성경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시편의 저자는『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이와 같은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갈 길을 밝혀 주심으로, 우리 성도들이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지금도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을리 하지 말고 언제나 성경을 읽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내가 하루를 생활하는 바른 길을 찾도록 힘써야 될 것입니다. (2)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생활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참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실 뿐더러 우리 인간들에게 참된 인간의 모습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품과 생활 가운데서 참된 인간의 성품을 배워야 하고, 참된 인가의 생활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를 향해서, 항상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그 성품을 바라보고, 그 생활을 바라보고, 우리도 우리의 나갈 그 생활에 의지해서 조정할 때에 우리에게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나를 따르라 하신 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있는 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독생자 예수의 생활을 통해서 우리를 지금도 인도해 주십니다. (3) 그의 교회를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교회는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맡기신 것입니다. 교회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교회는 수 천년을 통해서, 여러 새기를 내려오면서 축적된, 성도들의 종합적인 경험과 이해를 교회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의 지도를 받을 때에 우리의 신앙생활을 옳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사를 상고해 볼 때에, 어떤 때는 교회 자체가 실수한 적도 없지 않아 있은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적 요소가 있는 교회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축적된 거룩한 성도들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우리가 신앙생활을 본받을 때에 우리는 가장 건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꼭 목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고, 장로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고, 부모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고, 선생도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고, 친구도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대단히 복잡하고 여러 가지로 얽힌 사정이 있어서 경험 없는 사람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스스로 잘 길을 찾기가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경건하고 지혜 있고 경험 있는 사람을 찾아서 그의 상담을 따라서 지도를 받을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는 이 면이 점점 중요시되어,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이 상담을 통해서 하는 지도인 카운슬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물론 인간이 하는 일이라 어떤 때는 혹 실수하는 일도 있지마는, 보통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지도를 받을 때에 실수가 없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우리가 당하는 환경과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갈 길을 지도하여 주시는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느헤미야를 읽어볼 때에, 느헤미야는 본래 선지자는 아닙니다. 느헤미먀는 파사 수산궁에서 높은 벼슬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연히 예루살렘에서 하나니란 사람과 그 친구들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자기 고국에 먼저 돌아간 자기 동족들의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아직도 다 폐허된 가운데 있었습니다. 성문은 다 불타 버렸습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말할 수 없이 딱한 곤경에 빠진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정을 듣게 될 때에, 느헤미야는 그 날부터 편히 잘 수 없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자기 동족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하나니로부터 그 사정을 듣고 나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나의 할 일이, 여기에 그냥 있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닫고, 고국에 돌아가서 위대한 역사적 역할을 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피얼스 박사의 생활도 우리가 잠깐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 이가 六․二五가 사변 한 두 달 전에 우연히 한국에 왔습니다. 부흥회를 하려고 왔습니다. 남대문과 우리 교회 등 몇 군데서 부흥회를 하고 그저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부흥회하고 몇 달 후에 한국에 六․二五가 터졌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관심이 생겨서 꼭 나와 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다른 길로는 나올 수 없으니까 종군기자가 되어서 군인을 따라서 한국에 왔습니다. 와서 전쟁을 실지로 목도하며 피난민의 참상과 고아들의 불쌍한 형편과 미망인들의 가련한 상태와 이러한 모든 것을 목도할 때에 그는 그 가운데서 자기의 사명을 찾은 것입니다. 곧 돌아가서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결심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오늘날은 기독교 선명회(宣明會)라고 해서 한국뿐 아니고 온 세계의 교회를 봉사하며 영적으로 육 적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 우리가 당하는 일, 우리가 당하는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시를 깨닫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서 자기의 몸을 바치는 사람이야말로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는 언제나 그 섭리를 통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6) 내적 음성(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인도하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고요한 음성이 우리 심령 속에 들릴 수 있습니다. 금년이 선교 八十주년 기념의 해입니다. 몇 달 전에 이 기념 예배를 새문안교회에서 볼 때에 제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언더우드 박사가 본래는 한국에 오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인도에 가려고 생각한 분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도의 문이 열렸다는 말을 듣고, 자기 친구 가운데 한국에 갈 수 있는 이가 누군가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별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 그의 심령 가운데 이상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왜 네가 가지 않느냐?』하는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그는 한국에 오기 위해서 선교 부에 자기가 한국에 가기를 원한다는 자원의 편지를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회답은 지금 선교비가 없어서 선교사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뉴욕에 있는 어떤 교회가 그를 목사로 청빙(請聘)하는 청빙서가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가는 길도 막히고 인도에 가는 일도 잘 안 되어, 이제 나는 교회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수락하는 편지를 써 가지고 우체통에 가서 넣으려고 할 때에 음성이 들리기를,『한국은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 편지를 부치지 않고 내가 직접 선교 부에 가서 이 일을 의논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선교 부에 가서 의논하니 총무가 하는 말이 『단신 참 잘 오셨오. 당신께 편지할 때는 선교비가 없었지마는 바로 며칠 전에, 어떤 사업을 하시는 분이 한국 선교 비로 六천 불을 가져왔으니 우선 이것으로 전도를 시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당신이 좀 가주시오』해서 그가 처음 한국에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경험은 언더우드 박사에게만 있은 것이 아닌 줄 압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몸을 바쳐서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종종 이와 같은 세미 한 음성이 그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물론 어떤 때에는 이러한 음성을 잘못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성경에 의지해서, 이런 음성이 들려올 때에, 이것을 시험해 볼 줄 아는 지식이 또한 필요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이런 인도에 응해야 될 것이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려고 하지마는 우리의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의 인도를 우리가 받을 수 없습니다. (1) 신앙의 태도로 인도하십니다.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꼭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세상에 보내실 때에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목적에 따른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목적과 계획에 의하여 우리를 인도하시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인도를 옳게 받으려고 하면 이 사실을 깨닫고 나의 전 생명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쳐서 아버지의 목적대로, 아버지의 계획대로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여기 있습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없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도하시기 아마 매우 힘들 것입니다. (2) 기다리고 듣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언제나 내 생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그의 지도를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대에도 나의 얘기만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은 목사들과 상대하는 우리 교파 소속이 아닌 어떤 원로 목사가 나에게 얘기하기를, 요사이 어떤 이들의 기도하는 것을 볼 때 청구서에 청구할 것을 많이 적어 가지고 가서, 하나님 여기에 싸인 해 주시오 하는 식의 기도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필요한 것 다 하나님께 말씀 드릴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가 항상 생각할 것은 우리의 요구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듣는 태도가 또한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서의 기도와 같이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떠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주옵소서. 아버지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3)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시편 二十五편 九절에 보면,『온유한 자는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를 그 도로 가르치시리로다.』온유한 자를 가르칠 수 있고 온유한 자라야 지도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교만이 가득하고 거짓과 편견과 독선주의가 가득하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지도하시기 어려울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의 지도를 받고자 하는 자세가 반드시 우리에게 구비되어야 하나님의 인도를 바로 받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항상 그 양들을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를 힘씁니다. 의의 길로 인도하시기 힘씁니다. 그러나 그 인도를 받고 안 받는 것은 나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우리가 그 인도를 받으면 쉴 만한 물가로 가게 될 것이요. 우리가 그 인도를 받지 않으면 어떤 험난한 길로 들어가 내 일생을 저버릴는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가운데 아합 왕이라는 왕을 기억하시지요? 한 번은 예루살렘의 여호사밧 왕이 아합 왕을 방문했습니다. 그 때 그 두 나라 사이가 괜찮았습니다. 아합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제안하기를『우리는 다 형제요 자매이니 우리가 연합해서 저 아랍나라를 쳐서 본래 우리 땅이던 길르앗, 라못을 다시 뺏도록 합께 힘을 씁시다.』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사밧 왕도 매우 좋게 생각하여 우리 연합군을 조직해서 아랍나라를 쳐서 그 땅을 다시 찾읍시다 라고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연합군은 진군하기 전에 경건한 왕인 여호사밧은 아합 왕에게 다시 말하기를『우리가 진군하기 전에 여기에 대하여 당신의 자라에는 하나님께 물어 불만한 선지자가 있으면 그들을 청해서 한 번 물어 보고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아합 왕이 우리 나라에는 선지자가 많다 하고 四00명을 청해 왔습니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다 한 마디로 말하기를,『좋은 일입니다. 가기만 하면 다 쳐서 큰 승리를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마 여호사밧 왕이 보기에는 그들이 다 어용(御用)선지자들같이 보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이 다시 묻기를『이런 선지자 외에 다른 선지자는 없습니까?』했더니 그 때 아합 왕이 하는 말이 다른 선지자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미가야라는 선지자로 언제든지 예언하라고 하면 나에게 흉한 예언만 늘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내가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사밧 왕은『그런 말씀 마세요, 그런 사람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답니다.』하고는 그 사람을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가야를 청해왔습니다. 미가야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우리가『지금 연합군을 조직하여 아랍 군을 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을 것 같습니까?』물어 보았습니다. 그가 대답하는 말이『올라가기를 원하면 올라가세요. 그러나 내가 보는 바로는 목자 잃은 양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입니다.』그 말을 하자 아합 왕이』내가 무어라고 합디까? 저 선지자는 언제나 나에게는 듣기 싫은 예언만 하는 선지자입니다.』 성이 나서 그 선지자를 잡아 가두고 하는 말이『내가 승전하여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어라』하는 명령을 내리고 군대를 동원하여 아랍을 치려고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열왕기 二十二장을 읽어보세요. 결국은 어떻게 됐습니까? 四00명 예언자의 말대로 되지 않고 미가야의 말대로 되었습니다. 큰 패전을 했습니다. 아합 왕은 변 복을 하고 진중에 들어갔다가 화살에 맞아 그냥 죽었습니다. 군대는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지도가 우리 귀에 듣기 싫습니다. 그러나 듣기 싫은 지도가 옳은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도 우리가 이 세상 길을 걷는 것은 험난한 광야 길과 같습니다. 우리는 바로 다음 시간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인생의 가를 길은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너무 부족합니다. 인간의 통찰력은 너무나 작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민족으로 생각할 때도 역시 그렇습니다. 국제적으로 생각할 때, 이 세상이 얼마나 험악합니까? 호시탐탐 원수들이 기회를 봅니다. 노도와 풍파가 높습니다. 이런 세상을 우리 민족은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일 무슨 일이 날는지 모릅니다. 캄캄한 세상입니다. 인간만의 지식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인간만의 지혜로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처음과 나중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와서 하나님의 인도와 지도를 받아야 우리 국가를 바로 지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신앙과 겸손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 하나의 인생 길을 인도해 주시고, 우리 민족 전체가 갈 길을 이 험난한 풍파 중에서 끝까지 인도해 주시기를 기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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