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2:1-11/ 베다니 마리아의 감사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30:11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 十二․三)

예루살렘성에서 동편으로 감람산 고개를 넘어 약 五리쯤 가면 그 산 바로 동편에 적은 마을이 깃들이고 있습니다. 이 마을을 베다니라고 합니다. 이 마을은 전에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한 작은 마을입니다.

그러나 이 곳은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유명하여졌습니다. 그것은 약 二천년 전에 그 마을에 마르다와 마리아의 두 자매가 살았고 또 주님께서 종종 이 마을을 방문하신 까닭입니다. 지금은 그 곳에 마르다의 기념 예배당이 아름답게 서 있습니다. 바로 그 예배당 뒤에는 그들이 살던 집이 있었다고 하는 유적을 또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十장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한 번 이 가정에 들렸을 때에, 마르다가 음식 준비와 모든 수종에 대단히 바빴고, 마리아는 주님의 발아래 앉아서 마르다가 자기를 돕지 않는다고 불평을 할만큼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다고 하는 기록을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 복음 十一장에 보면 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어린 남동생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나사로 입니다. 불행하게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에 이 남동생이 병 들어서 중태에 빠지고 결국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지마는 오시지는 않습니다. 결국 장사를 지냈습니다. 나흘째가 되었습니다. 이 때에야 주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오셨습니다.

주님은 나사로를 장사한 굴속에 있는 무덤을 찾으시고,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칠 때에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가 얼굴에 수건을 감은 채로 일어나서 살아 나온 위대한 기적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요한 복음 十二장에는 그 동리에서 주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푼 이야기와 마리아가 어떻게 기름을 부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요한 복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二十六장에도 기록되었고, 마가복음 十四장에도 기록되었습니다.

이 세 기록을 함께 놓고 보면, 그 때의 광경을 우리가 좀더 자세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연회 장소는 마르다의 집은 아니고 문둥이 시몬의 집입니다. 아마도 이 시몬은 문둥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병을 고쳐주신 모양입니다.

감사한 나머지 예수님을 청해서 잔치를 베푼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도 여기와서 수종을 들었고, 나사로도 있었고, 또 마리아도 있었던 것을 보니 아마 두 집에서 서로 잔치를 하려고 하다가, 결국 이 시몬의 집에 양보를 하고 그 집에서 같이 주님을 위해서 잔치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때에 마리아는 지극히 귀한 향유가 담긴 옥합(玉盒)을 깨뜨리고 예수님 머리와 그 발에 그 기름을 부어드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랑과 감사의 잔치를 볼 수 있고, 마리아의 감사의 표현을 또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감사주일을 맞아서 마리아의 감사를 잠깐 묵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감사의 동기를 잠깐 생각하고, 그 다음은 감사의 표현을 생각하고, 그 후에는 감사의 결과를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감사의 동기를 먼저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인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믿음으로 오는 감사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친히 대면하는 특권을 가진 것입니다. 그의 발 앞에 가까이 앉아서 주님의 진리를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권능, 이적을 친히 보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리아는 깨달았습니다. 과연 예수는 모든 선지자들이 오리라고 예언하고, 우리의 모든 조상들이 기대하던 메시야 인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사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예수님을 중심 해서 큰 변론이 있었습니다. 한 편에서는 과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요, 메시야 라고 믿고 그렇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의 사람들은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반항을 하고 반대를 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친히 보고, 그 얼굴을 보며, 그 교훈을 듣고, 그 모든 행하는 일을 목도하게 될 때에, 과연 예수는 오래 기다리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교훈을 통해서 그는 진리를 깨닫고, 그를 통해서 그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예수는 그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한 복음에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사랑하시더라고 직접 기록된 것을 우리가 읽어볼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발견했습니다. 주님은 그의 기쁨이요, 그의 소망이요, 그의 생명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님께서 자기 마을에 오시게 될 때, 물론 감사한 마음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동기가 있는 줄 압니다. 그것은 이미 말씀드렸지마는 자기가 스스로 받은 은혜뿐 아니고, 자기 가정이 받은 은혜입니다.

마르다도 그와 같은 은혜를 받았고, 나사로도 그와 같은 은혜를 받았는데, 나사로는 한 가지 은혜를 더 받았습니다. 그것은 중한 병으로 앓다가 아주 죽어서 무덤에 장사한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고 소망이 아주 없었는데 예수님의 권능으로써 부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 자매는 죽은 가운데서 다시 동생을 만났습니다. 찾았습니다. 그 동생이 그 때 같이 앉았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이 얼마나 감사할 것입니까! 내가 받은 신령한 은혜, 온 가정이 받은 신령한 은혜, 특별히 자기 남동생이 받은 영 육의 은혜를 생각할 때, 감사한 마음이 자연히 온 가슴에 채우고도 남았던 것입니다.



둘째로 이와 같은 감사를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주님께서 오신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아마 마리아는 여러 가지로 생각한 줄 압니다. 나의 구주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고, 나의 기쁨이 되시고, 나의 소망이 되시는 이 주님을 내가 어떻게 영접할까?

이런 주님을 어떻게 높일까? 물론 마리아만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은 줄 압니다. 마르다 도 그런 생각을 한 줄 압니다. 마르다 는 아마 어떻게 하면 내가 주님을 위해서 좀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까 하는 데게 생각이 이울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이 날도 여기 와서 매우 수종들기에 바빴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마르다는 예수님 오시는 소식을 듣고, 멀리 예루살렘 성까지 걸어 들어가서 맛있는 반찬을 많이 사오고 정성껏, 밤새도록 혹은 종일토록 찬을 준비한 줄 생각합니다. 여자로서 자연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단순히 거기에만 미치지는 않았습니다. 마리아도 물론 그런 생각이 간절했을 줄 압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생각은 거기에만 만족을 느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상으로 주님을 기쁘게 할 것이 무엇이겠나?

그 이상으로 주님을 높일 어떤 방법이 있겠나?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가운데서『아 우리 나라에서는 옛날부터 가장 높은 이에게 기름을 부어주는 풍속이 있지 않은가. 지금도 가장 귀한 손님에게는 무리에 기름을 부어주는 풍속이 있지 않은가.

특별히 가장 높은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주고 대제사장을 세울 때, 기름을 부어 주고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어주었는데, 우리 주님으로 말하면 왕보다도 더 높고 선지자보다도 더 높고 대제사장보다도 더 놓은즉 우리 주님을 높을 방법은 기름을 주어주는 그 이상의 방법이 없겠다.』하는 생각이 그의 머리가운데 스며든 것 같습니다.

그리해서 곧 향기로운 기름을 준비하기를 시작한 줄 압니다. 그 때 보통으로 쓰던 기름을 올리브 기름이라고 하는 감람나무 기름을 썼습니다. 감람나무 기름은 물론 좋은 기름이요, 유대지방에 많이 있는 기름입니다. 음식 할 때에도 그런 기름을 썼고, 왕을 세울 때에도 그런 기름을 쓴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름은 그렇게 값이 비싼 것은 아닙니다. 흔한 까닭입니다. 그런 기름에 마리아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기름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기름이 그 때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드라고 하는 기름인데 이스라엘 나라에서 생산되지 못하고, 저 아라비아나 인도 같은 곳에서 들어오는 기름이었습니다. 이것은 감람나무에서 짜는 것이 아니고 장미꽃 수선화 꽃 등 백 가지 혹은 천 가지의 꽃들을 모아서 기름을 짜고 아주 옥합에다 밀폐해서 수입되는 값이 매우 비싼 기름이었습니다.

그 때 유다는 그 기름을 평가하기를『아 저것을 팔았으면 三백 데나리온이나 받겠는데 왜 허비하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는 경제에 밝은 사람입니다. 아마 유다의 평가가 옳은 줄 압니다. 그러니 이 기름은 三백 데나리온이나 하는 값비싼 기름입니다.

여러분,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압니까? 그 때에 일하는 사람이 하루종일 일하고 받는 삯이 한 데나리온이었습니다. 三백 데나리온이면 三백일 동안 일해야 벌 만한 돈입니다.

마리아가 만일 그 때에 바느질을 해서 그 돈을 벌었다고 하면, 아마 一년 내내 일한 돈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쉰 두 날은 안식일이므로 그 날은 일을 못했을 테니까, 一년 동안 일해서 모은 돈으로 살 만한 이런 비싼 기름인 것입니다.

이 비싼 기름을 마련해 가지고 와서는 그 때 풍속대로 예수 님께서 음식을 잡수신 다음에 그 머리에다 옥합(玉盒)을 깨뜨려서 기름을 부어드렸습니다. 보통은 머리에만 기름을 붓는 법인데 여기 보면 예수 님 발에까지 부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것을 보니까 마리아의 생각에 머리에만 부어드리는 것 좀 아쉬워서 그저 전신에 부어드린다는 그런 생각으로 머리에서 발까지 부어드린 것 같습니다.

또 발에까지 부어드리고도 아직도 좀 아쉬운 생각이 있어서, 자기의 무리를 풀어서 그 발을 씻었다고 하였습니다. 여자의 머리는 생명과 같이 귀합니다. 자기 생명 전체를 바쳤습니다. 일편단심의 감사입니다. 아니 전심전력 자기 생명 전체를 감사의 예물로 주님의 발 앞에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베다니 마리아의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셋째로는 감사를 나타낸 결과는 무엇이었나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다를 중심으로 해서 몇 제자들에게 오해를 사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공관복음에 보면 다른 몇몇 제자들도 여기에 동조했던 것 같습니다. 유다 가 곧 하는 말이『아 저렇게 값비싼 기름을 허비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저걸 팔면 三백 데나리온이나 받겠고, 그것을 가졌으면 가난한 사람을 많이 구제하겠는데 저것을 왜 낭비하는가?』하고 비난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 복음의 기사를 보면 그 이야기를 할 때에는 가룟 유다에게 딴 생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팔아서 三백 데나리온을 자기 주머니에 넣고 자기가 대신 쓰게 되면 아마 그 가운데 얼마는 좀 사사롭게도 쓸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좌우간 비난을 받았습니다. 저걸 왜 낭비하느냐고…….

물론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은 예수님도 깊이 알 수 없고, 마리아의 심정도 깊이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보고 단순히 낭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시장 사람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속인의 심리입니다.

연작(燕雀)이 대붕(大鵬)의 심리를 알 이치가 없습니다. 제비나 참새가 공중에 나는 큰 붕새의 뜻을 알 이치가 없습니다. 이들의 가치 표준은 오직 데나리온에 있었습니다. 「三백 데나리온」요새 말로 하면「달러」혹은「원」에 있었습니다.
이 표준에서 보면 물론 이것은 낭비입니다. 이 표준에서 보면 성 프랜시스의 생활도 낭비입니다.

성 안토니오의 생활도 낭비입니다. 슈바이처의 생활도 낭비입니다. 허비(虛費)입니다. 이런 가치관을 예수님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때 들어보면 가난한 이들이 아직도 많은데, 왜 돈을 많이 들여서 예배당을 짓는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삽니다. 예배가 필요합니다. 왜 전도하는 데에 그렇게 돈을 많이 쓸 필요가 잇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명이 귀합니다. 사실은 교회가서야 모든 봉사의 원천이 생깁니다.

정신이 일어납니다. 주를 위해서 아낄 젓은 없습니다. 주를 위하여 너무 귀한 것도 없습니다. 주를 위 하여는 우리의 최선을 바쳐야 합니다. 아니 우리의 생명 전체를 바쳐도 오리려 주를 위해서는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심정을 이해하셨습니다. 이해하실 뿐더러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대로 예수 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고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니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모든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주님께서는 마리아의 심정을 알았습니다. 충심을 보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보통으로 우리가 생각 못하는 것도 아셨습니다. 좋은 일을 하였다고 그랬습니다. 그 좋은 일은 무슨 일입니까?

이미 말하였지마는 예수님은 과연 만 왕의 왕이요, 대제사장이요, 선지자입니다. 만 왕의 왕으로서 나귀를 타고 입성을 했습니다. 로마 병정들은 예수를 희롱하고 홍포(紅袍)를 입히고 예수를 괴롭히느라고 가시 면류관을 씌웠지마는 이것도 다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예수는 참 만 왕의 왕이라는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포를 입었고, 그러므로 가시 면류관을 쓴 것입니다.



여러분은 압니까? 만 왕의 왕은 기름 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자기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였지마는 그 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 왕의 왕이 되시는 상징으로 기름을 부은 것입니다. 참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 뿐입니까?『저가 기름을 부음으로 말미암아 내 장례를 예비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 만 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대제사장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온 백성들의 죄를 구속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이 대제사장은 자기 자신이 희생물이 되고, 자기 자신의 피를 흘려서 만민의 죄를 대속(代贖)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슨 감사를 드리기를 원합니까? 마리아의 감사를 생각하십시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든지, 우리가 전도를 하든지, 우리가 물질을 드리든지 참 사랑과 참 정성의 표현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베다니 마리아의 감사를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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