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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6:25-33/ 승리의 그리스도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27:02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十六․三十二) 이 말씀은 마지막 날 저녁 다락방에서 주님께서 여러 가지 권면을 제자들에게 주시고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올시다. 그 날 저녁 주님께서는 친히 발을 씻겨 겸손의 덕을 보여 주시고『내가 너희를 사랑하듯 너희가 피차에 서로 사랑하라』 고 하는 새 계명을 주시고『내 집에 있을 곳이 많다』하는 하늘나라의 비밀을 알려주시고『너희는 내 안에 있으라. 내가 너희 안에 있으리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지 아니하면 절로 열매를 맺힐 수 없다』 고 열매를 맺는 비결을 가르쳐 주시고, 또는 보혜사(保惠師) 성령을 보내주실 약속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여러 가지 깊은 말씀을 하신 후에 결론으로 이렇게 마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우리가 이 결론의 말씀을 잠깐 이 시간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먼저「내 안에」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예수 님 안에도 있고 또 세상에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구 세계에서 삽니다. 두 차원에서 삽니다.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는 이 세상에서 살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물질로 된 까닭으로 물론 물질 세계에서 살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을 입고 물질을 먹으며 물질로 지은 집에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삽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힘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 나라의 국민이 되는 동시에 하늘나라의 국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회의 일원인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요, 성도의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이 세상 나라의 주권 아래 있지마는 실상은 그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많이 하듯이 천국의 사업을 많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땅에 발을 디디고 걸어다니지마는, 우리의 심령은 실상은 하늘나라에 두고 하늘에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상에서 우리가 한 나그네로 산다는 사실입니다. 또는 우리가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사는 동안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잠깐 뿐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은 언제든지 한 번은 떠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은 두 차원에서 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삽니다. 동시에 이 세상에서 삽니다. 물론 세상에서 사는 것은 우리가 물어볼 것도 없고 의심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은 우리가 주안에서 또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할 때에『주안에서 갇힌 내가…』이런 말을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몸은 감옥에 갇혔지마는 실상 그의 심령은 주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주안에서 갇힌 내가…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주안에서 항상 즐거워하라…내가 네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한 것이 없느니라.』 여러분, 다「주 안에서」삽니까? 둘째로 생각할 것은, 이렇게 이 세상에 있을 때에는 우리가 두 차원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경험은 온전히 다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경험은 그야말로 평강(平康)입니다. 평안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바로 전에 요한 복음 十四장 二十七절에 말씀하셨습니다.『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우리가 주안에 있을 때에 주님께서 주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도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주안에서 얻는 경험이올시다. 주안에서 기쁨이 있을 뿐입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사도들의 모든 행적을 볼 때에 주로 말미암아 핍박을 받으면서도 항상 기뻐했습니다. 실라와 바울이 빌립보에서 억울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서도 깊은 밤에 찬송을 부른 것입니다. 환난의 밤에도 찬송을 불렀습니다. 순교를 하면서도 감사를 드린 순교자의 역사를 우리는 종종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안에서 얻는 경험은 오직 우리 심령의 평안이올시다. 즐거움이올시다. 감사올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어떠합니까? 여기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이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은 본래 환난이 많은 곳입니다. 천재지변이 있고 생로병사의 인생 사고(四苦)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라고,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이 모든 환난이 우리에게는 아주 오직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같이 이 환난을 종종 당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이렇게 보통으로 당하는 환난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하는 말씀은 이 환난은 너희가 나를 믿음으로, 너희가 내 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당할 환난이 있다고 하는 그 말입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사도 요한 이 요한 一서를 기록할 때에 이런 말씀으로 기록했습니다.『너희는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로 좇아오지 아니하고 이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 많이 있습니다. 곧 악의 세력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좋은 씨를 뿌렸지마는 원수가 가라지를 도처에 뿌렸습니다. 이 가라지들이 성하였습니다. 이 악마의 세력은 각계각층에 침투하여 있습니다. 이들의 세상생활의 원리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치는 생활의 원리와는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충돌이 있습니다. 여기에 반대가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충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의 충돌이 있습니다. 의와 불의의 충돌이 있습니다. 선과 악의 충돌이 있습니다. 『너희 나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부득이 이 충돌로 말미암아 오는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미리 주님께서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죄악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를 따라서 진리와 사랑과 성결(聖潔)의 생활을 하려고 하면 자연히 여기에 충돌이 있습니다. 세상의 비난이 있습니다. 세상의 중상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핍박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순교를 당할 수밖에 없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악한 마귀는 일변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가 유혹에 들지 아니할 때에는 핍박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세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너희가 장차 이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으나 담대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의 성경에는「안심하여라」혹은「용기를 내어라」하였습니다. 왜? 내가 이 세상을 이미 이겼으므로 너희는 내 안에 있어 내가 세상을 이길 때 너희도 같이 세상을 이겨서 내가 세상을 이김으로 너희도 세상을 이길 터이라고, 그러므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살라고 우리에게 권면 하여 주십니다. 과연 예수님의 일생을 우리가 복음서를 통해서 잠깐 생각하면 그의 일생은 싸움의 일생이었습니다. 악한 마귀와의 대결이었습니다. 악의 세력과의 충돌이었습니다. 어느 때가 그렇지 아니 하리요 마는, 복음서를 가만히 읽어볼 때 예수 님께서 악의 세력과 대결해서 싸운 싸움터가 한 서너 곳 특별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싸운 곳은 주님께서 광야에서 홀로 四十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기도할 때에 그의 심령 깊은 곳에서 큰 싸움이 벌어집니다. 모든 큰 싸움은 사람의 심령 속에서 먼저 벌어집니다. 예수 님께서 오래 금식하실 때에 매우 주렸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와서 하는 말이『네가 심히 주린 모양인데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하였습니다. 배고플 때에 시험이 들어옵니다. 빈궁할 때에 경제의 시험이 들어옵니다. 경제를 통해서, 먹을 것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배고플 때에 돌로라도 떡을 만들어 먹어라, 수단을 가질 새가 있느냐, 먹어야 되지 않느냐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 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주림을 이기면서 악한 마귀의 유혹을 또한 이긴 것입니다.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령을 높은 성전 꼭대기에 데리고 가서는『뛰어 내리라. 그러면 선지자 노릇을, 메시야 노릇을 쉽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인기와 명예에 대한 시험인 줄 생각합니다. 특별히 청년 시대에 이런 시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좀 빨리 성공을 해야지…좀 빨리 명성을 얻어야지…그렇게 하려면 남 안 하는 일을 뭘 좀 해 봐야지…이것도 해야지…』예수 님께서는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물리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한 예수님의 심령을 이끌고 높은 산에 올라 천하 만국의 영광을 다 보이면서『이것은 내게 속하는 것이요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것인데 거저 나에게 절만 한 번 한다면 곧 주리라』고 했습니다. 권세와 지위와 영광과 허영에 대한 유혹이올시다. 이런 시험을 받는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가 없습니다.『그저 이런 것을 얻으려면 마귀에게 절을 해야 돼. 악한 수단이라도 사양치 않아야 돼. 권모술수도 좋고,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심령 깊은 속에, 청년들의 마음 가운데 이런 싸움이 얼마나 벌어지는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오직 주 하나님만 경배할 것이라고 하는 말씀으로 물리친 것입니다. 그는 먼저 고요한 가운데, 깊은 심령 속에서 홀로 이 악한 마귀의 유혹을 이겼습니다. 모든 시험이 먼저 우리의 마음속에 온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마음속에서, 심령 속에서, 악마의 유혹을 우리가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주안에 있을 때에만 이 승리를 얻을 수 이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큰 대결은 역시 그의 실제 생활 면에서도 있는 것을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큰 권세로 가르치십니다. 많은 병을 고쳤습니다. 사람이 구름 같이 모입니다. 인기가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그런 때에 무슨 시험이 들어오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순전히 인간적 견지에서 말합니다. 교만의 시험이 들어오기 쉽습니다. 어떤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당신을 밴 태와 당신에게 젖을 먹인 그 젖이 복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이어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그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모여서 예수께서 그 때에 정치적 구주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를 높여서 왕을 삼자고 하는 그런 운동을 하였습니다. 예수 님께서 그 광경을 보고는 이어 다른 곳으로 피했다고 하였습니다. 악한 마귀가 실패할 땡 이런 면으로 전술을 바꾸어서 그 다음에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마음에 시기를 일으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한다. 성전을 훼방했다. 여러 가지로 비난을 하고 중상을 하고, 그가 무슨 이적을 행하는 것은 실상은 바알세불의 악한 마귀의 힘을 빌어서 행한다고 중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우리가 복음을 읽어보면, 주님께서 어떠한 때에 의분을 발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자기를 중상하거나 자기에 대한 무엇일 있을 때에 분노한 것을 우리가 찾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든지 욕을 욕으로 갚지 아니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익을 선으로 갚으면서 이긴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악한 마귀가 모든 세력을 동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조소가 있습니다. 희롱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망의 고통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서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이겼습니다. 정복했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겼습니다. 이 악한 마귀의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승리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고, 만민의 죄를 대속 하게 되었고, 실상은 악마의 한 일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준 것뿐입니다. 결국은 십자가에서 악마는 온전히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의와 불의의 대결을 보면 항상 그렇습니다. 어떤 때에는 불의한 사람들이 이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지나 보면 실상은 그 사람들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그를 사랑하고 택함을 입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모든 일에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시고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그를 무덤 가운데 장사하고 바위로 덮었지마는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까지 이기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은 모든 유혹과 모든 비난과 모든 중상과 사망의 권세까지도 이기신 승리의 주님이올시다. 이미도 말했지마는, 우리 주님의 승리는 우리 믿는 자의 승리올시다. 그는 우리는 대표해서 이 승리를 얻으셨고 우리는 그 가운데 살고 있으므로 그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먼저 세상을 이기었으므로 우리도 그와 같이 세상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당 뜰 안에서, 제가 사는 집(사택)안에서, 아주 오랜 은행나무를 보시지요. 아마 여러 백 년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 그 은행나무의 전체를 보십니까?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은 그 은행나무를 절반만 봅니다. 땅 위에 있는 부분 절반만 보는 것입니다. 실상은 그 절반은 어디 있는지 압니까? 깊이 땅 속에 있습니다. 그 뿌리가 그만큼 땅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가지는 흔들이지마는 결코 넘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왜? 그 속에 깊은 뿌리가 박힌 까닭입니다. 참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떤지 압니까? 그 은행나무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삽니다. 우리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우리의 뿌리를 그리스도 안에 깊이 두고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환난이 옵니다. 세상에는 유혹의 바람이 옵니다. 세상에는 시험의 바람이 옵니다. 혹 어떤 때 다소 흔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넘어지지 아니합니다. 왜? 우리 인격의 깊은 뿌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八장 三十七절에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사도 요한 은 요한 一서 五장 四절에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대저 하나님께로 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가 비록 약하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까? 우리가 온전히 죄를 회개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바치고, 우리의 생활이 주안에서 사는 생활입니까? 그러면 우리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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