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29-42/ 하나님의 어린 양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24:49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一․三十六)

이 말씀은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대한 증거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이름은 성경에 허다하게 많이 있습니다.「선한 목자」라고 한 곳도 있고「생명의 양식」,「포도나무」또는「반석」,「길」,「문」,「빛」,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합니다.

그렇지마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려 오신 세례 요한은 다른 어떤 이름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적절한 의미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다른 이름으로 알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알아야 될 필요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세례 요한이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면서 외친 말씀이『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어찌해서 먼저 이런 이름으로 예수를 지적하셨는지 그 몇 가지를 오늘 아침에 생각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어린양이란 이름은 그의 성품을 우리에게 연상시켜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모든 짐승들 가운데 가장 순진하고 무사기합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그러합니다.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임하였다고 말씀하였고 또한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양으로 지적하는 것은 그의 흠 없고 점 없는 수정같이 맑은, 생수 같이 깨끗한 순결한 성품을 우리에게 물론 연상하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다른 점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짐승 가운데 양은 가장 온유한 짐승인 줄 생각합니다. 양 가운데도 어린양은 특별히 더 온유하고 겸손한 짐승으로 생각이 됩니다. 예수를 어린양으로 지적하는 말을 듣게 될 때에 우리는 자연히 주님의 음성을 회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이사야가 메시야의 성품을 묘사할 때에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고 등불도 끄지 아니한다고 하는 말씀도 연상됩니다.

사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시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욕을 욕으로 갚지 아니하시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와 겸손으로 대한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과연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어린양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 또한 사실인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상의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마는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이라고 말씀한 그 중심은 여기에 있지 않는 줄 생각합니다. 이 말씀의 중요한 사상은 그의 성품의 묘사가 아니고 그의 일생의 사업의 상징인 줄 생각합니다. 세례 요한은 레위 지파에 속합니다.

아론의 후손입니다.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누구보다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잘 통달한 선지자입니다.

이와 같은 선지자가 메시야의 길을 분지하기 위하여 먼저 나타나 예수께서 나타나는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양이라고 지적한 배후에는 과거의 모든 선지자들의 교훈이 그의 머리에, 배후에 있는 줄 생각합니다.

수난의 메시야의 모습을 제일 분명히 묘사하는 이사야 五十三장, 그 가운데서도 七저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 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이와 같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줄 생각합니다.

또한 이 말씀을 하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 줄 생각합니다. 세례 요한에게 이르기까지 모세로부터 시작해서 처음에는 성막(聖幕)에서, 그 다음에는 성전에서 매일 아침에도 제사 드리고 저녁에도 제사를 드렸는데, 아침에나 저녁에나 어린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안식일을 당하면 그 수를 배로 늘여서 아침과 저녁으로 두 마리씩 어린양을 희생의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어린양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또한 유대사람들은 모든 명절 가운데도 제일 큰 절기가 되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 받은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절기에는 본래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구원을 얻은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반드시 유월절 양을 잡아서 이 날을 기념하는 풍속이 있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어린양이라고 말씀한 그 사상의 배후에는 이런 모든 메시야에 대한 예언과 모든 제사의 제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서의 어린양이라고 우리에게 지적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 특별히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 혹 기억하십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자기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 이삭과 같이 모리야 산으로 올라갈 때에 이삭에게 나무를 지우고 자기는 불을 가지고 높은 산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도중에 이삭이 자기 아버지에게 묻습니다.『아버지, 제사할 나무는 우리가 준비하여 가지고 하며 제사에 쓸 불도 준비하여 가지고 가지마는 제사에 쓸 양은 어디 있습니까?』이런 질문을 들을 때에 아브라함이 곧 은혜 가운데서 대답하는 말이『아들아 그 양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주실 줄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그 양을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말씀은 그 뜻입니다. 이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주신 양입니다.『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독생자를 하나님께서 어린양으로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보니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여기 세상이라고 하는 말은 온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이방 사람들만 아닙니다.

옛날 있던 사람들만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만 아닙니다. 온 세상, 동서고금, 전 세계를 가리킨 말입니다. 이 어린양은 동서고금 온 세상, 전 인류의 죄를 진 어린양이라고 우리에게 지적하여 주십니다.

전의 어린양은 한 사람의 죄를 대속하게 위해서 그 생명을 희생했습니다. 어떤 어린양은 두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그 생명을 희생하였습니다. 또 어떤 어린양은 이스라엘의 전 민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희생을 드린 어린양도 있습니다.

그렇지마는「세상 죄」를 지고 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 전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어서 그 죄를 대속하는 어린양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상 죄를「지고 가는」어린양이라고 그랬습니다.「지고 간다」고 하는 이 말에도 배후에 사상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시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특별히 一년에 큰 속죄 일이 있었습니다.

이 날에는 특별히 대제사장이 염소 둘을 택해서 하나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의 죄를 대속해서 하나님께 번제로 잡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또 하나는 대제사장이 그 위에 손을 얹고 자기와 자기의 온 민족의 죄를 자복한 후에 그 염소는 번제로 드리지 아니하고 아사셀에 속하는 염소라고 해서 그 염소를 멀리 사람 없는 광야로 내어 보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고 멀리 사람 없는 광야로 아주 가버렸습니다.

세상 죄를 질뿐더러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하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감당해서 자기가 희생한 어린양이 될뿐더러 인류의 모든 죄를 자기 등에 혼자 지고 멀리 다른 곳에 가서 죄의 짐을 없이 하였다고 하는 뜻이 이 가운데 있는 줄 생각합니다.『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온 세상의 인류, 옛날 사람뿐만 아니고 지금에 있는 우리뿐만 아니고 장차 이 세상에 날 사람까지도 온 세상 전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하시고 그 죄를 아주 없이하여 주신 어린양과 같은 분입니다.

우리가 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물론 이 깊은 진리는 인간의 옅은 이성으로써 다 설명하기 힘듭니다. 좁으라운 인간의 이성으로 다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저는 꼭 이대로 믿습니다. 그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믿을 만한 증거가 많습니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제일 먼저 우리에게 소개해 주시는 세례 요한이 이와 같이 증거 한 까닭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서 먼저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세례 요한이야말로 정직하고 강직한 인물입니다. 바른 말 하다가 자기의 생명을 헤롯에게 빼앗긴 강직하고 정직한 인물입니다. 세례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해 주십니다.

그뿐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복음 三장 十四절에 말씀하시기를『모세가 광야에서 벰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서 그 구리 뱀을 보는 사람마다 뱀에 물려 죽어 가는 사람들이 살아났습니다. 이것처럼『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무슨 뜻입니까? 십자가를 가리킨 것입니다.

요한 복음 十二장 二十四절에는 자기가 친히 이렇게 말씀했습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여기 한 알의 밀은 누구를 가리켰습니까?

예수를 가리켰습니다.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스스로 증언했습니다. 마가복음 十장 四十절에는 모든 제자들에게 피차에 봉사를 배우라고 권면 하시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씀으로 결론 맺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인자가 오셨다고 스스로 증언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증언만 아닙니다. 모든 사도들은 이와 같이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꼭 이와 같이 믿고 이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五장 七절에 친히 기록하시기를『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그리스도를 유월절 양이라고 직접 사도 바울도 말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十五장 三절에는『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傳) 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사』기록되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주님께서 죽으셨습니다.

제일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는 이와 같이 증언했습니다. 베드로 전서 一장 十八-十九절에『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노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그리스도의 보배로우신 피로 산 것입니다.

예수님의 품에 안겼다고 하는 사도 요한 은 어떻게 증언했습니까? 요한 一서 一장 七절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 사도의 증언을 다 말씀했습니다.

더 말씀할 필요도 없이 한 마디 더 하면 천사들도 이와 같이 증언했습니다. 요한 계시록 五장 十一-十二절에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萬萬)이요 천천(千千)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 하도다 하더라.』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오늘 아침 우리 눈을 들어서 하나님의 어린양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십시다.

「보라」고 하는 말은 깨달으라고 하는 말이며 믿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분으로 생각하고 믿었는지 모르지마는 이 시간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대속 하신 어린양으로 믿으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잡지를 보니까 미국 남방의 어떤 목사가 이 뜻을 분명히 가르쳐 주기 위해서 강대(講臺)에 십자가를 크게 하나 만들어 놓고는 어린양을 잡아다 십자가에 못박으며 이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해야 깨달아 알겠습니까? 그렇게 보지 않고 믿는 이는 복이 더 많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어린양으로 믿는 사람에게 어떠한 축복이 있습니까? 요한 계시록 七장 九절 이하를 읽어보세요. 사도 요한 이 신령한 가운데 바라보니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그 보좌 옆에는 어린양이 섰다고 그랬습니다.

그 어린양을 둘러싼 각 방언, 작 족속, 각 나라, 수 없는 사람들이 둘러서서 몸에는 흰옷을 입고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과 그 어린양을 찬송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 이 물었습니다.『이 사람들이 다 어떤 사람들인가』천사가 대답합니다.『이 사람들은 다 어린양의 피로 그 몸을 씻었느니라.』

요한 계시록 十三장 八절에는 어린양의 생명 책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어린양의 생명 책에 기록된 사람이라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 책에 녹명(錄名) 되었습니까? 十四장 一절에는 어린양의 이름이 그 이마에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어린양의 이름이 우리 이마에 있습니까? 十五장 三절에는 구원받은 사람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른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린양의 노래를 부릅니까? 十九장 九절에는 장차 어린양의 큰 혼인 잔치가 있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이 혼인 잔치에 참여할 만한 흰 예복이 준비되었습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누구든지 이 어린양을 바라보고 그를 믿고 내 구주인 것을 확실히 하나님 앞에 나와서 고백하는 그 사람은 모든 죄의 씻음을 받고 흰 예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아니하리오 마는 이제부터 부활주일 때까지는 특별히 사순절 기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는 때입니다. 우리가 이 때에 어린양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그 앞에 나와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모든 죄 사함을 받고 마지막에 큰 부활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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