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2:1-12/ 산 믿음 / 한경직 목사
2014-08-22 23:59:27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二․五)

가버나움에서 된 일입니다. 아마 베드로의 집에서 된 일인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시매 많은 사람들이 구름 모이듯 몰려와서 문 앞에도 용신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여 졌습니다.

그 때에 마침 어떤 사람들 넷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메고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문으로는 도저히 들어올 길이 없습니다. 생각하다 못해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유대 사람들의 집 짓는 법은 우리와 조금 달라서 그 곳은 비가 적게 오는 관계로 지붕을 평평하게 만듭니다. 지붕 위에 많이 올라가 사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평평한 지붕에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중풍 병자를 달아매어 내려서 예수님 앞에 갔다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런 꾸지람도 하지 아니하시고 성경에 있는 대로 환자를 메고 온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환자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병까지 온전히 고쳐 주신 것입니다.

오늘아침 특별히 생각하려는 것은 저희의 믿음, 이 중풍 병자를 메고 온 이들의 믿음을 잠깐 묵상하고자 합니다. 야고보는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영혼이 없으면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 가운데는 죽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믿음은 산 믿음이올시다.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서 생생한 산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의 믿음을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그들의 믿음을 생각할 때에 그들의 믿음의 내용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 곧 구주인 줄로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들은 예수님은 능력이 많아서 능히 어떤 병도 고칠 수 있고, 예수님은 사랑이 많아서 모든 환자를 불쌍히 여겨서 영접하시는 줄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비교적 그 신앙의 내용은 이렇게 단순한 것인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믿음을 예수님께서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닙니다. 그 내용은 단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내용이 오늘 아침에 우리가 읽었지마는 사도신경에 다 요약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우리는 그의 아들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거룩한 공회 곧 교회를 믿습니다. 성도의 교통 곧 교제를 믿습니다. 죄를 사하여 주는 것을 믿고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그 전체가 말하자면 간단합니다. 이 사도신경 가운데도 그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약간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성신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으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러나 사흘만에 다시 사셨으며 승천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그이는 반드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고 말씀하신 것이올시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반드시 신학자가 되어야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새로 믿는 이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새로 믿는 이도 예수를 이 만큼만 알면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생각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이 이와 같이 단순했지마는 한 가지 기억할 것은 그들의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확실했다는 사실입니다. 철저하였습니다. 조금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그 많은 수고를 하면서, 멀리서 중풍병자를 메고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단순하나 철저했습니다. 믿음의 장인 히브리 十一장을 보면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장차 바라는 것을 실상처럼 생각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생각하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조금 내려가 보면 모세의 믿음을 설명할 때에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모든 것을 참았다고 고 했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시지마는 보는 것 같이 곡 느껴졌습니다

. 이 하나님을 꼭 의지하고 만난(萬難)을 이기면서 자기 민족을 보이는 바로 왕 앞에서 구원해 낸 것입니다. 이렇게 중풍 병자를 메고 온 그들은 예수께서 이 병자를 그에게 데리고 가기만 하면 고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의심 없이 믿은 것이올시다.

한 번은 어떤 소경이 예수께 와서 보게 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히려 반문을 하십니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는 줄 네가 믿느냐 할 때에『예 내가 믿습니다.』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네 믿음대로 되어라.』

이것이 산 믿음입니다. 지금도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아니하십니다. 예수께 나오면 어떤 죄인이라도 지금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너희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만 있다면 능히 산을 옮길 수 있다』고. 겨자씨 한 알처럼 믿음이 비록 작고 단순할지라도 그 믿음이 산 믿음이라면 그 곳에 생명이 있습니다.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씀이올시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에 디모데 후서 一장 十二절에『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노라.』 이 확신이 필요합니다. 산 믿음이란 의심 없는 철저한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의 찬송가 가운데『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을 아시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내가 밝히 알 도다』 혹은 옛날 번역대로『내가 확실히 아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를 확실히 알고 철저히 믿는 믿음이 산 믿음으로서 반드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에 대한 이들의 산 신앙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사랑과 동정심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예수님인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중풍병 환자가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불행 가운데 있습니다.

이를 볼 때에 이들은 불쌍한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 것입니다. 신앙을 통해서 위로 옳은 관계를 맺은 이는 아래로 사람과 옳은 관계를 맺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자비심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고 성경은 기록하였습니다. 혹은 예루살렘 성을 감람산에서 내려다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며 탄식을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이는 이런 그리스도의 눈으로 모든 사람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가난한 이들, 외로운 이들, 병난 사람들, 사회에 버림받은 사람들, 죄인들, 이런 눈, 이런 마음이 결국은 알버트 슈바이처 같은 사람을 고국을 떠나서 멀리 아프리카에 가서 그 밀림지대에서 일생을 바쳐 흑인의 병을 고쳐 주게끔 만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눈, 이와 같은 마음이 윌리엄 케리와 같은 사람을 움직여서 제일 먼저 인도로 가서 일생을 그 곳에서 갖은 고생을 무릅쓰고 복음을 증거 하게 한 것입니다.

몇 해전 제가 미국을 여행할 때에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는 가운데 피얼스 박사의 얘기가 나옵니다. 그 분의 말이 이 피얼스 박사는 한국을 위해서 마음이 깨어진 사람이라고, 부로큰 하아트 맨(Broken hearth man)이라고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많이 기억하실 줄 압니다. 바로 六․二五 나기 서너 달 전에 서울에서 큰 부흥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다 六․二五가 났습니다. 그러자 종군 기자가 되어서 한국에 다시 나와서 피난민의 그 참혹한 형편과 전쟁 고아들과 전쟁 미망인들과 그 모든 폐허 가운데서 허덕이는 한국의 사정을 실제로 목도한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 그의 마음은 문자 그대로 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을 위하여 여러분의 마음이 깨어져 본 적이 있습니까? 오히려 가족끼리도 마음놓고 말할 수가 없는 전혀 자유가 없는 북한 동포를 향해서 마음이 깨어져 본 일이 있습니까?

고아들과 무의무탁한 노인들과 미망인들을 보고 마음이 깨어져 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 사회 안에 소위 부정과 부패와 아파트 붕괴 사전 등등, 이런 것들로 인하여 마음이 깨어져 본 일이 있습니까?

우리가 사실 예수님을 알고 그의 눈으로 우리의 현실을 본다고 하면 실로 우리 마음이 깨어질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줄 압니다. 산 믿음을 가진 이는 예수님의 눈으로 모든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죄악 가운데 허덕이는 동포를 볼 때에 자연히 마음이 깨어질 것입니다.

넷째로 이런 마음은 항상 상심 중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행동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같이 메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은 봉사와 협력의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 오기 위해서 문자 그대로 어깨를 들이대었습니다. 메고 왔습니다.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메고 오기 위해서 발걸음을 하나씩 하나씩 맞춘 것입니다. 협력했습니다.

산 믿음은 이렇게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는 지적하였습니다. 너희가 입을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내버려둔다고 하면 너희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는 지적하였습니다. 피얼스 박사의 믿음도 한국을 위해서 마음만 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一九五一년에 와인홀날릭이란 곳에서 피얼스 박사를 다시 만났을 때 저를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나는 이 앞으로 한국의 고아들과 이런 이들을 위해서 사업을 일으킵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명회가 조직되었고 고아 구호 사업을 시작하게된 것이고 지금까지 수만 명의 고아를 보호하는 중에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모자들을 도와주고 많은 의료 사업을 시작해서 많은 문둥이를 고쳐주고 많은 고아들을 치료하는 중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 처음 가니 사방에 우상이 가득합니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단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볼 때에 마음이 안타까워졌습니다. 마음이 깨어졌습니다.

견딜 수가 없습니다. 분격해서 거리를 헤매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파하고 마지막에는 아레오바고 산에 가서 많은 무리를 모아 놓고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사회에 온갖 죄악을 보고 마음이 깨어진다고 하면 우리 민족의 정신 혁명을 위해서 담대히 복음을 전파할 것입니다. 이 정신 혁명 운동에 협력할 것입니다. 이 민족적 갱신을 위해서 같이 어깨를 들여 댈 것입니다. 협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렇게 가버나움의 환자를 메고 왔지마는 정작 메고 와 보니 문밖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예수님 앞으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낙심하고 이젠 할 수 없구먼 하고 돌아갔습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생각했습니다. 연구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붕이라도 뚫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험적 행동입니다. 이들의 견인력, 독창성, 만 난을 돌파하는 용기가 여기 있습니다. 한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았습니다. 목적을 관찰하기까지 꾸준히 노력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노력하였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담 가운데 열 번 찍어서 넘어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석수가 바위를 깨뜨릴 때에 망치로 한번 처서 안되면 그만 둡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치고, 두 번 치고 세 번 치고, 깨어질 때까지 계속 치는 것입니다.

결국은 큰 바위라도 깨어져 나갑니다. 전도에도 이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한번 가고, 두 번 가고, 세 번 가고, 열 번 가고, 한번 권하고, 두 번 권하고, 세 번 권하고 열 번까지라도 권할 수 있는 전도에 이런 지구력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을 때에 한번 빙 둘러보고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못 찾겠다고 돌아왔습니까? 아닙니다. 찾을 때까지 산과 들을 헤매었습니다. 밤과 낮을 불구하고 찾아 다녔습니다. 마지막에는 찾고야 만 것입니다.

산 믿음은 이런 전도의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번에 대구 집회를 가만히 볼 때에 특별히 감사한 바가 많습니다. 연합 집회니까 여러 교회에서 전도하기 위해서 아주 힘을 씁니다.

특별히 그 가운데 한 교회, 대구 남산교회, 四~五00 명밖에는 모이지 못하는 교회인데 온 교우가 열심히 전도를 하는데 나흘 저녁에 통계를 보니 八00여 명을 그 교회 교인들이 인도를 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사람 이상의 노력을 했습니다. 거기 백 장로라는 분이 저를 초대해서 많은 음식 대접을 받았는데 그는 매우 바쁜 의사입니다. 그 분 자신이 다섯 사람을 인도했다고 그럽니다. 내가 그 후 조 목사님을 만나서 어떻게 해서 당신 네 교회는 그렇게 전도 집회에 전도를 많이 했느냐고 물어보니

『우리는 전도집회 하기 열흘 전에 권찰회를 열고 세 사람 이상씩 전도하기로 약속을 했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이상으로 결과가 됐다고 합니다. 여섯 집회를 다 합하면 아마 이 교회에서는 一천여 명 이상 현재 모이는 교인의 二배 이상의 새 신자를 얻은 모양입니다. 이와 같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단순하나 철저한 그 믿음, 환자를 불쌍히 여기는 그 믿음, 행동으로 옮겨 끝까지 관철하고자 하는 그 믿음을 보시고 먼저 그 환자의 죄를 용서해서 영혼을 구원해 주시고 다음에는 병을 고쳐서 육신까지 고치신 것이올시다.

여러분, 어떻게 보면 우리 한국은 한 중풍병자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중한 병으로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환자를 주님 앞으로 인도만 하면 능히 고침을 받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이 일은 한 두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의 힘을 합력 해야 할 것입니다. 협력이 필요합니다.

예수 님께서는 먼저 죄를 사하여 주실 것입니다. 정신 혁명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정신적 축복만 아닙니다. 모든 다른 방면의 축복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몇 주일 전에 제가 말씀 드린 대로 十八세기에 영국에 요한 웨슬리란 사람을 중심으로 온 영국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했더니 정신적으로 그들의 영혼을 구원해 주셨을 뿐더러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모든 방면으로 크신 축복을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 큰 목적으로 七十년대 정신 혁명의 전도 대회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산 믿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 일을 위해서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협력해야 되겠습니다. 이 정신 혁명 대열에 참가해야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체적으로 할 것 세 가지만 부탁합니다. 첫째는 이 정신 혁명을 이루기 위해서 서울 전도대회를 위해서 하루에 적어도 두 번 이상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으면 새벽 기도에 나와서 한 번은 기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번 대구 집회도 보니까 제일교회가 가득 모입니다. 一천여 명이 모입니다. 아주 열심히 기도를 하니까 열매도 많았습니다.

둘째로는 二十五년 이래의 특별한 모임이므로 내 자신이 꼭 매일 적어도 저녁 예배는 참석하도록 힘을 쓰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이번 기회에 정신 혁명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서 적어도 한 사람 이상씩 인도해서 저녁 예배에 같이 참석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과연 산 믿음이 있습니까? 그러면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 영락 교회가 二十五년간이나 장성했으니 이제는 열매를 맺을 때입니다. 정신 혁명의 새로운 기풍을 일으킬만한 영락교회로 장성한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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