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7:7-20/ 두 문 두 길 / 한경직 목사
2014-08-22 23:30:59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七․十三-十四)

이 말씀 가운데 두 문과 두 길, 두 종류의 사람들, 두 다른 사람들의 종말과 종국(終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잠깐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 간증 주일에 각 사람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두 문을 보세요. 좁은 문과 넓은 문이 있습니다. 인생의 앞에는 이렇게 두 문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로 들어가려면 두 문 가운데 좁은 문을 택해서 그 문을 통과해야 된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회개의 문이올시다. 회개는 좁은 문이올시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도 제일 먼저 외친 말씀이『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였고 제일 먼저 외친 말씀이『천국이 임하였느니라』입니다.

좁은 문은 짐을 지고는 못 들어갑니다. 죄의 짐을 지고는 못 들어갑니다. 교만, 허위, 음란, 방탕 등 온갖 죄를 회개하고야 생명의 길에 들어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들, 생명 길로 들어선 이들은 신앙 생활을 시작할 때에 이 좁은 회개의 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불 경건한 생활을 끊어버리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용기가 필요합니다. 단호한 결심으로써만 이 좁은 문을 통과합니다. 우리는 다 이 좁은 문을 지났습니다.

또 이 문은 좁아서 하나씩 하나씩만 들어 갈 수 있습니다. 혹 어떤 경우에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는 경우를 우리가 봅니다. 대단히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가 예배당 문은 같이 들어 올 수 있지마는 이 회개의 좁은 분은 각각 하나씩 하나씩 통과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회개해야 되고, 아들은 아들로서 회개해야 되고, 딸은 딸로서 각각 따로 회개해야 생명 길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제가 베들레헴에 갔을 때에 거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해서 지은 큰 예배당을 보았습니다. 예배당은 큰데 예배당에 들어가는 문은 작아서 문자 그대로 좁은 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 예배당에 들어가려면 머리를 겸손히 숙여야 하고 짐을 벗어 놓고 하나씩만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회개의 문이 이와 비슷합니다.

반면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다고 하였습니다. 넓습니다. 전에 평양에 살던 사람들은 넓으면 대동문통 같다고들 말했습니다. 아마 옛날에 서울 살던 사람들은 아마 남대문통 처럼 넓다고 이야기했을 거예요.

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습니다. 교만 그대로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문벌에 대한 교만 돈으로서의 교만 혹은 지위에서의 교만 모든 교만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 짐을 벗을 필요가 없습니다. 죄 짐을 지고도 그냥 들어갑니다. 들어가도 거치는 것이 없습니다. 홍콩세관 비슷한 지도 몰라요.

그러나 주님은 경고합니다. 이 문은 결국 멸망의 길로 인도한다고.

둘째로 두 길을 보세요. 주께서 좁은 길 넓은 길을 지적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다고. 그런고로 좁은 길로 가라고 권고하십니다. 이런 권면이 우리 동양 사람에게는 얼른 납득이 안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옛날 동양사람들은 군자는 대로 행(君子大路行)이란 말을 했습니다. 군자는 넓은 길로 걸어다닙니다. 자 그런데 이거 좁은 길로 가라니… 이런 좁은 길은 현대인에게도 맞지 아니합니다. 왜? 소위 근대화 작업 가운데 하나는 길을 넓히는 작업이올시다. 신작로니 고속도로니 다 넓은 길을 의미합니다.

자 그런 시대에 좁은 길로 가라고? 말하자면 시대 감각에 역행된 교훈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 차원이 다릅니다. 지금도 영적 윤리적 차원에서는 이 말씀이 진리입니다. 거저 쉽게 말하면 좁은 길이란 어려운 길을 의미합니다. 넓은 길이란 쉬운 길을 의미합니다.

지금 가을이라 도처에 체육대회가 많은 것 같은데 가령 여기 운동 선수가 되려는 젊은이가 둘 있다고 합시다. 운동 선수 앞에도 두 길이 있습니다. 좁은 길이 있고 넓은 길이 있습니다. 한 청년은 운동 선수가 되기 위해서 음식도 절제합니다. 잠도 꼭 잘 만큼 잡니다. 규칙적 생활을 합니다. 때때로 연습합니다. 매일 연습합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한 청년은 같은 목적을 가지기는 가졌지마는 이대로 하지 아니합니다. 음식도 마음대로 먹고 자는 것도 마음대로 자고 연습도 규칙대로 안 하고 생각 날 때는 하고 생각 안 날 때는 그만 두고 넓은 길로 갑니다. 어느 청년이 장래에 위대한 선수가 될 것입니까. 좁은 길로 가는 청년이 위대한 선수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좋은 성가대의 음악을 들었지마는 음악가의 앞에도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좁은 길이고 하나는 넓은 길입니다. 여기 음악가가 되려는 두 학생이 있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연습을 합니다.

규칙적으로 연습을 합니다. 매일 연습합니다. 꼭 선생의 지도를 받아서 연습을 계속합니다. 그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한 학생은 같은 목적을 가지기는 가졌지마는 그대로 하지를 않습니다.

생각나면 연습하고 잊어버리지 않으면, 분주하지 않으면 공부하고 놀러갈 대가 있으면 놀러 가고, 연습할 때만 열심히 하고 연습 안 할 때는 몇 주간이고 안 합니다. 이건 넓은 길입니다. 여러분, 어느 학생이 장래에 위대한 음악가로 성공할 것입니까. 좁은 길로 가야 성공합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습니다. 과학을 공부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한 사람은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책을 읽습니다. 내용을 깊이 묵상합니다. 모든 것을 자세히 관찰합니다. 이것을 실험해 봅니다.

실험실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떠나지 아니하고 확실한 결과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실험을 계속합니다. 이것은 좁은 길입니다.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 학생은 과학자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그렇게 하지를 않습니다. 생각나면 책보고 생각나면 공부하고 실험도 대강하고 잘 안되면 그만 두고, 넓은 길입니다.

어느 학생이 앞으로 위대한 과학자가 될 겁니까.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유명한 과학자 에디슨의 말이 있습니다. 천재란 별 게 아니고 一할만 영감이요, 영감은 즉 인스피레이션입니다. 실상 九할은 땀을 흘려야 된다고, 즉 펄스피레이션이 다라고 했습니다. 천재가 되는 길도 좁은 길입니다.

운동 선수 음악가 과학자가 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성공해야 합니다. 실패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성경의 말대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이에 말한 대로 좁은 문을 통과함으로써 회개의 문을 통과함으로써 시작이 됩니다.

그 다음에 걷는 길은 어떠한가. 그 다음에 걷는 길도 좁은 길입니다. 넓은 길이 아닙니다. 왜? 첫째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일정한 목표가 있는 생활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성품, 그리스도의 생활을 따르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그곳까지 따라가는 생활입니다. 바울의 말씀대로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다름 질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이런 분명한 목표가 있는 생활은 쉬운 생활은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좁은 길입니다. 이런 것이 없는 생활은 물론 쉽지요. 넓은 길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법안에서 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지으시고 자연계에 법칙을 주셨습니다.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이 마땅히 지킬 도덕의 법칙을 주셨습니다.

이 도덕의 법칙을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나타난 십계명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분명히 계시되었습니다. 그런데 법대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좁은 길입니다. 이 법을 무시하고 사는 것은 넓은 길입니다. 무법의 길은 넓은 길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인의 길은 자연히 극기와 절제를 의미합니다. 이상과 같은 생활을 하려고 하면 먼저 나를 이겨야 합니다. 내 속에 있는 본능, 내 속에 일어나는 욕심을 이겨야 합니다. 또 범사에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먹고 마시는 데까지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이기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좁은 길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간단없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옳게 하려고 하면 매일 매일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매일 기도를 드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힘써야 됩니다.

거저는 안 됩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도 힘써야 합니다.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책임을 정직하게 완수하는 것도 힘을 써야 합니다. 거저는 안 됩니다. 좁은 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길만이 생명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참된 즐거움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물론 넓은 길로 가는데는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잡초는 심고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무성합니다. 도둑질은 배우지 않아도 잘 들 합니다. 넓은 길엔 물론 노력이 없지요. 쉽지요. 그러나 넓은 길은 분명히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큰 셋째를 생각해 보세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가지 종류는 넓은 길로 가는 사람 또 한 가지 종류는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적하십니다.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많습니다. 왜? 쉬우니까.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왜? 그건 어렵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흔히 대다수를 따라가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꼭 기억할 것은, 영적 윤리적 문제에 있어서는 대다수라고 맹목적으로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옳은 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언제나 진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언제나 선을 따라가야 합니다. 언제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남이 다하니 나도 하자. 흔히 이런 맹목적으로 대다수를 따라가는데서 부정과 부패와 온갖 타락이 옵니다. 남들이 뇌물을 받으면 나도 뇌물을 받자. 남들이 많이 협잡을 하니 나도 협잡하자. 남들이 모두 술을 마시니 나도 마시자. 남들이 나를 속이니 나도 좀 속여 보자.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로 가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다수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에서 바른 사고 방식이 무엇인지 압니까? 남들이 많이 협잡하니 나는 협잡을 말아야 하겠다. 남들이 많이 뇌물을 받으니 나는 안 받아야 하겠다. 남들이 음란한 짓을 하니 나는 안 해야겠다.

남들이 많이 넓은 길로 가니 나는 좁은 길로 가야 되겠다. 이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다수라고 맹목적으로 따라가지 마십시다. 특히 여러 청년들 유행이라고 맹목적으로. 속담에「소경 말 노량 소리 듣고 따라간다.」는 말처럼 그렇게 하지 맙시다.

넷째로 이 두 길의 종말을 보세요. 좁은 길의 종말은 생명입니다. 넓은 길의 종말은 멸망입니다. 인생 행로에는 두 가지 종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생이요 하나는 멸망입니다. 하나는 축복이요 행복이요 하나는 화입니다.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 천당과 지옥 이것은 가장 엄숙한 인생의 진리입니다. 인생 행로의 마지막은 두 가지 다른 종말이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四十년 동안을 자기 백성을 인도하다가 마지막에 나이 많아서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웠습니다. 임종을 하기 얼마 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간곡히 부탁하는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으리라 내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으니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누구 앞에나 이 생명과 사망의 두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 생명의 길을 분명히 다 택하셨습니까? 누구든지 이 생명의 길을 분명히 택하지 아니한 분이 꼭 기억할 것은 그는 현재에도 넓은 길로 가는 사람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로 가는 사람이올시다. 인생의 행로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두 길 밖에 없습니다. 중간 노선은 없습니다.

내가 생명의 길로 가지 않으면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이올시다. 두 길 밖에 없습니다. 또 인생 행로는 일방 통로입니다. 한 번 가고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한 번 만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길을 한 번 잘못 들면 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인생 길은 꼭 바로 찾아야 합니다. 특별히 젊었을 때에 인생의 길을 똑 바로 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먼저 온전한 회개로서 순전한 생명의 길로 들어가야 합니다. 소위 정 여인 살해사건이라고, 오빠에게 죽은 어떤 여인의 사건이 신문에 났던 것을 여러분이 다 읽었을 줄 압니다. 난 자세히 읽어는 안 보았지마는 그 여인이 아마 굉장히 넓은 길을 걸었던 모양이지요. 넓은 길을 걷는 이는 조만간 이런 종국에 임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一九七0년 간증 주일을 당해서 주님의 말씀을 읽고, 좁은 길 좁은 문과 넓은 길 넓은 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과 길은 좁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나는 곧 길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곧 우리의 길입니다. 예수님이 곧 우리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처음에는 아주 좁아 보입니다. 그러나 따라 갈수록 이 길 가운데는 실상의 행복이 있습니다. 오늘 이 뜻깊은 간증 주일 아침에 주님을 온전히 영접해서 생명의 길을 우리 모두가 걸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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