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1:1-11/ 종려주일의 뜻 / 한경직 목사
2014-08-22 23:25:21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마 21․5)

다음 주일은 부활 주일로 지키고 오늘은 종려 주일로 지킵니다. 이 주간은 수난 주간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의미 깊은 주간인 것입니다. 종려주일은 주님의 최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오셨습니다. 많은 다른 유대인들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 왔습니다.

여리고를 지나 베다니 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 일행이 점점 많아 졌습니다. 벳바게에서부터는 주님께서 나귀를 타셨습니다. 제자들은 겉옷을 길 위에 펴고 무리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호산나라고 하는 말은「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드는 것은 승리와 축하를 의미합니다. 주전 약 二00년에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에게서 구원한 쥬다스 매카비우스 라는 유명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을 이렇게 환영하였던 것입니다. 왕으로 영접하는 예입니다.

오늘 주목할만한 것은 주님의 태도입니다. 이 때까지 늘 우리 주님은 자기를 숨기려는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을 고쳐주신 후에도 다른 이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흔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번은 많은 무리가 와서 그를 억지로 왕으로 세우려고 할 때 그는 그들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날에는 주님의 태도가 그와는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제자들을 시켜서 나귀 새끼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겉옷을 얹으니까 주님께서 그 나귀를 타셨습니다.

무리들이 즐거이 부르는 호산나와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바리세인 하나가 이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해서 제자들을 책망하려고 할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만일 이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

주님의 이런 태도에는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곧 극적인 행동으로 깊은 진리를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입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어떤 때에는 행동을 통해서 가르치기도 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장차 자기 백성이 바벨론에 예속될 것을 경고할 때에 멍에를 자기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곧 실물 교훈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이런 행동의 깊은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그는 지금까지 그 자신을 그 교훈과 생활과 이적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곧 예언자로서의 메시야로 그 자신을 계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왕으로서의 메시야임을 나타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성경에 예언한 그대로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스가랴 九장 九절 이하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이처럼 왕으로서의 영접을 친히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중에 주님께서 빌라도 법정에 서게 되셨을 때 빌라도 는 우리 주님께 직접 물었습니다.『네가 왕이냐』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이렇게 생각하여 볼 때에 베다니 마리아가 주님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도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왕으로 그 머리 위에 기름을 부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조롱의 의미였지만 홍포(紅袍)를 입으신 것이나, 갈대 홀을 손에 드신 것이나, 가시 면류관을 쓰신 것이나,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이란 방패를 붙인 것도 다 우연은 아닙니다. 왕의 모습을 나타내신 사실입니다. 곧 종려주일은 예수는 참으로 왕이시라는 사실을 선포한 날인 것입니다.

그러면 둘째로 어떠한 왕이십니까. 그는 겸손하여 나귀를 타셨다고 하였습니다. 말은 전쟁 때에 쓰는 짐승입니다. 나귀는 평화로울 때에 사용하는 짐승입니다. 왕이 나귀를 타고 오면 그것은 언제나 평화를 의미했습니다. 곧 주님은 온유(溫柔)와 겸손과 평화의 왕이었습니다. 그를 호송한 이들은 창과 검을 든 군인들이 아니고 농민들, 부녀들,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한 평화의 왕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무력으로 사람을 정복하지 않았습니다. 모하메드처럼 칼로 포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인간의 마음을 정복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정치력, 경제력 따위의 권력이나 어떤 폭력으로 인간을 다스리지 아니하십니다. 주님은 오직 온유와 겸손과 인내와 사랑으로 인간의 마음을 끄시고 또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동양에 내려오는 말 가운데도 이력복인(以力服人)이란 말이 있고, 이심복인(以心服人)이란 말이 있습니다. 힘으로 사람을 복종케 하는 사람과, 마음으로 사람을 복종케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폭군이나 독재자가 아니십니다. 오직 사랑과 평화의 왕이십니다.

역사를 통하여 누가 제일 많은 사람들을 다스렸으며 또 지금까지 다스리시고 있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동양으로 말하면 진시황(秦始皇)입니까. 징기스칸입니까. 서양으로 말하면 알렉산더입니까, 혹은 나폴레옹입니까.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실 많은 사람을 중심으로 다스리는 이는 오직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온유와 겸손과 사랑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참으로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이십니다. 오직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이 만이 영원히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일세의 영웅 나폴레옹이 말년에 세인트 헤레나 섬에 외롭게 유배가 되어서 탄식한 말 하 마디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나는 칼로 세계를 정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오직 사랑으로 세계만민을 정복하셨다.』사실입니다.

셋째로 이 종려 주일에 되어진 일을 계속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十九장 四十一절에는 이런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가까이 오 사 성을 보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네 가운데 있는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이 눈물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二十三장 三十七절 이하에는 이런 말씀도 기록되어 있습니다.『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과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함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림을 받으리라.』여기에서 우리는 애통의 왕, 눈물의 왕, 통곡의 왕, 탄식의 왕의 모습을 봅니다.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로 인하여 그의 가슴은 터졌고 그는 피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죄인에 대한 그의 긍휼, 그의 자비, 그의 사랑, 그의 애통은 결국 그를 골고다로 인도한 것입니다. 결국 그로 하여금 십자가로 향하여 돌진하게 만든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에서 그 피의 마지막 방울까지 흘리게 하실 것입니다.

평화의 왕, 사랑의 왕인 그리스도는 결국 대속의 왕이 되셨습니다. 만민의 죄를 대속 하시기 위하여 그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쓰신 가시 면류관은 영원한 왕의 상징이 되었고 만민의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결국은 만민을 정복하고 만민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보좌는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종려주일의 깊은 뜻을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또한 장차 나타날 사실의 예언이 되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 六장 十二절에『내가 이에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十七장 十四절 이하에는『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저와 함께 있는 자를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十九장 十一절 이하에는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鐵杖)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은 평화의 왕이시오, 눈물의 왕이시오, 대속의 왕이실 뿐더러 승리의 왕이시기도 한 것입니다. 곧 만 왕의 왕이십니다. 이 종려주일은 장차 주님께서 승리의 왕으로 만 왕의 왕으로 나타나실 것을 예언으로 보여 주신 날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리스도의 왕권이 오직 부분적으로만 나타납니다. 곧 천국의 백성들에게만 나타납니다. 그 심령 속에만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 왕권이 온 천하 만민에게 강권으로 나타나실 때가 오는 것입니다.

계시록 十二장 十五절에 기록된 대로『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한 그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 때에는 철장으로 다스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다고 하였습니다. 곧 심판을 의미합니다. 곧 대 심판의 왕으로 임할 것을 우리에게 예언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만민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십니다. 그러나 그 뿐만은 아닙니다.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 뿐만도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 뿐만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승리의 왕이시오, 만 왕의 왕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그의 손에 부여되었습니다. 그가 사실 우주를 다스리시고 인간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만 왕의 왕이십니다.

아직은 오직 평화와 사랑의 왕으로 나타나시나 그의 전 능력이 나타날 때가 조만간 다가옵니다.

유명한 아프리카의 개척 선교사 리빙스턴이 깊은 정글 속에서 홀로 기도하다가 죽었습니다. 죽기 며칠 전 그는 그의 일기장에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내 예수, 내 왕, 내 생명, 내 전부시여, 나는 다시 오늘 나의 전체를 당신께 드리나이다.』그는 예수를 내 왕, 내 생명, 내 전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예수께서 과연 내 왕이 십니까? 내가 과연 예수님을 내 왕으로 영접하십니까? 과연 예수 님께서 나를 다스립니까? 과연 주님이 내 마음을 다스립니까? 내 말을 다스립니까? 내 생활을 다스립니까? 내 재산을 다스립니까? 내가 과연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그러면 우리도 그에게 왕에게 합당한 존경을 드려야 하겠고 순복(順服)해야 하겠습니다. 전부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회개하고 복음을 믿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멍에를 메었습니까? 예수를 배우는 중입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라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우리가 이 계명에 순복 합니까?『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이기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과연 우리가 자기를 이기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갑니까?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최후로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명령에 순종합니까?

그리스도는 만 왕의 왕이십니다. 만주의 주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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