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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2:38-45/ 빈집의 위험: 구원 / 한경직 목사 2014-08-22 23:22:41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삶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 12․45) 우리 주님의 간단한 말씀이올시다. 그러나 의미는 심장(深長)합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한 번은 나갔습니다. 물 없는 곳으로 헤매지만 쉴 곳을 찾지 못하니『내가 나 있던 집으로 다시 가리라.』이렇게 결정했습니다. 여기 집이란 사람의 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와보니 집이 비었습니다. 소제도 하고 수리도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한 귀신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서 그 마음의 집에 거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참혹하게 되었다는 말씀이올시다. 빈집은 위험합니다. 속담에 빈집에 도둑이 든다고 했습니다. 집을 오래 비어 두면 도둑만이 아닙니다. 쥐도 들어오고 뱀도 들어오고 거미도 들어오고 온갖 벌레가 다 들어옵니다. 자연의 법칙은 진공 상태를 오래 두지 않습니다. 누구나 빈 병이란 말을 쓰지만 사실은 빈 병이란 없습니다. 빈 병 속에도 공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물을 넣어 보면 꼴록 꼴록 하는 소리가 납니다. 이것은 병 속에 있던 공기가 나오는 소리입니다. 빈 것은 채워지고야 맙니다. 기억할 것은 좋은 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나쁜 것으로 채워지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밭에 곡식을 심지 아니하면 잡초가 납니다. 동산에 꽃을 심지 아니하면 역시 잡초가 무성해집니다. 빈집에는 도둑이 들어올 위험이 있습니다. 빈 밭에는 잡초가 날 위험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빈집의 위험」이란 제목을 가지고 성경 말씀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기억할 것은 인간의 마음은 한 집이라는 사실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내 집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를 예수 님께서 일찍이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十五장 十九절을 읽어보세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 등 한마디로 더러운 귀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회개의 첫 단계는 이 악귀를 내어쫓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부족합니다. 이것이 나간 다음에 집을 쓸고 그냥 비어두어서는 안 됩니다. 곧 새 주인을 영접해야 합니다. 곧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二장 二十절에『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그리스도를 영접했음을 의미하는 말이올시다. 참 회개는 악귀에 속하는 더러운 생각들 대신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각 진리,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은혜로서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충만히 언제나 계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러운 귀신이 재침할 염려가 있습니다. 일곱 귀신이 들어올 염려가 있습니다. 믿다가 타락한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예를 때때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빈 영혼은 위험합니다. 온전히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이 진리와 관련해서 기억할 것은 소극적 신앙 생활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적극적 신앙생활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악한 생각을 교정하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선한 습관을 양성해야 합니다. 금주(禁酒) 단연(斷煙)만은 부족합니다.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음탕한 노래를 피하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경건한 노래, 특별히 찬송을 배워야 합니다. 불결한 책들을 멀리하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유익한 책을 읽어야 합니다. 특별히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죄로 이끄는 오락의 장소를 멀리하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경건한 집회에, 특별히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유혹으로 이끄는 옛 친구를 피하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선한 신앙의 새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야 합니다. 도적 질 이나 협잡을 안 하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음란한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내 아내 내 남편을 참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악을 피하는 길은 선을 행하는 데 있습니다. 악한 생각을 제하는 길은 선한 생각을 품는데 있습니다. 인도의 한 철학자가 자기 제자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이제 한 시간 동안 눈을 감고 마음을 비워 놓고 아무 생각도 말고 앉아 있자 고 선언했습니다. 인도는 원숭이가 많은 나라입니다. 원숭이가 뛰어 들어도 움직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앉았다가 눈을 뜨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가를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했는가?」「원숭이 생각을 했습니다.」몽키콘셔스니스(Monkey Consciousness)라고, 원숭이 의식으로 가득 찼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소극적 노력은 언제나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옛날 바리세인의 실패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결국은 외식과 위선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一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교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그뿐 아니라『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이런 적극적인 면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십니다.『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여기까지는 소극적인 이야기입니다. 다음 계속해서『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게 하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세우는 사람과 같다.』고 산상보훈의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소극적 신자가 되지 말고 적극적인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봉사를 해야 합니다. 전도를 해야 됩니다. 교육 사업과 모든 다른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국가를 위해서도 각 방면에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해서 사회 정화 운동이나, 사회정의 확립운동이나, 사상 선도나, 정치 안정, 경제 발전, 간첩 방지, 국방을 위한 모든 활동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선봉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 일이나 사회 일이나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이 문제와 관련해서 꼭 기억할 것은 이것입니다. 특별히 청소년 시대에 독실한 신앙, 고상한 이상, 철저한 윤리 사상을 마음에 깊이 간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것들 없는 마음은 빈집이올시다. 무엇이나 들어올 수 있습니다. 히피 사상도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유물론 무신론 허무주의 무정부주의 성 개방주의, 공산주의 등 무엇이 못 들어오겠습니까? 빈집에는 아무 것이나 들어옵니다. 거리에 지나가는 많은 청년들을 볼 때에 들어오는 한 가지 의문은 저들의 머리 속에 무엇이 들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염려는 대체로 빈집이 많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갖 유혹과 시험에 빠지지 않을까. 그러므로 맹목적으로 유행만 따라 가는 것이 아닌가. 일곱 귀신같은 악한 사상들에 감염될 위험이 있지 않은가. 양구 다방에서 소란을 피우다가 자살한 한 불쌍한 청년의 이야기를 여러분께서 눈물로 다 읽으신 줄 압니다. 그 청년의 정신 상태가 어떠했습니까? 문자 그대로 비었습니다. 공허감, 인생에 대한 허탈감, 어떤 이는 인간 상실의 적신호라고도 합니다. 사실입니다. 현대인의 정신 상태 가운데 하나는 이 허탈감입니다. 인생의 뜻을 모르고 삽니다. 만일 이 청년이 일찍이 그 머리 속에 독실한 신앙, 고상한 이상, 철저한 윤리 사상이 들었던들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현대 한국의 청년들은 옛날 유교의 삼강오륜을 초개처럼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치할 새 윤리를 찾았는가, 그것은 없습니다. 빈집이올시다. 그러므로 오늘의 도덕적인 혼란 상태를 우리는 목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야말로 성경이 가르치는 기독교 윤리를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이 필요합니다. 기독교 교회 교육, 기독교 학교 교육, 기독교 사회 교육이 필요합니다. 현대 국가 교육은 지식과 기술은 가르치지마는 빈 영혼을 채워 줄 수 있는 진리는 가르치지 못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사명이올시다. 청년들은 독실한 신앙, 고상한 이상, 철저한 그리스도의 윤리를 일찍부터 내 영혼 속에 깊이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넷째로 이 문제와 관련해서 생각할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한가한 생활, 무위의 생활, 아무 것도 안 하는 생활, 게으른 생활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왜? 빈집의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언제나 반격의 기회를 찾습니다. 한가한 여자들, 소위 유한 마담 가운데 유혹에 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일들은 별로 할 것이 없으니까 계나 하려 다니고 다방에나 가고 극장에나 가고, 어떤 이들은 댄스홀에 가고, 이러는 동안에 언제 집안을 망치게 되는지 모릅니다. 성경에는『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섧기라.』고 했습니다.『아들아 포도 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한국농촌에는 손이 부족하여 밭이 놀아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골 청년들이 서울로 몰려 와서 실직자 노릇 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만일 그런 청년이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오늘 저녁을 당 신네 농촌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서 내 농촌을 건설해야 합니다. 서울에서 공연히 빙빙 돌아다니다가 죄에 빠지지 말고 가서 일을 해야 합니다. 놀면 서는 예수를 바로 믿지를 못합니다. 일을 하면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게으른 크리스천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원리와 관련해서 이것을 정치적 견지에서 생각해 봅시다. 6․25 사변이 왜 일어났습니까? 간단히 말하면 빈집에 도적이 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뜻인지 알 것입니다. 一九四八년에 이 서울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국방경비대라고 하는 약간의 군대가 있었지만 국방 적 견지에서 볼 때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것입니다. 탱크라는 것도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은 다 철수해서 미국에 돌아갔습니다. 빈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일곱 귀신같은 북괴가 남한을 침노해서 내려온 것입니다. 만일 그 때 미군이 그냥 주둔해 있었던들 6․25 사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생한 역사의 교훈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왜 지금도 우리는 국군의 현대화를 주장하고 미군의 철수를 반대합니까? 이 나라가 다시 빈집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 월남이 저 모양입니까? 거기도 빈집에 도적이 든 것입니다. 동남아시아가 빈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정치가라도 이 진리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이런 때네 미국의 정치가들이 이 진리를 꼭 배웠으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빈집에 도둑이 드는 법입니다. 지난 8․15 이후로 한국에서 통일 문제를 굉장히 많이 토론하는 모양입니다.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할 통일은 승공(勝共) 통일뿐입니다. 밖에 다른 종류의 통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우선 남한을 정신적으로 사상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모든 방면에 북한보다 월등하게 우위에 서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국제적 여건이나 그 밖에 다른 방면으로 통일의 기회를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남한이 빈집이 되지 아니하도록 모두 아름답고 굳센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 방면이올시다. 영적 견지에서 우리 한국을 볼 때 이 한국의 혼란은 말하자면 빈집을 뜻합니다. 재래의 종교 전통 윤리 사상들은 그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빈집입니다. 남한 인구의 八할은 무종교입니다. 빈집입니다. 그러므로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의 시급한 사명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빈집을 기독교 진리로 채워주지 않으면 무엇이 들어올지 모릅니다. 더 악한 일곱 귀신같은 유물론 무신론 허무주의 무엇이 못 들어오겠습니까? 이 빈집을 그리스도의 진리로 채워야 우리 민족은 금생(今生)과 내생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십자군의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군들은 이런 때에 일어나야 합니다. 복음 전선에 나서야 합니다. 내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내 영혼의 형편이 어떤가. 내 영혼에 빈집은 없습니까? 한 분이라도 그런 영혼이 있으면 이 시간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빈집은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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