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1:1-11/ 예수를 영접하라/ 한경직 목사
2014-08-22 23:20:58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二十一․四)

다음 주일이 바로 부활 주일이올시다.

오늘 흔히 종려주일(棕梠主日)로 지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복음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주님께서는 흔히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에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가시곤 했으나 이 날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유월절에 나귀를 타고서 입성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이례적인 행동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약 스가랴 九장 九절을 기억합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이 예언은 장차 올 메시야의 모습에 대한 묘사입니다.

예수 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신 것은 이 예언을 응하게 하신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야입니다. 구주입니다.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무리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옷을 길에 펴며 호산나를 불러서 영접한 것입니다.

호산나란 말의 근본 뜻은『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란 말입니다. 그러나 보통 우리 한국에서 이런 때에 부르는 만세와 비슷한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종려 주일은 예수 님을 영접한 주일입니다. 예수를 왕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갈릴리에서 절기로 올라온 이들도 예수 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본래 예루살렘에 살던 사람들도 많이 나와서 예수 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앞서 가는 이들, 뒤에서 따르는 이들이 다 예수를 영접하였습니다. 남녀노소, 어린아이들까지 다 호산나를 부르며 예수를 영접한 날입니다.

오늘은 종려 주일인데 우리도 예수를 영접하십시다. 한국은 추워서 종려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우리는 예수를 영접해야 되겠습니다.

사실 제일 귀한 것은 마음에 예수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우리 마음에 영접하면 우선 우리의 마음의 깨끗해집니다.

전에 어떤 젊은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농을 하면서 어떤 청년을 향해서 하는 말이『저 녀석은 꼭 쓰레기통 같아』고 말하며 웃습니다. 쓰레기통은 가만히 두면 괜찮지만 뒤적거리면 냄새가 납니다. 그 사람은 가만히 두면 괜찮지만 입만 벌리면 더러운 이야기만 나온다는 것입니다.

미안한 말이나 인간의 마음은 대체로 이 쓰레기통 같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十五장 十八절에 주님께서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들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과 훼방이라. 이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지적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읽었지마는『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마음이 깨끗해집니까?

주님께서도 산상보훈에 말씀하시기를『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마음이 청결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까? 머리에는 위대한 사상을 가지고 가슴엔 깨끗한 마음을 품는 것 이상의 귀한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여야 마음이 깨끗해 질 수 있습니까?

마틴 루터가 어느 날 아침에 세수 대야에 물을 떠서 손을 씻었습니다. 한 번 씻고 두 번 씻고 그냥 자꾸 씻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이상히 생각해서『왜 손을 자꾸 씻는가?』고 물으니 루터가 대답하는 말이『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내 마음은 깨끗이 할 수가 없구려』 하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베드로에게 오니 베드로는 너무 황송해서 제 발은 못 씻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씻지 아니하면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씻어 주어야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주님을 영접할 때에, 주님이 우리 마음을 씻어 주어야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 지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우리의 마음이 평안해 집니다. 평화케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에 평화를 주려고 하십니다.

몇 해 전에 내가 케니아의 나이로비에 갔을 때 동물원을 구경했습니다. 세상에 그런 동물원은 하나 밖에 없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도 동물원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동물원은 각각의 짐승들을 울안에 넣고 가두어 두는데 이 나이로비의 동물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서울만큼 넓은 곳에 울타리 철책을 둘러치고 그 속에 여러 가지 동물이 자연 그대로 모여 살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동차를 타고 문을 꼭 닫고서 그 사이로 왔다 갔다 하면서 구경을 하는데 사자도 옆에 앉은 것을 구경할 수 있고 호랑이도 옆에 있는 채 구경할 수가 있습니다. 이리가 사슴을 따라가서 잡아먹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동물의 생태를 그대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동물을 구경하다가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이 이 동물원과 비슷하지나 않을까? 여러 가지 욕심과 욕망이 우리 마음속에서 서로 싸웁니다.

어떤 청년이 자기 친구에게 하는 말이『내 마음에는 늘 내란이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늘 마음속에 분열이 있어 싸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옆의 친구가 하는 말이 『내란쯤, 내 속에는 세계대전이 있다』고 했습니다. 욕망이 와글와글 끓어서 내심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그런 뜻일 겁니다.

이상한 것은 도시의 기계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이 많이 도시에 모여서 갈수록 사람의 마음이 복잡해지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른 욕망들이 서로 싸워서 거기에 고통이 있고, 거기에 갈등이 있고 온갖 오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현대인이 더욱 신경 쇠약이 되는 것이고, 현대 사람이 세기를 통하여 어느 때보다도 노이로제 환자가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화평(和平)을 얻어야 합니다. 주님을 우리 마음에 영접할 때에 화평이 오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 우리 마음에 주님을 영접하면 즐거움이 충만하게 됩니다.

요한 복음 十五장 十一절에『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예수 님의 기쁨이 우리 속에 있어서 우리에게 언제나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 동양의 성현들도 옛날부터 군자지낙(君子之樂)과 소인지낙(小人之樂)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군자가 가지는 즐거움과 소인이 가지는 즐거움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소인이 가지는 즐거움은 더럽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소위 세속적인 향락이나 즐거움은 저열할 뿐더러 오래 가지도 못합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기쁨은 고결한 동시에 영원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이러한 기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옥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기쁜 일이 있어 천당 종 치네』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는 참된 생명을 얻습니다.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 자체에 영원한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一서 五장 十二절에 이와 같이 잘라서 말했습니다.『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아들은 예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에수 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했습니다. 영원히 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불멸의 생명을 얻습니다.『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길이 살겠네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길이 살겠네』하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려면 몇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내 마음속을 열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三장 二十절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고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 마음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성경 구절을 묘사한 풀만 헌트란 화가의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굳게 잠긴 문밖에 서서 두드리는 예수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어떤 분이 그 그림을 구경하다가 그 그림을 그린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썩 잘 그렸는데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기 문은 있는데 문에 손잡이가 없습니다.

화가가 웃으며 하는 말이 참 자세히도 보셨군요. 그것은 제가 빠뜨린 것이 아닙니다. 일부러 그리지 않았습니다. 왜요? 마음 문에는 밖에 손잡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 문은 밖에서 여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마음의 문은 안에서 나만이 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를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지금도 마음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마음 문을 열지 아니하면 그 책임이 내게 있는 것입니다. 적은 고집, 편견, 교만, 적은 지식을 가지고 마음 문을 그냥 닫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를 영접하려면 마음 방이 비어야 하겠습니다. 방에 손님이 가득하면 물론 예수를 영접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교만, 허영, 탐심, 시기, 증오, 음란, 방탕 등이 가득하면 예수를 영접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를 영접하려고 하면 이런 것들을, 이런 손님을 몰아 내야할 것입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에서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실 때에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비어야 합니다. 모든 죄악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영접하려면 우리 중심에 영접하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영접하되 재래식 우리 한국의 집으로, 말하자면 행랑방 같은 데다 예수 님을 모시는 이가 있습니다. 만 왕의 왕 예수 님을 이렇게 모실 수는 없습니다. 중심에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온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중심에 예수를 영접하는 이가 구원을 받습니다.

종려 주일은 예수를 영접해야 되고 나라도 예수를 영접해야 되고, 온 세계가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여기 앉은 우리 하나 하나가 먼저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이 종려주일에 예수를 영접하십시다. 내 마음이 깨끗하여지고, 내 마음에 화평이 가득하며 내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고 내 마음에 참 생명을 얻음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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