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15:21-29/ 위대한 신앙 / 한경직 목사 2014-08-22 23:15:14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十五․二十八)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二十八절을 다시 봉독(奉讀)하였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특별히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주님께로부터 믿음이 크다고 칭찬 받은 여자가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여자는 아닙니다. 가나안 여자입니다. 그의 신앙은 문자 그대로 전인적인 신앙이요, 굳게 참는 신앙이었습니다. 이 여자의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려서 예수께 와서 고쳐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냉대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따라오면서 부르짖었습니다. 제자들이 민망해서 "선생님 이 여자가 이렇게 따라오는데 어서 고쳐 보내시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주님의 대답은"이스라엘의 잃은 양 외에는 내가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는 더 냉정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 절하면서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하고 애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지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웬만한 여자 같으면 성내며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이런 말씀을 듣자마자 "주님 옳습니다. 그러나 개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라고 반문했습니다. 캄캄한 밤에도 빛을 보는 신앙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야 예수님께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그 딸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믿음이 크다고 칭찬 받은 여자가 있습니다. 교회에 여 교우가 많이 있는데 여러분에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성경에 보면 또 한 분 믿음에 대하여 칭찬 받은 이가 있습니다. 그이도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고 로마 사람이올시다. 가버나움에 주둔했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입니다. 그의 종이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와서 고쳐 달라고 다른 종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거의 이르렀을 때에 백부장이 다른 종을 또 보내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 같은 어른을 감히 우리 집에 모실 수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한 마디 해 주세요. 그러면 종이 낫겠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둘러보시면서 "이런 믿음은 내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도 찾아보지 못하였노라" 고 칭찬을 했습니다. 여기에 남자로서 큰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은 분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六장에 있는 산상보훈에 보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라 하나님께서 이들을 먹이시고 입히신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고 하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기는 믿되 적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걱정과 근심을 항상 하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마태복음 八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 때 예수 님은 주무셨고 갑자기 풍파가 일어났습니다. 물결이 넘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웁니다. "선생님 일어나서 구원해 주세요." 그때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적은 믿음 가진 사람은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지 못하고 인생 길을 걸어갑니다. 마태복음 十四장에 갈릴리 바다에서 일이 또 한 가지 있습니다. 밤이올시다. 제자들이 먼저 건너갑니다. 예수님은 뭍에서 늦도록 기도하시다가 물위로 걸어오십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유령으로 알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인 줄 알고 베드로는 "선생님 나를 물위로 오라고 말씀해 주세요."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라고 할 때 베드로는 물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물결을 보고 겁이 나서 빠져 들어갑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서 베드로를 건져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왜 의심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여"라고 하셨습니다. 적은 믿음을 가진 자는 믿기는 믿되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큰 일은 못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적은 믿음도 귀합니다. 믿음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은 믿음은 걱정과 근심을 계속합니다. 의심과 공포심을 그냥 가지고 믿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날을 당해서 여러분이 예배하러 오신 것을 보니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믿음을 가지셨습니까? 큰 믿음을 가지셨습니까? 혹은 적은 믿음을 가지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의 믿음 하나 하나를 보시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혹은 "왜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여."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갈릴리 바다처럼 때때로 풍파가 높습니다. 천재와 지변이 있습니다. 환난과 고통이 닥쳐옵니다. 질병과 빈곤이 우리 앞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슬픔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전쟁도 일어납니다. 죽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인생 고해를 건너가는 데는 믿음의 배가 커야 합니다. 적은 배는 안 됩니다. 믿음은 배와 같습니다. 큰 믿음의 배를 가져야 인생의 고해를 건너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리교회를 처음에 창립한 요한 웨슬레가 젊어서 아메리카에 전도를 갔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별로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대서양에 큰 풍랑이 일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같이 탄 모라비아 선교사를 가만히 보니까 그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 같은 풍랑을 만났지만 모라비아 선교사들의 믿음은 큰 믿음이었습니다.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 이 사회가 큰 믿음을 요구합니다. 이 시대를 과학 시대라고 합니다. 원자 시대라고도 합니다. 우주 시대라고도 합니다. 분명히 아는 것은 이 시대는 신앙의 시대는 아닙니다. 불 신앙의 시대입니다. 동시에 아낙자손 같은 큰 원수가 많습니다. 무신론이 팽창한 시대입니다. 유물론이 팽창한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신론이 대두하는 시대입니다. 세속주의, 허무주의의 시대요 성의 혁명 시대요, 상황윤리를 말하면서 죄를 죄 아니라고 하는 시대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을 방패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때에 큰 방패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악마의 모든 화전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방패가 커야 모든 시험을 이기고 이런 시대에서 승리 적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 믿음이 있어야 큰 축복도 받고 또 주님을 위하여 큰 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 여러 사람이 와서 병을 고쳐달라고 구할 때면 예수님은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내가 이 일을 행할 줄 믿느냐?" 그 때에 "제가 믿나이다" 라고 대답하면 예수님 말씀이 "네 믿음대로 되리라" 하십니다. 믿음대로 됩니다. 믿는 만큼 되는 것입니다. 큰 믿음이 있으면 큰 축복을 받고 적은 믿음이 있으면 적은 축복을 받고 믿음이 아주 없으면 아주 축복도 못 받습니다. 믿는 것만큼 축복을 받습니다. 생명수는 풍성히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그릇에 따라서 이 생명수를 풍부히 마실 수도 조금밖에 못 마실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의 그릇이 커야 생명수를 담뿍 마십니다. 축복을 풍성히 받습니다. 히브리 十一장을 읽어보시면 거기 아벨과 에녹을 비롯하여 신앙의 용사들과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한 신앙의 영웅들의 생활과 그 위대한 업적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의 생활과 업적을 기록해 내려가다가 三十三절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로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勇猛)되어 이방 사람의 진을 쳐서 물리치기도 하며." 어떻게 이들은 이렇게 큰 일을 하였습니까? 그들의 큰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十七장 五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와서 "우리의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간절히 부탁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이런 기도가 필요할 줄 압니다. 첫째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떠하신 하나님이신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십니다. 그 지혜도 그 능력도 크십니다. 그래서 창세기 十七장 一절을 볼 것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를 나타내실 때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가 외웠지마는 사도신경의 첫 신조 그대로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여러분 어떠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다는 것은 무엇이나 가능하시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소망 없는 자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러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로 서는 모든 것이 능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와 같은 탐관오리도 하나님은 구원할 수 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도 하나님은 구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을 믿는 이로서 절망은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약하고 아무리 내가 죄가 많고 아무리 전에 실수가 많았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온전히 회개하고 내 몸을 바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해 주시고 새 사람을 만드십니다. 새로운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올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므로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 사람 보기에 미련하게 보이는 자를 들어서 지혜롭다고 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올시다. 인도의 개척선교사 윌리암 케리라고 하는 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분은 소년 시절에 양화 직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한번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큰 하나님이올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올시다. 그래서 이 소년은 부르짖기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큰 일들을 계획하자." 이렇게 부르짖으며 열심히 공부해서 인도에서 전도의 기치를 높이 들고 동양 전도의 선구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심으로 모든 것을 초월 통치하셔서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요셉의 생활을 보면 요셉은 자기 형들에게 팔리었습니다. 종노릇을 했습니다. 감옥에까지 억울하게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초월 통치하셔서 마지막에는 선을 이루시고 자기의 경륜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요셉의 형제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한국에는 삼팔선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초월통치 하셔서 선을 이루시고 마지막에는 그의 경륜을 완전히 이루실 것을 분명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거나 실망할 것이 없습니다. 이 크신 하나님을 언제나 기억하십시다. 둘째로 로마서 十장 十七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믿음은 듣는 데서 오는데 곧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데서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우리가 성경을 펴게 될 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같은 이를 만나게 됩니다. 자기 민족을 구원한 모세 같은 이도 성경에서 만납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욥, 사도 바울 등의 인물을 만납니다. 그러기에 칼 바르트를 읽기 전에 성경을 먼저 읽으십시오. 본회퍼를 읽기 전에 성경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큰 믿음을 얻습니다. 중국 내지 선교를 창립한 영국의 유명한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젊어서 런던 전도회 파송을 받아 중국 선교사로 갔습니다. 몇 해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런던 전도회가 운영 난에 빠졌습니다. 전도비가 안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전도회의 총무가 이런 편지를 했습니다. "전도비가 안 들어와 당신의 전도비를 댈 수 없으니 영국으로 돌아가시오." 그 때 테일러는 상해에 있었는데 어떤 여관에 혼자 앉아서 영국으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월급은 안 와도 이 땅에 남아서 그냥 전도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결정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성경을 매일 여러 장 읽는 분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작정하려고 고요히 생각 할 때 그의 머리에 성경 말씀 두 마디가 특별히 떠 올랐습니다. 첫째는 '에벤 에셀' 이라는 말입니다. 사무엘서에 있는 말입니다. "여기까지 주님께서 도와주셨다" 는 말입니다. 둘째로 「여호와이래」 라는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 용기를 얻어 그는 중국에서 그냥 남아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 때 비로소 「신앙 선교회」라는 단체가 처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서 믿음이 납니다. 여러분, 믿음이 적어서 탄식하는 분 많을 것 같습니다. 탄식하지 말고 성경을 읽으세요. 신앙의 용사를 성경 가운데서 만나 보세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세요. 믿음이 생깁니다. 셋째는 성령을 충만히 받으셔야 합니다. 성령의 감화는 우리가 다 받았습니다. 성령의 감화만으로는 적은 믿음밖에 못 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믿음이 적은 자라고 꾸중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적은 자로 남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들었습니다.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순절을 당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그 후에 문자 그대로 반석 같은 믿음을 가졌습니다. 三천 명을 회개시켰습니다. 큰 신앙의 소유자가 된 것입니다. 기도를 힘써야 합니다. 믿음이 작아서 염려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낙심할 것 없습니다. 크신 하나님을 늘 기억하세요. 성경을 읽으세요. 기도를 힘쓰세요. 그러면 적은 믿음이 큰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유명한 헬렌 켈러는 소경이요 귀머거리요 벙어리입니다. 그러나 아주 유명한 여자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분이 일찍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이에게는 나의 가는 길이 어두운 것 같으나 나는 내 마음속에 신비한 빛을 가지고 갑니다. 믿음이라는 강한 영적 탐색등(探索燈)이 내 길을 비추어 줍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믿음이란 강한 등불이 있어서 그의 가는 길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믿음은 등불이올시다. 믿음의 등불이 밝아야 이 어두운 세상을 바로 갑니다. 어떤 분은 믿음을 영혼의 날개라고 하였습니다. 날개가 있으면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작은 날개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독수리 날개와 같은 큰 날개가 있어야 폭풍이 불어도 공중으로 날아올라갑니다. 모든 시험을 이깁니다. 승리적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큰 믿음을 얻습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가 큰 믿음의 그릇으로 큰 은혜를 받아서 크신 하나님, 크신 우리 주님을 위하여 큰 일들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 하나 뿐 아니라 우리 교회와 온 한국 교회가 큰 은혜를 받아서 큰 믿음으로 큰 빛을 세상에 나타내며 우리 민족을 구원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기도하시고 항상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의 성도, 큰 믿음의 교회가 도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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