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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8:1-8/ 환난의 날과 기도 / 한경직 목사 2014-08-22 21:42:02 『환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五十․十五) 인생이 있는 곳에 환난이 있습니다. 생(生)이 있는 곳에 고(苦)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생로병사의 인생 사고(四苦)란 말이 있습니다. 환난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입니다. 빈부귀천과 남녀노소의 구별이 없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특별히 환난의 날이 있습니다. 욥은 본래 유복한 분이었지만, 뜻밖에 환난의 날이 왔던 것입니다. 요셉 같은 젊은 사람도 본래 유복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라나던 중 뜻밖에 환난의 날이 그의 앞에 임했던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이 환난의 날은 예고 없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병은 눈썹에서 떨어진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슬픈 일도 그렇고, 실패도 그렇게 예고 없이 우리 앞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고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역사를 볼 때에도 꼭 그런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가서 바로 에게 핍박을 받을 때도 환난의 날은 예고가 없었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에 잡혀가서 七년간 포로 생활을 하던 그 때야말로 역시 환난의 날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 민족의 역사 속에도 환난의 날이 종종 있었습니다. 고구려 때의 수양제가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침노해 오던 때, 고려 시대에는 몽고가 침략해 오던 때, 이조 때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二十세기에 들어와서 三十六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일본의 압박을 받았고, 해방은 되었지만 三八선이 생겼고, 공산당이 북한을 침략했고, 따라서 六․二五가 일어났고, 그 후에도 남한에는 거듭되는 혁명과 불안한 정국과, 더욱이 근래에 거듭되는 흉작과 자주 일어나는 천재지변, 이런 모든 것이 우리 민족을 환난의 날로 몰고 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환난의 날에 우리가 어떻게 할 것입니까? 먼저 안할 것 몇 가지를 말씀 드립니다. 첫째로 불평과 불만을 말하지 말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나 사회를 원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둘째로는 낙심이나 자포자기하지 말 것입니다. 셋째로는 반항하거나 오히려 더 극악(極惡)을 초래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은 사는 길이 아니고 오히려 멸망으로 나가는 길인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환난에 우리가 어떻게 하라고 하는 것을 이 본문 가운데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환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부른다」고 하는 말은「찾으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큰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부르고 찾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도 중대한 병에 걸렸을 때 이윽고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유명한 과학자요 위대한 종교가였던 파스칼 같은 이도 중상을 입고 병상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로욜라의 생활이 역시 그렇습니다. 요나가 탄 배가 큰 풍파가 일어날 때에 그 선장이 잠자고 있는 요나 에게 와서『잠자는 자여! 어찜이뇨?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재촉을 하였습니다. 환난의 날에 하나님을 부르고 찾아야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환난의 날이야말로 하나님을 찾고 또 만날 만한 때입니다. 개인도 그렇고 민족도 그렇습니다. 환난의 날에 낙심치 말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반항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부르고 찾아 만나는 가운데 살길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환난의 날에 나를 부르라』고 하는 말은 한 걸음 더 나가서「기도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잡혀갔을 때에 오래 잊어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다니엘이, 에스겔이 많은 백성들과 같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환난의 날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사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형제도 이웃도 잘 사랑하지 못하는 증거입니다. 보통 때에도 그러하겠거든 더욱이 환난 날에 기도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큰 죄일는지, 말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환난 날 기도할 때에 죄를 회개하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여호와의 팔이 짧아서 능치 못한 것이 아니고 그 귀가 둔해서 너희 기도를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죄가 하나님과 너희의 사이를 막아서 너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하지 못한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경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가 기도할 때에도 자기의 죄와 열조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 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도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누구든지 환난 날에 기도할 때에 자기의 죄를 살펴서 그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고하십니다. 예수 님께서도 눅가복음 十八장에서 하신 말씀처럼, 불쌍한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가서 계속해서 구하고 또 구할 때에 불의한 재판관도 마지막에는 그 소원을 들어주었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택한 자들이 간절히 계속해서 기도할 때에 이루어 주시지 않겠느냐고,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계속해서 간절히 기도하라고 우리에게 궈면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어느 때에 우리의 민족을 죄악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고 이 무지와 빈곤과 혼란 가운데서 구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 하리요 마는, 오늘날과 같은 환난의 날을 당해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내가 너를 건지리니……』하나님께서 건져주겠다고 여기에 약속하십니다. 바울이 일찍이 로마로 첫 길을 떠나갔을 때에 지중해에서 큰 풍랑이 일었습니다. 열 나흘 동안 해와 달을 볼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 때에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어떤 저녁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두려워 말라. 네가 정녕 가이사 앞에 설 것이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네 손에 맡긴다』하였습니다. 그대로 다 이루어지고 만 것입니다. 사무엘이 미스바의 청년 사사로서 자기의 백성을 인도할 때에 블레셋 사람, 그 강적들이 대도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크게 공포심을 가졌습니다. 사무엘은 미스바의 모든 사람들을 모아놓고 어린 양으로 하나님 앞에 번제(燔祭)를 드리며 죄를 회개하고 간절히 백성들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큰 폭풍우가 일어나게 해서 블레셋 사람들의 대오가 혼란하게 되었고 이 기회를 타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아가서 습격할 때에 이 사람들이 쫓겨서 멀리 변경 밖으로 달아나게 되었습니다. 그 변경 밖에다「에벤에셀」이라 하는 비석을 세웠으니『곧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와주셨다』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환난 날에 구하는 자들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적은 옛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 二차 대전 때에 불란서가 독일 나치스 군대에게 패해버리고 영국에서 도와주려고 건너갔던 三十만 대군이 자기들만으로 불가능한지라 영국으로 건너오기 위해서 해협으로 도망할 때에 히틀러는 베를린에서『도망하는 영국 군인들을 아주 전멸시켜 버리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태연히 있었습니다. 그 때에 왕 죠오지 六세가 온 영국에『어떻게 하든지 영국 군대를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기도의 날을 선포하고 전 국민이 그 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이상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독인 편에는 큰 폭풍우가 일어서 비행기 한 대도 뜰 수가 없었고 너무 비가 많이 와서 탱크 한 대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국 편에는 그 도보 해협이 어떻게 잔잔하고 고요한지 거울 같이 맑아서 수천의 배가 二十九만의 영국 군대를 무사히 영국까지 옮기게 된 것입니다. 그 일 후에 영국 군대를 비롯해서 온 영국 국민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하나님의 말씀이올시다. 이것은 또한 신령한 면에서도 그런 줄 압니다. 十八세기 초엽에 유럽에 있던 신교의 정세를 보면 대단히 암담하였습니다. 천주교의 핍박은 여전히 심했습니다. 그러나 신교도들은 작은 신학 문제로 분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교회는 분열로 침체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전도니 세계 선교니 하는 것은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암흑한 때였습니다. 이 때에 진젠돌프라고 하는 젊은 백작이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믿음이 독실한 이로 은혜를 받아서 자기의 토지를 개방하고 천주교의 핍박에 쫓겨오는 피난민들을 자기 토지에 정착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수백 명이 모이게 되어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그만 교회를 하나 세웠습니다. 진젠돌프는 이 작은 교회의 목사가 되어 피난민들과 한 가지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핍박이 그치고 신교도들 가운데 분쟁이 그쳐서 어떻든지 교회가 부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달라』고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一七一四년 八월 十四일 예배를 보고 성찬식을 할 때에 큰 은혜가 내렸습니다. 하나 하나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몸을 바치게 되었고, 이렇게 되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모라비아 교회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교회가 五, 六백 명의 피난민들이 모여서 조직되었지만, 은혜를 받은 백여 년 동안에 근 백여 명의 선교사를 세계 각국으로 파송하게 된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요한웨슬레 같은 사람이「모라비아」교회 때문에 자기도 은혜를 받고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해서 영국에는 웨슬레 운동이 일어나고 계속해서 피틀리의 부흥 운동이 일어나서 미국에까지 미치게 되어 十八세기 중엽부터 신교의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十九세기는 부흥을 받은 교회가 온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해서 선교의 세기가 된 것입니다. 베른흩이라고 하는 조그만 교회에서 피난민들이 모여 간절히 기도한 결과는 은혜를 받게 되었고 이 은혜가 세계에 퍼지게 되었고, 이 은혜가 온 세계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써 교회 역사와 세계역사에 큰 영향을 주게 된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 날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죄를 회개하여 간절히 기도하면 이 환난이 변해서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진젠돌프와 이 피난민 몇 사람들이 환난 가운데서 기도한 그 기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계의 수억의 생명을 구원하는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대로 꼭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환난의 날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적으로 볼 때에도 민족적, 국가적으로 볼 때에도 환난의 날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환난의 날을 어떻게 지내려고 합니까? 우리가 낙심하고 자포자기하고 혹은 반항할 것입니까? 이 때야말로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우리 한국의 교회도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이 환난 중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 있는 교회가 되고 국가가 될 수 있는 줄 생각합니다. 五, 六백 명밖에 모이지 않던 피난민 교회가 선교사 백 명을 외국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五, 六천 명이 모이는 우리 영락교회는 그 비율대로 한다면 선교사 천 명을 보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때에 우리 교회가 모두 합심해서 기도함으로써 은혜를 받아 한국 국민 전체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내고 한 걸은 더 나아가서 아시아와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해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이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의 역사를 잘 아십니다. 그이는 큰 환난 날에 산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불탈 때 자기 집도 불타고 부모도 다 피살당했습니다. 이 외로운 젊은이는 외국으로 멀리 잡혀갔습니다. 외국 궁전에서 살수밖에 없던 다니엘이야말로 환난 날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불평을 하려면 얼마든지 불평을 할 수 있고 낙심을 하려면 얼마든지 낙심을 할 수 있고, 악하게 되려면 얼마든지 악하게 될 수가 있는 환경에 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환난의 날에 오직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외국 궁전에 가서 사는 몸이지만 금주를 하고, 우상의 제물로 쓴 고기를 먹지 않고, 율법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이와 같은 청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광을 받았습니까? 외국 궁전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위대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도 다니엘과 같은 청년이 있는 줄 압니다. 이북에서 부모를 다 잃어버리고, 혹은 三八선을 넘어올 때 부모를 여의고 홀로 이 곳에 피난 와서 고아원을 전전하며 자라나면서도 하나님을 찾고 경건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점점 공부할 기회도 얻고 취직도 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모범 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건져 주십니다. 오늘날 내가 당하는 이 고난이 변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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