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4:12-25/ 사람을 낚는 어부 / 한경직 목사
2014-08-22 21:36:06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四․十九)

이 말씀은 예수 님께서 갈리리 바닷가로 지나가시다가 마침 그물을 바다에 던지는 시몬과 그 동생 안드레를 만나서 부르신 말씀입니다.『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물론 우리가 요한 복음에서 읽는 바와 같이 이들은 일찍이 주님을 만난 경험이 있습니다.

이 때에 온전히 주와 동역자(同役者)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시몬과 안드레는 주를 따랐습니다. 마찬가지로 좀더 가다가 요한 과 야고보를 만나서 역시 주님께서는 같은 말씀으로 부르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 도 그 말씀을 듣고 곧 예수를 좋은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나를 따라 오너라.』여기에 주님께서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신앙 생활은 주님의 부름을 듣고 주님을 따르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 온전히 들어 온 사람은 그 하나 하나가 자기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또한 되는 것입니다.

먼저, 부름의 내용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주를 따라 오라고 부르실 때에 시문과 안들에는 그물을 버리고 같이 고기를 잡던 다른 어부들도 버리고 문자 그대로 예수를 좋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도 이와 같은 부름을 받게 될 때에 아버지와 배와 그물과 같이 일하던 사람들을 다 버리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신앙 생활은 단순히 예수를 멀리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예수를 멀리서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시 예수를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 생활은 온전히 과거의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몬과 안드레가 전에 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좋은 것과 같이 예수를 알지 못할 때에 우리가 가졌던 사상, 예수를 알지 못할 때에 우리가 형성하였던 우리의 습관, 예수를 알지 못할 때에 죄 가운데서 사귀었던 친구들까지도 온전히 떠나서 예수를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신앙 생활은 먼저 성별로써 시작됩니다. 거룩히 갈라서야 되는 것입니다. 죄악에서 온전히 떠남으로써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의미는 제일 먼저 죄악의 세계와 갈라진다고 하는 성별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나를 따르라고 할 때에 이들은 문자 그대로 예수의 뒤를 따라서 동행한 것입니다. 예수 님이 가는 곳에 이들도 가고 예수 님이 머무는 곳에 이들도 머물었습니다. 예수 님이 쉬는 곳에 이들도 쉬었고 예수 님이 일어날 대에 이들도 일어났습니다. 예수 님과 일거일동을 같이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가버나움에도 같이 갔습니다. 벳바게에도 같이 갔습니다. 배를 타고 갈릴리바다에도 같이 갔습니다. 거라사 땅에도 같이 갔습니다. 마지막에 예루살렘에도 같이 가고 다락방에도 같이 올라갔고 겟세마네 동산에도 같이 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오늘날 신앙 생활도 문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예수를 우리 마음 가운데 모시고 우리가 길을 갈 때에도 주님과 동행하고 일을 할 때에도 주님과 동행하고 음식을 먹을 때에도 신령한 가운데서 주님과 같이 먹고 가정에 있을 때에나 직장에 있을 대에나 언제든지 우리의 심령이 주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평안할 때에도 주님과 동행하고 괴로울 때에도 주님과 동행하며, 기쁠 때에도 주님과 동행하고 슬플 때에도 주님과 동행하며, 잘 때에도 주님과 같이 하고 깰 때에도 주님과 같이 하며, 살 때에도 주님과 같이 살고 죽을 때도 주님과 같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옛날 에녹이 일생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고 승천하였다고 하는 바와 같이 문자 그대로 이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그리스도와 동행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사실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승천을 의미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입니다.

셋째로,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예수와 동행하면서 예수의 모습을 자세히 보는 것입니다. 예수 님의 웃는 것도 보았고 예수 님의 우시는 것도 보았고 예수 님의 말씀도 들었고 예수 님의 모든 생활을 자세히 살피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 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예수 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생활을 같이 하는 가운데서 예수를 배웠습니다. 예수 님의 마음을 배웠고 예수 님의 성품을 배웠고 예수의 생활을 배웠고 예수 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 것을 배웠습니다.

예수 님께서 어떻게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을 배웠고 어떻게 병자를 긍휼히 여기셔서 고쳐주신 것을 배웠고 어떻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것을 배웠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비난 듣는 것을 배웠고 어떻게 핍박을 받는 것도 배웠고 마지막에는 어떻게 십자가를 지는 것도 배웠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용서를 배우고 그리스도의 담대한 것을 배우고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것을 배우고 죽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예수 님께서는 옛날도 부르시고 오늘날도 우리를 이와 같이 부르십니다. 우리가 이 부름을 들었습니까? 우리가 이 부름을 듣고 이대로 순종합니까? 우리가 사실 모든 죄악과 성별 되었습니까? 우리가 사실 그리스도와 언제나 동행합니까? 구리가 사실 그리스도를 배웠습니까?『나를 따라 오너라.』

이 주님의 말씀은 세기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우리의 고막을 울립니다.『나를 따라 오너라.』

신앙생활은 단순히 아는 것만은 아닙니다. 단순히 예수를 보는 것만은 아닙니다. 실지로 마음으로 생활로 예수를 따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부름을 우리가 먼저 들읍시다. 옛날 사도들과 같이 이 부름을 우리가 온전히 들었으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우리도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어부를 만들어서 이 죄악의 바다에 쓰려져 가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는 이렇게 불렀습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그물로 생각하십니다. 이 세상을 바다로 생각하십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생각하십니다. 바다는 넓고 깊고 험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도 넓고 얼마나 험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바다는 어떤 때에는 잔잔하지마는 때때로 풍파가 심하고 파도가 높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도 때때로 풍파와 파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 세상을 고해라고, 괴로운 바다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죄악의 물결, 죄악의 바다 가운데서 쓰려져 가는 뭇 영을 복음을 통해서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을 낚는 어부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이 부름을 들었으며 우리가 과연 이 부름에 순종하며 우리가 과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다른 것은 다 순복 하되 이 명령만은 순종하지 아니합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습니다. 우리 하나 하나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를 어부라고 하였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바다에서 물고기 잡는 사람에게서 영적 어부가 배울 것이 더러 있는 줄 생각합니다.

이 어부들은 한 가지 방법으로만 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잡습니다. 어떤 때는 낚시로 잡고 어떤 때는 그물로 잡고, 어떤 책을 보니까 저 남극 부근에 가서 고래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큰 갈고리와 같은 낚시를 쏴서 잡습니다. 여러 가지고 고기 잡는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어부로서 이 신령한 의미에서 사람을 낚아 내는, 전도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 줄 압니다.

옛날부터 개인전도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건 낚시질과 비슷합니다. 문서 전도가 있고 방송 전도가 있고 영화 전도가 있고, 미국과 같은 데서는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많은 전도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여러 가지 새로운 방법이 있어서 이 새로운 방법을 우리가 사용해서 사람을 낚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특별히 한 가지 여러분과 같이 잠깐 생각하려는 방법이 있습니다. 모든 전도 방법 가운데 우리 교회에서 제일 먼저 쓰여진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압니까?

어떤 전도 방법은 누구나 할 수는 없습니다. 대중 전도 같은 것은 그런 방면에 은사를 받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문서 전도 같은 것도 그 방면의 글을 쓸 줄 아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 가지 방법보다도 큰 수확을 가져온 방법이 있는데 무엇인지 압니까?

개인전도 방법입니다. 이것은 제일 처음에 쓴 방법입니다. 안드레가 예수를 만난 다음에 제일 먼저 자기의 형 시몬을 전도해서 예수님께로 인도해 왔습니다. 안드레가 개인 전도자로 첫째 사람입니다.

빌립이 예수를 만난 다음에 이어서 한 것이 자기의 친구 나다나델을 만나서 그를 예수 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아마 개인 전도를 둘째가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님께서 여러 사람에게 대중 전도도 하셨지마는 예수 님도 때때로 개인 전도를 하셨습니다. 디모데에게 하신 말씀은 개인 전도입니다.

사마리아 여자에게 하신 말씀도 개인 전도입니다. 삭개오의 집에 가서 한 것도 개인 전도입니다. 이 전도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입만 안 붙었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 못하는 이들도 개인 전도를 더 잘하니까 그것도 말이 안 됩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또 사실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교회의 발전한 모든 형편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떠한 방법보다도 개인 전도를 통해서 복음이 제일 많이 확보된 것이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있을 때에 믿는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수리아로 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멀리 지중해를 건너서 로마에도 갔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수리아에도 설립하고 로마에도 설립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보면 이와 같은 무명 개인 전도자들의 전도로 말미암아 복음이 제일 많이 전파되고 제일 많은 사람이 구언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영락교회에서 금년을 개인 전도의 해로 작정해서 누구든지 금년 동안에 한 사람씩 인도하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만일 그대로 꼭 한다고 하면 영락교회와 같은 교회가 명년에 하나 더 생기겠습니다. 예수 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습니다. 우리가 이 명령에 순종하십니까?

이 개인전도는 이미도 말씀드렸지만 낚시질과 비슷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하나 하나씩 건져내는 것이니까. 낚시질을 해 본 이들이 계실 줄 압니다. 저도 잘 못하지만 더러 해 보았습니다.

낚시질하는 사람을 가만히 보면 낚시터를 잘 살펴서 정합니다. 고기가 잘 모일 만한 곳에 자리를 정합니다.

또 물이 잔잔해서 고기가 미끼를 잘 물 만한 곳에 자리를 정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개인 전도를 할 때에도 아무 가정이나 들어가서 전도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아는 범위 안에서 안 믿는 가정을 가만히 생각해 봐서 꼭 전도를 받을 만한 그런 가정을 정해 놓고, 그리고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특별히 그 가정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그 후에 전도를 하면 개인 전도의 효과가 더 많이 있을 줄 생각합니다.

또 낚시질하는 사람을 보면 미끼도 아주 조심해서 택합니다. 고기에 따라서 미끼도 다르다고 합니다. 너무 큰 고기를 조그마한 미끼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미끼가 꼭 그 고기에 적당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개인 전도도 그래요. 같은 복음을 전파하지만 학생에게 할 말이 따로 있고 노인에게 할 말이 따로 있고 장사하는 사람에게 할 말이 따로 있고 부인에게 할 말이 따로 있고 남자들에게 할 말이 따로 있습니다. 잘 생각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얻어야 될 줄 압니다.

그 다음에 낚시질하는 사람이 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 한 번 던진 다음에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오래 기다립니다. 곧 고기가 물지 않아도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단히 필요한 줄 압니다.

우리가 그저 다른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한 두 번 말해서 안 믿으면『에이 그 사람 안 믿을 모양이군!』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지 말고 전의 모니카와 같이 자기 아들 어거스틴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기도할 때에 十五년간이나 간절히 기도하였는데, 우리도 끝까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개인 전도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또 보세요. 이 낚시질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름에는 대단히 뜨겁고 겨울에는 춥습니다. 한강에 나가보면 그렇게 추운데도 얼음 구멍을 뚫고 얼음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들으니까 낫에만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밤새도록 그렇게 앉아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전도하는 것도,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내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고생을 각오해야 될 수밖에 없겠고 여름에 더울 때도 찾아볼 수밖에 없겠고……어떻든 우리도 고생을 각오해야 됩니다.

그러나 개인 전도는 반드시 열매가 있는 방법입니다. 어떤 분은 혹 말씀합니다.『난 다른 전도하겠는데 그것은 어떻게 할지 몰라서 못하겠다.』전도하는 방법을 배우는 방법이 있어요. 부인들이 바느질을 어떻게 배웁니까? 그저 바느질하면 됩니다. 바느질을 안 하면서 배우려면 백년 가야 못 배웁니다.

아무리 바느질 잘하는 사람이 옆에 앉아 있어도 그저 앉아서는 못 배웁니다. 내가 바느질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글씨 쓰는 것을 배우려고 하면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아무리 옆에 앉아있다고 할지라도 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친히 손을 들어 써야 됩니다. 전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전도하는 방법이 무엇이오? 그저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저 시작해 보십시오. 전도하는 가운데서 전도하는 방법을 배우고 경험을 배우고 기회를 배우고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영혼을 구하려고 애쓰는 것은 단순히 남만 위하는 줄로 생각하지 맙시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역시 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을 외향인(外向人)과 내향인(內向人)으로 구별합니다.

내향 인이란 무슨 생각이나 배운 것을 항상 마음 가운데 가만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우울증에 걸립니다. 번민(煩悶)에 걸립니다. 심하게 되면 정신 이상에 걸리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외향 인이 건전한 사람입니다.

내가 배울 뿐만 아니고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 내 믿음을 다른 사람과 나눈 줄 아는 사람이 건전한 사람입니다. 사실 내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도할 수 있으리만큼 되지 않았다면 내 자신이 아직도 건전한 신앙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또 사실 우리가 큰 신앙의 기쁨은 이 전도를 통해서 얻습니다. 낚시질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게 오래 기다리다가 큰 고기를 낚아 내게 되면 얼마나 기쁩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낚시질에 미친다고도 합니다.

그렇게 낚시질에 미쳐서는 곤란하겠지만 사실 우리 신앙 생활 가운데서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 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보스턴의 어떤 건물에 들어가면 담 벽에 이 방에서 본래 킴볼이라고 하는 한 무명 교인이 전도를 할 때에 어떤 구두 방 앞을 지나가다가 그 구두 방 안의 어떤 젊은 양화 직공에게 전도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전도하여야겠다는 이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서 이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그 후에 디 에리 무디라고 하는, 수 천명 수 만 명을 구원해 내는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실 내가 전도한 사람이 세례를 받고 내가 전도한 사람이 혹 집사가 되고 내가 전도한 사람이 혹 장로가 되는 기쁨에서 더 큰 기쁨이 없을 줄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서도 여러 가지 기쁨이 있겠지만 제일 큰 기쁨은 내가 전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이 구원을 얻어서 천당에서 만나게 될 때의 기쁨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다 하늘 나라에 가서 생명의 면류관을 다 받겠지마는 면류관에서 비치는 그 별의 수가, 진주의 수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했습니다.

전도를 게을리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소흘이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를 게을리 하는 것은 신자의 태도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전도를 게을리 하는 것은 영혼의 가치를 경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금년에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 십 시오.

다니엘 十二장 三절에『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말씀했습니다.

지위가 귀하지마는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아닙니다. 권세가 귀하지마는 권세가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돈이 있어야 살지마는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한 사람이 별과 같이 비칠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별과 같이 비치는 사람이 됩시다.






admin

�씠�쟾�쑝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