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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18-25/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 /조용기 목사 2014-09-11 11:44:39 read : 9155
오늘 저는 가정의 날을 맞이해서 여러분과 함께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것이고 사람의 생각이나 사람의 뜻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에덴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에덴에서부터 가정을 출발하셨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다 하시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 옆구리 뼈를 취해서 하와를 만들어서 아담에게 데려오니 아담이 하와를 보고 "아! 왔구나.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니 내가 지아비니 지어미라 칭하리라" 그렇게 해서 가정이 출발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므로 신성하고 가정은 하나님이 직접 돌보시고 기르시는 인간 생활 속의 제도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가정은 우리 인간 마음대로 파괴할 수도 없고 다스릴 수도 없습니다.
오늘날 가정이 불행하고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수많은 부부가 이혼을 하게 되는 슬픈 이유는 하나님이 원래 지으신 가정의 법도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모시며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 중에서 가정을 경영해 나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껴 놓고 인본주의로 서서 인간들이 만드는 가정은 인간이 만든 무슨 제품처럼 쉽게 내던져 버리고 파괴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면서 저의 자동차를 운전해 주는 젊은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상당히 인텔리고 똑똑한 청년이었었습니다. 저가 "결혼을 했습니까? 가정이 있습니까?" 물으니깐 "결혼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고, 가정이 있기도 하고 안 있기도 하다."고 그래요. 그 하도 수수께끼 같아
"그 도대체 무슨 말이냐? 결혼을 했으면 했지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고 그 말이 뭐냐?" 그러니까 "과거 결혼하지 않고 5년 동안 데리고 살던 여자는 마음이 맞지 않아서 요 몇 달 전에 버리고 또 다시 데리고 살 여자를 찾고 있습니다."그래서 "아니 데리고 살다니 그게 뭐냐?"
그러니까 "우리 스칸디나비아 청년들은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결혼을 뭣 때문에 해요? 괜히 법적으로 해놓으면 서로 묶여 부담되고 이혼할 때 돈 들고 하니까 마음이 맞으면 같이 사는거에요. 한 5년쯤 살아보고 그래도 살 마음이 생기면 결혼하는 것이고 마음이 안생기면 아웅다웅 싸우고 살 필요가 어디 있어요?
인생 한번 사는데. 너는 너대로 가고 나는 나대로 가고 또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사특이요, 절대로 좋지 못한 것이요." "그것은 옛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지 우리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생각합니다.
미워하면서 살 필요 어디 있어요? 좋은 사람끼리 살아야지." 도저히 우리 시대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지고 성경에 하나님이 가르치는 생각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인본주의적인 가정입니다.
신성성이 전혀 사라진 그러한 생활을 오늘 젊은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보니까 모 대학교 여학생들에게 앙케이트를 받아보니 결혼하고 난 다음에 마음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니까 80%가 이혼하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소름이 끼칠 일인 것입니다. 왜 오늘날 가정이 이와 같이 황폐해지고 쉽게 인간들이 짓밟아 버리고 파괴할 수 있는 그러한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남녀들이 정말 하나님의 뜻을 좇는 신앙 중심의 신본주의적 가정을 세우지 않기 때문에 그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가정을 오늘 이 시간에 우리 한번 알아 봐야 되겠습니다.
첫째로, 성경이 가르치는 부부관계는 동물적인 욕망 관계 이상인 것입니다.
서로 남자와 여자가 동물적인 욕망을 서로 충족하기 위해서 모여 산다. 그러므로 서로 만족하지 아니하면 헤어진다. 이것은 순 인본주의적, 물질적인 가정관이지 하나님이 세운 가정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물학적인 필요 이상의 가정 아닌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정이란 그저 모여서 서로 필요에 의해서 살고 자식을 낳아서 기르기 위해서 산다.' 이런 정도의 가정이 아닙니다. 여러분 가정이란 친근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아담을 잠들게 하고 그 옆구리 뼈를 취해서 하와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제 두 사람이 아니라 한사람이라는 그 친밀함에 관한 것입니다.
아담을 흙으로 지으셨으니 하와도 흙으로 지을 수가 있어서 개별적으로 만나게 할 수 있어 더 좋은데 그렇지 않고 아담의 옆구리의 뼈를 취해서 만들었다는 것은 이것은 두 개별적인 인격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로서의 인간이 만난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깊은 사랑과 일체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쉽게 모였다가 쉽게 헤어지는 그러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했는데 그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자꾸 이합집산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뼈는 한번 굳어지면 그대로 있는 것이고 살도 한번 오르면 그대로 있는 것이지 그 뼈를 자꾸 뽑았다가 바꾸었다 했으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지 산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지으신 가정이란 한번 부부가 만나서 결혼하면 죽음이 그들을 헤어지게 할 때까지 함께 동거동락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부의 위상이란 성경말씀에 남편은 머리가 되고 아내는 수족이 되어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머리는 머리대로 놀고 수족은 수족대로 노는 것은 중풍병이 걸린 몸이지 정상적인 몸은 아닌 것입니다.
정상적인 몸은 머리와 몸이 함께 있어서 머리가 온 몸을 다스리고 그리고 몸은 머리를 받드는 것입니다. 머리 없는 몸도 없고 몸 없는 머리도 없이 하나의 일체가 되어서 살도록 그렇게 해놓았지 각기 서로 헤어져서 살도록 만들어 놓지는 않은 것입니다.
머리가 몸을 이끌고 돌보려면 수족의 도움이 없이는 또 머리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머리가 아무리 말을 해도 수족이 말 안 들으면 머리는 어찌 할 도리가 없죠. 머리가 또 지시하지 않으면 수족은 어떻게 해야될 지 모릅니다.
이러므로 머리는 수족을 이끌어 가고 수족은 머리를 받들어 주고 머리가 시키는 대로 모든 일을 성취하는 이와 같은 유기적인 연락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가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머리와 몸의 관계라는 것을 성경이 말한 것처럼 머리는 뜨거운 사랑으로 몸을 사랑하고 몸은 머리를 받들고 돌보는 그러한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남편들이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내어 주심같이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입니다. 타락한 사랑이 자꾸 '내게 주시옵소서. 내게 주시옵소서.'하지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주셨으니'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희생적으로 주는 사랑을 베풀어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몸을 먹이고 씻기고 아름답게 입히고 평안하게 하고 보호하고 치료시키고 행복하게 만들고 확실하게 이끌어 가는 것처럼 한 가정에 머리된 남편은 큰사랑으로 자기의 수족과 몸이 된 아내를 감싸서 사랑의 울타리를 쳐주고 그리고 생활을 돌보아 주어야 됩니다. 먹여야 돼요. 가정에서 주먹이나 흔들고 가정을 불란케 하는 그런 가정을 많이 보았습니다.
부인이 뼈가 빠지게 돈을 벌어 오면 그것을 다 빼앗아 가지고서 술이나 먹고 온 가정에 풍파를 일으키는 그런 남편들이 많은 걸 보았는데 그건 완전히 병든 머리입니다.
그건 얼마 안 있으면 수술을 해 가지고서 떼내든지 해야지 그대로 붙여서는 안될 머리인 것입니다. 참으로 머리는 길거리에서 인력거를, 리어카를 끌더라도 생활을 도모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므로 머리는 몸을 먹이는 것처럼 가장은 가정의 생활을 책임져야 됩니다.
그리고 또 머리가 몸을 깨끗이 보존하는 것처럼 온 가정의 질서를 세우고 깨끗이 해야 되고 그리고 아름답게, 여러분 화초를 아름답게 가꾸어 놓아도 기분이 좋은데 자기 아내를 아름답게 만들어 놓으면 가정의 하나의 화초와 같지 않습니까?
아름다운 의복도 입어 놓으면 보기 좋고 아름답게 인격을 가꾸어 놓아도 보기 좋지 않습니까? 부인을 짓밟아 버리고 민나게 만들고 사람들 앞에 흉보고 이렇게 해놓으면 자기가 잘 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러므로 머리는 몸을 먹이고 씻기고 아름답게 입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아내로 만들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안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가정을 불안하게 하고 고통을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가정에 들어오면 그 남편 슬하에 모든 것이 평안하고 좋다, 기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위협에서 보호해 주고 지켜줘야 되고,
병들면 고치고 치료해 줘야 되고, 행복을 가져 와야 되고, 기쁘게, 즐겁게, 아내가 되어 어머니가 되고 며느리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런 보장을 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확실하게 또 가정을 이끌어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가정의 울타리가 되고 가정의 기둥이 되고 머리가 되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하기 위해서는 남편은 큰 사랑을 가지고 아내를 돌보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도 모든 것이 이기주의가 되어서 너는 너고 나는 나고, 서로 이용만 하고, 살다가 서로 이용가치가 없으면 얼음장같이 헤어지는 이러한 것은 하나님이 세운 가정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 가정의 모범이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신랑이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친아버지가 되시는데 우리 아버지가 우리를 낳고 기르시고 예수님이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서 우리를 무조건하고 죄사함을 주시고 구원을 하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영인 성령을 주셔서 얼마나 큰 사랑으로 인도하고 가르치고 지키고 보호하고 돌봐주시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적인 신랑이요,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어서 우리가 영적인 가정에 살고 있는 그 모범대로 우리 육신의 가정에도 남편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좇아서 큰 사랑으로 희생적으로 아내를 돌보아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이끌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몸인 아내는 머리를 받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없는 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므로 머리를 받들어서 신뢰하고 복종하고 공경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대개 남녀 동등으로 여자들도 교육을 많이 받고 결혼을 하기 때문에 한 가정에 들어와서 그만 모든 면에 동등권을 누릴려고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가정이 무너집니다. 다 인격적으로 고상하고 동등하지마는 자기의 맡은 직분이 다릅니다. 아내의 직분이라는 것은 남편을 머리로 만들어 주어야 되고 리더로 만들어 주어야 되고 그리고 남편을 신뢰하고 공경하고 복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요사이 결혼식을 인도하면서 옛날과 굉장히 달라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 한 20년 전만 하더라도 신랑 신부가 와서 주례자 앞에 서가지고 둘이가 이야기를 별로 안하는데 요사이는 주례자 앞에 서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내가 바로 앞에 서서 가만히 보면은 둘이가 서로 존경하는 말 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다 막말해요. 신부가 눈에 좀 이렇게 눈물을 흘리면 "손수건 있어? 줄까?" 그러면 신랑이 좀 떨면 "잠잠해. 왜 떨어." 이 막말을 합니다.
그래서 "야! 이것 참 이렇게 해가지고서 살겠는가!" 저가 늘 결혼식을 주례하면서 부탁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아내들이여, 남편을 남편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요사이에는 아내가 하도 세기 때문에 아내가 만들어 주지 않는 남편은 남편이 안됩니다. 아내가 머리로 만들어 주어야 머리가 되고, 리더로 만들어 주어야 리더가 되지 남편이 아무리 '내가 머리다, 리더다' 하면 '너 혼자 놀아라 나는 안따라 간다' 그러면 그뿐입니다.
그래서 내가 언제나 하는 말은 '현명한 아내는 자기가 남편보다 똑똑하더라도 남편을 가르치고 돌보고 지혜를 나누어서 머리로 만들어 놓아서 그 뒤에 따라가는 것이 좋다. 가정이란 인력거를 남편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가는 것이 좋다. 그래야 올바른 가정이다.' 남편은 아무리 못난 남편이라도 하나님이 만들 때 벌써 가장으로 만들어 놓아서 '나는 집안의 가장이다' 이런 심리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인에게 짓밟히고 눌리면 그로 말미암아 그 사람은 심리적으로 파탄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에도 쓸모없게 되고 밖에 나가서도 부인에게 존경받지 못한 남편치고 사회 나가서 리더가 되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명한 부인은 남편을 언제나 머리로 만들고 그리고 존경하고 복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남편은 가정에서 남편이요, 아버지요, 머리요, 가장이요, 사회 나가서도 그와 같은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래로 훌륭한 남편 뒤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아내가 있습니다. 그 훌륭한 아내를 만난 남편은 물을 만난 물고기와 같아서 모든 일에 생기가 있고 활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들이 남편을 만들기도 하고 남편을 떨어뜨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은 아내가 남편을 잘 내조해서 복종할 만한 남편으로 머리로 만들어 주고 그리고 뒤를 따라가는 것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잘 교육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길인 것입니다.
머리와 몸이 하나인 것처럼 여러분 남편과 아내는 항상 마음으로 함께 있고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됩니다. 요사이 가정이 파괴된 이유는 대화가 너무 없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놀고 아내는 아내대로 놀고 가정은 하나의 기숙사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서로 마음으로 늘 같이 있고 그리고 시간만 나면 대화를 많이 해야 됩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서 같이 여행도 하고 외식도 하고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 너무너무 남편이 깍쟁이라 한번도 외식을 안해주기 때문에 그 부인이 늘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한번도 가족들 데리고 외식도 안하고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 그러니까 하루는 "좋다. 오늘 저녁에 외식하자." 온 얘들하고 다 좋다고 박수를 치고 그리고 어머니는 성장을 하고 얘들도 옷을 입었는데 아버지는 준비를 안합니다.
"아, 외식하는데 왜 준비 안해요?" 하니까, "방에서 먹던거 마당에서 먹자. 그러면 외식 아니냐?" 그래서 크게 실망을 하고 슬퍼했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남편이 좀 더 큰 사랑을 가지고 변화있는 그런 가정과 생활을 만들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란 내버려 놓아서 그대로 잘되는 것 아닙니다.
꽃밭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고 꽃이 잘피나요? 벌레 잡아주고 김 매어주고 비료 줘야죠. 가정은 그와 같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부부가 손을 잡고 애를 쓰고 힘을 쓰는데서 아름다운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으니 죽기 전에는 헤어지지 말라고 성경은 말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앞으로 이끌어 주고 뒤에서 존경하면서 가정이라는 한 수레를 함께 밀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 가정과 부모와 자녀 관계를 우리가 생각해 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자식은 야훼가 주신 기업이요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모의 결합으로 우연히 얻은 생물학적인 산물이 아닙니다. 내 개인 소유물로 두들기고 죽이기도 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잘못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 백성으로 양육하라고 맡겨 놓은 기업입니다. 하나님 사업이에요. 이러므로 하나님 사업을 우리가 맡아서 잘못하면 하나님 앞에 책임추궁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을 자기의 개인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은 중대한 잘못입니다. 그것은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맡긴 기업인것입니다.
그러므로 크게 하나님 앞에서 조심스럽게 자식을 선물로 받아서 하나님 앞에 책임진 행동으로 잘 가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생활이 바쁘다 보니까 자식을 내동댕이 쳐 버리고 자연적으로 자라게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훌륭하게 자식들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자녀는 우리의 가정에서 산 교육을 시켜야 됩니다. 아무리 학교가 좋다해도 가정교육에 절대로 비기지 못합니다. 어린 아이는 벌써 일생을 살아가는 인격적인 기초가 가정에서 이루어집니다.
1살에서 6살 까지 사이의 어린아이의 모든 기본적인 인격은 다 갖추어 진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나이사이에 어린아이들은 집에서 자랍니다. 그런데 집에서 제일 먼저 언어를 배웁니다. 사람은 그 말이 그 온 몸을 옭아맵니다.
'혀는 적은 것이로되 온 몸을 옭아맨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 중추신경은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말했는데 말부터 벌써 착하게 배우면 착한 아이가 되고, 흉한 말을 배우면 흉하게 되고, 더러운 말을 배우면 더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 말을 어디에서 배웁니까? 집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또 그 말을 아버지보다도 어머니에게서 주로 배웁니다. 우리 성도 가운데 남편은 황해도 사람이고 부인은 경상도 사람인데 저가 그 집에 가보고 놀란 것은 그 집 얘들이 완전히 경상도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살면서 내가 집에 들어가니까 얘가 나오더니 "어무이요, 목사님 왔음니데이." 그럽니다. 깜짝 놀라서 아니 아버지가 황해도 사람이고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경상도 말을 하나?
들어가 보니까 그 부인이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하더라구요."우리 얘들이 어머니하고 같이 늘 들어서 어머니에게서 배웠으니까 경상도 사투리 말을 해요."
그러므로 한 가정에서 어린 아이 인격형성에 어머니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집에 가니까 하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공손하고 공경스러운 말을 해요.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키우는데 얘들에게 꼭 존대말을 써요.
"이거 해야돼요. 그렇죠? 손님 오셨으니까 방에 들어가서 조용히 공부하세요." 어린 아이에게 존대말을, 그 어린 아이 말이 그렇게 공경스럽고 착하게 하는 수가 없어요. 이러므로 벌써 어린 아이는 그 인격형성에 박혀 있는 언어를 가정에서 배우고 사랑함과 미움을 배웁니다. 여러분 사랑은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압니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줄도 모릅니다. 과학자들이 원숭이 새끼로 시험하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서 분리시켜서 그냥 우유만 마시고 자라게 한 원숭이 새끼가 자라서 수컷이 되고 암컷이 됐는데
다시 새끼를 기르도록 해 보니까 엄마 아버지 사랑을 받지 못한 원숭이 새끼는 새끼를 낳고 난 다음에도 새끼를 돌보지 않아요. 새끼가 달려드니까 그냥 발로 차버리고 물을 뿌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내동댕이 쳐 버려요. 자기가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새끼에게 사랑을 베풀지 몰라요.
그러나 어머니에게 매어 달리고 아빠 위에 올라 타고 자란 이런 새끼들은 나중에 자기가 새끼를 놓고 난 다음에는 새끼들이 와서 올라타고 매달리고 해도 그것을 기쁘게 받아주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 아동이 생기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소년원에 늘 왔다갔다 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가정에 자랄 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오직 경쟁심리만 있고 저항감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 아동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도 벌써 가정에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가정에서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나중에 결혼해서도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좋은 가정을 이룰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개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한 가운데서 슬픔을 가지고 태어난 자녀들이 나중에 자기가 결혼하고 난 다음에도 또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된 이유는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랑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이러므로 여러분이 자녀를 기를 때 사랑을 베풀어 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녀들의 생애 속에 처참한 파괴를 가져 오게 되는 것입니다. 미움을 가지고서 인생을 출발하도록 만들어 주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삶을 얘들에게 가르칩니다.
밝은 삶을 사는 부모 밑에는 밝은 인생관을 가지게 되고, 암울하고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그러한 인생관을 가지고 사는 부모 밑에서는 또 그러한 자녀들이 생겨 나게 되는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관도 한가지입니다. 가정에서 정직과 성실, 그리고 진실과 충성과 거룩함과 용서와 온유 같은 것을 배우게 되면은 그것을 사회에 실천합니다.
아무리 학교에서 윤리와 도덕을 가르친다 해도 가정에서 실천되지 않는데 얘들이 그것을 실천합니까? 오늘날 한국 사회 윤리와 도덕이 이렇게 처참하게 파괴된 것은 가정에서 윤리와 도덕관이 무너져 버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황금만능주의가 되어서 돈만 잘 벌면 제일이다. 탐관오리를 하든 어떻게든 돈만 벌면 성공한다.
이것을 얘들에게 주입했기 때문에 얘들은 이 돈, 황금만능주의, 쾌락 만능주의, 현실주의 여기에 취해서 파괴된 인격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날 사회가 이렇게 어지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시켜서 내보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경외함을 가르치고, 기본 신앙인 말씀과 기도, 성수 주일, 헌금, 전도, 봉사 같은 것을 반드시 가르쳐야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그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 그리하면 백발이 되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신앙입니다. 교육도 좋고 출세도 좋지마는 그 가슴 속에 신앙을 넣어 주면 이것이 그 인생으로 부유하게 하고 풍부하게 만들고 그로 하여금 올바르게 인생을 살고 천국까지 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를 가정에서 인격적인 취급을 하고 부모가 데리고 있어야 되는데 명령 일변도를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자랄 때에는 가정이란 아버지가 명령하는 곳으로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의 명령 일변도지 뭐 거기에 대해서 왈가왈부 말을 했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그러니 아버지에 대한 공포심만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안방에 들어오면 건너방으로 도망을 치고 건너방에 들어오면 또 아랫방으로 도망을 치고 될 수 있으면 안만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명령일변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어린 아이도 인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어린 아이와 함께 언제나 대화를 나누는 가정이 되야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됩니다. 나는 한 40대의 남자가 자기 아버지에 대해서 굉장히 분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40대 남자가 자기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를 말할 때 가정에 자랄 때 아버지가 명령일변도를 했을 뿐 아니라 자기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학교에서 야구 시합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상대편 학교하고 1점을 갖고 다투며 고함을 치고 학교 교가를 부르고 주먹을 휘두르고 그래서 자기 학교가 야구에 이겼다는 것입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너무너무 흥분해 가지고서 이걸 집에 와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야되겠다고, 오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손님들하고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데 가방을 놓자마자
"아버지 오늘 야구 시합을 했는데 굉장한 경쟁이었는데 우리 학교가 간발의 차이로 이겼어." 그러니까 아버지가 "시끄럽다. 이놈아! 어른들 이야기 하는데 무슨 잔소리야. 가서 공부나 해!" 자기는 그게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것입니다.
'나는 우리집에서 인간이 아니다. 개나 고양이에 지나지 않는다. 오직 명령만 듣고 발길로 차일 따름이다. 나는 하루 속히 이 가정을 떠나야 돼. 나에게는 야구시합 이라는 이 중대한 하나의 인생의 문제를 아버지하고 나눌려고 하는데 일말에 나를 내쫓아 버리다니....' 그것이 마음에 상처가 되어서 그 때 이후부터 시작해서 아버지와의 대화는 끊어졌습니다. 다시는 아버지를 찾지 않습니다.
나이 40대가 됐는데 그가 나에게 와서 이야기 하면서 나는 아버지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 때 나를 그렇게 취급한 아버지를 용서할 스가 없습니다. 그것은 참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별로 의미없이 가혹하게 대하지마는 자라는 어린 싹인 어린 아이는 언제나 아버지 앞에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등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그 큰 권위로 그 인격을 짓밟아 버리면 그 상처는 일생을 가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어린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의 상대를 삼아야 되고 삶에 참여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집안의 일들을 함께 의논해 주면 얘들은 생각합니다.
"야! 우리 집안은 아버지 어머니만 사는 곳이 아니고 우리도 함께 사는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의무를 다하고 책임도 다하고 함께 가정을 꾸려 나가자." 그런 하나의 아름다운 동기를 형성해 주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함께 대화의 장을 이루고 함께 의논하는 그러한 가정을 여러분 반드시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 이외에 저가 부모된 여러분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겨 놓으십시오. 어린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어서 부모를 사랑하게 죄는 것은 그 어릴 때의 추억 때문인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아름다운 한 역사를 만들어주는 그 추억이 있으므로 거기 의지해서 늘 부모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추억이 없으면 아름다운 기억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 O.D.스키너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토요일만 되면 이제 80이 넘어 90이 가까운 아버님을 꼭 모시러 갑니다. 토요일날은 만사를 제쳐 놓고 이 아버지와 함께 나가서 지금도 골프도 하고 산책도 하고 아버지와 대화도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아버지를 사랑합니까?'하니까 그 분 하는 말이 '우리가 어릴 때 우리 아버님이 목사였는데 그렇게 바쁜데도 불구하고 토요일날은 만사를 제쳐 놓고 우리를 위해서 시간을 내주었다. 아버지가 우리를 데리고 같이 낚시 가고 야구도 하고 같이 골프도 가르쳐 주고 아버지와 많은 즐거움을 가진 추억이 꽉 들어찼다.
지금 아버지는 늙어 80이 넘어 90이 다 되었지마는 우리의 머리 속에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은 그 때 야구장에서, 그 때 낚시터에서, 그 때 골프를 치면서, 함께 산책 하면서 그 아버지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 하나의 역사가 아버지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가지게 한다.'고 말했었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는 성공했지마는 자식을 기르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는 왜냐? 자식들이 나빠져 실패한 것이 아니라 나는 그런 추억을 만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너무 목회하기에 바빠서 자식들을 그냥 내동댕이 쳐 버렸습니다.
오늘날에 와서 제가 크게 후회합니다. 우리 막내얘를 만나니까 우리 막내얘가 나보고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한가지 추억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니 "그 때 한번 아버지가 일주일동안 설악산에 나를 데리고 가서 설악산에서 같이 놀아주면서 동해안을 쭉 돌아서 같이 한방에서 자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일어나고 같이 놀아준 그것이 지금 일생에 잊을 수가 없어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설악산이 생각이 난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얘가 나하고 제일 친해질 수 있다. 나는 다시 인생을 출발한다며는 O.D.스키너 목사의 아버지처럼 반드시 일주일의 하루를 내어 가지고서 애들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나이가 늙어서도 강제로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추억이 언제나 부모와의 다정한 만남의 장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어린 아이가 여러분 품을 떠나기 전에 여러분의 인생만 살지 말고 추억을 만들어 십시오. 나이 늙어서 자녀들이 아버지하고 친구가 되고 엄마하고 친구가 되어서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내는 그것이 얼마나 보배롭고 값지고 즐거운 일인지 형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가정과 일가친척의 관계를 우리는 다시 한번 짚고 지나가야 됩니다.
부모와 결혼한 자녀 부부와의 관계인데 우리 한국은 전통적인 대가족제도 시대에는 시어머니가 곳간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집안의 경제력과 정권을 휘둘렀습니다. 시어머니 밑에 며느리가 시집 들어오면 구른 입도 못 띠고 고역을 당합니다.'
고추 당추 맵다 마라 시집살이 더 맵다' 라는 것이 우리 지나간 시대의 어머니들의 눈물 어린 노래였었습니다. 시집오면 뭐 시어머니 그리고 시동생들 짓밟혀서 갖은 고역 치르는 것이 우리 한국의 고부 관계였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에는 세월이 달라졌습니다.
요사이 저의 신앙 상담실에도 보며는 고부간의 갈등으로 오는 신앙상담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데 성경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성경은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찌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결혼을 하며는 생활로도 부모와 보충이 끊어집니다. 심리적으로도 부모와의 관계가 독립으로 끊어진 것입니다. 이러므로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를 역시 내 소유물처럼 생각하고 명령을 하고 휘어 잡고 흔들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말하기를 옛날에 대가족제가 아름다웠다는 신문기사를 보는데 여러분 내용 모르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대가족제도에 있으면서 그 가운데 갈등과 마음의 고통과 분노와 원한과 그런 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인 것입니다.
나는 목회자니까 대가족에서 일어나는 그 갈등과 설움과 그 고통 이 여러 가지 문제를 너무나 많이 겪어 왔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반드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못떠나면 마음으로도 이미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가 시집 보내고 난 다음 부모가 알아야 될 것은 이미 떠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일일이 내 소유물처럼 시시콜콜하게 간섭하고 지배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식을 사랑하라는 말은 없어요.
그것은 말 안해도 다 사랑합니다. 자식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어요.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명령입니다. 그리고 또 상까지 붙어 냈습니다. '그러면 네가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왜냐? 부모는 공경 안하기 때문에. 이미 자식이 부모를 떠나면 자식은 부모를 공경안하기 때문에 강제로 성경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를 공경하면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한다는 축복까지 해놨습니다.
이러므로 사랑은 내리 사랑이지 밑에서 위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부모는 결혼한 자녀들도 사랑하지마는 자녀는 결혼하면 또 자기 처자를 사랑하지 부모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억지로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강제로 사랑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의무가 되지 우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부모가 잘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에게 사랑을 자꾸 베풀어서 사랑에 반응하도록 해야됩니다. 시어버니가 되었다 해서 며느리를 그냥 쥐어 박고 호령하고 비평이나 하면 옛날과 달라서 요사이는 보통 찬밥 얻어 먹지 않습니다. 옛날과 같은 그런 지배관계가 있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사랑해야 됩니다. 자기 친딸처럼 사랑하고 돌보고 위하여 주고 칭찬하고 이렇게 하는데, 사랑으로 심는데 어떻게 사랑으로 보답안 할 턱이 있어요? 아무리 악한 며느리라도 시어머니가 너무너무 큰 사랑으로 사랑해 주고 돌봐 주고 감싸주는데 어떻게 코끝이 시큰 안할 수가 있는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시어머니란 그러한 위치에서 내가 당당한 권위를 가지고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성경에 이미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여자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리라 했으므로 결혼하면 심리적으로 벌써 떠나 버린 것입니다. 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으로 다시 내 품에 품어야 내 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를 이해하고 동정하고 부모를 도와주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명령이기 때문에 자녀들은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내 친어머니같이 생각하고 하나님 명령에 쫒아서 이해하고 동정하고 공경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자연적으로 마음에 우러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벌써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무적으로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만 예수 잘 믿고 뭐 천당 가면 되었지 뭐 까짓거 뭐 시아버지 시어머니나 시댁 가족 상관할거 뭐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라이 내 이웃에 나타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내 시부모 이것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돌보는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매로서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부간의 갈등은 아들과 남편 얼마나 큰 정신적인 고통을 갖다 주는지 모릅니다.
아들은 어머니 편도 들 수가 없고 자기 아내 편도 들 수 없습니다. 중간에 서서 당하는 심한 갈등으로 말미암아 그는 가정을 점점 떠나게 되고 잘못하면 바람을 피우게 되고 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여러분 고부간의 문제는 사랑으로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발생적으로 자식들이 나는 공경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끝없는 사랑으로서 산울림처럼 며느리나 아들의 사랑이 돌아 오는 것입니다.그리고 자식은 하나님 명령입니다.
하나님 명령이니까 명령을 따르십시오. 부모를 공경하고 잘 받들어야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또 장수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 자기가 그렇게 하면 자기도 아들 나요. 얼마 있지 아니하면 자기도 시어머니가 되고 또 며느리를 보게 됩니다. 그때는 그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의 과거에 살아온 전통을 잘 압니다.
자기 시어머니를 공경하고 잘 돌보았다 그러므로 나도 그렇게 해야되겠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는데 뭐 자기는 시어머니 뭐 헌신짝 같이 여기고 발길로 차놓고 이제 와서 날보고 뭘 어떻게? 건방지게.... 이렇게 말합니다. 결국 자기의 앞날을 자기 스스로가 망쳐 놓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사랑으로서 대화를 통하여 훌륭한 가정은 만들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이 불행하면 삶 전체가 파탄이 납니다. 행복한 가정은 생명체와 같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그냥 내버려 놓고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원사가 꽃을 가꾸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여서 가꾸어야 아름다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상에서 가지는 이 가정은 하늘나라 가정의 모형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친아버지가 되시고 예수님이 우리 신랑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나라의 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지으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신랑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온 몸을 찢고 피를 흘리고 죽음으로서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건져주고 우리를 돌봐주지 않습니까!
이는 하늘나라의 가정, 이것은 영원한 가정이요, 우리가 장차 들어가서 영원히 이 아버지와 이 신랑을 모시고 살게 되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정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정이요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는 가정으로 조금도 슬픔의 그림자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가정의 모형을 오늘 이 지상에서 훌륭한 남편, 아내, 부모로서 자녀로서 이루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도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세사의 가정은 하늘나라 가정의 모형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훌륭한 가정을 이룰 때 하늘나라 올라가서도 훌륭한 가정 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쫒아 내 아버지 하나님,
오늘날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이 혼란한 세계에 처처에 깨어진 가정의 무덤이 산제해 있는 이 곳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로서 훌륭한 가정을 이룰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내 아버지 하나님, 책임있는 남편, 공경하는 아내, 하나님의 기업으로 잘 기르는 자녀들,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녀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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