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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15-27/ 나무는 그 열매로 / 한경직 목사
2014-08-27 12:35:26   read : 25734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오늘 아침 읽은 말씀은 산상보훈의 결론이올시다.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 한 가지 경고를 최후로 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그러면서 거짓 선지자들을 알아내는 표준 혹은 원칙을 한 가지 주십니다. 그것은 그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것입니다.

산상보훈에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데, 그 결론에서 주님께서 이런 경고를 우리에게 주신 것을 보면,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경고가 꼭 필요해서 이렇게 하신 줄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주님의 이 경고의 말씀을 잠깐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선지자의 역할은 실로 위대합니다. 이들은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백성에게 전하였습니다. 모세를 비롯해서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혹은 아모스,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공적은 실로 위대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고, 백성들은 그 생명을 얻었고, 사회와 국가는 큰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런 참된 선지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거짓 선지자들도 또한 있은 것입니다. 이상합니다. 곡식밭에는 가라지가 반드시 섞입니다. 참이 있는 곳에 거짓이 섞입니다. 왜? 이 세상에는 악마의 역사가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 같은 이도 그 이른 시대에 신명기 13장 1절을 보면 이러한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너희에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청종하지 말라” 그리고 조금 내려가서는 “그런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런 경고의 말씀을 모세 5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때 와서 어떠했는가? 14장 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예레미야 때도 이런 현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에스겔 때에는 어떠한가? 포로 후 시대입니다. 13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이런 현상은 구약시대뿐이 아닙니다. 신약시대에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참 사도들이 있는 동시에 거짓 사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신약 가운데 갈라디아서나 골로새서 같은 것은 특별히 이런 거짓 사도들의 교훈을 막기 위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참 선지자가 있었는가 하면 거짓 선지자도 또한 있었던 것입니다. 장래에도 그렇겠다고 주님께서 미리 경고하십니다.

마가복음 13장 21절 이하에 주님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 4장 1절에 이렇게 경고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영을 다 믿지 말라고, 성령을 받았다고 한다고 해도 다 믿지 말라고, 성령인지 악령인지 분간해 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예수님께서 시험해 보는 한 표준, 원칙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는 것입니다. 나무는 열매를 보고 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분간해라. 그 잎사귀를 보란 말이 아닙니다. 열매를 보고 판단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외모로는 그들을 판단 못합니다. 왜? 양의 옷을 입고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옛날 선지자들은 문자 그대로 양의 가죽으로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하여간 참 선지자들로 가장하고 옵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았다고 하고, 계시를 봤다고 하고, 이적과 기사도 행한다고 하고,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고 방언도 할 거예요. 이러한 잎사귀만 보지 말고, 외모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실제 생활에서 열매를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어떠한가? 그이가 과연 성령을 받았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성령의 열매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잘 아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에 분명히 기록했습니다. 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런 것들입니다. 그의 사생활에서 실제로 이런 열매가 맺히는가, 자세히 살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말하는 그 교훈이 과연 참열매인가? 포도처럼 생명을 줄 만한 열매인가, 혹은 가시덤불에 맺히는 열매 비슷한 것들인가? 그들의 교훈이 과연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가? 알아보라고 하는 얘깁니다. 그 교훈이 교회에 주는 영향이 어떠한가? 사회에 주는 영향은 어떠한가? 열매를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합니다. 가령 구체적으로 우리가 좀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이제도 말했지만 성령의 열매 가운데는 사랑, 화평, 오래 참는 것,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런 덕이 열거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온유와 겸손한 마음을 배우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4장에 이런 말씀으로 권면합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나님도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몸도 하나이니라” 하나 되게 하는 것을 힘써 지키라.

성경 교훈이 이러한데, 여러분 교계 형편을 가만히 살펴보면 어떤 이들은 사소한 감정으로 싸움을 계속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교회를 분열을 시키고야 맙니다. 독립교회를 선언합니다. 교파에서 아주 나가고 맙니다. 혹은 이런 교회 몇이 모여서 다른 교단을 설립했다고 선언을 합니다. 이렇게 되어서 오늘날 우리 한국 교계의 현상을 보면, 장로교회 이름 아래에서 교단이 열둘인가 열셋이 되었다고 해요. 또 독립교회라는 지교회도 여럿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이들 가운데서 이제 말한 성령의 열매를 우리가 찾아봅니까? 이런 이들 가운데서 사랑을 찾아봅니까? 화평을 찾아봅니까? 오래 참는 걸 찾아봅니까? 자비와 양선을 찾아봅니까?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런 이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이런 열매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교인들이 있는 까닭입니다. 독불장군이라고, 혼자 이런 일 할 수 있어요?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실제 생활을 봐야 합니다. 말만 들어서는 모릅니다. 말로야 무슨 통이 어떠하고, 헌법이 어떠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이 설명할 거예요. 그러나 실제 그 사람의 성품에 있어서, 생활에 있어서 성령의 열매가 있는가?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해야 됩니다.

또 보세요. 성경에 보면 언제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한 곳으로 치우치지 말라고, 지적이나 정적이나 의지적인 방면 등 모든 면에서 한 곳으로 너무 치우치지 말라고 늘 권면합니다. 여호수아 1장을 읽어 보세요.

디도서 2장 4절 이하에 보면 특별히 교인들에게 이런 권면이 있습니다.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간곡한 권면입니다. 그런데 어떤 부인들은 무슨 집회니, 무슨 제단이니 따라다니면서 은혜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집안이 엉망이 됩니다. 집안일을 도무지 안 돌아봅니다. 아이를 돌아보지 아니합니다. 그러니 남편은 울상이 되어서 “이거 어찌하면 좋소?” 하고 호소를 합니다.

여러분, 집회도 열매를 보아서 그 집회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열매를 보아서 그런 집회를 하는 지도자들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집회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가정에서는 주부로서 더 좋은 주부의 책임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편에게 대해서는 더 좋은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은혜를 받았다고 할 것이면, 어머니로서는 자녀에게 더 좋은 어머니 구실을 해야 그 사람이 참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게 반대로 나타납니다. 이게 참 은혜입니까?

전에 본 회퍼는 은혜 가운데 소위 값싼 은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건 값싼 은혜보다도 이건 은혜가 아니고 악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판단합니다. 열매를 보아서 집회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새로 믿는 이들은 이런 방면에 조심하지 아니하면 신앙에 오도가 되기 매우 쉬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집회가 있다고 하면 함부로 따라다니지 말고, 그 구역의 책임자들과 의논해서 갈 집회를 가고 멀리할 집회는 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 보세요. 이거 다 사실만 제가 얘기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정에 대해서 얼마나 가정을 신성히 생각하셨냐 하면 친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4절에는,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성경은 엄숙히 권면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소위 무슨 교회라 하는 간판을 건 어떤 집단에 따라다니더니 아들과 딸 둘, 셋씩 있는 자기 아내를 돌보지 아니합니다. 마지막에는 내버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과 결혼합니다. 이런 이들이 이런 집단에서 간부로 지금까지 활동하는 모양입니다. 나무는 열매를 보아서 압니다.

이렇게 가정을 파괴하는 어떤 집단이 교회란 간판을 걸었다고 이게 교회입니까? 그런데 이런 집단이 날로 커가기만 한다고 하니 한국의 사회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 장래에 대해서 염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판단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함부로 따라다니면 안 됩니다. 예수란 간판 붙었다고 함부로 따라다니면 안될 때입니다.



성경은 이런 거짓 선지자들의 특색을 몇 가지로 우리에게 지적해서도 가르쳐 줍니다.

오늘 읽은 이 본문에도 이 거짓 선지자들이 장차 예수님께 와서 무슨 말을 하겠다고 합니까?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고, 내가 주의 이름으로 능한 일을 했고, 내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않았습니까?” 그때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시겠다고 했나요?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라.”고 내쫓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흔히 능한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적을 행한다고 합니다. 남 못하는 무슨 일을 한다고 합니다.

내가 요새 들으니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아서 남의 속에 있는 생각을 말갛게 알아낸다, 이런 말도 돌아요. 그건 지금만 있는 얘긴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전에 촌에서 어떤 무당이 가락 같은 무당이라고 소문이 났어요. 꼭 끼인다고. 이런 헛된 선전에 속으면 아니됩니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5절에는 예수님께서 분명히 장래에 이런 일이 있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해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리라” 요새 어떤 집단에서는 예수님이 한국에 재림한다고 그러죠? 또 했다고 그러죠? 내가 새 예수니, 내가 메시아니, 내가 무슨 나무니, 그리스도의 이름을 찬탈해서 자기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이게 적그리스도입니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아야 됩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 이하의 말씀을 여러분 집으로 돌아가서 자세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간단히 몇 절 읽습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였다고, 마지막에는 예수를 부인하겠다고. 소위 신학이라고 하는 이름 가운데, 신학자라고 하는 이런 사람들 가운데, 가만히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사실 살펴봐야 할 때입니다.

계속해 읽을 때 들어보세요.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 호색하는 자들이라고 지적했어요. 소위 사이비종교의 지도자의 주변에는 언제나 이런 추문이 따라다닙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입니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너희로 믿는 사람으로 자기의 이익을 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그들의 탐심, 욕심을 지적합니다. 양으로 자기의 이익을 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후 100년경에 기록된 12사도의 교훈집을 보면, “선지자라 이름하는 사람이 와서 당신들에게 돈을 청구하면 그건 실상 선지자가 아니니 드리지 말라.” 이런 구절이 있어요. 이런 거짓 선지자들을 가리켜서,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 상인’이라 이런 말을 썼습니다. 아마 무슨 뜻인가 하니, 그리스도 팔아먹고 사는 장사꾼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지도자든지 그의 생활과 교훈이 과연 개인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주는 영향이 어떠한가? 그 열매를 보아 그 사람의 교훈을 판단해야 합니다. 어떤 사상, 특별히 어떤 신학사상이든지 그 열매를 보아서 판단을 해야 합니다. 현대는 무슨 신학, 무슨 신학해서 신학사조도 가지가지입니다. 요컨대, 그 신학이 과연 죄인이 회개하고 새 사람을 만드는가? 그 신학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부흥되는가? 그 신학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사회가 정화되고, 자신이 사회를 바로 봉사하는가? 그 열매로 어떤 신학사상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저 현대 신학이라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면 안 됩니다. 양의 옷을 입은 이리들이 다니게 해선 안 됩니다.

신앙의 정도를 걸어가려 하려면 언제든지 두 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어떤 개인이나 어떤 신학사조를 따라가지 아니해야 됩니다. 개인은 언제나 넘어지기 쉽습니다. 신학사조라는 건 물결과 같아서 언제나 변합니다. 그런 걸 따라가면 안 됩니다.

둘째는 신앙의 기초를 언제나 성경에 두고, 성경의 중심인 그리스도만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을 내 눈으로 읽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교훈을 배우고, 그리스도의 생활을 자세히 보고, 그대로 순종하면서 예수만 따라가야 합니다.

듣기만 해서는 아니됩니다. 그리스도의 교훈대로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생활만이 신앙의 집을 반석 위에 짓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우리 신앙의 집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반석 위에 지어야 합니다. 그 반석은 그리스도와 그 진리입니다. 그대로 행하는 참된 신앙입니다. 이 경고가 우리와 우리 교계에 옮겨지길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버지 하나님, 엄숙한 경고를 저희들이 들었습니다. 저희들은 미련하고 둔해서 그릇 길가기 쉽사오니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임재하시고 성령의 지혜를 주셔서 언제나 열매를 보아 나무를 판단할 줄 알게 하여 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을 만나고 주님만 따라갈 수 있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참된 신앙을 할 수 있는 아버지의 자녀로 삼아 주시옵소서. 그리해서 이 어지럽고 복잡한 이리 같은 무리들이 많은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옳게 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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