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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6:36-46/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 / 한경직 목사 2014-08-27 12:11:59 read : 20083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39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사순절을 당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최후 지상생활의 장면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지난 주일은 마지막 저녁에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장면을 생각하였습니다. 오늘 아침은 바로 그날 저녁, 깊은 밤에 된 일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곧 겟세마네 동산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앙망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지금 성지 예루살렘에 가보면 감람산 남녘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지금도 아주 오랜 감람나무 여덟 그루가 있고, 그 중에 한 나무는 ‘애통의 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나무 아래서 주님께서 기도를 드렸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 작은 예배당이 지금은 지어져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역시 큰 바위가 있는데, 곧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신 바위라고 하는 전설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날 저녁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잡수시고 모든 교훈과 격려와 위로의 말씀을 주시고, 성찬예식을 거행하신 후에 요한복음 17장에 나타나는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를 같이 드리고, 찬미를 부르고 나아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으로 가신 것입니다. 곧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신 것입니다.
때는 깊은 밤입니다. 다음 아침에 있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은 하나님과 홀로 대화하시기 위해서 이곳에 오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지상생활에 있어서 가장 엄숙하고 비장하며 장엄한 장면을 봅니다. 곧 그의 기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한 대로, 주님은 동산 어귀까지 오셔서 여덟 제자를 거기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시고 동산에 들어가신 후에 그들로 하여금 머물러서 깨어 기도하라고 부탁을 하시고, 자기는 돌을 던질 만큼 조금 더 나아가서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세 제자들에게는 같이 걸어가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그때에 주님은 큰 고민과 슬픔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의 큰 고민과 슬픔, 곧 애통을 체험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온전한 인간성을 입으셨습니다. 육신을 쓴 인간으로서 죽음을 원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33살의 청년으로서 그러할 것입니다. 하물며 십자가의 죽음을 자원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큰 고난에 대한 고민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그가 사랑하던 제자 중에 하나가 자기를 반역하는 사실을 아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우실가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험하신 그 애통과 고민은 이것들만은 아닌 줄 생각이 됩니다. 그것은 곧 만민이 지은 모든 죄를 홀로 질 수밖에 없는, 그 큰 죄의 짐과 관련된 줄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날 저녁 우리 주님은 죄로 말미암아 오는 인간의 모든 고민과 애통을 스스로 체험하신 것입니다. 세상 죄를 홀로 지신 어린 양의 고민과 애통을 우리는 여기서 봅니다. 그래서 이 큰 애통과 고민 중에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주님의 그 고독의 모습을 이때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세 제자를 데리고 들어가시면서 자기가 기도하는 중에 그들도 깨어 있으면서 기도하라고 간절히 부탁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하자면 인간의 동정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너무 피곤한 가운데 깨어 있지 못하고, 베드로 자신도 정신 모르고 잤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안타까운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 큰 애통 중에서 홀로, 다만 혼자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하 만민의 모든 애통, 모든 고민의 짐을 홀로 지신 것입니다.
이사야 63장 3절에 기록한 대로 그는 홀로 포도주 틀을 밟았습니다. 그를 도운 인간은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이날 밤 큰 애통을 경험하고, 또 이 애통을 홀로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인간의 애통을 아시고 동정하실 수 있으며, 인간의 고독을 또한 아시고 가장 외로움과 동거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가장 어려운 일을 거의 홀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큰 시험을 당할 때에도 홀로 당하는 것입니다. 무슨 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을 때에도 결국은 홀로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가 당할 죽음도 홀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큰 인간의 싸움은 누구나 홀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고독을 아시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러한 때에 인간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일찍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반드시 다시 오겠다.” 또 “세상 끝날 때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고독을 친히 체험하신 주님은 모든 고독한 인간의 그 고독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이제 한 걸음 나아가서 그 기도의 내용을 엿보십시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여기에서 ‘잔’이란 말은 곧 고난의 잔을 의미합니다. 곧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먼저 기도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인간성을 보는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피하고 만민 구원의 큰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는 이 잔이 지나가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인간으로서의 그의 소원을 먼저 솔직히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기도하였습니다. 곧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는 인간의 뜻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것이 비록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여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결코 쉬운 기도가 아닙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가장 어려운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는 이런 구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곧 이 기도는 피땀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5장 7절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고 한 것입니다. 그는 이 기도에서 인간의 뜻을 누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의 승리적 기도를 우리는 바라봅니다. 여기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여 달라는 기도는, 말하자면 그저 아무래도 할 수 없으니 부득이 해서 그렇게 되게 하여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는 속으로는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는 말도 아닙니다. 주님의 태도는 이 잔이 아무리 쓰나 이것이 그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뜻이므로, 이것이 최선인 줄 믿고, 현재 모든 것을 미리 깨닫지 못하나하나님의 선한 뜻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우리 인간도 작은 의미에서 어떤 때에는 겟세마네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실패의 그 쓴 잔을 마실 수밖에 없을 때가 혹 있습니다. 큰 슬픔을 당할 수밖에 없을 때가 혹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때에 세 가지 태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할 수 있나, 그저 모든 것이 운명이지.” 말하자면 팔자이지. 이런 절망의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땅을 원망하고 하늘을 원망하며 사람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반항의 태도를 가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또한 신앙의 태도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무슨 일이 오든지 이것은 사랑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되는 것임을 믿고, 지금은 다 이해하지 못하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이런 이는 이러한 일을 당할 때에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기도합니다. 이런 이들은 주님께서 그날 저녁에 받은 은혜를 역시 받는 것입니다. 곧 그 일을 능히 감당할 만한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능력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세 번 이런 기도를 하신 후에는 제자들에게 와서 외치십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곧 주님은 이 기도를 통하여 새 힘을 얻어 평화로운 마음으로 자기를 잡으러 오는 원수를 향해서 담대히 마주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 앞에 바로 서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 바로 서기 위해서 겟세마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통하여 큰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신 부탁을 우리가 기억하여야 되겠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고, 기도하라고, 그래야 시험에 들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이 간절한 부탁을 받고도 깨어 있지 못하였습니다. 기도도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위기가 올 때에 다 시험에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악한 무리들에게 붙잡히시게 될 때에 그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수제자 베드로 자신도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경고가 됩니다. 전감(前鑑)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왜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깨어 있어야 사방을 살필 수 있습니다. 원수가 오는 것을 미리 볼 수 있습니다. 자는 집에 도적이 듭니다. 또 원수는 자지 않고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야경(夜警)이 졸므로 도적맞는 집이 많습니다. 보초병이 졸므로 패전한 군대도 많습니다. 조는 경관들 때문에 어떤 때는 비행기도 납치를 당합니다. 심지어 신영호 침몰사건을 여러분 지금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전사는 SOS를 쳤지만, 일본 해안 경비대에서는 들었는데, 우리 한국 경비대에서는 듣지를 못했습니다. 왜? 존 것 때문입니다. 그때는 깊은 밤이었습니다.
바로 이 달이 방첩의 달이기도 합니다. 바로 오늘 아침에도 여러분 북괴에서 하는 일을 신문에서 보신 줄 압니다. 25개국에 2,000여 폭도를 훈련해 보낸다고, 그들이 온 세계를 상대로 해서 이런 사람들을 훈련하거든, 하물며 남한을 침범하려는 야욕을 얼마나 가졌을 것입니까? 지금은 문자 그대로 국가적으로 보나 개인적으로 보나 깨어 있을 때입니다. 원수는 호시탐탐 남한을 노리고 있습니다. 원수는 호시탐탐 우리 믿는 자의 영혼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에 들지 아니합니다.
그리고 또한 기도하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깨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도를 해야 합니다. 곧 기도를 통해서 새 힘을 얻어서 정신 무장해야 합니다. 사방을 바로 살피는 이는, 곧 위기를 바로 아는 이는 그 눈을 위로 향하게 됩니다. 곧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가 일찍이 제2차대전 때에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하는 그날 밤, 밤새도록 자지 않고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충무공 이순신도 한산도에서 대접전이 있을 때에 배 위에서 하늘을 향해서 기도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깨어 있는 이는 또한 기도합니다. 사방을 둘러보는 눈, 곧 깨어 있는 눈, 그리고 위를 향하는 눈, 곧 기도하는 눈, 이상 두 가지만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나, 또는 어떤 시점에서나 승리적 생활이 가능합니다. 시험에 들지 아니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기도를 통하여 담대히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었고, 따라서 만민을 죄악 가운데서 구속하시는 대사업을 결국은 이루신 것입니다.
인간이 일생을 사노라고 하면 누구나 겟세마네와 비슷한 애통, 고독, 혹은 환난을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이 기도를 배워서 기도를 통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모든 애통과 고민과 환난과 재앙과 그 이상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 있을 때에라도 우리를 이해하시고 동정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까지도 같이 따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그 기도의 비결을 배우셔야 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옵소서”
모든 성화(聖畵) 중에 아마 제일 유명한 성화는 호프만의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그 성화일 것입니다. 그 성화의 한 폭이 바로 우리 기념관 상층 기도실에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순절 기간에 기도실을 좀 자주 방문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로부터 기도의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신 무장을 바로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합시다.
이 가장 거룩한 시간에 저희들이 눈을 들어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라 겟세마네 동산까지 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도 이 인생길을 걸어갈 때에 혹 겟세마네를 만날지라도 주님께로부터 이 기도의 비결을 배워서 이 기도를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고 정신무장을 바로 하여 이 죄악 많은 세상을 옳게 걸어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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