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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1-11/ 아버지의 약속 / 한경직 목사
2014-08-27 11:53:55   read : 18988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1장 4절과 5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승천하시기 직전에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올시다.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은 물론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리라고 하는 약속, 끝까지 믿는 자들을 보호하여 주시리라고 하는 약속, 위험 중에서도 같이 계시겠다고 하시는 약속 등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성령을 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 요엘 2장 28절 이하를 읽어 보면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이 있습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을 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여기에서는 이러한 아버지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이 약속을 꼭 기다려서 받으라고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은 첫 오순절에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은 오순절을 기념하는 오순절 주일로써, 이러한 아버지의 약속을 우리가 생각하는 가운데 오늘 우리 교회도 같은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이 이 약속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기다렸는가, 먼저 잠깐 살펴보십시다. 그들은 주님의 분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도 다른 일로 바쁜 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주님의 분부를 순종하기 위하여 아무리 다른 일이 많아도 모두 제쳐놓고 예루살렘에 머물렀습니다. 제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120여 교우가 같이 그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남녀노소가 다 같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에 기록한 대로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을 썼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물론 반성도 하고, 회개도 하고, 죄를 자복하기도 한 줄 생각합니다. 서로 다투던 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던 일, 예수를 다 저버리고 달아났던 일, 특별히 베드로 같은 이는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죄를 애통해하며 자복한 줄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열흘 동안을 계속하면서 그들의 과거의 모든 실패, 불화, 교만, 비겁, 이기심, 불결 등 온갖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준비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그 신앙, 말씀에 순종하는 그 순종, 자기반성, 기도, 죄의 고백, 온전한 헌신, 아버지의 약속에 대한 확실한 기대는 성령 임재의 전제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그러합니다. 이런 이들에게, 이런 이들이 모인 교회에 언제나 성령은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오순절에 된 일을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대로 잠깐 회상하십시다.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대로, 옛날 유대 나라에는 1년에 3대 절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입니다.

오순절은 유월절이 지난 후 50일 만에 맞는 절기로 그래서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찍이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또 하나는 처음 익은 곡식을 드리는 절기입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밀이 주요 곡물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거둔 밀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을 또한 맥추절이라고도 이르는 것입니다. 이 날 첫 그리스도인들은 율법 대신에 성령의 은사를 받았고, 영적 첫 수확으로써 새로 회개한 3,000명의 영혼을 주님께 드리게 된 것은 실로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그 날 된 일을 누가는 이렇게 사도행전에 묘사하였습니다. “오순절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두 가지 상징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바람, 급한 바람, 그리고 또 하나는 불, 불의 혀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이란, 그 ‘영(靈)’이란 글자의 히브리말의 본래 뜻은 ‘바람’ 혹은 ‘숨결’이란 뜻입니다. 바람은 신비합니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나, 느낄 수 있습니다. 바람이 어디로 오고 어디로 가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자취는 남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러합니다. 우리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나, 느낄 수 있습니다. 어디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으나 자취는 남습니다. 이렇게 신비합니다.

에스겔 37장을 보면, 마른 뼈로 가득한 골짜기의 환상이 나옵니다. 이 환상을 보는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예언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들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생기는 곧 바람을 의미합니다. 바람은 곧 숨결, 생명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그 마른 뼈들이 충만하게 됨에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케 되어서 살아났습니다. 바람은 이렇게 생명을 의미합니다.

바람은 역시 능력도 의미합니다. 바람은 바다의 물결을 요동케도 합니다. 급한 바람이 불 때에는 나무가 뿌리까지도 뽑혀 버립니다. 큰집도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실 때에 회오리바람 가운데서 말씀하신 것은 의미가 심장합니다. 곧 그들은 오순절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의 혀로 나타났습니다. 불은 성경에 흔히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불붙는 가시덤불 곁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실 때에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러나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엘리야의 제단은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서 응답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불은 빛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의미합니다. 불은 열이 따릅니다. 정열, 곧 사랑을 의미합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깨끗이 합니다. 곧 순결을 의미합니다. 오순절에 그들은 이렇게 불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한마디로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 충만케 되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충만케 되었습니다. 성령은 성결의 영입니다. 그들의 생활은 성결로 충만케 되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진리로 충만케 되었습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입니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케 되었습니다. 성령은 빛의 영입니다. 그들의 전 생애는 빛으로 충만케 되었습니다. 성령은 전능하신 영입니다. 전능한 권능으로 그들의 생애가 충만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순절 아침, 첫 예루살렘 교회로 받은 은혜입니다. 무엇이나 충만하게 되면 넘치게 됩니다. 그릇에 물이 충만하면 넘치기 쉽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케 되었으므로 그 생명이 넘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그 마음 속에 충만해졌으므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가 그들의 입을 통하여, 그들의 일상 생활을 통하여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히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날 일어서서 담대히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가 다시 부활하였고, 만민의 구주가 됨을 그리스도를 십자에 못 박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담대히 선포한 것입니다. 베드로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도 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남녀노소가 다 그리하였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되면 자연히 복음의 전파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유무상통(有無相通)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진해서 물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왔습니다. 사도들은 필요한 이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상부상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니 그 사랑이 손을 통하여 넘쳤습니다. 그들은 재물을 자기 손에 쥐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즐거이 자원하여 바쳤습니다. 사회봉사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참된 기독교 공산주의는 실로 어느 사회나 명랑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넘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모든 열매가 넘쳤습니다. 그들 마음 속에 넘쳐서 그들은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넘쳤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충만하여 넘치는 교회의 모습을 누가는 사도행전 2장에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도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런 교회는 자연히 부흥되었습니다. 확포(擴布)되었습니다. 예배당도 차고, 신도로 넘쳤습니다. 모든 봉사와 사업을 한 것입니다. 이 교회는 결국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온 유다, 사마리아, 전 로마제국을 복음으로 정복하였고, 전 세계에 구원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오순절 주일에, 우리 교회도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받아서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보면, 사도들만 이렇게 성령에 충만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온 교우가 다 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일곱 집사도 성령으로 충만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하든지 성령의 인도 아래 모든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로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 가게 된 것도, 그리고 유럽 땅으로 발을 옮겨 가게 된 것도 다 성령의 인도로 되었습니다.

성령은 그들의 일상 생활에 용기와 능력의 원천이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오순절에 3,000명을 회개하게 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베드로와 요한은 공회 앞에서도 담대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은 어떠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었고, 환경을 초월하여 언제나 기쁨과 감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은 피곤한 인생길도 힘있게 걸어갔고, 고통과 슬픔도 이기고, 유혹과 시험도 물리치고, 실망과 낙심도 극복하고, 담대히 용감히 언제나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여 인생의 행로를 걸어가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며, 사회의 봉사자와 빛과 소금의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는 이런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여기에 가만 보면, 불신자와 믿는 사람의 생활을 대조해서 권면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술로 충만합니다. 뭐, 술뿐이겠습니까? 욕심으로 충만하고, 정욕으로 충만하고, 교만으로 충만하고, 시기와 질투로 충만하고, 허영으로 충만합니다. 그와 반대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합니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모든 덕으로 충만합니다.

우리의 생활이 어떠합니까?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조심하여야 합니다. 다른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 쉽습니다. 물질세계나 영적세계나 진공 상태라고 하는 것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용납되지 아니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아니하면 죄악으로 충만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는 언제나 반드시 성령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사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기도를 힘써야 합니다.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야 합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에 보면, 하나님은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분명히 지적해서 가르쳐 주었습니다.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참 헌신의 생활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이에게 성령으로 충만히 부어 주십니다. 이런 일로 모인 교회에 성령으로 충만히 부어 주십니다.

자세히 들으세요. 에베소서 5장 18절에는 앞에서 한 말씀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권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5절에는, “성령으로 살라”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성령을 좇아 행하고, 성령으로 사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교회에 이따금 나오기는 하지만, 메마르고 시들은 영혼은 없습니까? 근심과 의심의 영혼은 없습니까? 불안과 불평의 영혼을 품고 오시는 분은 없습니까? 이 오순절 주일에 아버지의 약속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약속은 꼭 주시는 것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이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반드시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하심을 이 시간 받으세요. 그래서 확신과 기쁨과 감사와 능력으로 충만해서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세요. 세상에 물들지 말고, 세상을 정화하는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세요. 복음의 선포자가 되세요. 기도하십시다.

아버지시여, 오늘 이 뜻깊은 오순절 성일에 저희들이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이 약속을 기대하면서 이 자리에 나아와 머리를 숙였습니다. 우리 머리 들기 전에 약속하신 성령으로 우리 각 사람 머리 위에 우리 심령 심령마다 약속하신 성령으로 충만히 부어 주시옵소서. 그리해서 우리가 이제부터 성령에 충만한 아버지의 자녀로서, 이 세상이 비록 험하고 죄악이 많으나 거룩한 아버지의 자녀로서 살며 이기며 온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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