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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6:8-15/ 행7:54-60/ 첫 순교자 스데반 / 한경직 목사 2014-08-27 11:11:37 read : 18250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사도행전 6장 15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도 잠깐 동안 이 교회의 역사상 첫 순교자인 스데반을 주목하여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파할 때에 하루에 3,000명이 회개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어 자기의 소유를 팔아서 기쁜 마음으로 사도의 발 앞에 갖다 놓아 유무상통하는 생활도 시작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며 직접 음식을 공궤(供饋 음식을 줌)하게끔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은 구제가 잘 되지 않는다고 하며 불평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사도들은 너무 분망한 중에 잘 살피지 못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사도들로서는 이런 구제하는 일보다도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것이 합당한 줄로 생각을 해서 이 구제하는 일을 잘할 만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집사 일곱 사람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제일 먼저 택함을 받은 이가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스데반이올시다. 이 시간 우리도 이 스데반 집사를 주목하여 보기로 하십시다.
먼저, 그는 어떠한 신자였던가? 집사가 되기 전에 먼저 어떠한 신자였던가?
6장 3절에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라고 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6장 5절에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기록했습니다. 6장 8절에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이와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6장 10절에는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이런 문구도 있습니다. 그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였습니다.
그는 우선 믿음으로 충만하였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받는 성령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좇아오는 모든 은혜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과 지혜로 모두 충만하였습니다. 믿음, 성령, 은혜, 권능, 지혜, 이 모든 신덕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은 이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분이 집사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분이 교회에서 집사 일을 보았습니다. 이런 이들이 집사 일을 보고, 장로 일을 보고, 교회 단체에서 회장의 일을 보고, 총무의 일을 보게 될 때에 그 교회는 자연히 은혜스럽고, 부흥하고 더욱 많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택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 단체에서 임원을 택할 때가 있습니다. 그 첫째 조건이 무엇일까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중심이 될 때에 온 교회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소의 믿음이 있습니다. 다소의 성령의 감화를 받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 거기에 있습니다. 스데반은 이 모든 은혜를 충만히 받았습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스데반처럼 이 모든 은혜를 충만히 받기를 바랍니다. 그는 모든 은혜에 충만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의 한 일을 잠깐 주목하여 보십시다. 그는 먼저 집사로서 당시에 마땅히 할 일을 충성되이 감당한 줄 생각합니다. 곧 구제하는 일이나 봉사하는 일을 잘한 줄 생각합니다. 그것은 집사로서 으레 할 일이니까, 성경에는 특별히 여기에 대해서는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이 일을 잘할 뿐더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집사일 모든 일 위에 복음을 담대히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러 회당에서 변론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메시아가 되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그가 공회 앞에서 연설한 그 전문이 사도행전 7장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전역사에 통달한 인물이올시다. 그는 구약과 그밖에 역사를 많이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이올시다. 집사들도 이렇게 성경과 교회역사를 연구할 수 있으면, 얼마나 더 큰 축복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책망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이 많은 예언자들을 핍박하였고, 또는 죽인 사실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장차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의인 곧 메시아가 오리라고 예언하였는데, 당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신 그 의인 곧 그리스도를 죽인 사실을 또한 지적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한 것을 또한 지적하였습니다.
그의 증언은 사실 여기서 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결론인 “회개하고 주를 믿으라.”는 말씀은 채 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말을 듣던 군중이 격분해서 돌을 들어서 치기를 시작한 까닭입니다. 이러한 군중 앞에서 이렇게 담대히 진리를 선포한 것은 실로 위대한 용기를 의미하며, 오직 이것은 성령과 권능으로 충만한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죄를 죄라고 분명히 지적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일찍이 선지자 나단이 죄를 지적하면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선지자 나단이 얼마나 용감하였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스데반은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서 담대히 죄를 책망하면서 복음을 전파한 분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그의 죽음을 주목하여 보십시다. 이렇게 스데반은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 최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4절 이하에는 그의 최후 죽음의 모습을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그런 암흑한 찰나에 그의 신령한 눈은 밝아져서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게 돌에 맞으면서 외쳤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증거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참된 신앙의 소유자인 증거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한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그의 영혼을 주님께 바치었습니다. 여기 믿는 자의 죽음의 깊은 뜻이 나타납니다. 곧 믿는 자들의 죽음은 그 영혼을 주님께 최후로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해서 그 영혼이 주님의 품 속에 안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영혼의 영원한 안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 일을 더 하였습니다. 돌에 맞으면서 그는 최후의 힘을 다 해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원수가 멸망케 하여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들어보세요.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그를 돌로 치는 자들의 모든 죄를 사하여 준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또 주님께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의 죄를 사하여 주신 그리스도의 모범을 그대로 본받아 실천하였습니다.
그는 선으로 악을 갚았으며, 사랑으로 미움을 정복한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의 소유자임을 나타내었습니다. 이렇게 그는 문자 그대로 주님의 골고다에서의 발자취를 그대로 답습한 성자요, 또 순교자입니다.
그리고 그의 인간으로서의 최후 결산을 주목하여 보십시다. 다시 오늘 본문에 돌아가서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의 최후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얼굴은 영혼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로 변하였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 예술가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인간은 누구나 일생을 통해서 그림 한 장은 다 그린다고 합니다. 그 그림은 자기의 그림이올시다. 자기 얼굴의 초상화올시다. 일생 사는 동안 그가 하는 행동, 그의 하는 말, 그가 쓰는 글, 그가 하는 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깊은 속에 잠깐 스쳐지나가는 모든 생각, 모든 감정,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까지도 다 합하여 자기의 초상화가 그려진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는 초상화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에 내 자신의 어떠한 초상화를 남기고 가려는가? 깊이 생각할 문제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유명한 성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성화 <그리스도의 성만찬>을 그릴 때에 그 성화에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얼굴의 모델을 얻기 위하여 사방으로 찾아다니며 구하다가 다행히 당시에 밀란(밀라노) 교회의 한 성가대원 가운데서 그 모델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그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 모델에 의지해서 그렸습니다. 그리고 여러 다른 제자들의 얼굴을 또한 여러 사람의 모델을 따라서 그리는 동안에 수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가룟 유다의 얼굴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역시 사방으로 찾아다니며 그 얼굴의 모델이 될 만한 이를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특별히 밀란 거리 가운데에 좋지 못한, 나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어두운 거리를 헤매이면서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을 하나 만났습니다. ‘아마 저 사람의 얼굴이 유다의 얼굴과 비슷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 사람을 돈을 주고 데려다 앉히고 유다의 얼굴을 그립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마주 앉으면서 그의 얼굴을 따라서 유다의 얼굴을 그리는 동안에 그는 문득 그 사람을 전에 어디서 본 듯한 생각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차차 자세히 그 사람의 과거를 물어보고 알아보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몇 해 전에 그리스도의 얼굴의 모델이 되었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서 어떻게 당신이 얼굴이 이렇게 변하였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머리를 숙이면서 솔직히 자기의 과거를 고백했다고 합니다. “사실 내가 몇 해 전까지는 참 기독청년으로서 성가대로 교회까지 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몇 해 전에 나는 큰 시험에 빠져서 아주 타락하여 버렸고, 아직까지도 타락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여 갑니까? 스데반과 같이 천사의 얼굴로 점점 변하여 갑니까? 혹은 이 청년처럼 유다의 얼굴로 변모가 됩니까? 사실 인간이 한 세상을 다 산 후에 오직 남길 것은 이 얼굴 하나뿐입니다. 천사의 얼굴입니까? 가룟 유다의 얼굴입니까? 어떤 얼굴을 남기렵니까? 스데반은 천사의 얼굴을 우리 전 인류에게 큰 유산으로 남긴 성자요, 순교자입니다.
그리고 이 스데반의 순교가 교회에 준 영향은 어떠한가?
스데반을 돌로 치는 군중 가운데 우리가 특별히 기억할 만한 청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장차 사도 바울이 될 사울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8절에,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곧 바울이라는 이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이 스데반의 그 순교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설교 가운데서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만일 스데반의 이런 기도와 죽음이 없었던들 아마 교회에는 바울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스데반의 이런 성스러운 순교의 죽음은 당시 그를 핍박하던 맹목적인 청년 사울에게 깊은 인상과 장차 회개의 준비가 되게 하였다고 하는 뜻입니다. 마틴 루터도 이와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죽은 스데반이 산 사울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자기는 죽었으나 죽음을 통해서 새 사람을 내세울 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 스데반의 순교가 있은 후에 예루살렘 전체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서 사도 외에는 믿는 사람들이 모두 사방으로 도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게 되어 복음은 불꽃같이 전 로마제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교부 터툴리안의 유명한 말과 같이 문자 그대로,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십시다. 스데반을 돌로 치는 사람들이 거짓 증인을 세워서 그를 정죄하고 거짓 선전으로 무리를 충동하였습니다. 모세와 하나님을 스데반이 모독했다고 했고,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한다고 거짓 선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돌로 그를 쳐서 죽였습니다. 이렇게 말하자면 거짓이 진리를 짓밟았습니다. 어두움의 세력이 빛을 꺼버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최후는 아닙니다. 이것은 다만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습니다. 거짓은 거짓으로, 진리는 진리로 결국은 드러나고야 말았습니다. 빛은 빛으로, 어두움은 어두움으로 역사는 판단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하는 모든 일에는 결국은 하나님의 판단이 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이 거짓과 어두움의 세력과 그 선전은 그치지 아니합니다. 오늘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 선전에 과히 신경을 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판단이 반드시 내립니다. 언제나 진리가 최후로 승리합니다. 허위와 죄악은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링컨은 일찍이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몇 사람은 혹 늘 속일 수 있으리라. 많은 사람도 일시는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을 항상 속일 수는 없다.”
사실은 언제나 사실로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진리는 반드시 이깁니다. 진리인 그리스도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참된 신앙을 가지면, 반드시 진리 안에서 승리합니다. 금생과 내생에 승리합니다. 역사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이 첫 순교자 스데반을 잠깐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그의 성령과 은혜와 권능과 지혜의 충만한 믿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믿음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주를 위해서 생명을 초개같이 버린 그 열심과 그 희생의 정신을 또한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 정신을 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원수의 죄까지 용서하여 주시는 그 사랑을 또한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 사랑을 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해서 우리도 스데반과 같이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승리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아버지의 충성된 종 스데반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그 얼굴을 분명히 바라보고 그 얼굴이 우리에게 말하여 주는 모든 은혜를 우리도 받아서 이 잠깐 되는 세상을 이러한 참된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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