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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13:20-28/ 날리는 낙엽 / 한경직 목사
2014-08-27 11:01:27   read : 17454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래시며 마른 검불을 따르시나이까”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욥기 13장 25절을 다시 봉독하였습니다.

한국의 가을은 아름답습니다. 하늘은 높고 시내는 맑으며 들에는 익은 곡식이 황금의 물결을 이룹니다. 가을의 화단은 국화의 향기로 사무치고, 산들은 붉은 단풍으로 단장이 됩니다. 아마 가을에 제일 많이 보이는 것은 떨어지는 나뭇잎 곧 단풍일 것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대자연계를 통하여 또한 변하는 절기를 통하여도 말씀하십니다. 푸른 하늘, 일월성신을 통하여 말씀하시며, 또는 공중에 나는 새, 들에 피는 백합을 통하여도 역시 말씀하십니다. 가을에는 떨어지는 나뭇잎 곧 날리는 낙엽을 통하여도 말씀하시는 줄 생각합니다.

여기 욥기 13장 25절에, “주께서 어찌하여 날리는 낙엽을 놀라게 하시나이까?” 욥이 말씀하였습니다. 욥은 그 큰 수난과 고독과 번민 중에서 날리는 낙엽을 통하여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날리는 낙엽’이란 ‘자신’ 곧 ‘인간’을 의미합니다. 그는 날리는 낙엽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곧 인간의 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은 어떠한가? 인간은 약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제약성을 본 것입니다. 낙엽에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무쇠 팔뚝이니 혹은 철권이니 쇠주먹이니 이런 말을 인간이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은 인간은 그 육체도 약합니다. 병도 잘 걸리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인간은 그 마음도 역시 약합니다. ‘철석 같은 의지’란 말을 쓰기는 하지만, 인간의 의지 역시 약합니다. 결심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심은 조석변(人心朝夕變)’이란 말도 있습니다. 성경에 “네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동양에도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 ‘초로인생(草露人生)’이란 말이 있습니다. 풀잎 위에 맺힌 이슬이 무슨 힘이 있을 것입니까?

그뿐 아닙니다. 욥은 인간을 하나의 날리는 낙엽으로 보았습니다. 바람에 불려 이리저리 펄펄 날리는 날아가는 낙엽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인간 생활의 불안정성을 여실히 표현합니다. 인간이란 약할 뿐만 아니라, 그 생활에 정함이 없습니다. 정처 없이 바람에 날려 다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도 인간을 ‘한 나그네’ 또는 ‘행인’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우리 동양에도 옛날부터 ‘인생여류(人生如流)’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또는 인간의 생활을 물 위에 떠다니는 부평초와 같이도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과거를 회상해 보면 이 말들이 얼마나 적절한 것인지를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은 낳기는 본래 한국에서 낳지만, 일찍이 만주와 북지(北支 중국 화북지역)로 전전하다가 다시 해방이 된 이후에 북한에 돌아왔고, 또는 공산당 때문에 38선을 넘어서 이 서울에 왔으며, 그 외 또는 6?25 사변 때문에 대전, 대구, 부산으로 헤매이다가 수복된 후에 다시 이 서울로 돌아온 분들이 많은 줄 생각합니다. 또 요새는 브라질이니, 알젠틴(아르헨티나)이니, 캐나다 또는 미국 등지로 이민 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역사의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한 번 큰 바람이 불면 낙엽이 사방으로 흩어져 어디 가는지 모르게 됩니다. 인간의 무상함, 인간의 순간성을 우리는 이 흩어지는 낙엽에서 또한 봅니다. 근래에도 인도 벵골만에는 큰 해일로 인해서 100만에 가까운 생명이 쓰러졌다는 비참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로 그제도 동래에서는 버스 사고로 근 30명의 생명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느니라” 성경은 선언합니다. 이 세상의 형적은 다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2장 15절에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니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지나가되,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풀과 같이 마르고 꽃과 같이 떨어지고 낙엽과 같이 흩어집니다.

옛날 로마제국의 영광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옛날 몽고제국의 권세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만리장성을 쌓던 진시황이 지금 어디 있으며, 전 유럽을 짓밟던 나폴레옹이 지금 어디 갔습니까? 다 낙엽같이 날려갔습니다. 수개월 전 백제 무령왕릉을 발견해서 많은 보물을 찾았다는 기사를 우리가 다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그 왕과 왕후가 쓰던 보물들은 남았는데,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육체의 형적조차도 찾을 수가 없더라고, 낙엽같이 날려간 것뿐입니다.

인간에 속하는 모든 것은 조만간 이렇게 날려가 버립니다. 그 권세도, 그 영광도, 그 돈도, 그 지위도, 그 이름도, 그 지식도, 그 청춘도 날려갑니다. 역사의 바람에 낙엽같이 날려가서 그 형적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날리는 낙엽이 주는 엄숙한 인생의 교훈입니다.

둘째는, 이렇게 날려가는 낙엽은 인생의 무상한 면에 엄숙한 교훈을 주는 동시에 또한 이 낙엽은 우리 인간들에게 삶의 교훈을 주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도 이 날리는 낙엽은 생생한 교훈을 줍니다.

이 낙엽들이 어떻게 살았던가? 봄에 잎이 핀 후에 가을에 떨어질 때까지 이 낙엽의 일생을 잠깐 회고하여 보세요. 첫째로 이 잎들은 봄에 잎들이 이렇게 핌으로 말미암아 나무는 말하자면 아름다운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잎들로 말미암아 나무는 봄과 여름에는 푸른 옷을 입고, 가을에는 황금 빛깔의 옷을 아름답게 입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나무는 사실 이 잎들이 공기 중에서 섭취하여 주는 탄소로 말미암아 장성하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잎이 없으면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이 잎들은 공기 중 탄산가스에서 탄소는 섭취해서 나무를 살리고 열매를 맺게 하며, 산소는 도로 공기에 내어 주어서 공기를 맑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과 짐승이 호흡에 꼭 필요한 산소를 공급하여 줍니다. 요샛말로 이렇게 나뭇잎들은 공해를 제거하여 주는 아주 필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도시에는 반드시 소위 그린벨트라고 녹지대를 두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잎이 무성함으로 나무는 좋은 그늘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새들은 와서 나뭇가지에 깃들이고, 뙤약볕에 길을 가던 행인들은 이 나무그늘 아래에 와서 평안히 쉴 수 있습니다. 이 나뭇잎들이 금수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혜택을 줍니까?

여러분, 이 날리는 낙엽들이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데에 대해서 얼마나 귀중한 교훈을 줍니까?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살므로, 내가 사는 사회와 내가 사는 나라를 이 나뭇잎처럼 아름답게 옷을 입힙니까? 내가 살므로 말미암아 이 사회가 좀더 아름다워집니까? 내가 사회 속에 살므로 내가 사는 사회와 교회를 장성하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합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각 방면에 공헌을 합니까? 내가 이 사회에 살므로 나뭇잎처럼 사방에 공기를 맑게 합니까? 새롭게 합니까? 깨끗하게 합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이 사회에 살므로 말미암아 짐승과 사람들에게 혜택을 줍니까? 우편 그늘이 됩니까? 내가 이 도시에 살므로 말미암아 피곤한 인생길에 지친 영혼들이 안식과 새 생명을 얻습니까? 날리는 낙엽은 우리 인간들에게 이러한 귀한 생의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최후에 한 가지 더 아주 귀한 교훈을 남깁니다. 그것은 낙엽은 떨어질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황금빛의 단풍으로 변합니다. 가장 빛나는 영광을 조물주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보배로운 산 교훈입니까? 그러므로 동양의 지혜를 다 모아놓았다고 하는 <채근담>이라고 하는 책에도 사람을 보는 데는 그 후반생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란 그 최후를 바로 마쳐야 된다는 뜻입니다. 동양의 옛글에도 ‘인지장사에 기언야선(人之將死 其言也善)’이란 말이 있습니다. 죽음에 가까이 이를수록 그 마음과 말이 착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하기 얼마 전에 기록하기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인생의 마침입니까? 스데반은 순교 직전에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로 변하였고, 그의 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서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자기를 돌로 친 이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죽음입니까? 떨어지는 단풍의 미와 영광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기억할 것은 성경은 나뭇잎을 통해서 인간에게 교훈을 주실 때에 이 날리는 낙엽만을 보여준 것은 아닙니다.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 마르지 아니한 잎사귀도 보여집니다.

시편 92편 12절 이하에,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라 여호와의 집에 심기었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기에서 항상 빛이 청청한 잎사귀도 보여주십니다.

에스겔 47장 12절에는 에스겔이 본 환상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여기에 시들지 아니하는 잎을 또한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도 거의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시들지 아니하고 만물을 소성케 하기 위하여 영원히 푸른 생명나무의 잎을 또한 보여줍니다.

인생의 일면은 날려가는 낙엽이올시다. 그러나 다른 면이 있습니다. 시들지 않는 잎사귀의 면이 또한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15절에는,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기에 날리는 낙엽의 인간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들어보세요. “그러나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릅니다. 여기에 시들지 않는 잎사귀의 면이 또한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선포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사는 이는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주님은 다짐한 것입니다.

영원히 시들지 아니하는 나뭇잎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시들지 아니하는 생명나무의 잎들입니다. 가을은 조용히 생각하고, 우주와 인생과 역사의 깊은 진리를 깨달을 때입니다. 일시일시 변하는 국제정세에 대해서도 과히 신경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역사의 물결은 항상 흔들립니다. 앞으로 가다가도 뒤로 물러설 때도 있습니다. 동해 바다의 물결은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금강산의 일만 이천 봉은 고금이 일반입니다. 만세반석이신 그리스도는 변치 아니하십니다. 진리는 변치 아니합니다. 최후의 승리는 언제나 진리와 정의와 자유의 편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어 보세요. 거기에 보면 흉악한 짐승들과 붉은 용이 나타나서 어린 양과 싸웁니다. 그러나 결국은 이것들은 다 망하고, 오직 어린 양이 최후의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에게 나와서 내 자신이 먼저 영원한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의 서신 곳에 나도 같이 서서 일하고 용감히 싸워야 합니다. 진리, 정의, 사랑의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아멘” 기도하십시다.

자비하신 아버지의 은혜를 입어 저희들이 이 시간 이 거룩한 집에 와서 날리는 낙엽을 통해서 주시는 거룩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일면은 날리는 낙엽 같아서 무상하고 안정이 없고 언제 무슨 일을 당할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간의 생활을 가지나 또는 낙엽과 같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의 사명을 다해야 될 이 교훈도 저희들이 받았습니다. 인간이 비록 날리는 낙엽 같으나 또한 시들지 않은 영원한 생명나무의 잎이 되어야 할 것도 저희들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시여, 듣는 자만 되지 말고 이 진리에 든든히 서서 용감히 살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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