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4:7-16/ 사랑의 의무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59:59 read : 17224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일서는 주님의 제자 사도 요한의 글입니다. 사도 요한은 고령에 이르기까지 에베소에서 목회를 한 사도로서, 이 서신은 그가 매우 연로하던 때에 당시 여러 신도들, 특별히 새로이 일어나는 새 세대, 젊은 교인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은 당시 교인들을 부를 때에 흔히 ‘사랑하는 자들아’ 혹은 ‘소자들아’ 이런 말로 부른 것입니다. 모두 그의 사랑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또 늙은 사도로서 젊은이들에게 그의 애정을 표현하는 말들입니다. 그는 여러 신자들을 생각할 때마다 오직 사랑이 그의 마음에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믿는 여러 교우들을 생각할 때마다 오직 우리 마음 속에 사랑이 가득하다고 한다면, 그는 과연 참된 하나님의 성도일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충만한 노사도 요한이 당시의 여러 교회들을 향해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권면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특별히 서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 사이에 형제애,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시간, 이 노사도의 교훈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하나하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일 먼저, 우리가 이 말씀 가운데서 주의하고 주목해 기억해야 될 것은, 여기에서 사도 요한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나님은 사랑이신 것을 선언하고 있는 점입니다. 과연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이 우주와 인간을 지으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의 대상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우주와 인간을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인간을 지으시되 자유 의지의 소유자로 창조하셨습니다. 자유 의지의 사랑이 아니면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자유 의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들로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인간이 우주 안에서 또한 살 수 있을 만큼 모든 준비를 하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과 자연계의 삼라만상과 공기와 물과 오곡백과를 주신 것입니다. 아름다운 봄 동산에 웃는 꽃들과 새의 노래 속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가을 국화의 훈향(薰香)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풍기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우리 인간이 자유 의지를 바로 사용하지 못하므로 선보다도 악을 택하였고, 순종보다도 불순종을 택함으로 말미암아서 타락하게 되었고,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 같은 타락된 인간을 그저 버려두실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그 몸을 희생해서 화목제가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초점이올시다. 이 사랑을 생각하시면서 노사도 요한은 다시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과연 그러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입어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가 피차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의무를 피차에 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노사도 요한은 우리는 이렇게 다 사랑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을 지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가 또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십니다. 신자가 되는 것은 우연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깊은 의미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들은 하나님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우리도 그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을 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증거요, 또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표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도 요한은 거듭해서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피차에 사랑의 의무를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 주님도 친히 요한복음 13장 34절과 3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에, 우리 믿는 이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 믿는 이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주님의 어느 교훈인들 귀하지 아니하리오마는, 이 계명은 특별히 우리 주님이 죽으시기 전날 밤에 주신 가장 엄숙한 유언과 같은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제자가 사실 되었다면 반드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랑의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로, 사도 요한은 또한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다시 말하면, 과거 어느 때나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씀이올시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 충만한 교회를 통하여 세상이 하나님을 볼 수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서로 사랑하므로 화평하고 하나가 된 교회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사실 교회마다 이렇게 사랑이 충만하여 이 어두운 세상에 사랑의 빛을, 곧 하나님을 나타낼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영락교회는 이러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13장을 읽어 보면, 거기에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도 우양이 많아졌고, 그 조카 롯도 우양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되니 아브라함의 목자와 조카 롯의 목자들이 목장 때문에 서로 싸움을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롯을 불러 하는 말이,
“우리는 골육지간인데 싸움하면 안 돼. 싸우지 말자.” 그리고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또 이 땅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도 있다는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과 롯이 서로 다투지 아니할 이유가 두 가지가 있는 것을 지적합니다. 하나는 골육지간에 싸울 수가 없고, 또 하나는 외인들 앞에서 하나님의 선민들이 서로 싸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믿는 이들이 서로 사랑하여 다투지 아니해야 될 이유는, 우리가 다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될 뿐더러, 골육지친이 되었을 뿐더러, 이유가 한 가지 또 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는 아직도 안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원수들이 우리의 교회를 주목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피차에 사랑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 주신 큰 사명, 가장 위대한 사명, 곧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는 주님의 명령을 생각할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고 단결해야 할 것입니다. 전쟁에 대한 시 가운데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러한 글귀가 있습니다. ‘천시가 불여지리요, 지리가 불여인화니라(天時不如地理 地理不如人和).’ 그 무슨 말인가 하면, ‘싸움을 할 때에 천시(天時), 좋은 기회가 지리(地理)만 같지 못하고, 좋은 지형만 같지 못하고, 또 아무리 좋은 지형에서 싸운다 할지라도 제일 귀한 것은 인화(人和), 모든 군인들이 화평해서 단결하는 것만 못하다.’는 그 말입니다. 전쟁에 제일 귀한 것은 천시보다도, 지리보다도, 인화라는 말입니다.
전도는 말하자면 신령한 전쟁입니다. 마귀의 나라와 싸움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전국복음화운동이니 북한선교운동이니 전군신자화운동이니 혹은 세계복음화운동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믿는 사람의 인화입니다. 사랑하고, 화평하고, 단결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화목하며 단결할 때에 우리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서로 사랑할 의무를 지니고 삽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다 한 곳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곧 하나님이 계신 나라를 향해서 날마다 걸어갑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뵙고, 친히 뵙고, 사랑의 나라에 같이 들어갈 준비를 하는 우리로서 가장 먼저 할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서로 사랑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 생활에 있어서 피차에 사랑하기를 꼭 배워야 합니다.
사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권면을 한 사도 요한도 처음부터 그러한 사랑의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을 준 것을 보면, 아마 그의 근본 성질은 매우 과격하였던 모양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한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가실 때 하루 저녁 어떤 동네에 가서 자기를 청할 때에 그 동네가 거절했습니다. “이런 동네에 하늘로써 불을 내려서 멸망을 시킵시다.” 먼저 말한 사람이 요한입니다. 그러나 그렇던 이가 그리스도와 오래 동행하는 가운데서 그리스도에게 사랑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엔 사랑의 사도로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받아서 났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날마다 사랑의 주님과 동행하며 사랑을 배워서 서로 사랑하며, 사랑 가운데서 장성하며,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사랑은 인력과 같습니다. 이 지구의 인력이 있다 그래요, 끄는 힘. 인력과 같습니다. 이 우주에는 인력이 있어서 질서가 유지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셨어요? 생각해 보세요. 인력이 있기에 질서가 유지됩니다. 이 지구를 하나로 묶어서 질서가 있게 하고, 인간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이 지구에 인력이 있는 까닭입니다. 이 인력이 잠시라도 없어진다고 하면, 지구 위의 모든 것은 사방으로 이 넓은 공간에 흩어지고 말겁니다. 곧 온 우주가 혼란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의 인력이 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이 사랑의 인력이 교회를 하나로 만들고, 모든 역사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의 인력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교회를 하나로 만듭니다.
사랑은 햇볕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빛깔이라도 햇볕이 없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리 다른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면 그 은혜는 쓸데없게 됩니다.
사랑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랑은 최고의 은혜요, 제일 좋은 길입니다. 과거의 모든 위대한 성도들이 다 사랑 중심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러했고, 베드로가 그러했고, 사도 요한이 그러했고, 모든 사도들이 그러했고, 역사를 통해서 세기를 통하여 모든 참된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들의 생활이 언제나 사랑 중심의 생활이었습니다.
아마 우리가 사는 이 20세기에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의 이름을 대라고 하면, 아마 두 사람의 이름을 먼저 꼽을 겁니다. 독일의 슈바이처 박사와 일본의 가가와 목사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다 신앙생활을 하되, 사랑을 중심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 사랑은 무엇일까? 성경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이제 들어보세요.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참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은 온유하며” 온유한 것이 사랑입니다.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특별히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기억하세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렇게 사랑의 생활을 할 의무를 우리는 지니고 있습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우리 주님의 성스러운 사도 요한의 귀한 음성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께 속한 자마다 서로 사랑한다고 하는 귀한 음성을 저희들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랑의 의무를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우리 하나하나가 이 은혜를 받아서 그저 우리 영락교회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이 크신 축복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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