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3:1-9/ 하나님의 동역자들 / 한경직 목사 2014-08-26 21:07:45 read : 13513
오늘 저녁 숭전대학교 제46회 졸업예배를 본 교회에서 드리게 됨을 먼저 감사합니다.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고린도전서 3장 9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오늘 읽은 이 성경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옛날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 한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이 일찍이 고린도에 가서 약 1년 6개월을 유하면서 전도하는 중에 많은 사람이 믿어서 상당히 큰 교회가 그 상업도시 고린도에 설립되었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다른 지방에 전도하기 위해서 그곳을 떠나 에베소에 왔습니다. 그곳에서 아볼로라고 하는 이를 만났는데, 이분은 본래 구약성경도 잘 알고, 또한 가르치는 재주가 있어서 그분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더 자세히 가르쳐 준 후에 그를 고린도에 보냈습니다. 그 목적은 물론 새로 믿는 고린도 교인들은 잘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얼마 후에 고린도 교인 가운데 파당이 생겨서 서로 분쟁하여 특별히 한 파는 스스로 바울파라 바울에게 속한다, 이렇게 말을 하게 되었고, 다른 한 파는 우리는 아볼로에게 속하는 아볼로 파라고 하는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듣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는 중에 오늘 우리가 읽은 이런 말씀을 또한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한 동산에 비유해서 말씀하면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그 후에 물을 주었으나 사실 그 동산을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이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 바울이든지 아볼로든지 하나님의 동산 혹은 하나님의 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인데, 우리 일꾼들끼리도 서로 협동하고 또 우리는 다 하나님과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인 것을 여기에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지금 이 시간, 특별히 이 말씀 ‘하나님의 동역자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는 이 진리를 잠깐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앉은 졸업생 제군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동산에 일하러 나가는 일꾼들입니다.
흔히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큰 동산이올시다. 이 동산은 아직까지 황폐한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황폐한 산도 많고, 황폐한 강변도 많고, 황폐한 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아직도 황폐한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 황폐한 강산이 일꾼을 부르고 있습니다.
바울과 같이 나무를 심고 모든 것을 개척하는 일꾼들도 필요합니다. 또는 아볼로와 같이 물을 주는, 곧 이미 시작한 여러 가지 사업, 여러 가지 기관, 여러 가지 방면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확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선한 일꾼들도 부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과 같은 창의적인 일꾼도 필요하고, 아볼로와 같은 이미 시작한 일들을 잘 육성하며 발전시켜서 이 동산에 각 방면의 꽃을 피우고 향기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지혜로운 건실한 일꾼들이 또한 필요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강산은 선한 일꾼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하나는 이 동산에 가서 일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이 동산에 보낸 일꾼이라는 이 사명의식을 먼저 분명히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여기 특별히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하는 사실을 또한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다 한 동산에서 일하는 일꾼이지만, 다 똑같은 일들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다 각각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과 또한 전공한 방면에 따라서 일할 것입니다. 각각 다른 경우의 일을 하나, 우리는 다 한 동산에서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서로 동역자들인 것을 기억하고, 피차에 돕고 협력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하지만 혼자서는 큰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서양 속담에 아무리 위대한 음악가라도 혼자서 코러스는, 합창은 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집 하나를 지어도 혼자는 지을 수가 없습니다. 설계자가 따로 있고, 벽돌 쌓는 이가 따로 있고, 시멘트를 섞어 놓는 이가 따로 있으며, 작은 부문에까지 다 다른 일꾼이 요구됩니다. 이 여러 일꾼들이 각각 자기의 재능을 따라 성실한 일을 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건물이 완성됩니다.
여러분은 이 한국이라는 큰 집을 짓는 일꾼들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혼자서는 이 큰 집을 바로 지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 일꾼들이 각각 천부의 재능과 배운 바 지식과 기술에 따라서 성실히 자기가 맡은 부문을 꼭 바로 감당할 때에 이 한국이라는 큰 집을 옳게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일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일들도 똑같이 소중한 것을 알아서 피차에 존경하며, 피차에 도우며, 협력할 때에 우리의 공통된 목적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피차에 동역자라는 것을 또한 기억하고, 어디서든지 겸손히 또 성실히 피차에 협동할 줄 아는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셋째로,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이렇게 동역자가 될 뿐만 아니라, 위로 하나님과의 동역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꽃동산을 가꾸는 것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든 농사가 다 그러합니다. 사람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또한 김을 맵니다. 그러나 싹이 나고 곡식이 자라고 열매가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 하나님의 협동과 축복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햇빛이 필요하고, 비와 이슬이 필요하며, 자라게 하는 생명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농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의사가 환자를 앞에 놓고 병을 치료하는 것도 조금 깊이 생각하여 보면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의사가 물론 약을 먹입니다. 수술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 환자의 몸이 튼튼해지며 수술한 상처가 회복되게 되는 것은 실상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저 의사는 좀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의사들도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병을 치료하는 것뿐만 아닙니다. 무슨 사업을 경영하거나 나라를 건설하거나 하는 큰일들도 조금만 깊이 생각하여 보면, 모두 하나님과 동역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127편 1절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서양 속담에 ‘싸움은 사람이 하나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우리 동양에서도 내려오는 말이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나’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으나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 일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합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에만 성공할 수도 있고, 승리를 거둘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힘만으로 미치지 못하는 영역, 미치지 못하는 차원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미리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쓸데없는 과대망상증을 가지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일꾼으로서 꼭 기억해야 될 사실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거기에 순종하여야 소기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역천자(逆天者)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하늘을 거스르는 자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순천자(順天者)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순하는 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아는 옛글에도 ‘역천자는 망하고 오직 순천자는 흥한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이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가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또한 몇 가지 기억할 것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자연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날까? 그것은 과학자들이 다 미리 잘 찾아냅니다. 그것은 자연법칙을 통해서 물질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자연을 상대하여 무엇을 할 때에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 제작자가 비행기를 제작할 때 이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제작하면 그 비행기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법칙을 무시하면 결국은 그 손해는 내가 받을 것입니다.
몇 해 전, 서울의 와우 아파트가 갑자기 무너져서 많은 생명이 희생된 것을 우리는 지금도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아파트가 왜 무너졌던가? 한마디로 말해서 그 집을 지은 이들이 하나님의 뜻인 자연법칙을 무시하고 그 집을 지었습니다. 시멘트와 모래와 물이 합해서 돌이 되는 데는 일정한 자연법칙이 있습니다. 일정한 배합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 법칙을 무시하고, 기둥을 만들고 벽을 만든 결과 그러한 참화를 가져오고야 말았습니다.
금년 들어서 구미단지에 큰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한 방직 공장이 화재로 인해서 백 수십 억의 손해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그 화재의 원인을 저는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하여간 전기 기술자이든가 혹은 다른 어떤 책임자이든가 누군가가 그 집을 지을 때에, 혹은 그 집을 운영할 때에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한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연계에 있어서는 자연법칙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고, 거기에 순종하면서 무슨 일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연계를 상대하여 무엇을 하든지 자연법칙을 성실히 지켜야 합니다. 자연은 진실합니다. 자연법칙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나를 속이는 것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뜻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인간 상호관계에 있어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도덕의 법칙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요새 어떤 사람들은 도덕의 법칙을 부인합니다. 부인하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기가 스스로 속이는 것밖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은 자연계에 있어서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인간사회에 있어서나 공통된 법칙입니다. 자연법칙을 무시하여 집을 지을 때에는 그 집이 결국 무너지는 것과 같이, 도덕의 법칙을 무시하고 우리의 삶의 집을 지을 때에는 우리의 삶의 집도 결국은 와우 아파트처럼 무너질 때가 올 것을 미리 알아야 합니다. 일시는 무너지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무너질 때가 반드시 옵니다.
이 도덕의 법칙을 어디서 찾는가? 우리는 먼저 우리의 양심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양심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새겨 있는 하나님의 법이올시다. 먼저 양심에서 찾아야 합니다. 언제나 양심을 거슬리지 아니하고 우리가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양심적인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혹 어떤 때는 불행하게도 우리 양심까지도 화인을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타락한 인간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새로운 계시를 주는 것입니다. 계시로써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10가지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산상보훈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이 도덕의 법칙을 분명히 그의 교훈과 생활을 통하여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훈과 생활에서 그 어디에서보다 도덕의 법칙을 분명히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하나님의 뜻을 옳게 찾아서 하나님과의 선한 양심적인 동역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모든 인간 사회에 있어서, 정치나 경제나 사회나 문화나 모든 건설에 있어서 바로 건설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히 여기는 선한 일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드리는 것은, 우리 인간은 결국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받아서 이 세상에 왔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그 사명을 다 마친 후에는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가 오는 것입니다.
여기 앉은 졸업생 여러분, 다 참 새파란 청년들입니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여러분들도 오래지 않아서 여기서 말하는 70 넘은 늙은이들이 될 때가 옵니다. 그렇게 된 다음 마지막에 어떻게 됩니까? 그다음엔 죽습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서 내 일생에 한 일에 대해서 최후 심판을 받게 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맙시다. 분명히 알고 살아야 옳게 삽니다. 내 사명을 바로 찾아서 선한 일꾼이 되어야 하며, 모든 다른 인간들과 협동할 줄 알아서 그 사명을 바로 감당해야 하고, 하나님과의 동역자임을 깨달아서 그 뜻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최후에 무엇을 이루었든지, 내 삶과 일을 통해서 무엇을 하였든지 그 영광을 다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내게 돌려서는 안 됩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모두 하나님이 주신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머리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손과 발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자료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법칙에 의지해서 우리가 무엇을 한 것뿐입니다. 곧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일생을 통해서 무엇을 하였든지 그 최후의 최고의 목표는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하나는 참으로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어서 이 하나님의 동산인 이 나라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자유와 번영과 평화가 있는 살 만한 동산으로 건설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졸업생 제군은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동역자는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는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동역자는 협동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동역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인간의 생이 비록 짧다고 하지만 보람 있는 생이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여, 오늘 저녁에 감사와 찬송을 영원히 아버지께 드리옵나이다. 일찍이 이 학교를 세워 주시고 험난한 이 역사의 풍파 속에서 다시 이 남한에서 재건해 주시고 오늘 이 46회째의 졸업생을 우리 일터에 내어 보냄을 생각할 때에 무엇으로 다 감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들을 우리가 내어 보내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들 하나하나가 우리 이 강산을 재건할 만한 선한 하나님의 동역자인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하나의 마음 속에 경건한 신앙을 주시고 온전한 헌신을 주시고 분명한 사명감을 주시고 일생토록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주님을 따르는 귀한 일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의 앞길을, 비록 이 세상 험악하나 하나님께서 같이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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