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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1:25-30/ 삶과 그 짐들 / 한경직 목사 2014-08-26 14:03:44 read : 16128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마태복음 11장 28절을 다시 봉독하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갈라디아서 6장에서 두어 절 제가 읽을 때에 듣기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6장 2절의 말씀입니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니라” 6장 5절의 말씀입니다.
이상 세 성경 구절에 모두 ‘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짐, 인간의 삶에는 늘 짐이 따릅니다. 여행을 해보면 사람만 비행기를 타는 것이 아닙니다. 짐이 역시 따라갑니다. 우리 가운데는 38선을 넘은 이들도 여러분이 계십니다.
38선을 넘을 때에도 여러분 자신들만 넘은 것이 아닙니다. 짐도 한두 개씩 가지고 넘으신 줄 생각합니다. 6?25때에 피난 가는 이들을 보니 역시 무거운 짐들을 등에 지고 허둥지둥 한강을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인생행로를 걷는 나그네들은 모두 짐을 지고 갑니다. 때로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갑니다. 이 시간 인간의 삶과 그 짐들에 관한 성경의 교훈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먼저, 갈라디아서 6장 5절에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뿐이니라” 하였습니다.
각각 자기가 질 짐들이 있습니다. 남에게 전가할 수 없는 꼭 자기가 져야 할 짐들이 있습니다. 일선에 나가는 군인은 누구나 각각 자기 짐을 지고 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각각 내가 꼭 져야 할 책임, 혹은 의무가 있습니다.
부모는 부모로서 자녀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바로 기르고 가르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 짐을 바로 져야 합니다. 그 짐을 남에게 전가하여서는 아니됩니다. 고아원 같은 기관이 있지만 이런 기관은 부모가 없는 고아들만을 위한 것입니다.
또한 자녀로서 꼭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여서는 아니됩니다. 경로원 같은 기관이 있으나 이곳은 자녀 없는 노인들을 위한 기관입니다. 요사이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효의 사상을 강조하는 것도 자녀로서 마땅히 져야 할 짐을 지라는 뜻입니다.
교사는 교사로서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마땅히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공무원은 공무원으로서 져야 할 짐이 있고, 국민은 국민으로서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교역자는 교역자로서, 장로는 장로로서, 권사는 권사로서, 집사는 집사로서, 교인은 교인으로서 반드시 져야 할 짐이 각각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야 교회는 성장하고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사업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나라에 대하여서도 옛날부터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란 말이 있습니다.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책임을 바로 하고, 신하는 신하의 책임을 바로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직분을 바로 하고, 아들은 아들의 의무를 바로 할 때에 그 나라는 잘된다는 말입니다. 요사이 충효사상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각각 도의적인 책임도 질 줄을 알아야 합니다. 전에 아담이 자기가 죄를 범하고도 하와 때문이라고 핑계를 하였습니다. 또 하와는 자기가 죄를 범하고도 뱀이 유혹한 때문이라고 핑계를 하였습니다.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도 질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핑계하지 마십시다. 우리는 특별히 모든 믿는 이들은 우선 각각 자기의 짐을 질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강한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그렇고, 사회에 나가서도 역시 그러합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6장 2절에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하였습니다.
둘째는 짐을 서로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서로 져야 할 짐들이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1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가르칩니다.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짐을 같이 져 주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짐을 져 주어야 합니다. 또 인간들은 누구나 강한 데가 있는 동시에 약한 데가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강하나 경제적으로 약할 수가 있습니다. 지적으로 강하나 육체적으로 약할 수가 있습니다. 전에 나아만처럼 한 나라의 장관이지만, 몸에 문둥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짐을 서로 져 주어야 다 같이 살 수가 있습니다.
또 인간은 강할 때도 있으나 약할 때도 있습니다. 건강할 때도 있으나 병들 때도 있습니다. 늘 사업이 잘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패를 당할 때도 있습니다. 늘 권세의 자리에 있을 것도 아닙니다. 실각할 때도 옵니다. 사실 내 자신이 언제 약하여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서로 도와야, 서로 짐을 져 주어야 어느 때나 다 같이 서로 잘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2장 4절은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라”고 권합니다. 로마서 12장 15절에는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있는 자는 없는 자의 짐을, 아는 자는 모르는 자들의 짐을, 건강한 자는 병든 자들의 짐을 서로 질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가 성장하고, 이러한 교회만이 온 민족을 복음화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모든 방면의 짐을 서로 질 줄 아는 민족과 국가가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명랑하여집니다. 축복을 받습니다. 또 이러한 사회만이 사실 공산당을 철저히 막아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만민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법대로 살아가는 데 우리 사회에서 솔선수범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마땅히 벗어놓아야 할 짐들이 또한 많습니다. 벗어놓아야 할 짐.
이미 말한 대로 우리 인간에게는 각각 자기가 질 짐들이 있고, 또 서로 져 주어야 할 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반드시 벗어놓아야 할 짐들이 또한 많이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이 넓은 인생길에는 힘에 넘치는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근심과 염려의 무거운 짐, 환난과 고통의 짐, 불안과 공포의 짐들, 낙망과 실의의 짐을 지고 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특별히 청년들 가운데는 번민과 갈등의 짐들, 유혹과 시험의 짐들을 무겁게 진 이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허무감, 고독감, 좌절감 등의 무거운 짐을 진 중년층이나 노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두가 죄책감 곧 죄의식을 무겁게 지고 인생길을 허덕입니다.
그리하여 이 인생행로의 넓은 길에는 이 무거운 짐에 눌리고 지쳐서 쓰러지는 이들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어서 노이로제 또는 여러 가지 정신적 질환에 걸리는 이들도 많습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이 무거운 짐에 지쳐서 여러 가지 육체적 질병으로 또한 고통을 겪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렇게 무거운 짐에 눌려 허덕이는 이들이 적지 아니할까 염려됩니다.
여러분, 이 무거운 짐들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이 짐들은 하루 속히 빨리 벗어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인간들의 어깨에서 이 무거운 짐을 벗겨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오는 자마다 그의 무거운 짐을 벗겨 자기가 대신 지시고 인간들에게는 안식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권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편 22절을 읽어 보세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돌보시는 까닭이라고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속하는 모든 짐들은 주께 맡겨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래 믿는 이들 가운데도 이 무거운 짐들을 그냥 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상당히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래 전, 이북에서 숭실대학에 다닐 때 어떤 선교사가 와서 얘기하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를 합디다. 그분이 처음으로 미국에서 자동차를 사가지고 나왔습니다. 뭐, 그때에는 지금과 달랐습니다. 자동차가 평양에 도무지 몇 대 없을 때예요. 그런데 이 선교사가 처음 자동차를 하나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 자동차를 타고 한번은 촌길을 가는데, 어떤 노인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자기 앞에서 걸어가더랍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그분을 좀 도울 마음이 있어서 차를 멈추고, 그 노인 보고 이 자동차를 타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이 노인이 뒷자리에 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선교사는 앞자리에서 한참 운전해 가다가 한번 좀 돌아보니까 이 노인이 자동차에 앉긴 앉았는데, 짐은 그냥 지고 앉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 말이 “아, 여보, 왜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앉았습니까? 짐 내려놓으시오.” 그러니까 이 노인이 하는 말이 “제가 여기 타고 가는 것도 미안한 노릇인데, 어떻게 짐까지 실어다 달라고 하겠소.” 그리고 한참 가다가 자기가 내리겠다고 해서 자동차를 세웠는데, 내리다가 이 노인이 하는 말이 “아차, 내가 이거 신을 벗고 탔구만.” 하더랍니다. 자동차 탈 때 신을 또 벗고 탔다는 말이오. 벗어놓을 짐은 그냥 지고, 안 벗어도 좋을 신은 벗었단 말이오.
여러분, 천국에 가는 자동차를 타기는 탔지만, 무거운 짐은 아직 그냥 지고 가는 이들은 우리 가운데 없습니까? 짐까지 벗어 주님께 맡기고 평안히 가면 얼마나 좋습니끼? 비행기 여행을 할 때에 어떤 이들은 그 무거운 짐을 탈 때 다 맡기라고 할 때 맡겼으면 좋을 텐데, 맡기지 아니하고 무거운 짐을 객실까지 들고 들어와서 자기도 고생을 하고, 다른 여객들에게도 곤란케 하는 그런 손님들이 더러 있습니다. 여행할 줄 모르는 손님들입니다.
“너희 짐을 주께 맡겨 버리라” 모든 염려와 근심의 짐들, 불안과 공포의 짐들, 번민과 갈등의 짐들, 온갖 세상의 짐들은 주님께 맡겨 버리세요.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 모든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 때, 예수님께서 무리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요한이 예수를 가리키며 외치는 말씀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다른 짐들도 대신 지고 가시지만, 특별히 우리 인간의 죄의 짐을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여러분, 죄 짐을 다 벗어 주님께 맡겼습니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전에 지은 죄를 온전히 회개치 못하고, 남모르는 고통을 받는 이들은 없습니까? 아직도 죄책감에 눌려 사는 이들은 없습니까? 성경 말씀을 분명히 들으세요.
요한일서 1장 7절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실 죄를 회개하고 주를 믿으면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심령을 깨끗게 하여 주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을 또 한 번 들어보세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과거에 무슨 죄를 지었든지 참으로 회개하고 예수의 십자가를 믿으면 우리 죄는 사함 받고 우리의 심령은 깨끗하여집니다.
이사야 1장 18절을 들어보세요. “너희 죄가 비록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과 같이 희게 되리라” 이렇게 됩니다. 죄의 짐은 온전히 벗고, 경쾌한 몸으로 인생길을 달리십시다. 특별히 이 무더운 여름철에 모든 무거운 세상 짐은 벗어버리십시다.
신앙생활은 내가 질 짐을 꼭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은 짐을 서로 져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은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 주께 맡기고, 기쁨과 화평과 감사와 사랑의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저희들이 성경의 교훈을 이 시간 다시 한번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각각 질 짐이 있습니다. 이 짐을 잘 질 수 있는 힘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 서로 져 주어야 할 짐들이 있습니다. 서로 짐을 져 줄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마땅히 벗어놓아야 할 모든 세상에 관한 짐을, 죄의 짐을 온전히 벗어버려서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고 언제나 감사와 기쁨과 화평과 사랑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이 은혜를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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