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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2:1-9/ 너는 복이 될지라 / 한경직 목사
2014-08-26 13:57:30   read : 1738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 말씀은 약 4,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습니다. 놀랄만한 일은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다시 읽을 때에 이 말씀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신앙의 조상으로서 실로 창대케 되었습니다. 그의 자손을 통하여, 혈통으로는 그의 자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으로 실로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실로 아브라함은 그 신앙으로 그 자신이 복을 받았을 뿐더러, 모든 사람들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본문에 ‘복의 근원’이란 말은 해석이요 본문대로 번역하면 ‘너는 복이 될지라.’ 하는 말입니다. 사실 그는 이 말씀대로 만대 만민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 시간 잠깐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본토였던 갈대아 우르와 그 후에 살았던 하란은 미신과 죄악이 많던 곳입니다. 또 그 아비의 집에서도 우상을 섬겼다고 합니다. 곧 미신, 우상숭배, 온갖 죄악의 땅을 온전히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온갖 미신과 우상숭배와 죄악에서 온전히 떠남을 의미합니다. 지금 말로 하면 온전한 회개와 성결의 생활, 곧 새롭고 성결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참된 신자의 신앙생활도 이렇게 시작됩니다. 시작을 바로 하여야 합니다. 과거의 그릇된 생활을 온전히 청산하여야 합니다. 옛 생활에서 온전히 성별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결한 생활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본토를 떠난 아브라함은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곳에서도 한 곳에 정착하지는 아니하고,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 나그네의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하나님을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곧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며 가까이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육체의 주소는 시시로 변하였으나, 말하자면 그의 영적 주소는 변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같이 동거하였습니다.

지금 말로 바꾸면 그는 어디를 가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교회를 세우고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해서 어디를 가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며 또한 동사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신앙생활을 계속하는 가운데서 어디를 가나 성별과 성결의 생활을 유지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이야말로 오고 오는 모든 신자들에게도 모범이 됩니다. 현대인은 특별히 여행도 많이 하고 이사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옳게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은 어디를 가나 심령의 제단을 쌓으며 기도로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또한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또한 참 크리스천들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이 세상에 살기는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아니합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지는 아니합니다. 이 세상을 봉사하며 인도하기는 하지만 이 세상을 초월하는 신령한 순례자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이 그의 사회생활에, 곧 대인관계의 생활에 어떻게 반영이 되었는가 하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가령 아브라함이 그 조카 롯과 같이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살 때에 물질의 축복도 많이 받아서 아브라함의 우양과 육축도 많아졌고 롯의 가축도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목장을 두고 서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은 롯을 불러 말하기를 “너나 내나 네 목자나 내 목자나 서로 다투지 말자 우리는 서로 한 골육이다 네가 우로 가면 나는 좌로 가겠고 네가 좌로 가면 나는 우로 가겠다.” 이렇게 분쟁을 해결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물질 문제에 있어서 양보하면서 어떻든지 화평을 귀중히 여겼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는 대로 그때에 롯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푸른 풀이 많은 소돔과 고모라 들판으로 양들과 모든 가축을 데리고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그 근처에 살다가 마지막에는 소돔 성에까지 들어가서 그들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 지경에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북방의 왕들이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의 왕들을 공격합니다. 그때에 소돔이 그만 함락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어서 많은 포로들과 같이 불행하게도 롯과 그 가족도 북방 나라 왕들에게 포로가 되었습니다. 재산은 전부 약탈당하였습니다. 그래서 멀리 북방 다메섹까지 적군에게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기가 기르고 배양하던 청년 318명을 데리고 다메섹까지 쫓아가 밤중에 기습으로 적군을 격파하고, 롯과 그 가족이며 모든 포로들과 재산까지 찾아가지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돌아오니 마침 살렘왕이요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이 그 부하들과 같이 나와서 아브라함을 영접하고, 그를 찬양하며 축복하여 줍니다. 아브라함은 그때에 자기가 얻은 전리품의 1/10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어 성경에 보면 십일조 법이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를 또한 영접하러 나온 소돔 왕이 먼저 말하기를, “그저 우리 사람들이나 다 내게 돌려주고 거기서 얻은 물질은 당신이 차지하세요.” 그렇게 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모든 재산을 소돔 왕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의리에 강하고 약한 이들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의리에 강하고 물질에 대해서는 담담하였습니다. 화평을 존중히 여기고 의리에 강하고 물질에는 담담한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은 또한 오고 오는 모든 신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는 줄 믿습니다.

넷째, 아브라함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시련은 물론 여러분 아시는 대로 그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은 때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대로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얻은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다 같이 너무 늙어서 인간으로서는 소망이 없을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 얻은 보배로운 아들이었습니다. 또 이 아들을 통해서 장차 그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리라는 약속의 아들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들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번제를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명령이야말로 실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문자 그대로, 요샛말로 큰 딜레마에, 진퇴양난의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때에도 하나님께 순복하여야 하는가? 순복하지 않을 수도 있는가? 하나님을 더 사랑할 것이냐, 혹은 아들을 더 사랑할 것이냐?

여러분 다 아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때에도 겸손히 순복하였습니다. 번제에 쓸 장작과 불을 준비해 가지고 아들과 같이 모리아 산을 향하여 걸어갔습니다. 모리아 산 아래에서 오직 자기 아들과 자기와 단 둘이 그 산을 올라갈 때에 그의 가슴은 실로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 아무것도 모르는 그 천진한 이삭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아버지, 번제에 쓸 나무와 불은 있는데 번제에 쓸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잠깐 생각해 보세요. 만일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대답하였을 것인가?

여러분, 아브라함의 대답을 기억하십니까? “아들아, 그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리라.” 여러분, 이것이 아브라함의 대답이었고 그의 신앙이었습니다. 어떻게 준비하실지는 모르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줄을 믿었습니다. 또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리해서 ‘여호와 이레’, 곧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말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여 나갈 때에 때로는 큰 시련이 옵니다. 큰 환난이나 사고, 혹은 중병이나 사업의 실패, 혹은 큰 슬픔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때에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도 아브라함과 같이 무조건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까?

욥과 같이 하나님을 그런 가운데서도 굳게 믿을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 38절과 39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우리도 선언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사도 바울의 신앙이요, 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신앙을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인간의 기대를 초월하는 엄청난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을 생각하며, “너는 복이 될지라” 이 말씀을 우리 마음 속 깊이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도 우리 자신이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복이 되게 하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여기 앉은 우리 믿는 이들은 많은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될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채널 곧 통로가 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도 복이 되어야 합니다.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믿는 가족 하나로 말미암아 온 가정이 복을 받게 되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믿는 학생은 그 학교에서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온 학교가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학생이 되세요. 우리 믿는 이들은 그 직장에서도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로 말미암아 온 회사, 공장, 혹은 관청이 복을 받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로 말미암아 온 사회와 국가가 복을 받아야 합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우리 사회와 국가에서 복이 되십시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복음 전파를 통해서, 온갖 사랑의 봉사를 통하여, 아니 우리 믿음의 향기를 통하여 무언중에 복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피어스 박사께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우리 영락교회와 한국에 있는 그의 많은 친구들을 대표해서 그 장례식에 참예하였습니다. 꽃에 묻힌 그의 유해 옆에 앉아서 각계각층의 조사(弔詞)들을 들으면서 나는 고요히 그의 일생을 잠깐 묵상하여 보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살 길을 얻은 그 수많은 한국의 고아들, 남편을 잃은 미망인, 그 자녀들, 환자들, 특별히 나환자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예수를 알게 된 많은 청년들, 또 그를 통하여 새 힘을 얻은 여러 교역자들, 이 여러 분들을 생각할 때에 나는 실로 너무 감격해서 감사의 눈물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실로 국경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 유해 옆에는 ‘한 사마리아 사람의 마지막 여행’ 이렇게 꽃으로 수놓아서 세워졌습니다. 그는 실로 많은 여행을 한 분입니다. 세계를 몇 십번이나 돌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는 가는 곳마다 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육적으로 복이 되었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분이 어떻게 이렇게 복의 근원이 되는 생활을 하였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분도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계대(繼代 대를 이음)한 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는 것이야말로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비결입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여러분 하나하나가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복이 되세요. 아브라함의 신앙을 계대하여 그 신앙을 본받아 어디서나 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아브라함의 신앙을 위해서 감사함을 드립니다. 오늘 여기 앉아서 아버지 앞에 나온 아버지의 사랑하는 자녀들 모두가 이 시간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서 내 스스로 복을 받을 뿐더러 복음의 원천이 되는 귀한 자녀들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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