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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9:1-14/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 한경직 목사
2014-08-26 10:43:54   read : 13928

오늘 아침 읽은 시편 19편은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절부터 6절까지는 대자연을 통하여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말씀에 대한 노래요, 7절로 11절까지는 율법을 통하여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노래입니다. 그리고 12절로 마지막 절까지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서 인간으로서의 자기 성찰과 기도가 있습니다.

이 시를 지은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 아래서 자기 자신을 살필 때에 자기의 허물과 죄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을 직감하면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습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이 시간 이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사실 자기 허물을 깨닫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얼굴은 직접 볼 수 없습니다. 남의 얼굴만 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말씀과 같이,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도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시편 40편 12절에는 “내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머리털을 세어본 이가 혹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머리털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우리 인간에게는 죄가 많다는 말입니다. 남은 다 아는데 내 자신은 모르는 허물과 죄가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남은 다 모르지만은 내 자신만 아는 허물과 죄도 또한 많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허물과 죄도 내게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은밀한 허물과 죄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나타납니다. 시편 90편 8절의 말씀과 같이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나이다” 그대로입니다.

에스겔 8장을 읽어 보면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작은 구멍이 있는 한 담을 보았습니다. 그 담을 헐라는 음성을 듣고 그대로 하니 한 문이 있었습니다. 그 문을 열고 보니 넓은 방이 있는데 여러 가지 더러운 버러지와 가증한 우상들이 사면 벽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70인이 그 앞에 서서 절을 하며 분향을 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겼으나 실상 그 마음 깊은 속에서는 여러 가지 우상을 섬기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은밀한 죄들이 그들에게 많았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밭에서 풀을 뽑아주다가 어떻게 큰 돌이 있어서 그 돌을 들춰 보면 그 아래에는 여러 가지 벌레들이 많은 것을 봅니다.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이러한 깨끗지 못한 벌레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보통 자기 허물과 죄를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저 저 잘난 재미에 산다고 하는 말도 있는 것입니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우리 허물을 깨닫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더러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 하나는 자기반성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40절을 읽어 보면 예레미야는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 자신의 행위를 조사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내 자신을 시험하여 보아야 합니다.

옛날 동양의 한 성현 가운데 자신은 매일 3번씩 자기 몸을 살펴본다고 말을 한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탕자의 비유를 자세히 읽어 보면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외지에서 탕진하고 또한 흉년이 들어 남의 집의 돼지를 치는 신세로 전락하였고, 또 돼지가 먹는 팥 껍질로도 허기를 채울 수 없게 되었을 때에 그는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품꾼도 먹을 것이 넉넉한데 나는 굶어 죽게 되었구나.’ 비로소 자기가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반성을 통해서, 그런 궁지에 빠지기 전에 자기반성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 것입니까? 인간은 종종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매일 반성이 필요합니다.

자기 허물을 깨닫는 또 하나의 길은 내 가족이나 혹은 가까운 친구의 충고를 듣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부모의 말씀을, 또 부모라도 때로는 자녀들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남편이면 아내의 충고를, 아내이면 남편의 충고를 들어야 합니다. 사랑의 충언을 저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또 가까운 친구의 충고를 들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바로 이 시편을 기록한 다윗과 선지자 나단의 이야기를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윗 왕이 그 권세를 크게 떨치고 또 좀 한가해진 다음에 그만 큰 정욕에 빠져서 간음과 살인의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곧 충신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보내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하고 그 아내 밧세바를 취한 것입니다. 이런 무서운 죄를 범하고도 그는 태연하였습니다. 선지자 나단의 이야기를 통한 충고를 받고야 통회 자복하였습니다.

여러분, 그 얘기 기억하시는 분 많은 줄 압니다. 어떤 동네에 한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소와 나귀와 양이 많았습니다. 그 한 동네에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아무 것도 없고 작은 암양새끼 하나밖에 없어서 이 암양새끼를 자기 자식인 양 길렀습니다.

그런데 이 큰 부잣집에 한번은 손님이 왔는데 이 부자가 자기의 많은 우양은 아깝다고 그냥 두고 이 가난한 농부의 암양새끼 하나를 뺏아다가 잡아서 자기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다윗이 대노해서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에 있을 수가 있는가? 그런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나단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그러면서 밧세바와의 관계를 얘기했습니다.

‘좋은 약이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롭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충성된 말이 귀에는 거슬리지만 우리 행실에는 매우 필요합니다. 충고를 귀담아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또 나를 반대하는 이들은 심지어 원수의 비난 가운데서도 이 점에 대하여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줄 압니다.

흔히 우리를 반대하는 이들 가운데는 물론 허위와 날조의 선전도 있고 침소봉대의 과장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말 가운데 혹 내 자신이 못 보는 허물을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반대한다고 미워만 하지 말고, 그런 이에게서도 내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국회에도 여당과 야당이 있고, 또 모두 필요합니다.

물론 내 얼굴을 자세히 살피고자 하면 거울을 보아야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점에 도와주시기 위해서 한 큰 거울을 주셨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그것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신령한 거울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내 자신의 허물과 죄를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장 12절에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느니라” 성경이 이런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항상 읽으므로 내 허물과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기도를 통해서 이 점에 대하여도 성령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기도는 독백이 아닙니다. 혼자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대화입니다. 우리의 사정을 아뢰는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성령의 지도를 소멸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성령을 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상과 같이 우리가 아무리 힘을 써도 이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은 우리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아는, 또 모르는 허물과 죄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항상 기억하고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은 금물입니다. 영적 교만에 사로잡히지 아니해야 합니다. 더욱이 나만 옳다는 독선주의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슴에 용납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허물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다른 이들이 내게 죄를 범하는 것을 용서해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점에 대해서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또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또 우리는 모든 다른 이들이 내 죄를 덮어주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이의 허물과 죄를 덮어주도록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삶의 황금률을 이점에 있어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사도 요한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 하니라” 요한일서 1장 8절 이하를 읽어 보세요.

우리가 죄가 없다고 하면 이것은 다만 스스로 속이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스스로 깨닫고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용서하여 주십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이 우리의 죄를 다 깨끗이 씻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겸손히 십자가를 붙들며 자백할 것뿐입니다. 그리고 다윗과 같이 우리도 항상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으로서 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기도하고 또 힘쓰는 이에게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이런 하나님의 축복이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는 이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다음 주일이 성례주일입니다. 이번 성례주일을 옳게 준비할 수 있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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