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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4:1-5/ 일꾼이 되라 / 한경직 목사 2014-08-25 20:03:33 read : 17534
이 부족하고 늙은 사람을 초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 이번 집회는 제가 듣는 대로는 이 강서구 안에 있는 모든 감리교회 임원들이 이렇게 모여서 수양회를 하게 되었는데, 이 장로교 목사도 초청해 주시니 또 감사합니다.
이제 성경 말씀 고린도전서 4장 찾으시면 감사하시겠습니다. 고전 4장 1절에서 5절까지 제가 봉독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내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여기 있는 성경 말씀의 내용을 잠깐 생각하겠습니다.
먼저 첫 절을 읽어 보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하는 그런 그 의식, 이것을 소명의식이라고 합니다. 그 소명의식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다 교회의 임원들인데, 교회의 임원들은 하나님께서 불러서 그 책임을 맡기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하나는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아서 그 자리에 계시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임원들은 무엇보다도 이 소명의식이 필요합니다. 소명의식은 자연히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일에 조심하게 만들고 또 소명의식 가운데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중퇴하지 아니합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때에 거기는 권위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시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임원이 된 사람은 누구든지 ‘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이 교회에 목사가 되었다. 장로가 되었다.’ 하는 이 소명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내 자신을 살펴보세요.
제가 몇 해 전에 교역자 수양회에서 이런 얘길 잠깐하고 제가 있는 방에 들어오니까 어떤 젊은 교역자가 찾아왔어요.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이 “지금 그 소명의식에 대해서 목사님께서 얘기를 했는데 내가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 자신을 살필 때에 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왜 그런가 하니 나는 목사인데 그런 소명의식이 분명치 않아요.”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소명의식이 분명치 않는 목사가 권위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 또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 견뎌낼 수 있겠는가? 성경을 보세요. 모든 선지자들,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 신앙이 있는 하나님의 제자들, 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그 자리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름을 받는 양식은 달라요. 사람마다 경험은 다소 달라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부르시든지 우리를 부르시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까지 불러서 맡겼으므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소명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또 여기 특별히 1절에 중요한 말씀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일꾼이라는 말은 일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노는 사람이란 말이 아닙니다. 노름꾼이란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우리 동양에서 내려오는 좋지 못한 사상 가운데 하나는 정신적 노동은 귀하지만은 육체적 노동은 천하다, 그래서 노동 같은 것은 천하다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반론이 상당히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변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일하는 일꾼입니다. 거리에서 거리를 떠도는 사람도 일꾼입니다. 또 회사에 앉아서 회사를 관리하는 사람도 일꾼이요, 학교, 교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도 일꾼이요, 교회의 목사도 일꾼이요, 장로도 일꾼이요, 권사도 일꾼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럼 여러분, 디모데후서 2장 15절을 찾아보세요. 여기에 어떤 일꾼이 되라고 하는 교훈이 더 자세히 있어요. 우리가 다 일꾼인데 부끄러운 일꾼이 될 수도 있어요. 또 부끄러움 없는 일꾼이 될 수도 있어요. 여기 성경에 보면 부끄러운 것이 없는 일꾼이 되라고 했어요.
물론 일하는 사람이 어떤 죄를 지으면 물론 부끄러운 일꾼이죠. 나라 일을 맡은 사람이 나라 일 바로 하지 못하면 부정부패가 드러나면 그건 부끄러운 나라의 일꾼이죠. 또 회사에서도 그렇고 어디나 그렇죠. 죄를 물론 안 지으면 부끄러운 일꾼이 되지 아니하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여기 말씀은 죄를 지어서 부끄러운 일꾼이 되지 말라는 뜻이 중요한 뜻은 아닌 줄로 압니다. 그 뜻도 물론 있지요. 죄를 지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부끄러운 일꾼이 되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부끄러운 일꾼이 되지 않으려면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판단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려는 것은 일꾼으로서 부끄러운 일꾼이 되지 말라는 그것이에요. 가령 예를 들면 오늘 여기에 자매님들이 많이 오셨는데 음식을 만드는 부인이 있다고 해요. 똑같은 쌀을 갖다 주고 고기를 사다 주고 생선을 갖다 주고 음식을 만들라고 그래요. 두 부인이 같은 재료를 가지고 두 부인이 음식을 만들어요. 한 부인은 그 음식을 가지고 밥도 잘하고 모든 음식을 잘해서 보기만 해도 먹음직하고 아주 맛있게 음식을 차려요. 똑같은 재료를 줬는데 다른 부인이 음식을 해 온걸 보니까 밥도 밥인지 죽인지 자세히 알 수 없고, 모든 음식을 해 왔는데, 이것은 보기엔 먹음직하지만 맛을 보니 아무 맛도 없던 거예요. 똑같은 사례예요. 여러분, 요리하면서 부인 하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었고, 그러나 다른 하나는 부끄러운 일꾼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씩 교회 일을 맡아서 교회에 봉사하는데도 2가지 정도의 일꾼이 있을 수 있어요. 내가 나를 판단하는 판단이 있어요. 이것은 흔히 자신의 판단, 양심의 판단을 받아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판단이 있어요. 그런데 3절에서 5절을 가만히 읽어 볼 것이면, “내가 너희한테 받는 판단은 내가 그렇게 꼭 중요치 않게 생각한다.” 그런 말씀이 여기 있어요.
여러분, 그리스도의 일꾼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다른 사람에게 받는 판단이 있습니다. 이것 아래에 가령 목사 하면 목사가 설교 한 마디 해도 판단 받습니다. 누구한테 판단 받는지 압니까? 교인들한테 판단 받습니다. 오늘 목사 설교 잘했다, 잘 못했다, 판단 받습니다. 목사만 그렇게 판단 받는 줄 압니까? 여기 권사님들 장로님들도 교인들한테 다 판단 받습니다. 아무 장로는 어떻게 교회일 한다, 아무 권사는 어떠하다, 다 판단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사람이니까 판단 가운데 판단하면 2가지인데 잘한다는 판단도 하고, 잘 못한다 하는 판단도 있는데, 잘한다 하는 판단을 받을 때에는 흔히 우리 맘이 좀 흐뭇해요. 칭찬 받으니까 흐뭇하단 말이오. 그러나 잘못한다 하는 판단 받을 때에는 매우 맘이 좋지 아니하고 어떨 땐 분한 맘도 나고, 자길 판단하는 그 사람을 미워하는 맘도 생기구요.
그러나 사도 바울이 판단을 많이 받았죠? 여러분 아시는 대로 자기를 판단하는 그 사람들에게 대해서 “나 그거 좋은 일로 생각한다.”고 그랬어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다 판단 받는데, 그 판단을 너무 중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에요. 물론 판단도 어떤 때는 옳은 판단도 있어요. 옳은 판단이 있으면 그 옳은 판단을 내가 받아야지요.
그러나 보통 다른 사람이 하는 판단은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런가 하니 다른 사람은 겉만 보고 속은 몰라요. 모르고 판단해요. 겉만 보고 판단합니다. 속은 잘 몰라요. 또 다른 사람은 판단할 때에 그 사람의 과거와 환경 같은 것을 모르고 판단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판단은 언제나 정확하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판단해서 칭찬한다고 너무 기뻐할 것 없어요. 또 나를 혹평한다고 해도 과히 섭섭히 생각하지 말아라, 그 말이에요. 사회적 판단에는 그래요. 언제나 정확하지는 못해요.
오히려 그보다 정확한 판단이 있어요. 그건 뭔고 하니 내가 나를 판단하는 거예요. 양심의 판단입니다. 우리 맘에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 가지고 내가 하는 일을 내가 교회 봉사를 어떻게 한다고 하는 것을 내 양심이 판단해 주어요. 이 판단은 다른 사람의 판단보다는 정확합니다. 왜? 우리의 양심은 우리의 속을 보거든요. 우리의 동기를 보거든요. 그러므로 우리가 양심의 가책을 받을 때, 양심의 판단을 받을 때 그건 우리가 소중히 생각을 해서 귀를 기울이는 것이 좋아요.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제한이 있어요. 양심도 어떤 때는 잘못되었을 때도 있거든요. 우리 속이 지나치면 고장날 때가 있다구요. 성경에 보면 심지어 ‘화인 맞은 양심’이라는 말까지 있어요. 양심이 비뚤어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어떤 사람이 말합디다.
세상에 제일 악한 사람은 양심이 악한 사람이라구요. 사람을 죽여도 잘한 줄로 알고 그런 양심 가진 사람이 있단 말입니다. 독재자의 양심들, 흔히 공산당의 양심들, 그러므로 양심의 판단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에요. 내 양심이 항상 옳다고 판단해도 그 판단이 항상 옳다고 주장해도 그것은 잘못된 것이에요.
정확한 판단이 어디 있느냐? 그건 하나님의 판단이란 말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말하는 것, 우리의 행동을 고요한 하나님의 눈이 내려다보고 계세요. 하나님이 판단하세요. 우리가 최후의 심판을 받을 때 다 알아요. 그러나 그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판단의 표준을 어디서 찾고, 이 세상에서도 이미 하나님의 판단을 받지 아니하도록 조심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돕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을 때 객관적으로 거기에 구체적으로 어느 것은 옳다, 어느 것은 그르다, 가르쳐 주고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항상 읽으면서 내 양심을 바로잡으면서 내가 하는 일을 조심해서 나아가야 한다 그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다 그리스도 일꾼인데, 우리는 그리스도 일꾼으로 판단 받아요. 안 받는 사람이 없어요. 판단 받는다고 너무 속상해할 필요 없어요. 다른 사람이 나를 비난한다고 분노할 것도 없어요. 내버려둬요. 칭찬한다고 너무 기뻐도 맙시다. 그 판단이 옳을지 몰라요. 그보다는 내 양심에 귀를 기울여서 내 하는 일을 판단하면서, 그 판단을 받으면서, 내 책임을 다하도록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의 판단을 기억하면서 고요한 하나님의 눈이 내 동기를 살피고 내 말을 들으시고, 내가 하는 일을 보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교회를 봉사할 때에 참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들이 되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참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게 애쓰는 그런 일꾼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일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축복하시고 그런 일꾼을 통해서 우리 온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경륜을 확실히 믿습니다.
우리가 다 부족하지만은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생각했는데 ‘어떠하든지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하는 이 소명감을 잊지 마세요. 소명의식을 항상 가지고, 그리고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 애써야겠습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배우고 생각하고 언제든지 겸손히. 기도합시다.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가 다 죄인들이요, 얼마나 죄가 많은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의 보혈로 저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저희들을 구원해 주실 뿐더러 특별히 택해서 귀한 하나님의 집에서 귀한 일꾼으로 불러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실로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하나를 불러 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그저 감사함을 드립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렇게 저희를 불러 주신 이상에는 참으로 저희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게 해 주시고, 일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고, 일하되 부끄러울 것이 없이 일할 수 있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았사오니 이 비밀에 대해서 이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서 이 책임을 다 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 일을 감당해 나갈 때에 항상 다른 일도 판단하고 항상 나 자신을 판단하고, 그러나 이 판단 받는 것 때문에 너무 고통 받게 하지 마시고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말게 해 주시고,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의 판단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아버지 앞에서 옳은 일꾼, 옳은 청지기들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이 강서구에 있는 모든 교회가 이번 기회에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아서 이 구 안에서 아직도 비밀을 모르는 동포들에게 가히 비밀을 전파하며 이 온 구가 복음화되는 축복을 어서 속히 내려주시옵소서. 오늘 저녁 은혜 받기 위해서 나온 아버지 자녀들의 머리 위에 성령으로 충만히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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