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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40:1-8/ 하나님의 말씀 / 한경직 목사 2014-08-25 20:00:57 read : 12286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이사야 40장 8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또 듣기만 하시면 좋겠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5절에 있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풀은 마릅니다. 꽃은 시드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여기에 선언합니다. 사실입니다. 또 우리 주님은 말세에 될 것을 말씀하시다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확언하십니다. 천지까지도 없어질 때가 온다고,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여기에 선포하십니다. 곧 진리는 영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 혹은 ‘내 말’ 곧 주님의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성경 가운데 있습니다. 이 성경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는 영영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인간의 역사를 잠깐 돌이켜 생각하면 실로 있다가 없어진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경상남도 합천 지방에서 공룡의 화석을 찾았다고 합니다. 인간이 이 땅에 살기 전 곧 역사 전 시대에 공룡 같은 것들, 큰 파충류가 이 땅에 많이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 없어졌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만들어 놓았던 큰 나라들도 없어진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앗수르니, 바벨론이니, 파사니, 헬라니, 로마제국 등, 굉장히 크고 강한 나라들도 지금은 다 없어졌습니다. 우리 동양에도 옛날 진나라니, 원나라니 곧 몽고제국 등 얼마나 크고 강한 나라들이 있었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 없어졌습니다.
민족도 그러합니다. 성경에 보면 옛날 가나안 땅에 여러 민족들이 살았습니다.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 등, 강한 족속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런 이름들을 더 듣지도 못합니다.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문명, 혹은 문화도 그렇습니다. 고대 나일강변에 일어났던 애굽 문명, 유프라테스 강변에 일어났던 바벨론 문명, 멕시코 혹은 중남미에 일어났던 잉카 문명 등도 지금은 다 사라졌습니다. 다만 고고학자들의 수고로 그 자취를 찾을 뿐입니다.
이런 면을 생각할 때에 이 성경의 말씀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고 하는 선포에 우리 인간은 다만 “아멘” 하고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문명의 푸른 풀, 문화의 아름다운 꽃도 다 시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우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없이 하려는 사람들도 많았고, 나라들도 많았고, 세력들도 많았습니다. 고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핍박할 때에는 예배당만 불사른 것이 아닙니다. 성경도 불살랐습니다.
고대의 문인(文人) 셀서스(Celsus)만 성경을 비난한 것이 아닙니다. 근대의 작가 볼테르(Votaire)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론자들과 무신론적 작가들의 공격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사실 이 20세기에 들어와 이 성경은 공산당으로 말미암아 큰 수난을 겪었으며, 지금도 북한을 비롯해서 모든 공산권내에서 수난과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을 뿐더러 동서고금을 통하여 제일 많이 인쇄되고 판매되는 요샛말로 베스트셀러로 남아 있습니다. 세계 어느 책보다도 제일 많은 방언으로 번역이 되었으며 제일 많이 읽는 책입니다. 이 세상에 여러 가지 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또 어떠한 책은 고대에는 많이 읽었으나 현대에는 별로 읽지 않습니다. 또 어떤 책은 청년들은 많이 읽으나 노인들은 별로 읽지 않습니다. 또 어떤 책은 남자들은 많이 읽으나 여자들은 별로 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노인이나 청년이나, 남자나 여자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지금도 누구나 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에 미국에 무신론자로 유명했던 잉거솔(Ingersol)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한 친구가 있었는데 이분 또한 무신론자로서 군인이었습니다. 잉거솔은 그 친구에게 기독교를 공격하는 책을 하나 쓰라고 권하였다고 합니다. 또 이분은 글을 잘 쓰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이 친구는 그 부탁을 받고 책을 쓰기로 결심하고, 기독교를 공격하려면 우선 기독교를 자세히 알 필요가 있어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성경을 읽어 내려가는 가운데 전에 모르던 진리를 많이 깨닫게 되었고, 도리어 감화를 받아서 그 결과는 책을 쓰긴 썼는데 오히려 기독교를 변호하는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월레스(Wallace)라고 하는 분이오. 그 책은 아마 여러분들 영화로 보았을 거예요. <벤허(Benhur)>라고 하는 책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결과가 생겼을까요? 성경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전에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을 피해서 수풀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동산에 나타나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을 불렀습니다. 그를 찾았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창세기 12장을 읽으면 거기도 하나님께서 청년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성경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출애굽기를 읽노라면 시내산 기슭에서 양을 치던 외로운 한 나그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부르십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큰 고통을 당하며 그 부르짖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온다. 너는 일어나 애굽으로 돌아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여 내라.” 모세에게뿐만이 아닙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모든 선지자들, 모든 경건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셨습니다.
이렇게 이 책 속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인간의 심령이 하나님을 대면하게 됩니다. 어거스틴도 이 책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개혁가 마틴 루터도 이 책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대우주의 한 작은 별인 지구 위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왔는지, 무엇하러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이 무한한 공간 속에 실로 외로운 고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은 아버지의 음성입니다. 천지간에 외로운 심령이 아버지를 만납니다. 우주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의 지으신 바임을 깨닫게 됩니다. 인생 문제도 해결이 됩니다. 그의 자녀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도 깨닫게 됩니다. 그의 뜻대로 행함에 있습니다. 인간 일생의 최고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심령 속 깊이 묻혔던 허무감은 사라지고 삶의 목표가 뚜렷하여집니다. 한마디로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책은 누구나 읽습니다. 또 읽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 책은 인간에게만 있는, 또 삶을 몹시 괴롭히는 도덕 문제를 해결하여 줍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그 가슴 속에 행동의 방향을 가르쳐 주는 지남침(指南針 나침반)과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흔히 ‘양심’이라고 합니다. 이 양심이 항상 우리에게 옳고 그른 것, 선하고 악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그 양심의 지시대로 다 행하지 못하는 것이 또 우리 인간의 현실문제요, 생활 자체입니다. 여기에 온갖 후회와 고민이 또 우리 인간을 괴롭힙니다. 원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죄의 의식, 죄책감이 모든 인간을 괴롭힙니다.
사도 바울 같은 이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렇게 탄식한 때가 있습니다. 사실 정신병자 외에야 이러한 탄식을 하여 보지 않은 이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러한 탄식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 절 로마서 7장 25절을 읽어 보세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외쳤습니다.
왜 누구나 이 책을 읽는가? 이 책 가운데서만 죄책감에 눌린 인간이 구주를 만납니다. 곧 모든 죄를 십자가 위에서 대속하여 주시는 구주 예수를 만납니다. 구약에는 만민의 죄를 대속하실 구주가 오리라는 예언이 있습니다. 신약에는 만민의 죄를 대속하신 구주가 오신 것을 알려 줍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잘 아시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장 9절입니다.
죄 없는 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이 구주를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주홍같이 붉은 죄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흰 양털같이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 책을 읽습니다. 흉악한 죄들로 22년간이나 옥살이를 하던 어떤 죄수가 이 책을 읽다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신 주의 말씀을 듣고 새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 책을 읽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가는 길은 또한 평탄치 아니합니다. 사실 험악합니다. 뜻하지 아니한 시험과 재난이 많습니다. 실로 인간의 생활은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 같아서 뜻하지 아니한 풍파가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배는 작고 우리의 건널 바다는 너무나 넓습니다.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이 책 가운데서 외로운 인간의 심령은 영혼의 보호자, 삶의 지도자를 만납니다. “내가 너와 같이 가리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항상 있으리라”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가 결코 너를 저버리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 책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고 믿음으로 사는 이는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외칩니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인생행로를 외롭게 걸어가는 순례자들이 새로운 능력과 용기와 인내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이 많이 읽혀집니다.
몇 해 전에 제가 미국 남장로교 초청을 받아서 남부 지방에 있는 여러 교회를 순방한 적이 있는데, 그때에 어떤 곳에 가서 그 교회의 목사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 교회 안에 어떠한 노부부가 사는 한 가정이 있는데, 하루 저녁은 밤 12시쯤 전화가 울려옵니다. 그 부인이 먼저 일어나서 전화를 받아보니 경찰서에서 왔는데, 대학교에 다니던 자기 아들이 다른 두 학생과 같이 주말에 집에 돌아오다가 그만 자동차 사고로 참사했다고 하는 비참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너무 당황한 그 어머니는 부득이 그 남편에게 알리기 위해서 옆에서 자던 남편을 깨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리 깨워도 대답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남편도 역시 숨져 있더라고 합니다.
하루에 아버지와 아들 장사를 같이 치르려고 하니 참 기가 막히더라는 겁니다. 이 세상은 이런 세상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항상 사는 것은 아닙니다. 떠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갑자기 떠납니다. 왜 이 책을 읽느냐? 이 책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내가 살므로 너희도 살리라” 부활하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천천만 성도의 “할렐루야! 할렐루야!” 찬송의 소리가 이 책을 통하여 흘러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어 보세요.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감사하십시다. 이 말씀을 찬송하십시다. 이 말씀을 늘 읽읍시다. 이 말씀대로 사십시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전파하십시다. 기도합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서 있는 것을 다시 한번 듣사옵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아버지 주시는 이 귀한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아버지의 음성을 듣게 되고 죄 가운데서 우리의 죄를 구속해 주시는 구주를 만나게 되고 구원받은 영혼이 험악한 세상을 지나갈 때에 또 우리의 힘 되시고 지도자가 되시는 성령님을 만나게 되는 이 모든 사실을 기억할 때에 무엇으로 다 감사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 성서주일을 당하여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희들이 책을 위해서 정말 하나님 앞에 감사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시고, 이 귀한 말씀을 항상 읽을 수 있게 해 주시고, 공부해서 배울 수 있게 해 주시고, 이 책의 교훈대로 아름답고 깨끗하게 살 수 있게 해 주시고, 이 생명의 말씀을 아직도 흑암한 가운데 허덕이는 우리 모든 동포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이러한 은혜까지 우리 하나하나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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