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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2:1-13/ 예수를 바라보자 / 한경직 목사 2014-08-25 19:24:42 read : 16085
이미 읽은 히브리서 12장 1절과 2절을 제가 다시 봉독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에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그 앞의 장, 곧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신앙의 용사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이미 신앙의 경주를 마치고 하늘나라에서, 말하자면 운동 경기 때의 많은 관중들과 같이 오늘 우리들의 신앙의 경주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신앙생활을 경주로 표현한 사실을 주목하십시다.
신앙생활이란 한가한 산책이 아닙니다. 경주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달음질하라”고 권합니다. 경주자는 방해되는 것은 벗어버립니다.
여기에 ‘무거운 것’이라고 한 것은, 아마 꼭 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람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신앙에 방해되는 습관이나 방해되는 친구, 신앙에 방해되는 이런 것들을 벗어버리고 달음질을 하라고 권합니다.
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권합니다. 이것은 사실 죄입니다. 우리를 얽맵니다. 그것은 아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어떤 죄는 온전히 회개하지 아니하고, 신앙의 경주를 하는 때가 많습니다.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다를 텐데, 말하자면 작은 죄들, 가령 특정한 이를 미워한다든가, 시기한다든가, 거짓말하는 버릇을 버리지 않는다든가, 이런 것들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경주자는 언제나 옷을 간단히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보면, “인내로써 달음질하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신앙생활이란 보통의 경주가 아니고, 말하자면 장애물 경주와 같아서 우리의 앞길에 우리의 달음질을 방해하는 것들이 적지 아니합니다.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때로는 환난도 당하고, 고통도 당하고, 오해도 당하고,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참고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앙생활에 아주 중요한 목표 곧 예수를 항상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모든 경주자는 목표를 바라보고 언제나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합니다. 우리 신앙 경주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까닭은 예수는 우리 믿음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구역(舊譯)대로 말하면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렇게 예수를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빌립보 감옥의 한 간수가 물을 때에 간단하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를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분은 오직 주 예수뿐입니다. 오직 예수를 통하여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모든 인간의 아버지가 되시는 참 하나님도 알게 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참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의 신앙이 완전하여집니다. 이렇게 예수는 우리 믿음의 주요, 또 믿음을 온전케 하여 주시는 분입니다.
주의하여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과거에 신앙의 위인들이 많지만, 그들을 바라보라고는 기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신앙의 용사들이 과거에 많았지만, 그들이 우리 신앙의 목표는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선지자들, 사도들과 같은 위대한 신앙인들이 많으나 그들을 바라보라고는 기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렇게 권면을 한 이유가 없지 않은 줄 생각합니다. 가령 인간은 아무리 잘 믿는다고 할지라도 허물이 없는 이는 없습니다. 또 죄가 없는 이도 없습니다. 성경은 선언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곧 하나도 없느니라”고 지적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약하여 현재에는 든든히 선 것 같지만, 언제 쓰러질는지 모릅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고 믿다가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예수를 믿다가는 옛날 고린도 교인들처럼,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이렇게 서로 파당을 짓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지도자가 훌륭하다고 하여도 인간을 바라보고 신앙의 경주를 하여서는 아니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예수만 바라보고 신앙의 경주를 잘하라고 권합니다. 예수의 마음을 본받고, 예수의 성품도 본받고, 예수의 행실을 본받으며, 예수만 바라보라고, 오직 그만 따라 신앙의 경주를 하라고 권합니다. 그리하여야 신앙의 경주에서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영락교회가 당하는 시련은 실로 크고, 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우리 모두가 받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흥분되거나 감정에 이끌리지 말고, 각각 조용히 성령의 지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옳게 찾으며,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도 하여야 합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법을 범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 같은 이도 예수를 세 번씩 모른다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실수하지 않았다고 하여 교만한 마음을 품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고린도전서 10장 12절 성경은 경고합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이 사건의 정체를 또한 바로 보아야 합니다. 국가의 법을 범한 것은 사실입니다. 실수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당사자는 물론 본 영락교회, 그리고 전 개신교 전체에 큰 충격을 가져왔으며, 위신을 실추케 한 것도 사실입니다. 교회에는 또 사회에도 누구나 꼭 지켜야 할 윤리 규범이 있습니다. 일반 사회에 대하여 실로 부끄럽고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솔직히 우리의 실수를 깊이 깨닫고 자성하여야 되겠습니다. 실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송합니다.
먼저 이 원로목사란 이름을 가진 이 늙은 종이 부덕하고 너무 부족하여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솔직히 자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 자신이 당회장을 바로 돕지 못하여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위에 큰 수술을 받고, 말할 수 없는 육체의 고통, 허약한 심정, 그리고 교회 내의 복잡한 사정 가운데서 극도로 심신이 쇠약하여 다시 외국에 가던 도중에 이러한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때에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일상생활을 깊이 반성할 기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의 일반 윤리생활이 어떠합니까? 우리 교인들의 일반생활이 너무 해이하여지지나 않았습니까? 이러한 때에는 당사자는 물론, 우리 각자가 각기 내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며 회개하며 그리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계나 일반 사회에 대하여는 겸허하게 우리의 부족을 솔직히 표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로 면목이 없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로마서 8장 28절을 옛날이나 오늘이나 굳게 믿습니다. 또 그대로 됩디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인간이 비록 실수할 때가 있으나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이 선을 옳게 깨달아야 합니다. 선이란 말을 오해하지는 맙시다. 죄를 범하여도 벌을 안 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런 모든 것들도 합력하여 결국은 자신이나 온 교회에 선을 이룰 줄로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이러한 때에 내 생활을 정직히 반성하며,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우리 각자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 온 교회가 차제에 꼭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도 합동하여 선을 이루게 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이러한 때에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꼭 주 안에서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내 의견을 너무 고집하지 말고, 교만한 생각을 품지 말고, 겸손히 주의 뜻이 무엇인가 성령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지혜롭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 영락교회는 지금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를 슬기롭게 우리 모두가 신앙과 회개와 혁신으로 또 단결로 대처한다면 이 위기는 오히려 큰 은혜와 번영과 축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눈물의 아골 골짜기가 변하여 기쁨과 소망의 문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을 자세히 들어보세요.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분명히 기억하세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의 한 곳만 더 들으세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그리고 베드로전서 5장 11절에는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는 이러한 때에 예수님만 바라보고 신앙의 경주를 계속하십시다. 기도합시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눈을 열어서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비와 크신 긍휼을 우리 영락교회 위에 더하여 주시고, 특별히 수고하시는 당회장님 내외 그 위에 더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이때에 임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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