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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9:41-48/ 눈물,땀,피의 삶 / 한경직 목사
2014-08-25 19:13:51   read : 18043

오늘 읽은 말씀 누가복음 19장 41절과 42절을 제가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감람산 위에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고 우시며 슬피 탄식한 말씀이 있습니다.

지난번 8월 15일부터 19일까지 여의도 광장에서 열렸던 한국기독교 100주년선교대회는 이 대회야말로 실로 눈물과 땀과 피의 대회라고 평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여 보니 사실 그러했습니다. 이 대회에서는 많은 보이는, 또 안 보이는 눈물이 흘려졌습니다. 모두가 과거 100년간에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더하여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또는 많은 은혜를 받으면서도 분쟁과 분열의 죄를 지었음을 기억하고 회개의 눈물도 흘렸고, 또 화해의 눈물도 흘린 줄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지난 번 선교대회는 실로 눈물의 대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만한 대회를 준비하는 데에 문자 그대로 많은 성도와 일꾼들이 땀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큰 철근 골조를 만든 육군 공병대들의 흘린 땀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위에 마루를 깔고 십자가를 만들고, 모든 준비를 마친 많은 근로자들의 땀, 그리고 대회 준비를 위한 우리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 직원들을 비롯해서 경비를 담당한 많은 대학생들과 경관들이 흘린 땀, 그리고 한마디로 그때는 더운 계절이어서 아마 거기 참여한 수백만 성도들은 땀 흘리지 않은 이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 모든 이가 흘린 땀을 모두 모아 놓는다고 하면 실로 놀랄 만할 것입니다. 실로 지난 대회는 문자 그대로 노력과 땀의 대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지난 대회 때에는 사랑의 실천 운동의 일환으로써 많은 성도들이 헌혈을 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여러 분 계실 줄 압니다. 또 수많은 성도들이 앞으로 헌혈을 하겠다는 약속의 헌혈카드를 내었습니다. 피는 생명의 상징인데 이렇게 귀한 피를 중환자들을 위해서 제공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할 때에 오직 감사한 것뿐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서 몇 해 전 우리 영락교회 기념예배를 보면서 그때에 영락교회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이 비슷한 말을 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사실 영락교회는 피난민의 눈물로 시작이 되었고, 계속되는 6?25로 말미암아 이북에서 계속하여 내려오는 피난민들의 많은 눈물이 이 교회 뜰을 적시었습니다.

어떤 주일인지 기억은 못하지만, 한 주일은 그때에 모이던 건물이 너무 좁아서 교회 뜰에 천막을 여럿 치고 예배를 보던 중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설교를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에 저는 그저 설교는 그만하고 기도를 하자고 하였더니 수천 명이 기도를 하는데, 기도라기보다 온 뜰이 눈물의 바다로 화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실로 잊을 수 없는 눈물의 기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를 다 들어주셔서 오늘날 이런 예배당 안에서 우리가 예배 보는 줄 압니다.

1949년 본 예배당을 처음으로 지을 때에 많은 피난 교우들이 자진해서 나와서 돌과 목재들을 운반을 하고 또 기초를 손수 팠습니다. 벽돌을 씻고 벽돌을 손수 날랐습니다. 그때에 모두 땀이 그 얼굴에 흐르던 모습을, 지금도 땀 흘리던 그 얼굴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제직들과 교우들이 온갖 방면에서 그 피곤한 피난민 생활에도 불구하고 열심으로 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심방을 하고, 봉사하는 가운데서 어떤 이들은 성가대로, 권찰로, 교회학교 선생으로 많은 수없는 그들의 땀 흘려 수고하신 봉사의 열매로 오늘날 영락교회의 모습을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6?25때에는 김응락 장로 같은 이는 바로 예배당 문 앞에서 피를 흘리면서 순교를 했습니다. 김창화 같은 청년은 자기가 가르치던 부속사범학교 마당에서 피 흘려 순교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본 영락교회도 눈물과 땀과 피의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이렇게 귀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언제나 잊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예수님의 삶을 잠깐 돌아보면 예수님의 삶이 문자 그대로 눈물과 땀과 피의 삶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은 여러분께서 잘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실 때에 많은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손에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입으로는 호산나를 외치면서 기쁨으로 예수살렘 성을 향해서 감람산을 넘어갑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주님께서는 감람산 위에서 예루살렘이 보일 때에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기뻐서 노래하는데 예수님은 우셨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들을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마태복음 23장 37절, 38절 돌아가 읽어 보세요. 가련한 일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대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은 아주 망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애국심의 안타까운 눈물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랑하는 제자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도 우셨다고 요한복음은 보고해 줍니다. 복음서를 읽노라면 예수님께서 당시 무리들이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것을 민망히 보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주님은 당시의 대중을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눈물 없이 보실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의 삶은 눈물의 삶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주님의 삶은 문자 그대로 땀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은 나사렛에서 전도하시기 전에 목수 일을 하셨는데 물론 많은 땀을 흘린 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십자가를 앞에 놓고 만민의 대속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에는 땀이 핏방울처럼 흘러내렸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주님은 전도를 시작한 후부터는 매일 수천 수만의 무리들을 가르치시고 날이 저물 때까지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모두 땀을 의미합니다. 그의 일생은 실로 땀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주님의 삶은 문자 그대로 피로 끝을 마쳤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에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머리와 얼굴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두 손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두 발을 또한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물론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군인은 가슴을 창으로 찔러서 물과 피가 흘러내렸다고 하는 기록을 우리는 봅니다. 주님은 이렇게 피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삶 전체가 눈물과 땀과 피의 결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 바울의 삶도 거의 그러합니다. 주님의 눈물과 땀과 피의 삶의 계속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종종 “눈물로 권하노니” 이와 같은 말로 편지를 썼습니다.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해서 권면하는 말씀 가운데도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라고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는 눈물로 권하고 눈물로 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생 동안 쉬지 않고 여행을 하였으며, 가는 곳마다 자기 생활을 위하여 또 쉬지 않고 장막을 쳤으며 노동을 했고, 그리고 많은 시간을 이곳저곳에서 감옥 생활을 하였습니다.

모두 땀을 의미합니다. 그러다가 여러분 아시는 대로 네로의 큰 핍박 때에 로마 교회에서 뜰 밖에서 참수형, 곧 목 베임을 당함으로 그는 최후로 생명을 하나님의 제단에 바치셨습니다. 문자 그대로 그분의 생활도 눈물, 땀, 피의 삶이었습니다.

조금 깊이 생각하면 모든 성도의 삶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역시 그러하지 아니할까 생각합니다. 또 그러해야 합니다.

우선 성도의 삶은 눈물로 시작해야 합니다. 곧 회개의 눈물입니다. 이 눈물이 없이는 성도의 삶은 사실은 시작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리와 같이 아무리 자기 죄가 많아도, 그 죄를 깨닫고 원통히 회개하며 죄를 자복하며 눈물을 흘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죄를 모두 사하여 주시고, 참된 용서를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도의 삶은 눈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가르쳐 줍니다. “웃는 자들과 함께 웃고 우는 자들과는 함께 울라”고 가르칩니다. 무슨 말이냐고 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의 생활은 언제나 사랑과 동정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동정의 눈물이 없이 참 성도의 생활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눈물이 있으므로 상가(喪家)도 피곤하지만 어쨌든지 잘 돌아보려고 애쓰고, 이런 눈물이 있으므로 고아들도 돕고, 이런 눈물이 있으므로 외로운 모자들도 돌봐주고, 이런 눈물이 있으므로 무의무탁한 노인들도 도와드리고, 맹인도 돕고, 신체장애자도 돕고, 수재민도 돕고, 중환자를 돕기 위해서 헌혈도 합니다. 왜?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동정과 사랑의 눈물이 있는 까닭입니다. 성도의 눈물은 이렇게 귀합니다.

이 눈물이 때로는 봉사 활동으로, 때로는 전도 활동으로, 때로는 애국운동으로 번집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느헤미야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애국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민족을 위한 예레미야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바울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이 눈물은 땀의 기도로 변합니다. 땀은 모든 교회의 봉사로 변합니다. 땀은 사회 활동으로 변합니다. 땀 없이 일할 수 없고, 땀 없이 봉사할 수 없고, 땀 없이 전도할 수 없고, 땀 없이 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땀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땀 흘리신 예수를 따라가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도의 생활은 피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반드시 우리가 다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면 순교해야지요. 그러나 보통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순교를 강요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씀하였습니다. “나는 매일 죽노라” 무슨 뜻입니까? “나는 매일 죽노라” 우리가 옳은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것이면, 매일 내 자신이 신령한 의미에서 죽어야 합니다. 희생해야 합니다. 남을 돕는다고 하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내 자신을 이기고, 매일 내 욕심을 이기고, 매일 봉사하고, 매일 일하며, 매일 희생하는 생활을 사양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피를 준다는 것은 내 생명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매일 내 생명을 나누어 주는 삶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랑의 실천은 희생을 의미합니다. 곧 피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영락교회는 다른 한국 교회와 같이 오래지 않아 제2세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과거 40년간에 우리 영락교회는 남다른 특별한 축복을 받은 교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앞으로의 영락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깊이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과거의 영락교회는 눈물과 땀과 피의 교회로써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를 애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새로운 결의를 가지고 이 정신을 계승해 나간다면, 제2세기에는 더 큰 축복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영락교회 안의 남녀 청년들이 이 눈물과 땀과 피의 신앙을 계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말씀 더 드리는 것은, 이러한 생활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기쁘고, 가장 영광스러운, 영원히 빛나는, 문자 그대로 영생의 삶입니다. 이러한 삶의 축복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사랑 많으신 우리 주님, 저희들이 잠깐 우리의 신령한 눈을 들어서 주님의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은 항상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주님은 항상 땀을 흘리셨습니다. 주님은 최후로 피까지 흘리셨습니다. 어찌해서 우리 부족한 사람들을 이렇게 고귀한 삶을 따라가도록 택하시고 저희들을 인도하시나이까? 오 하나님 아버지시여, 여기 앉은 우리 하나하나가 이 시간 주님의 남은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는 이 은총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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