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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5:19-29/ 영생의 축복 /한경직 목사
2014-08-25 16:20:58   read : 13433

이미 읽음 말씀 가운데서 24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여기에서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는 곧 영생을 얻었고” 곧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심판에, 곧 정죄함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믿는 자는 사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졌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여러분 잘 아시는 말씀인데, 거기에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오는 축복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죄 사함을 받습니다. 과거의 모든 죄에 대하여 용서함을 받습니다. 이렇게 믿을 때 우리 마음 속에 평화의 축복을 또한 받습니다. 마음이 평안하여집니다. 믿음으로 병 고침을 받는 이들도 많습니다. 누구나 믿음으로 건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사업을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가정의 축복, 사회의 축복, 온 국가의 축복을 또한 받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축복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영생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이 모든 축복을 통합해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우리 믿는 이들은 모두 영생의 축복을 받습니다.

‘영생’이란 말은 글자 뜻대로 길이 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생이란 말은 참된 삶, 곧 ‘하나님의 삶’이란 뜻이 있습니다. 참된 의미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영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으므로 죄 사함을 받고, 이 하나님의 삶, 온전한 삶, 영원 불멸의 삶에 참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 영생의 축복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고자 합니다. 영생을 생각할 때에는 자연히 내세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내세를 생각할 때에는 하나님 나라, 혹은 천당을 또한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육신 생명은 제한이 있습니다.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받은 이 영생은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갑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 이러한 말을 들을 때에는 감사하게 생각은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막연한 생각이 스며들기 쉽습니다. 이 시간 특별히 이러한 점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먼저, 이성의 견지에서 이 문제를 생각하여 보세요.

이성이란 우리 인간이 누구나 생각하는 힘이 있어요.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이렇게 생각하는 힘, 이성이 부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 속을 살필 때에 여러 가지 생각, 혹은 의식의 흐름이 있지만, 또 한 가지 분명히 깨닫는 것은 이 의식의 흐름을 지도하는 무엇이 있는 게 또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합당치 아니하니 버려라,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 대신 이렇게 좋은 생각을 하여라 지도하는, 우리의 의식을 지도하는 무엇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다 체험합니다.

그러면 이 우리의 의식을 지도하는 무엇을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을 흔히 심리학자들은 ‘자아’ 혹은 영어, 본래 헬라말로 ‘이고(ego)’라는 말로 씁니다. 우리 인간의 속에는 ‘이고’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우리의 모든 생각을 지도합니다. 그건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깨달을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 하면 우리 속에서 우리의 생각을 지도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죽을 때 이 영혼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물론자들은 물론 아주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육신을 구성하였던 물질도 죽을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변화를 일으키는 것뿐입니다.

모든 물질은 간단(間斷 끊임)없이 변화를 합니다. 물리적 혹은 화학적 변화는 일으키지만, 물질 자체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을 끓이면 수증기로 변합니다. 그러나 물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촛불을 오래 켜면 혼자 없어지는 것 같지만, 초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초 속에 있던 탄소가 공기 속의 산소와 합하여 탄산가스로 변하는데 탄산가스는 기체이니까 공기 속에 사라지는 것 같지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물질 불멸론이라고 합니다. ‘물질은 간단없이 형태는 변하지만 물질 자체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다는 것’이이 이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육체를 구성했던 물질도 죽은 후에 그냥 남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변합니다. 썩어진다는 말은 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을 구성하였던 물질 자체도 그냥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살아 있을 때 사지백체를 마음대로 사용하던 영혼만은 아주 없어지겠습니까?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영혼은 그냥 남아 있습니다. 이성으로 이런 문제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여러 가지 욕망과 본능을 분명히 갖고 있는데, 이 우주 안에는 그것들을 충족할 만한 대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래서 식욕이 있는 곳에 먹을 것이 있습니다. 애욕이 있는 곳에 사랑할 이가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원하는 성품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충족시킬 만한 아름다운 경치, 아름다운 꽃, 아름다운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 심령의 깊은 곳에는 또한 영생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유명한 영국의 시인 테니슨의 한 시구와 같이, “그는, 인간은 아주 없어지려고 지음을 받은 줄 생각지 않는다.”는 이 영생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이 욕구에 대하여만 대상이 없겠습니까? 반드시 있습니다. 이성으로 생각하여 보세요. 사후에도 생명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나 양심이 있습니다. 이 양심은 우리에게 선과 악을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선을 행하면 상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인과보응(因果報應)의 원칙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되는 일을 보면, 이 원칙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을 핍박합니다. 악한 공산당들이 믿는 사람들, 죄 없는 사람을 핍박하고, 때로는 죽입니다. 순교자들이 이 땅에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인과응보의 원칙이 잘못된 것입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원칙은 내세에 가서 완성됩니다. 인간은 그 삶이 현세에 끝나지 아니하고, 내세에까지 미치므로 다음 세상에서는 반드시 영원한 형벌이 옵니다. 양심으로 생각할 때에도 영생과 내세는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만 아닙니다. 이러한 모든 진리를 분명히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지 아니하였습니까? 성경에서는 어떻게 가르칩니까?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히브리서 9장 27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린도후서 5장 1절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엄숙한 사실을 들어보세요.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0장 12절로 15절까지 읽어 보세요. 가장 신임할 만한 책, 오직 하나인 책 성경은 분명히 영혼의 불멸과 내세와 최후 심판을 가르쳐 줍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몇 번이나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장 1절로 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으로만 가르치지 아니하시고, 그 자신이 친히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또 그 후에 승천하심으로써 사후에 생명과 내세와 영원한 천당이 있음을 분명히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지난 주일에 지킨 부활절은 이 모든 사실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옛날 야곱이 당하였던 일을 회상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나이가 많아서 얻은, 특별히 총애하던 요셉을 잃었습니다. 악한 아들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처음에는 죽이려 하다가 그 후에는 멀리 애굽으로 돈 받고 종으로 팔아먹은 후에, 요셉의 채색 옷을 양의 피로 적셔가지고 늙은 아버지께 그것을 보이면서 요셉이 필연 악한 짐승에게 잡아먹혔다고 거짓말로 속이지 않았습니까? 늙은 야곱은 그 말을 듣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흐르고 흘러 야곱은 더욱 늙어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 큰 흉년으로 곡식을 구하려고 애굽에 갔던 아들들이 돌아와 이상한 말을 전하였습니다. 곧 요셉이 애굽에 살아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늙은 야곱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반신반의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멀리 바라보니 황금마차가 자기 집을 향하여 오는데, 아들들의 말이, 이 마차는 요셉이 애굽에 살아 있어서 아버지를 모셔오라고 보낸 마차이니 어서 타고 가자고 재촉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어 야곱이 황금마차를 타고 가서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애굽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본 교회 주보를 매주일 보는데, 매주 본교회 안에서 세상을 떠나는 교우들이 6, 7명, 때로는 10여 명에 미치는 보고를 보면서 조용히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가운데는 귀한 아들을 혹은 딸을 먼저 보내고, 많은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적지 아니할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이 엄숙한 사실을 아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 앉은 우리 모두에게 언젠가는 영원한 하늘나라로부터 황금마차가 올 것입니다. 또 누구나 이 마차를 타고 하늘나라로 갈 것입니다. 가보면 놀랄만한 일들이 많을 것입니다. 먼저 아들을 잃고, 딸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많은 눈물을 흘렸으나 그때에는 모두 기쁨으로, 웃는 얼굴로 그들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이 영생은 죽음을 초월하여 계속됩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죽어도 삽니다. 영원히 삽니다. 죽음이란 먼저 가신 사랑하는 이들, 사랑하는 교우들과 다시 만나는 큰 기쁨의 기회도 될 것입니다. 영생은 확실합니다. 하늘나라는 영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영생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권합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영생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올 때마다 찬송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오나 이러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삶 곧 영생을 주셔서 우리는 금생과 내생의 참된 삶을 얻게 되는 것을 생각할 때에 만입이 있어도 다 감사와 찬송을 드릴 길이 없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에게 이 시간 영생의 축복을 주시고 이 영생의 축복을 받아서 우리는 영원히 사는 삶을 금생과 내생에 가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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