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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1:12-20/ 믿음과 양심 /한경직 목사 2014-08-25 15:09:01 read : 17182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디모데전서 1장 19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주신 권면입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또 이러한 권면의 배후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어떤 이들은 믿노라고 하지만 착한 양심을 버린 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까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착한 양심을 버린 그들의 믿음은 또한 파선하였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꼭 같이 가야 합니다. 이 시간 이 중요한 교훈을 잠깐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종교 생활은 믿음으로 시작됩니다. 성경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읽어 보세요.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어떤 이들의 말과 같이 무엇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무슨 지식으로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또 행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를 믿으므로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이 곧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선언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6장 31절을 찾아보세요. 이렇게 선언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으므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이에게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믿음이 있는 이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더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믿는 이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셉도 어렸을 때에 비록 먼 나라에 종으로 팔려갔으나 믿음으로 모든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애굽의 총리대신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도 믿음으로 가나안 복지를 점령하셨습니다. 베드로도 믿음으로 하루에 3,000명을 회개케 하였습니다. 바울도 믿음으로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큰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자기 딸을 고치기 위해서 주님의 냉정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간구를 계속한 가나안 여자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면서 그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무엇을 구하는 이들에게 종종 “네 믿음대로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만큼 됩니다. 믿음만큼 축복을 받습니다. 큰 믿음을 가져야 큰 축복을 받습니다.
때로는 믿음이 작다고 책망하신 적도 있습니다. 여러분, 산상보훈을 기억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읽어 보세요. 어떻게 수많은 용사들이 오직 믿음으로 역경과 환난과 질병과 핍박과 전쟁과 많은 어려움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는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12장 첫 부분에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옛날 제자들과 같이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기도하십니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하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믿음을 굳게 지킵시다. 큰 믿음을 가지십시다. 큰 믿음으로 무엇이나 일을 착수하고 계속하십시다.
그리고 여기 둘째 권면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는 동시에 또한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믿음을 보존하는 데 꼭 필요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착한 양심입니다. 양심은 마음에 새긴 율법이라고 로마서 2장 15절에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신 법입니다. 율법입니다.
양심은 지남침과 비슷합니다. 혹은 나침반과 비슷합니다. 배 안에 나침반이 있어야 방향을 바로 알고 항해할 수 있습니다. 지남침이 고장나면 배가 암초에 부딪혀 파선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착한 양심을 꼭 가져야 합니다. 양심은 혹은 하나님의 등불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길을 바로 가기 위하여 우리 마음 속에 작은 등불을 켜주셨는데 그것이 곧 양심이올시다.
요사이 서울거리를 지나노라면 어디나 신호등이 있습니다. 양심은 이 신호등과도 비슷합니다. 푸른빛이 켜질 때에 지나가면 차는 안전합니다. 붉은 빛이 나올 때에 스톱하면 차가 안전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가 인생길을 걸어갈 때에 양심이 가라 할 때에 가고, 그치라 할 때에 그치면 우리의 인생길은 안전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양심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친히 말씀하십니다. 좋은 일은 하고 나쁜 일은 그만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좋은 일을 할 때에는 칭찬을 하고 나쁜 일을 했을 때에는 책망도 합니다. 이것을 양심의 가책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많은 무리들이 한 간음한 젊은 여자를 갖다 세워놓고 예수님께 물을 때에 예수님의 조용한 대답이 “너희 중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저 여자를 치라” 말씀하실 때에 무리들이 슬금슬금 모두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왜요?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렇게 되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은 실로 무섭습니다. 은 30냥으로 예수를 팔았던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으로 마지막은 목매어 자살하였습니다. 양심에게 순복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특별히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착한 양심이 때로는 고장이 생깁니다. 거리에 신호등이 고장나면 차량의 교통사고가 많아질 것입니다. 지남침 혹은 나침반이 고장나면 배가 옳은 방향으로 가지 못할 것입니다. 듣는 대로 나침반 옆에 큰 쇠뭉치를 갖다 놓으면 지남침이 그 편으로 기울어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강한 물질의 욕심이 양심을 병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황금은 흑사심(黃金黑士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누런 금이 선비의 마음을 검게 한다.’는 뜻입니다. 양심을 변모시킵니다. 강한 물욕뿐이 아닙니다. 강한 정욕도 그러합니다. 다윗도 이때문에 범죄하고도 곧 회개를 못하였습니다. 강한 권력욕이 또 그러합니다. 수양대군과 단종의 이야기를 우리는 모두 기억합니다. 도에 지나치는 정욕, 물욕, 권력욕, 명예욕, 감투욕 등 온갖 욕심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욕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야 착한 양심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때로는 성경 말씀대로 양심이 화인을 맞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2절을 찾아보세요. 피부가 화인을 맞으면 차고 더운 것을 분간치 못하게 됩니다. 여러 번 양심을 거역하면 양심이 이렇게 무감각하게 됩니다. 양심이 양심의 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의 삶은 나침반이 고장난 배와 같습니다. 아무 방향이나 갈 수 있습니다. 선악에 대하여 감각이 둔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리까지 전락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렇게 되면 점점 양심이 방향 감각을 잃어 온전히 전도되어 심지어 선을 악이라고 하고 악을 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됩니다.
몇 해 전 신학교에 다니는 어떤 여학생이 부산 미국문화원에 불을 질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되었습니까? 소위 이데올로기로 의식화된 여학생이라고 합니다.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양심이 아주 전도되었습니다. 슬픈 일은 이렇게 의식화된 학생은 그 여자뿐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양심이 사실은 히틀러의 양심이었고, 스탈린의 양심이었고, 모든 소위 이데올로기로 의식화된 양심입니다. 이렇게 되면 물론 그 믿음은 파선됩니다. 실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화인 맞은 양심, 전도된 양심을 회복하여 착한 양심이 될 수 있게 할 것입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양심은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율법인데,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글로 분명히 쓴 하나님의 율법을 또한 주셨습니다. 곧 성경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손에 있습니다. 주님의 교훈을 우리가 지금도 직접 성경 가운데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주님의 말씀과 생활을 배울 때에 우리의 양심은 바로 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예배에도 참석하여야 합니다. 모든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또 배우고 그리해서 우리 양심이 항상 곁길로 가지 않도록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언제나 착한 양심을 지녀야 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요사이 과중한 외채를 줄이기 위해서 여러 면으로 근검절약 운동이 일어나는데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이런 절박한 때에도 술 많이 먹기로 유명한 우리 국민을 상대로 한 운동인데도 불구하고, 주초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이런 긴박한 정세 아래에서는 이 문제는 절제의 문제라고 하기보다도 양심의 문제입니다. 이런 때에 사치를 일삼고 술을 마시고 쓸데없는 담배를 많이 피운다고 하는 것은 양심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런 금주(禁酒) 단연(斷煙) 문제에 대해서도 솔선수범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도 착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성경은 권면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너무나 험악하고 또 위험합니다. 지금 이북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도 총검을 주어 전쟁놀이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언제 핵전쟁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비행기사고, 교통사고들도 도처에 일어나고 점점 더 많아집니다. 테러 행동도 급격히 증가되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실존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18사람이 무참히 숨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건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누가복음 13장 4절로 5절을 읽어 보세요.
예수께서는 사고 많은 이러한 세상에서 다만 우리도 회개치 아니하면 망하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우리는 실로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가슴에 손을 얹고 내 양심을 더듬어 보면서 회개할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오늘이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믿음과 착한 양심을 회복하고 가질 수 있는 큰 축복의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의 중심을 보십니다. 내 자신을 아버지께서 보시는 눈으로 스스로 살필 수 있는 이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보시기에 마땅히 버릴 것을 이 시간 버리고 착한 양심을 회복할 수 있는 이 크신 축복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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