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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1:15-20/ 착한 양심 /한경직 목사
2014-08-25 12:06:04   read : 15618

이미 읽은 말씀 가운데서 디모데전서 1장 19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이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주신 권면입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일찍이 주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물을 길러 나온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전도하실 때에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양심을 깨우치는 말씀이올시다. 그 여인이 회개하려면 자기의 과거를 양심적으로 돌아보며 고칠 것을 고쳐야 할 것입니다. 회개에도 양심이 필요합니다. 양심적으로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며 고칠 것을 고쳐야 합니다. 참 회개에도 양심이 선행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가르치실 때에 한번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질문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얼른 대답치 아니하시고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을 쓰시다가 조용히 머리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 그렇게 말씀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한참 있다가 얼굴을 들어보니 하나씩 하나씩 다 그 자리를 떠나고 여자만 홀로 남았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 자리를 떠나게 하였습니까? 성경은 지적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양심을 깨우쳤습니다. 전에는 남의 죄만 보고 자기 죄는 보지 않던 그들에게 양심적으로 자기 자신을 보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먼저 양심을 깨우쳤습니다. 참으로 양심적으로 자기를 살필 때에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성경은 양심은 마음에 새긴 율법이라고 로마서 2장 15절에 지적합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마지막 날 인간을 지으실 때에는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나 간단히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따라서 인간도 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산 영혼이 되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인간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있습니다. 이것이 다른 짐승들과 구별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도 제한된 의미에서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생각하는 힘, 곧 이성을 부여하셨습니다. 인간은 이 이성을 선용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든 문화와 문명을 창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은 도덕의 주 곧 우주의 양심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율법 곧 그 양심의 일부가 부여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곧 양심입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이는 주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였지만 세상과 물욕에 빠져 은 30냥을 받고 예수를 잡아주었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가 그 돈으로 큰 집을 사고 넓은 땅을 사고 평안히 여생을 마쳤습니까? 우리는 잘 압니다. 그가 불행하게도 유혹을 받아 그런 일을 하였지만 정작 그 돈을 받고 보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는 그 돈을 도로 가지고 가서 대제사장에게 돌려주려고 하였지만, 받지 않으니 결국은 그 앞에 내어 던지고 집으로 돌아와 목매어 자살하였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나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우리 인간 깊은 속에는 하나님의 법, 곧 양심이 있는 까닭입니다. 이점이 인간과 짐승과 또 다른 한 가지입니다. 짐승의 세계에는 자살이란 없습니다. 자살이란 오직 인류 사회에만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에게만 하나님의 법, 양심이 그 속에 있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이렇게 귀한 양심이 일시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잠을 잘 때가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 그대로 화인 맞을 때가 있습니다. 화인을 맞으면 감각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화인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배에 나침반이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서 그 배의 가는 방향을 그르칠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나침반은 방향을 가르쳐 주는 기계 아닙니까?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 나침반 곁에 철재가 많이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 철재에 이끌려서 그 나침반 바늘이 바른 방향을 지시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 주신 이 천부의 양심이 그릇된 방향을 이따금 가리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온갖 욕심에, 정욕에, 혹은 물욕에, 혹은 권세욕에, 혹은 명예욕 등에 이끌려 양심이 흐려지고 약하여지고 때로는 아주 화인을 맞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에 다윗왕이 그러한 경우에 처했습니다. 그분은 근본적으로 좋은 분이었으나 강한 정욕에 사로잡혀 자기의 충신 우리아를 일선에 내어보내 억울하게 생명을 잃게 하고, 결국 그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취해서 자기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러고도 평안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선지자 나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그분에게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집 근처에 한 큰 부자가 있는데 그 집에는 양도 많고 살진 소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 사는데 그 집에는 작은 암양새끼 하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들어보세요. “하루는 그 부잣집에 손님이 왔는데, 그 부자는 그 많은 소와 양은 아깝다고 그냥 두고, 그 가난한 사람의 하나밖에 없는 암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손님을 대접하였습니다.” 이때까지 이 이야기를 듣던 다윗왕은 크게 노해서 “그럴 수가 있는가? 그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라고 노를 발하였다고 합니다. 그때에 선지자 나단은 손가락으로 다윗왕을 가리키면서 “당신이 곧 그 사람이올시다.”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때에 다윗 왕은 그 양심이 말하자면 화인을 맞아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 악한 사람이 곧 자기인 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양심이 화인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친구의 솔직한 권면이 혹은 충고가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화인 맞은 양심을 깨우쳐야 합니다. 이렇게 때로는 양심이 죽은 것 같지만 또 아주 죽는 것은 아닙니다. 죽었다가도 살아날 때가 또한 있습니다.

프랑스의 한 문호 빅토르 위고의 유명한 소설 <레미제라블>을 아마 기억하시는 이들이 많을 줄로 생각합니다. 주인공 장발장이 범죄를 하고, 그러나 법을 피해서 다른 성으로 가서 이름을 고치고 또 열심히 정치에 뛰어들어 마지막에는 그 도회의 시장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신문을 보노라니까 어떤 사람이 법에 붙잡혔는데, 장발장으로 인정이 되어 그 사람이 중형을 받게 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이었습니다. 그 신문을 보고 장발장은 그날 저녁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고민하다가 그 이튿날 아침에는 일찍이 일어나 마차를 타고 멀리 있는 그 도회에 돌아가서 법정에 뛰어들어가 자기의 죄를 고백하였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때로는 우리의 양심이 죽은 듯합니다. 그러나 또 아주 죽는 것은 아닙니다. 적당한 기회가 돌아오면 다시 살아납니다. 부활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항상 읽어야 합니다. 양심이 부활할 때에는 가룟 유다의 경우와 같이 그 자신이 죽을 때도 있습니다. 인간은 죽으나 양심은 살아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성경은 경고합니다. 양심을 버리면 곧 그 믿음이 파선된다고 경고합니다. 참된 믿음과 양심은 같이 갑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언제나 착한 양심을 가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양심은 오늘날 서울거리의 신호등과도 비슷합니다. 요새 거리에는 신호등이 많습니다. 때로는 푸른 빛, 때로는 붉은 빛이 나옵니다. 푸른 빛이 비추일 때에만 차를 몰아야 합니다. 신호등을 무시하고 운전하면 결국은 사고가 나기 쉽고, 차가 상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상하고 때로는 죽기도 합니다.

아무리 민주화시대, 자유세계에서도 이 신호등은 꼭 지켜야 합니다. 민주화시대일수록 양심의 등불이 밝아야 합니다. 자유가 많을수록 양심의 신호등을 꼭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가 안정하고 사회의 질서가 흔들리지 않고 사회가 명랑하여집니다.

여러분도 아마 다 신문에서 보았을 거예요. 미국의 한 법조인은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법원 판사로 추천을 받았으나 자기가 일찍이 마리화나를, 아편의 일종입니다. 피운 기억이 나서 그 추천을 사양하였다고 합니다. 양심적인 법조인이올시다.

전에 어떤 책을 읽으니 미국의 한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통과만 되면 자기와 관련이 있는 업체에 큰 유익이 있을 법안을 다 준비하여 놓았는데 그 법안을 준비하여 가지고 길을 가다가 마침 링컨 대통령의 동상이 선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동상의 얼굴을 보고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만일 링컨이 지금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내가 지금 제출하려고 하는 이런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는가?’ 그런 생각이 나서 마침내 그 국회의원은 그 법안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양심적인 국회의원, 양심적인 대통령, 양심적인 공무원, 양심적인 기업인, 양심적인 근로자, 또 교회에도 양심적인 목사, 장로, 제직, 교인이 필요합니다.

요새 우리 사회는 대통령을 선거하느라고 상당히 소란합니다. 너무 과열된 모양입니다. 한마디로 나라가 잘 되려면 양심적인 대통령, 양심적인 국회의원, 그리고 양심적인 국민 하나하나가 필요합니다. 대통령 선거도 그러합니다. 국민 하나하나가 양심적으로 판단해서 투표하고 또 양심적인 인물을 자세히 살펴 대통령으로 선택하여야 합니다. 양심적인 인물은 거짓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합니다.

지금은 또 연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이런 때에 양심적으로 내 신앙생활을 검토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떠한가? 내 가정은 어떠한가? 나의 직장 생활은 과연 양심적인가? 우리 교회 안에서도 내가 맡은 책임에 대하여 거짓 없는 양심으로 스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 이 달은 크리스마스 계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나의 생활, 특별히 나의 전도, 교육, 온갖 봉사가 얼마나 양심적으로 충성을 다하였는가 반성하여 볼 때입니다.

특별히 불우한 내 이웃을 얼마나 봉사하는가? 보린원, 경로원, 모자원, 그리고 모든 학교에 대하여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며 봉사하였는가? 일선장병과 38선을 지키는 국군들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할 수 있으면 이들을 돕는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또 오늘은 ‘성서주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얼마나 성경을 가까이 합니까? 스스로 양심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3장 1절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우리도 담대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범사에 하나님을 양심적으로 섬길 수 있는 축복이 오늘 우리와 같이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이 연말을 당해서 우리가 1년을 거의 다 살았는데 양심적으로 내 생활, 가정 생활, 교회 생활, 국민으로서의 생활, 직장 생활, 이 모든 방면을 한번 살펴보면서 회개할 것을 회개하고 고칠 것을 고치고 깨달을 것을 깨닫고, 그리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옳게 할 수 있는 저희들 될 수 있도록 이 시간 성령으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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