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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7:54-60/ 순교자의 신앙 /한경직 목사 2014-08-24 21:10:35 read : 13374
새해 둘째 주일 아침에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위에 충만히 임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지금은 사실 강단에 서기가 어렵지만 그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기억하시기 위해서 오늘 아침 이 자리에 섰습니다.
먼저 이미 읽은 성경 가운데서 사도행전 7장 60절을 다시 봉독합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 말씀은 순교자 스데반이 남긴 최후의 말씀이올시다.
과거 수년간 한국 교회는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어 인천에 선교 기념탑, 양화진에 외국인을 위한 기념 예배당, 등촌동에 실로암 안과 병원 등을 설립하고, 최후로 본 교회 정이숙 권사께서 바친 용인에 있는 10만평 대지 위에 순교자 기념관을 짓게 되었습니다. 작년 12월께 봉헌식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본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본 교회와 또 여러 교우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순교자 기념관을 지으면서 본인은 여러 번 순교자의 신앙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성경에 기록된 대로 순교자 아마 첫 순교자 스데반의 신앙을 회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오늘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순교자의 신앙은 언제나 어떤 환경에서나 하늘의 영광을 보는 신앙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이렇게 사도행전 7장 55절에 기록하였습니다. 스데반은 무리들이 돌로 치는 그 위기에서 그 마음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과 그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의 신앙의 눈은 하늘나라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하늘나라의 영광을 보는 신앙이야말로 얼마나 귀합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121편 첫절을 여러분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이 시인은 사방에 둘린 산을 볼 때에 산만 본 것이 아닙니다. 이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또한 본 것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시편 19편 1절로 4절입니다. 다윗도 그의 신령한 눈이 열려 대우주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과 그 능력을 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가운데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읽노라면 종종 “내가 보니” 이와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본다는 말은 육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령한 눈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비록 외롭게 밧모섬에 그 몸은 머물러 있었으나 그 신령한 눈이 열려서 하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순교자 스데반도 육신적으로 가장 어두운 순교 순간에 그의 신령한 눈이 열려서 하늘의 보좌와 그 옆에 서신 주님을 보신 것입니다. 모든 순교자들, 아니 모든 성도들도 이렇게 신령한 눈이 열려서 하늘의 영광을 보면서 살 수 있으면 이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습니까?
“내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 시편의 한 기자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아마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기도는 필요할 줄 생각합니다. 새해에 신령한 눈이 열려서 세상에 살지만 하늘의 영광을 보면서 사는 축복이 우리 모두와 같이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로, 순교자의 신앙은 언제든지 그의 영혼을 예수님께 바치는 그런 신앙이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에 그의 순교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스데반은 그 영혼을 주 예수께 바치셨습니다. 이것이 스데반의 죽음이올시다.
인간이 세상에 살 때에는 육신과 영혼이 같이 삽니다. 영혼이 육신을 사용하며, 말하자면 지배하면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속 사람 또는 겉 사람으로 분간하여 가르쳐 주는 데도 있습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이 두 사람이 다 건강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육체의 건강에 대하여 주의합니다. 적당한 의복, 적당한 음식, 적당한 주택 등 세심한 주의를 합니다.
또 현대과학이 발전될수록 우리의 외적 생활을 편리하게 하여 줍니다. 주택과 교통과 일반 생활에 편의를 도모하여 줍니다. 요사이는 환경문제에도 많은 주의를 세계 사람들이 하게끔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 그리고 일반 음식물에도 주의를 합니다.
그런데 또한 우리의 현실은 이렇게 주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겉 사람 곧 육체는 성경 말씀대로 점점 후패하여지게 마련입니다. 아무리 젊었다고 할지라도 병이 들게 되면 육체는 약하여집니다. 또 아무리 건강하다고 하여도 나이 많아 늙어지면 점점 약하여지고 맙니다.
그리고 또 이 세상에는 종종 예기하지 못한 일들이 날마다 일어납니다. 불의의 화재, 교통사고, 공장의 여러 가지 사고 등 사실 오늘 살았다고 하지만 우리 육체는 언제 파괴될지, 언제 최후가 올지 우리는 모르고 삽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런 말씀으로도 우리를 깨우쳐 줍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장 14절에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물론 우리의 육신의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이렇게도 가르쳐 줍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이 사실도 지적합니다.
우리의 속사람 곧 우리의 영혼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늘 부르는 찬송가의 가사와 같이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우리의 영혼은 죄의 짐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만은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더욱 경건하여져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언제나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사랑과 화평과 모든 성령의 열매로써 넘쳐야 합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최후가 올 때에는 우리는 이러한 영혼을 주 예수께 바쳐야 합니다. 성도의 죽음은 그 영혼을 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교자의 신앙입니다. 또 사실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주께 속합니다. 그러므로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불멸의 생을 우리 영혼은 주 안에서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순교자의 신앙이요, 모든 역대의 성도들의 신앙입니다.
셋째는, 남을 용서하면서 사는 것이 순교자들의 신앙입니다.
이미 우리가 읽었지만 사도행전 7장 60절에 스데반은 최후로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것이 순교자 스데반의 최후입니다. 순교자 스데반의 최후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역시 십자가 위에서 드린 기도와 꼭 같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는 예수님의 기도를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꼭 예수님의 기도와 같습니다.
한번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와 이러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곧 대답하시기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장 22절 읽어 보세요.
순교자 스데반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를 돌로 쳐 죽이는 그들의 죄를 다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순교자의 신앙입니다. 이것이 모든 참된 성도들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은 여러 가지 문제로 아직 고민하고 있습니다. 소위 5공문제니, 광주문제니, 노사문제니, 여러 가지 문제로 시달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분명히 기억하여야 될 것은 이 용서의 정신이 없으면 그 사회에는 화평이 없습니다. 어떠한 문제이든지 해결되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물론 우리 국민 모두가 순교자 스데반의, 아니 우리 주님의 이 용서의 정신을 본받아야 개인의 생활은 물론 우리 사회가 좀더 화평하고 명랑하여질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1990년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90년대 곧 앞으로의 10년은 장차 올 21세기의 준비 기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살고 있습니다. 자유와 민주화의 거센 바람은 실상은 하나님께서 일으킨 바람이올시다. 온 지구를 휩쓸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실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아시아에도 결국 이 바람이 미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에 땅만 보지 말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 땅에서 오늘에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분명히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령한 눈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경륜과 그 비전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겉사람, 육신만 위해서 살지 말고, 속사람을 기억하며 영원불멸의 영혼을 기억하며 우리 영혼이 거듭나고 더욱 경건하여지며 성령이 충만한 사랑과 화평이 넘치는 순교자의 생활을 본받으며 언제나 영혼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참된 신앙생활을 하도록 새로운 다짐을 하여야 될 것입니다.
과거는 과거로 돌리고 원수까지도 용서하시는 우리 주님의 신앙,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아서 나의 가정생활은 물론 교회생활, 아니 전사회생활을, 오직 원수까지 용서하면서 살 수 있는 그리스도와 모든 순교자의 신앙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 새해를 당해서 우리 모두 순교자의 비전, 순교자의 그 용서하는 정신, 순교자의 그 속사람을 언제나 깨끗이 지켰다가 하나님께 바치는 이 신앙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시여, 지금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스데반의 순교의 모습을 잠깐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시여, 우리 모두 이러한 신앙을 본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새해를 당해서 우리의 신령한 눈이 좀더 밝게 하여 주시고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속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을 기억해서 양심적으로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우리는 이 거치른 사회에 살지만 순교자의 정신을 받아서 화평하게 살 수 있는 이 은총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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