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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3:25-33/ 모험적 신앙 : 믿음 / 한경직 목사
2014-08-23 19:47:35   read : 15024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 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十三․三十)

여러분께서는 이 이야기를 다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서 애굽을 나온 후에 시내 광야를 지나오는데 거의 二년이 걸렸습니다.
그 후 바란 광야 가데스라는 곳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이 곳은 가나안 복지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그 곳에서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기 전에 열두 지파의 족장 十二사람을 택해서 먼저 조용히 가나안 복지를 탐지하기 위해서 보냈던 것입니다.

이들이 선발대로 그곳에 들어가 四十일을 지나면서 남으로 북으로 동으로 서로 여러 곳을 자세히 살펴보고 돌아왔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가니 마침 포도가 익었는데 포도가 어떻게나 잘 되었던지 포도 한 송이를 따서 두 사람이 막대기에 끼어 메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밖에도 석류와 무화과와 여러 열매를 따 가지고 돌아온 것입니다. 돌아와서 모세와 여러, 백성들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이 때의 소수파의 보고와 다수파의 보고가 엇갈리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우리가 그 땅에 가 보니 과연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에 분명합니다. 여기 있는 포도는 에스겔 골짜기에서 따온 포도인데 얼마나 잘되었는지 보십시오. 그 곳에도 물론 사는 사람이 있고 성곽도 견고하지마는 우리는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능히 들어가 쳐서 이길 수가 있을 터이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이 땅을 빨리 쳐서 정복하여야 되겠습니다 하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十족장들은 똑 같은 땅을 보고 왔으나 그 보고가 달랐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을 악평하면서, 그 땅은 거미가 삼키는 땅입니다. 또 거기 가 보니 모든 백성들의 신장이 아주 장대합니다. 옛부터 내려오는 거족이라 하는 누빌림의 자손 곧 아낙 자손들이 있는데 모두 대장부요 우리와 비교하면 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우리 소견에 그러니 그들의 눈에는 더할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올라가서 그 백성을 쳐야 절대로 이기지 못 합니다 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이렇게 엇갈리는 보고를 들은 그 때의 무리들은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보다는 열 종장의 말은 신임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밤새도록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애굽을 떠나 여기까지 겨우 왔는데 이제는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오도 가도 못하고 어떻게 한단 말인고 하면서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엇 하러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느냐? 고 따졌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가나안에는 못 들어가고 광야에서 살 수는 없으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모세는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여호와께 엎디어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이 믿지 아니하는 것을 보시고 진노하셔서 그 백성을 광야에서 멸하고자 하였지마는 모세가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로 다시 되돌아 나와서 그 때부터 三十八년이나 광야를 배회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에 애굽에서 나왔던 장년들은 다 죽었습니다. 새로 난 세대와 가나안 복지로 곧 들어가자고 주장하던 갈렙과 여호수아만 三十八년 후에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 과거의 역사적 사실은 오고 오는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큰 교훈이 되는 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잃을 때에 사십 년간이나 광야에서 허비하였습니다.

가나안 복지를 앞에 두었을 때에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었음을 찾아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모험적 신앙을 가지고 전진하자고 하는 사람과 열 족장들과 같이, 그 사람들과 우리와 비교하면 우리는 메뚜기인데 하는 메뚜기 의식에 사로잡혀 원수에게 질린 사람들과 그 때의 많은 민중들처럼 암흑면만 바라보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그것입니다.

가나안 복지에 들어간 사람은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새 세대가 들어갔습니다.

이 진리는 언제나 같은 줄 압니다.

가나안 복지는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어떤 사업을 경영할 때에 성공하는 것으로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민족적으로는 남북의 통일과 이 땅에 자유와 번영의 민주국가를 확립하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영적으로 우리 민족을 복음으로 정복해서 이 땅에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온 아시아를 복음으로 정복해서 기독교 아시아를 이루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또는 교회의 어떤 중요한 사업을 이루는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 생각하든지 가나안 복지를 정복하고 쟁취하는 데는 반드시 난관이 있는 것입니다. 아낙 자손이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방해가 있습니다. 견고한 성들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열 족장과 같은 이들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난관을 당할 때에 그것을 과대 평가합니다. 자기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 합니다. 그래서 메뚜기 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겸손 이 아닙니다. 이것은 비겁한 마음이올시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가나안 복지를 그들에게 주려고 하신 것이었지만 이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또한 이들은 겁에 질려서 하나님의 권능도 잊어 버렸습니다.

그 백성을 애굽에서 속량해 내시고 많은 난관 가운데서 시내 광야를 지나오게 하신 하나님의 권능도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밤길을 갈 때에 바위를 보고도 호랑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기억하시지요? 밤에 갈릴리 바다를 지나가던 제자들이 물결이 요동할 때에 겁에 질려서 예수님께서 물위로 걸어 자기네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요물이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밀림 지대를 지나가던 어떤 두 청년이 갑자기 발 뿌리에서 개구리 소리가 나니까 사자소리 인 줄 알고 혼비백산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왜? 겁에 질렸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에 이런 사람들이 성공한 예는 하나도 없습니다.

마틴 루터가 이런 사람이었다고 할 것이면 종교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웜스 국회에 출석하라고 하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가려고 준비할 때에 가까운 친구들은 그렇게 위험한 곳을 어떻게 가겠느냐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의 대답은, 비록 마귀가 웜스 국회 의사당의 기와 장 같이 많을 지라도 나는 가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순신 같은 장군이 이런 마음이 있었다고 할 것이면 적은 수를 가지고 많은 왜적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겁을 집어먹는 사람이 이루어 놓은 일은 도무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 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고, 주님께서 같이 하시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참된 신앙은 공포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참된 신앙은 모든 공포심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또 이 때의 많은 무리들처럼 낙심하는 사람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들은 광명면에 대한 얘기는 듣지 아니하고 암흑면에 대한 얘기만 듣고 암흑면만 바라본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었지마는, 그런 보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삼킨다는 말만 귀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뜻도 잊어버린 것입니다. 무엇 하러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내서 거기까지 인도하였나 하는 하나님의 듯도 잊어버린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흔히 원망합니다. 이런 이들은 흔히 뒤를 돌아봅니다. 낙심합니다. 낙심한 사람이 성공한 예는 동서고급에 하나도 없습니다.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할 때에 많은 선원들은 반대하였습니다. 낙심해서 원망했습니다. 콜럼버스까지 낙심하였다면 새 대륙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욥이 그 많은 환난 가운데서 낙심하였다면 최후의 큰 축복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낙심한 사람이 성공한 예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광산을 찾아보는 과학자들이 어떤 산에 가보니 거기서 꼭 금이 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 산을 파면 반드시 금이 나겠으니 파보자고 해서 산을 팠습니다.

그런데 조금 파다가 보니 어떤 사람이 파 보았던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퍽 이나 많이 팠으니 계속해서 좀더 파자고 하면서 옛 광산 하던 자리를 파보았는데 한참 파다 보니 큰 곡괭이가 박혀 있는데 그 자루가 다 썩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니 아주 오래 전에 광부들이 그 곳을 파보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광부들을 동원하여 계속하여 팠습니다. 그런데 그 곡괭이가 묘하게도 금만 있는 노다지 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깊이 곡괭이가 박히니 그 광산 하던 사람이 뽑아 내지를 못하고 낙심하여 돌아간 모양입니다. 거기를 계속해서 파니 많은 금이 나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교훈 하여 주십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피곤해도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했습니다.

주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끝까지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복지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이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갔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이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아낙 자손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거대한 아낙 자손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견고하고 높은 성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몇 가지 더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보았습니다. 이 땅을 우리 백성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깊은 뜻임을 그들은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을 알고 또 믿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자손들이 있지마는, 아무리 성곽이 높지마는 하나님의 뜻이 같이 하실 때에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하는 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을 모험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험한 것을 무릅쓰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이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은 겁을 내지 아니합니다. 이런 사람은 공포심을 극복합니다. 이런 사람은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이런 사람은 용감하고 담대해집니다. 적극적으로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이가 가나안 복지를 쟁취하는 것입니다. 모험적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에도 여러 가지 난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모험적 신앙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담대히 대서양을 범선으로 건너서 새 대륙을 발견하고 위대한 아메리카를 건설한 청교도들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보통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험한 것을 무릅쓰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이것이 혈혈단신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건너가서 탐험하며 복음을 전파한 리빙스톤의 신앙입니다. 험한 것을 무릅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아무 선교부의 후원도 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중국 내지(內地)에 담대히 들어가서 내지 선교회를 조직하고 복음을 전파한 허드슨 테일러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모험적 신앙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것이 역시, 홀로 아프리카 정글 속에 들어가서 일생토록 흑인의 병을 고쳐주며 봉사하던 알버트 슈바이처의 신앙이기도 합니다. 험한 것을 무릅쓰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지 아니하는 신앙은 가나안 복지를 쟁취하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나 교회 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이 모험적 신앙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청년 여러분들, 보람있는 생을 원하면 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신앙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잔잔한 바다는 아닙니다.

때때로 파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험한 것을 무릅쓰고 나가는 신앙이 참된 신앙인 것입니다. 죽음은 최대의 모험이올시다. 이런 신앙을 가진 이라야 사실 하늘나라에도 가는 것입니다.

지난번 아폴로 九호와 十호의 우주인들에 대한 기록을 자세히 읽어보니, 아폴로 九호를 타고 달을 돌던 우주인들이 달을 돌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 기도가 땅에까지 방송되었다는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이번에 아폴로 十호를 타고 달에 가까이 갔던 우주인 한 사람은 특별히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자기가 평소에 잊지 않고 기억하던 성경 구절을 전해 달라는 방송을 하였다는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이들도 이런 신앙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달을 정복하는 데도 이 모험적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민족적으로, 영적으로, 육적으로, 정복해야 될 가나안 복지가 있습니다. 이 가나안 복지를 점령할 수 있는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모험적 신앙이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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