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5년 05월 24일 (토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효과적인 설교 시간과 방법 / 교회 공적 예배에 후보 인사 시키지 말아야               美 대법"트랜스젠더 군 복무 금지 행정명령, / 일영연수원으로 옮긴 기감               카이캄, 51회 134명 목사안수식 / 4페이지 설교법               지구촌교회 담임목사에 김우준 목사 청빙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명성교회에서               빗속에서도 울려 퍼진 부활의 기쁨 / 지구촌교회 제4대 담임 후보에 한인 목회자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 '무장공비→ 목사' 김신조 별세 / 이재명 지지율 1위               헌재 전원일치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 /교회 건물 명의만 소유했던 목사…법원               산불 피해 한국교회 지원 총력 / 고령 교인 10명 중 6명               기독교인 수, 감소 멈추고 안정세 /일제 침략으로 예수 믿었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이마에 십자가 인터뷰 출연              

  홈     ,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Home > 기사메일보내기


제목
받는 사람 이름
받는 사람 Email
보내는 사람 이름

cancel


출20:1-17/ 제일 계명:유일신 하나님 / 한경직 목사
2014-08-23 19:44:49   read : 11732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출 20․1-2)

마가복음 十一장 二十二절에는『하나님을 믿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十二장 六절에는『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나니 대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 사도신경은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하나님을 믿는 것은 신앙의 제 일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계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 믿습니다. 그것은 다만 이론적 근거에 의지함이 아니고 성령의 감화에 의지해서 직각적으로 알게 되는 까닭입니다.

서반아의 유명한 철학자 우나무노의 말과 같이『나는 내 친구를 믿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다. 나는 그의 사랑의 순결을 느끼고 그의 보이지 않는 만질 수 없는 손이 나를 이끌어 인도하고 붙들어 주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공통된 체험이올시다. 그러나 시대가 시대이니 만치 우리는 이따금 우리 신앙의 이론적 근거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특별히 현대는 무신론, 유물론적 사상이 세계적으로 팽배한 때입니다.

우리 남한에도 무신론적 실존주의, 인본주의를 교묘하게 소설로 혹은 영화를 통해서 선전하는 때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이론적 견지에서 하나님을 믿는가, 이런 문제는 종교 철학, 조직 신학의 부문에 속하지만 보통 믿는 사람들도 간단히 성경대로 몇 가지 기억할 것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로마서 一장 十九절에 보면『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이를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 다음절에는『창세(創世)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저희 속에 곧 인간의 속에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 주셨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둘째는 만드신 만물 곧 대자연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 주셨다고 성경은 지적합니다.

먼저「저희 속에」곧 인간의 존재 속에 하나님을 어떻게 보여 주셨는지를 잠깐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인간의 도덕성 곧 양심을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잘 기억하는 바와 같이 요한 복음 八장에는 예수님께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데리고 와서 질문을 던진 이야기를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이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 님께 질문하기를 모세의 율법대로 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고 하였는데 선생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하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곧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계셨고 그들은 속히 대답을 하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잠시 후에 예수님은 조용히 머리를 드시고 그들을 향해서『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는 먼저 돌을 들어 저 여자에게 던져라.』그리고는 다시 머리를 숙이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슨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그 동안에 하나씩 하나씩 그 성전 뜰에 모였던 이들이 그 곳을 떠나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내어쫓았습니까. 양심이올시다. 양심의 가책으로 그들은 그렇게 떠난 것입니다. 양심은 우리에게 옳다 그르다는 판단을 하여 줍니다. 옳은 짓을 하여라, 옳지 않은 것은 하지 말라고 명령까지 합니다. 또는 어떤 것은 우리에게 잘했다, 어떤 것은 잘하지 못했다고 책망까지도 하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우리 자신에게 들려 오는데 이 음성은 어디서 오는 겁니까, 누가 이 말을 합니까,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양심을 통하여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유명한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습니까.

『하늘에 별이 있고 인간의 속에는 도덕적 뜻이 있고 양심이 있다.』 이 양심의 명령은 지상 명령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철학적 합리적 이론으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확실히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와 같이 실제적 도덕적인 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할 수 없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양심은 첫째로 하나님의 계시오, 둘째로 이 하나님은 도덕적 하나님 곧 공의의 하나님인 것을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또한 둘째로 우리 인간의 속에 어떤 면이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간 사회에는 어디를 가나 종교가 있습니다. 다만 짐승의 세계에서만 종교가 없습니다. 중앙 아메리카에 유명한 잉카 문명이 있었습니다. 잉카 문명을 연구하여 보아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은 굉장히 큰절을 지었던 것입니다.

문명과 야만의 정도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마는 인간 사회에는 종교가 있습니다. 어떤 인류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인간은 불치병 적으로 종교적이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인간에게는 종교적 본능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위험할 때에 부르짖습니다. 누구에게 부르짖습니까? 우리 인간의 깊은 속에는 영원에 대한 관념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디서 왔습니까. 인간은 영생에 대한 깊은 동정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디서 왔습니까? 인간에게는 영적인 기갈이 있습니다.

여러분, 짐승은 그저 잘 먹고 누울 자리만 있으면 거기에서 최대의 만족을 느낍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의식주가 넉넉하다고 할 지라도 거기에서 최대의 만족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여기 유물론자들은 그저 경제 문제만 해결하면 인간에게는 최대의 행복이 있으리라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역사를 보세요.

석가여래가 의식주가 부족해서 호화로운 궁중에서 뛰어나와 고행을 했습니까. 성 프랜시스가 큰 부자의 아들로서 평안히 살수가 있었는데 왜 집을 뛰쳐나와 고행을 했습니까. 젊은 톨스토이는 유명한 문학가요 귀족의 아들로서 의식주에 아무런 부족이 없었는데 왜 영적인 고민을 느껴야 했습니까.

여러분, 인간에게는 이 종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만족이 없으면 최대의 만족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인간의 본능에는 그 본능을 만족시켜 줄만한 대상이 꼭 있습니다. 어린 아기가 모태에서 나와서 입을 벌리고 웁니다. 젖 빠는 본능이 아기에게는 있습니다.

왜 입을 벌립니까. 어머니의 젖꼭지가 기다리고 있는 까닭입니다. 식욕이 있으면 식욕을 만족시킬 만한 음식물이 세상에는 있습니다. 성욕이 있으면 성욕을 만족시킬 만한 성의 대상이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모든 본능에는 대상이 있는데 이 종교적 본능에 대해서만 대상이 없을 것입니까? 반드시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계십니다. 왜 풀이 위를 향하여 자라납니까? 태양이 있는 까닭입니다. 밀물이 왜 올라옵니까? 달이 있는 까닭입니다.

플라톤은 일찍이 말하기를「무신론은 영적 질병」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신론자는 사실 영적 환자입니다. 병들게 되면 식욕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여러분, 하나님의 존재를 그 만드신 만물에서 깨달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물론 길게 생각할 수도 있고 깊이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평범한 것 두 가지만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소위 우주론적 논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과의 법칙에 의지한 논증입니다. 누구나 다 인과의 법칙을 믿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부인할 이가 어디 있습니까. 자연 과학도 이 법칙 위에서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습니다. 우주는 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원인이 있습니다. 이 제일 원인은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음으로 우주가 있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처음 움직이신 이가 반드시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엄숙한 선언으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부인하려고 하면 우주가 영원하다고 주장할 수밖에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과학적으로도 사실이 아닙니다. 우주학적으로도 사실이 아닙니다.

우주학적으로도 지구나 천체가 영원히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역사적 시기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구의 연령을 추측해 보지 않습니까. 지구의연령은 대략 三十三억 五천만년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우주의 연령은 약 一백억 년으로 추정을 하는 것입니다.

지질학적으로 생물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생물이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인간도 영원히 있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三장 四절의 말씀과 같이『집마다 반드시 세운 자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의심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신의 배후에도 원인이 있겠다― 는 이론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순 천만입니다. 만일 우주의 배후에 무엇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역시 신일 것입니다.

만일 신의 배후에 무엇이 있다고 한다면 역시 신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은 무한 절대인 까닭입니다. 수학을 공부해 본 사람은 소위「무한대의 관념」을 알 것입니다. 하나를 하나로 제하면 그것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영으로 제하면 그것은 무한대라고 합니다. 이 무한대는 하나를 영으로 제하나, 백을 영으로 제하나, 천을 영으로 제하나 마찬가지입니다. 무한대는 언제나 무한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절대의 무한대의 하나님인 것을 우리는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주를 생각할 때에 흔히 이런 면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목적론적 논거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질서와 고안을 볼 때에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론입니다.

우주는 일정한 목적에 의해서 고안된 것은 분명합니다. 천체에는 조직과 질서가 있는 것도 분명합니다. 태양계나 북극계나 가만히 살펴보면 꼭 이렇게 조직이 되었습니다. 유성들이 자전을 하면서 공전을 합니다. 우리 지구도 유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정한 궤도를 일정한 속도에 의지해서 돌고 있는 것입니다.

천체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질 자체도 그렇습니다. 물질을 분자로 분석합니다. 분자는 또 원자로 분석합니다. 또 원자를 쪼개어 보면 그 가운데는 전자가 있어서 말하자면 작은 원자 가운데도 우주와 같이 핵을 중심으로 해서 뱅뱅 도는 양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자연계에서도 우리는 고안과 조직을 발견합니다. 꽃 한 송이가 있으면 거기에 나비가 날아옵니다. 왜 꽃이 있는 곳에 나비가 날아옵니까. 꽃 속에 꿀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면 꽃은 거저 나비에게 꿀만 제공합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꿀을 제공하는 대신에 나비가 펄펄 날아다니면서 그 웅(雄)에의 꽃가루를 자(雌)에의 꽃술에 섞어 주어서 꽃이 열매를 맺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꽃과 나비는 서로 협동하여 살도록 만들어진 것이 자연계입니다.

동물과 식물도 역시 그렇습니다. 식물의 잉여가 동물의 먹을 것이 됩니다 동물의 배설물이 또는 동물이 내어주는 탄산가스는 식물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물이 어떻게 순환하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물은 수증기가 되어서 공중으로 올라갑니다.

그것이 찬바람을 만나서 비가 되면 다시 땅으로 내려옵니다. 강이 되어서 내려갑니다. 마지막에는 바닷물이 되기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러는 동안에 비가 가늘게 내려서 공기를 맑게 해 줍니다.

가는 비가 내려서 모든 풀과 곡식이 잘 자라고 열매를 맺게 만듭니다. 이 비가 사방에 다 내려서는 산도 깨끗이 씻어주고 모든 것을 씻어 줍니다. 이렇게 더러운 모든 것을 강물이 씻어서 바다로 가져가는데 바닷물을 여러분이 다 맛보셨죠?

아주 짭니다. 왜 바닷물이 짠지 아십니까? 그래야 더러운 것이 소독이 됩니다. 다음에는 바닷물이 다시 수증기가 되어 공중으로 올라가서 이 지구를 돕니다. 순환을 합니다.

이렇게 고안이 되어 있어요. 하나님은 자연계를 만드신 후에 더럽게 내어버려 두시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깨끗이 씻는 제도를 만드신 것입니다. 여러분, 고안은 고안한 자가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고안한 자가 반드시 있어요. 우주의 고안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고 하면 이 우주의 삼라만상은 우연히 되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무슨 이론과 같은가 하면 돌과 나무와 기와를 그저 내어 던졌더니 이 예배당이 거저 지어졌다는 이론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이 있는 인간으로서는 이런 미련한 이야기를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주에 대해서는 이런 미련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기억하세요. 시편 十九편 一절의 말씀과 같이『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穹蒼)은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양심의 하나님이올시다. 사랑의 하나님이올시다. 다 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올시다. 이 하나님이 인간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보내신 것입니다. 스스로 속지 마세요. 하나님은 만홀(漫忽)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여러 가지 죄가 많지만 그 중에 제일 큰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신의 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순천 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順天者興 逆天者亡)고 옛날 성현들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을 분명히 나타내십니다. 신령한 눈이 어둡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선 인간의 속에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만드신 만물에서 또한 하나님의 계심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핑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열 가지 계명 가운데서 첫째 계명은 우리 신앙의 제 일조입니다. 우리는 이 신앙을 굳게 지켜서 내 스스로가 구원을 받고 이 신앙을 전파해서 민족과 동포의 심령을 구원할 것입니다.





admin



프린트하기 독자한마디


이전으로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