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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5:12-17/ 영생의 확신 / 한경직 목사
2014-08-23 17:09:22   read : 1633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一서 五十三)

사랑의 사도 요한은 두 가지 문헌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하나는 요한 복음이고 또 하나는 요한 서신이올시다. 요한 복음을 다 쓰고 二十장 마지막 절인 三十一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한 이 복음을 쓴 것은 이 복음을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을 믿게 하고 또 이 아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요한 복음 다 기록한 후에 여러분께서 조금 전에 읽은 것과 같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즉 요한 一서를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는 것을 알게 함이라는 뜻입니다.

이 요한 서신은 믿는 사람에게 썼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쓴 목적은 이 서신을 읽는 사람들, 예수를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씀입니다.

아마 지금도 그렇지만 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 가운데 영생을 얻은 줄 스스로 아는 이도 있고 또 모르는 이도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으면 이 영생을 얻은 줄 아는 것이 필요한 줄 압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감사하는 생활을 할 줄 압니다. 또 만일 내가 영생을 얻지 못했으면 그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해야 우리가 영생을 얻도록 힘쓰겠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고도 스스로 얻은 줄 알지 못하면 신앙 생활을 하기는 하지마는 그 사람에게는 만족과 기쁨이 별로 없습니다.

무대 선생이 웃는 말로 하는 말씀 가운데 그런 사람도 천당에 가기는 가지만 비유로 말하면 삼 등차 타고 천당에 가는 사람과 마찬가지라 했습니다. 일 등차 타면 편안하게 기쁘게 갈 수 있는데 삼 등차 타도 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괴로운 일이 많습니다.

내가 영생을 얻고도 얻은 줄 분명히 모르고 믿는 사람도 천당에 가기는 가지만 그 사람에게는 만족과 기쁨이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고 내가 영생을 얻고도 이것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까닭에 잘못된 길로 나아가기 쉽습니다.

혹 어떤 사람이 이상한 이론을 주장하면 아 그 이론이 옳은가 하고 따라가기 쉽습니다. 그리해서 오늘날 볼 것이면 오래 믿던 이도 어떤 이는 여호와의 간증자라는 데 따라가는 이도 있고 소위 심령통일교회로 따라가는 이도 있고 여러 가지 이상하게 예배 보는 데 따라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상태에서 이런 일이 생기느냐 하면 내가 아직도 분명히 영생 얻은 것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행여나 어디에 좀더 나은 것이 있는가 생각해서 여러 가지 사이비한 교를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이 첫째로 필요하고 둘째로는 영생 얻은 후에는 우리가 영생 얻은 것을 확실히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자 하면 다음에 몇 가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영생이란 무슨 말인가, 무슨 뜻인가,

둘째는 이 영생을 얻는 길은 어디 있는가,

셋째는 이 영생을 얻은 사람의 생활에 있어서 어떤 증거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이 세 가지를 여러분에게 말할 때 여러분 각각 신앙 체험에 비추어서 내가 영생을 얻었는지 판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영생의 뜻은 무엇입니까? 글자 뜻은 영원한 생명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 뜻만은 아닙니다. 영생이란 말은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께 있는 생명이란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에 가진 생명과 대조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있는 생명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방면으로 우리가 가진 생명과 다릅니다.

첫째로 시간적으로 보면 글자의 뜻과 같이 영원불멸의 생명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은 잠깐이요, 장차 없어지는 생명입니다. 이 하나님께 있는 생명은 영원하고 없어지지 않는 불멸의 생명입니다. 둘째는 진리에 있어 다릅니다.

영생 곧 하나님의 생명은 진리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의 생명이고 하나님은 빛이기 때문에 빛의 생명입니다. 이것이 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명과 대조해 볼 때 대조가 되는 생명입니다. 이 영생은 진리의 생명이요. 사랑의 생명이요 빛의 생명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은 잠깐 동안 거짓되고, 장차 없어질 어두운 생명을 가진 우리의 마음속에 이 영원 불멸의 참되고 사랑이며 빛의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인간 심령 속에 임하게 될 때 그로부터 우리 마음속에 영생이 얻어집니다.

죽을 때에는 이미 얻은 영생이 계속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것은 죽을 때까지 기다려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그 때부터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생의 뜻에 대해서 우리가 이만큼만 기억합시다.

둘째로는 영생을 얻는 길이 어디 있으며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잠깐 되는 인간 생명에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 시작될 수 있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그것은 여러분께서 성경을 읽을 때 잘 알게 됩니다. 요한 복음 三장에 특별히 영생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요한 三장 十五절에『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했습니다. 저는 예수올시다 三장 十六절에『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고 三十六절에『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어 있느니라』했습니다.

五장 二十四절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칩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했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때부터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六장 四十七절에『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질지니』했습니다.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가졌다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였습니다.

영생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만 영생을 얻습니다. 어찌하여 예수를 믿음으로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요한 一서 一장 二절에『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 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했습니다. 나타내신 바 된 자는 누구 신지 아십니까? 그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생명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 생명이 육체를 입으시고 인간 사회에 오셔서 하나님의 생명이 어떠하고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육신을 입으시고 보여 준 이는 한 분뿐인데 예수입니다. 우리가 그를 들었고 보았고 우리가 그를 만져 보았다고 하는 것은 예수를 보고 예수를 만져 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제가들은 다시 말하면 영생인 하나님의 생명이 인간에게 임한 것을 친히 만져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어떠한지 많은 선지자들이 설명하려고 애썼습니다.

마지막으로 친히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오셔서 하나님의 생명이 이떻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데 누구를 믿음으로 얻는가 하면 이렇게 하나님의 생명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를 믿어야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 믿는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믿고 안다는 것, 즉 시인하고 믿고 인정한다는 뜻으로서 우리의 머리로써 예수는 어떤 분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예수께서 어떻게 오시고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으시고 어떻게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었는가 하는 것을 단순히 머리로 생각하는 것도 보통으로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의 첫 걸음이올시다. 믿음이 거기 그치면 영생은 얻지 못합니다. 성경에 보면 마귀도 그와 같은 믿음은 가졌다고 했습니다. 마귀가 우리보다 하나님에 대하여 예수에 대하여 더 잘 압니다. 단순히 아는 것만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첫 걸음입니다.

믿음의 둘째 의미가 있습니다. 신탁입니다. 그것은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고 의지하는 뜻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인간에게 임한 그런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런 줄 믿어 압니다. 믿고 알뿐더러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영생이요 나에게 생명을 주시니까 그분을 알뿐더러 그분을 의지해야겠습니다.

예수께 온 몸과 마음을 맡기를 신앙, 내 온 생명을 주님께 맡기니 주님께서 맡아서 주장해 주시고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내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고 다스려 주시니 주님 뜻대로 이루어 주소서 하고 온전히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성가대에서 부른 찬송『구주 예수 의지함이 심히 기쁜 일일세』의 의지하는 믿음, 그 의지는 믿음에 이르게 될 때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알고 그에게 온전히 내 심령을 의탁하게 될 때에 자연히 과거의 죄를 회개하게 되므로 그것을 회개라 하고 그렇게 되면 온전히 과거의 생활이 변하게 되므로 그것을 영적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와 같이 되면 온전히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다시 말하면 예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오므로 그것을 중생이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생 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 알고 그에게 온전히 우리의 전 생명을 의탁하고 온전히 우리 죄를 회개하고 그에게 맡기고 주님의 은혜의 역사에 온전히 우리의 일생을 의탁하게 되는 그 순간부터 새 생명이 계속하게 되고 그 때부터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 중생의 경험은 사람에 따라서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 경험이 갑자기 옵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경험을 잘 압니다. 아무 때 회개하고, 그 때부터 영생 얻었다고 잘 압니다. 가령 사도 바울 같은 이, 다메섹에 가다가 갑자기 그런 경험을 얻었습니다.

또 빌립보에서 간수 같은 이, 사도 바울을 만나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으리이까? 고 물고 이에 대해 예수를 믿으라는 권면에 의해 구원을 얻은 경험은 갑자기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이 경험이 천천히 옵니다.

여기 열두 사도가 믿은 경험은 갑자기 온 것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접촉함에 따라서 천천히 온 것 같습니다. 여기 오늘날도 특별히 믿는 가정에서 자라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우고 점점 종교교육에 의해서 자라난 사람은 이 경험이 갑자기 오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언제 내가 이런 경험 얻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유해 말하면, 가령 고치 속에 있는 번데기가 점점 변해서 나비가 됩니다. 점점 날개도 자라고 수염도 나고 해서 번데기가 나비가 됩니다.

그러나 나비가 다 된 후에는 한 번은 아무래도 그 고치 구멍을 뚫고 나옵니다. 아무리 천천히 되지만 나비가 다 되면 그 고치 구멍을 뚫고 나와서 맑은 공기를 먹으며 공중에 날아다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가정에서 자란 청년들도, 번데기가 천천히 나비가 되어서 고치 구멍을 뚫고 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죄악 가운데 있다가 갑자기 되지는 않지만 한 번은 온전히 생활이 변하는 그 단계가 있는 것입니다.

제 경험을 말해서 미안하지만 제가 九세부터 믿었습니다. 믿는 소학교, 믿는 중학교, 믿는 대학교를 다니고 제 경험을 볼지라도 종교교육이 점점 장성한 것을 압니다. 한 번은 제가 二十二세 때에 구미 포에 가서 어떤 달밤에 홀로 산보할 생각이 나서 바닷가에 가서 홀로 산보하다가

그날 저녁에 특별한 은혜 받아서 그날 저녁 모래 위에 꿇어앉아서 온전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던 그 시간을 내 일생을 통해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온전히 여러분의 일생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 의탁한 그런 경험이 있는 분은 누구든지 영생을 얻었습니다.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경험 얻은 분도 종종 의심하면서 걱정하는 분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걱정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온전히 우리 신교에서 성경을 배우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진리는 여러 번 배웠지만 아직까지도 옛 율법 사상,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암만 해도 영생 얻은 것 같지 않아 내가 여러 가지 계명을 범하고 지금도 자꾸 죄를 범하고 있으니 암만해도 영생 얻은 것 같지 않다 합니다.

분명히 들으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외롭다 함을 얻고 영생을 얻습니다. 행함으로 얻는 것 아닙니다.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사람이 세상에는 없다고 성경에 말했는데 여러분은 얻을 것 같습니까? 그러니 오해하지 마세요. 행함으로 얻는 것 아닙니다. 선행으로 얻는 것 아닙니다.

도덕적 생활로 얻는 것 아닙니다. 둘째로 어떤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중생 경험은 반드시 어떤 이상한 체험이 등반하는 줄 오해합니다. 그런 체험을 동반하는 사람이 있지만 안 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중생을 하려면 꿈에 이상함을 본다든지 비몽사몽간에 이상한 환상을 본다든지, 온몸에 불같은 뜨거움을 경험한다든지 하여야 중생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 절대로 아닙니다. 감정이라는 것, 너무 의지하지 마세요. 우리 감정이란 기후와 같습니다. 기후는 오늘도 몇 번 변했습니다.

오늘 새벽 기도회 끝마치고 나오니까 동편 하늘이 환하여 제 생각에 오늘은 좋은 날씨로구나 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三十분도 못되어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기후는 언제든지 변하는 것입니다. 맑았다가 갑자기 비오고, 비오다가 또 맑아집니다.

우리의 감정도 그렇습니다. 기쁘다가도 조금 어떻면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고 슬퍼지고, 슬프다가도 웃곤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는 요즈음 죽었으면 천당에 가겠는데 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기분으로 천당 가는 줄 압니다.

기분으로 천당 가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알고 그에게 내 생명을 의탁만 했으면 기분은 좋던지 나쁘던지 천당 갑니다. 그것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영생은 이미 얻었습니다. 감정 상태로 판단하다가는 우리가 언제든지 실수하기 쉬운 것입니다.

둘째로 영생 얻는 길은 하나님의 생명을 친히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온전히 의지하는 그 때부터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이렇게 영생 얻은 사람에게는 증거가 있습니다.

셋째로 어떤 증거가 내 마음에 잇느냐 하면, 요한 一서에 이런 증거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세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요한 一서 三장 九절에『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 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서 났음이라』했습니다.

여기 중생한 사람은 죄는 짓지 아니하는데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읽을 때 낙심합니다. 중생한 사람, 영생한 사람, 죄는 짓지 아니한다고 하는데 나는 죄를 짓고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본문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여기에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은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어떤 죄가 죄인 줄 뻔히 알면서도 계속해서 그 죄를 또 짓고 또 짓고 계속해서 짓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요한 一서 一장 八-九절을 보면『만일 우리가 되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 했습니다.

누구든지 죄가 없다고 하면 그는 스스로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 와서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영생 얻는 사람은 죄를 도무지 짓지 아니하느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죄를 범합니다. 다만 어떤 죄만 범하지 않는가 하면 죄인 줄 분명히 알면서 그냥 계속해서 짓지 아니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 얻은 사람의 한 가지 증거는 죄를 지으면 그 죄를 곧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습니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은 사람은 아픈 줄 모릅니다. 신경이 마비되어 아픈 줄 모릅니다. 산 사람은 아픈 줄 압니다.

영생 얻은 사람과 얻지 못한 사람과의 분간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생 얻지 못한 사람은 큰 죄 가운데 빠졌어도 그것이 죄인 줄 모릅니다. 회개할 마음이 없고 계속해서 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곧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습니다. 그것이 다른 점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가만히 내 생각을 검토해 보고 성경 말씀이 분명히 가르치고 또 내 마음에 그것이 죄라고 가르치는 데도 불구하고 그 죄를 회개 안하고 그냥 품고 있으면 그것은 무슨 증거인가 하면 내가 영생 얻지 못한 증거입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든지 내가 곧 알고 회개하면 그 죄를 지었지만 그 사람은 영생을 얻은 사람으로서 그 사람은 점점 거룩한 데 나아가는 도중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二장 二十九절에『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 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했습니다. 우리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은 의로우시니까 의를 행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영생 얻은 사람의 둘째 증거는 마태 五장에 여덟 가지 복 가운데서 예수 님이 말씀했듯이 의에 주리고 목마름같이 사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든지 어떤 때이든지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도 이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생각하고 명예 지위를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도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안전보장이란 말을 흔히 하지만 안전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이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든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면 그것은 무슨 증거인가 하면 내가 여생 얻은 증거입니다.

꼭 의로운 대로 행한다는 말 아닙니다. 실패합니다. 약해서 실패하고 환경에 눌려서 실패하고 여러 가지 원인으로 실패합니다.

내 심중에 가만히 생각해서 이것이 옳으냐 그르냐 어떻든지 의로운 생활 어떻든지 옳게 작정한 삶을 옳게 살아보겠다고 하는 간절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 그것이 곧 새로운 생명이 우리 마음 가운데 중생 함을 받아서 점점 의로운 것을 향해 올라가는 증거입니다. 그것으로써 우리의 생활을 시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한 가지 더 설명합니다. 三장 十四절에『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했습니다. 영생 얻은 사람은 그 마음속에 사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형제를 미워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일시적으로 성날 때는 누구든지 미워합니다. 우리 가족도 미워하고 때로는 아들과 딸까지 미워하고 일시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할 때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형제를 미워한다는 말은 그렇게 미워한다는 것 아닙니다. 계속해서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형제로서 어떤 사람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원한과 원심을 품고 원수 갚을 생각을 가지고 미워한다면 그 사람은 영생 얻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있다고 하면 사랑이 우리 마음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고 다른 사람을 용납해 주고 어떻든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려고 하는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우리 마음가운데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어떤 사람에 대하여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계속해서 미워하면 성경 말씀과 같이 마음으로 살인하는 자입니다. 마음으로 살인하는 자 속에는 영생이 있지 아니한 것을 알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이 일시 남을 미워하는 마음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요 곧 잘못된 것을 깨듣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남을 미워하면 우리 마음 가운데 영생이 없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을 얻는 자에게는 세 가지 증거가 그 마음가운데 있습니다.

첫째로 계속해서 그 마음가운데 죄 짓지 아니하고 만일 죄를 범했을 경우도 곧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어떤 일을 당하든지 항상 하나님의 뜻과 의를 생각하고 언제든지 그 나라와 의를 생각해서 의를 사모하는 마음이 우리 마음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형제를 계속해서 미워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나에게 손해를 주었다고 하더라도 용서하고 내가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있는 마음 이 세 가지가 영생 얻은 사람의 증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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