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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1:1-7/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경직 목사
2014-08-23 08:40:35   read : 16292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十一․六)

우리 믿는 사람들이 따라야 할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신경, 둘째는 주기도문, 셋째는 십계명이올시다.

주기도문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표준으로 가르쳐준 말씀입니다. 열 가지 계명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행동기준이올시다. 어떤 것은 하고 어떤 것은 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사도신경에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내용을 가르쳐 줍니다. 사도신경이라고 하는 뜻은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는 뜻입니다. 혹은 사도들의 신조라고 하는 뜻입니다. 물론 오늘날 여러 교파가 많고 그들의 신앙고백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옛날로부터 오늘날까지 신구교파를 막론하고 온 교회가 다 받아들이는 신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배 때마다 외우는 사도신경이올시다. 이 사도신경은 신조 가운데 가장 오랜 신조입니다. 또 모든 신조의 기초가 되는 신조입니다.

주후 四세기에 루키너스라고 하는 학자가 사도신경에 대한 주석을 썼습니다. 그 서문에 보면, 사도들이 성령을 충만히 받아 처음에는 예루살렘을 중심하여 전도하다가 주님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순복(順服)하기 위해서 온 천하 사방으로 흩어지기 전에 이 신경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전설이 얼마나 확실한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이 사도신경은 주후 一00년쯤 되어서 온 교회에서 다 신조로 채용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조 가운데 가장 오랜 시조입니다.

또 이 신조가 사도들의 신앙을 그대로 표현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의 내용이 모든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표준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금년 여름 몇 주일 동안 계속해서 사도신경의 내용을 하나씩 차례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미 말씀한 대로 이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 표본으로서 마땅히 잘 배워야 합니다. 제가 바라기는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제 一조가 무엇입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 하는 것이 사도신경의 一조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말씀 가운데도, 하나님께 나아간 자는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우리 신앙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구절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는 줄 압니다. 첫째로 이런 진리는 자명(自明)의 진리올시다. 스스로 분명히 나타나는 진리입니다.

또 하나는, 이 성경이 쓰일 때는 거의 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던 때입니다. 그러나 그 때도 안 믿는 이가 혹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 十四편 一절에 볼 것이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하는 구절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현대로 말하면 그렇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문자 그대로 말세올시다. 이런 어리석은 자가 많습니다. 무신론자도 많아졌습니다. 소위 사신론(死神論)이라는 참람(僭濫)된 말을 하는 사람도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악이 극도로 팽창한 시대입니다. 사탄이 남은 날이 많지 못한 것을 알고 극단의 난동을 부리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어찌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를 믿습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짐승과 달리 소유한 세 가지 특별한 보배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성, 둘째는 양심, 셋째는 우리 속에 불멸의 영혼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견지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사색하고 추리합니다. 연구합니다. 그래서 발전도하고, 발명도 합니다. 창조적 활동도 합니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됩니다. 문화가 창조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이성을 통한 활동들입니다.

이런 이성 있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사는 대우주를 바라보세요. 해는 매일 아침 동편에서 솟아올라서 매일 저녁 서산으로 넘어갑니다. 아침에는 언제나 날이 밝아지고 저녁에는 언제나 어두워집니다. 달은 언제나 음력 보름에 만월이 음력 초순에는 언제나 일정하게 들어왔다 나갔다 합니다.

지금은 뜨거운 여름이올시다. 그러나 얼마 있으면 서늘한 가을이 올 것입니다. 그 후에는 추운 겨울이 올 것입니다. 다음에는 따스한 봄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다시 여름이 올 것입니다. 춘하추동의 四계는 변치 아니하고 순환합니다. 여러분, 천문학자의 말을 듣지 않고도 이 우주는 고안이 있는 우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팔레이라는 사람의 유명한 시계에 대한 얘기를 아시지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어떤 분이 들에 산보를 나가다가 발에 부딪치는 것이 있어서 주워 보니 회중시계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것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보니 둥그렇고 크고 작은 바늘이 뱅뱅 돌아갑니다. 뒤를 뜯어보니 바퀴가 있어서 돌아갑니다. 그 사람이 그것을 보고하는 말이 "이걸 누가 만들었을까?"라고 했습니다. 시게와 같이 질서와 고안이 있는 물건을 보고는 이것은 누가 만들었나 하고 만든 이가 있음을 즉각적으로 알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대우주는 하나님의 큰 시계입니다. 다 돌아갑니다. 유성이 항성을 따라 돌아갑니다. 이 큰 시계를 만든 이가 없겠습니까?

그래서 성경 창세기 一장 一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렇게 큰 시계를 만든 이는 필연 전능이 많은 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로마서 一장 二十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이성이 있는 인간으로서 이러한 우주를 보면서 이런 우주를 만든 이가 없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둘째로 우리 인간의 속에는 양심이 있습니다. 무엇은 하라 무엇은 하지 말라고 하는 양심이 있습니다. 칸트의 말대로 지상명령을 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현대인들 가운데 이 양심을 후천적 원인으로 혹은 사회적, 문화적 환경, 교양 같은 것으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 실패했습니다. 다소 후천적 요소가 있기는 하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양심은 선천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의 유명한 스토이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람이 날 때에 선천적으로 음악이나 기하학의 지식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는 없다. 그러나 누구나 도덕적 의식은 다 가지고 태어난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 양심이 어디서 왔습니까?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별, 내 속에 있는 도덕적 율법, 이 두 가지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한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말하여 줍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율법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양심은 우리 속에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배후에 있는 대 양심이올시다. 하나님은 우주의 도덕적 대 주재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를 도덕적 주재자라고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셋째는 우리 인간에게 짐승과 아주 다른 영혼이 있습니다. 불멸의 영혼이 있습니다.

제가 지난 토요일에 수유리를 가는데 그 곳에 서커스단이 왔습니다. 앞에 보니 큰 코끼리도 한 놈을 매놓았습니다.

미국에 가 있을 때에 서커스구경을 가끔 갔었는데 가보면, 짐승들이 여러 가지 재주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짐승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예배당 지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았습니까? 아마 못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란 아무리 야만이라고 해도 아무리 미개한 아프리카의 어디나 남양군도의 어디라고 해도 자기 있을 집만 짓지 않고 신전을 반드시 지었습니다. 이것이 짐승과 다른 점입니다. 왜 그런 일을 합니까? 인간이란 그 속에 영혼이 있는 까닭입니다. 이 사실은 인간의 종교적 본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도 급할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전에 안 믿는 이와 만나서 한 번 얘기할 때 그가 하는 말이, ꡔ나는 하나님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삼팔선을 밤에 몰래 넘어올 때는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ꡕ 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속에는 종교성이 있습니다. 종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우리 이간에게는 종교적 본능 외에도 여러 가지 본능이 있지요. 본능이 있으면 그 본능을 만족시킬 만한 대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배고프면 먹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어린애가 젖을 빨고자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젖꼭지가 있습니다. 먹을 것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다 사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혼자 살기를 싫어해요. 그래서 여러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들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점점 자라서 十七, 八세가 되면 없던 본능이 나타납니다. 성적 본능이 나타납니다. 그 성적 본능도 만족시킬 만한 이성이 있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본능이 있으면 그 본성을 만족시킬 만한 대상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인간에게 이 종교적 본능이 있는데 이 본능을 만족시킬 만한 대상은 없겠습니까? 그럴 리는 없습니다.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그 대상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먼저 계시니까 우리 인간에게 이런 본능이 생긴 것입니다. 햇빛이 위에 있으니 풀과 나무가 위를 향하여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므로 이런 본능이 생긴 것입니다. 인간의 심령 속에 영적 기갈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신 까닭입니다. 짐승은 먹을 것이나 배불리 먹고 평안히 누울 자리만 있으면 만족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집 없을 때는 집을 찾지 마는, 의식주가 아무리 넉넉하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인간이 심령이 만족하지 못합니다.

시편의 한 저자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渴急)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이 다 만족하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심령은 하나님을 찾기 전에는 언제나 한 구석에 허무감이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모릅니다. 왜 이렇게 부르짖어요? 그것은 영혼이 있는 까닭입니다. 이 영혼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웅변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입니다.

전에 헬라의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은 「무신론자는 영적 환자」 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무리 태양이 밝지마는 눈먼 소경에게는 태양이 뜨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존재를 우주를 통해서, 그리고 인간을 통해서,

여러 성도들을 통해서 계신 것을 나타내지만 어떤 사람은 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모릅니까? 그들은 눈이 멀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눈이 가리워 젓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무신론이라고 하는 것은 부정적 관념이올시다. 우리 관념 가운데 긍정적 관념과 부정적 관념의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가령 밝다 하는 것은 긍정적 관념입니다. 어둡다 하는 것은 부정적 관념입니다.

참되다 하는 것은 긍정적 관념, 거짓되다 하는 것은 부정적 관념입니다. 이부정적 관념이 어디서 생겼는지 아십니까? 긍정적 관념이 있기에 생겼습니다.

즉 부정적 관념이란 긍정적 관념의 부산물입니다. 빛이 있기에 어두운 관념이 생겼습니다. 참이 있기에 거짓의 관념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기에 무신론의 관념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이라는 관념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게신 것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輕蔑)히 여기리라." 어떤 때는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속지 말아라. 하나님은 만홀(漫忽)이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심은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우리 동양의 성현도 순천 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順天者 逆天者亡)고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옳게 살수가 잇습니까? 여러 가지 죄가 많지마는 모든 죄 가운데 제일 일 큰 죄는 불신의 죄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왜? 아무리 죄가 많지 마는 하나님을 믿고 그 죄를 회개하면 용서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설사 아무리 죄가 적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면 근본적으로 그 죄를 용서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리라." 아마 우리 한국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공산당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존재를 거의 다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머리로 믿는다고 하는 관념만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으로 알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명령을 지키지도 아니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와 같이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에게는 진노가 있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사실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것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 명령을 순종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에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을 내가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정말 압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신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압니까? 그러면 마땅히 그를 공경할 것입니다.

사실 그렇다고 하면 그런 사람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무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사실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오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의 공포심이 다 사라졌습니까?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를 안다고 할 것이면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의 한 저자와 같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든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사실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까? 그러면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근심이나 염려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사는 사람은 용감히 살 것입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낙심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 적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고 고백합니까? 우리 가운데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분은 없습니까? 이 시간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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