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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3:1-17/ 하나님의 약속 / 한경직 목사
2014-08-23 08:36:13   read : 12674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十三․五)

오늘 아침 읽은 이 말씀은 귀한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신명기 三十一장 六절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 一장 五절에도 하나님께서 친히 이 말씀으로 여호수아에게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二十八장 十五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꿈 가운데 어린 야곱에게 나타나서 이 말씀으로 야곱에게 역시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二十八장 二十절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오고 오는 모든 제자들에게 같으신 말씀을 역시 약속하였습니다.『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에 주의할 것은 이 약속은 모든 택한 백성, 하나님에게 속하는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올시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특별히 위험한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을 때에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약속을 지키십니다. 옛날에도 지키셨고 오늘에도 지키십니다.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수아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들과 같이 하셔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복지로 들어갈 수 있게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 그대로 야곱을 인도해서 멀리 하란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야곱의 일생을 역시 인도하시고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약속하신 대로 제자들과 오고 오는 모든 그의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같이 계셔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세의 생활을 생각해 보면 모세는 난지 석 달만에 나일강 강변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은 것은 물론 부모들에게도 할 수 없이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
어린 아기 모세를 하나님께서 같이 하셔서 애굽 궁중으로 인도해서 평안히 자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따라서 애굽 궁중에서 당시의 최고 문화를 배우고 모든 학문을 닦아서 장차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일할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버림을 받았으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가 요셉의 생활을 생각해도 역시 그렇습니다. 요셉은 자기 형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습니다. 종으로 팔리움을 받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역시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 끝까지 같이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요셉을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 가서 전도를 하다가 그 때에 거기 사는 유대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서 올에 맞아서 죽은 줄 알고 그 악한 사람들이 바울을 성밖에 내어버렸습니다. 사람들에게 내던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그대로 떠나지 아니 하셨습니다. 다시 사도 바울이 회생해서 성으로 들어가서 믿는 자들을 굳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에도 그 악한 유대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끌려서 관청에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억울하게 매를 맞았습니다. 마지막에는 형무소까지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실라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감옥 가운데서 바울과 실라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은혜를 받아서 그곳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감사의 찬송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큰 기적을 나타내서 지진이 일어나게 하여 바울과 실라를 석방할뿐더러 그 빌립보 교회에서 장차 기둥과 같이 일할 간수 한 사람을 회개시켜서 그리스도의 종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올시다. 사람들은 우리를 버릴 수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되는 일을 가만히 보면 우리가 혹 돈이 많다던 가 이와 같은 때에는 친구도 많고 따라오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 그 돈이 한 번 다 없어집니다. 옛날 글에 있는 말씀과 같이 돈이 넉넉할 때에는 노상 행인이 다 와서 친척 같이 굴더니 일조에 말이 줄고 금전이 없어지니까 친척이 변해서 노상의 행인이 됩니다. 세상의 물정은 이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람은 이렇게 버릴 수 있으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넉넉할 때에도 같이 계시고 우리가 빈궁할 때, 가난할 때에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는 떠나기 아니하십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혹 권세 자리에 있고 높은 지위에 있을 때에는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도 많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그 자리에서 떨어집니다. 세력이 다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보통 많은 사람들은 다 우리를 버립니다. 우리를 떠나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혹 우리가 명망이 있을 때에는 찾아 오는 사람도 많고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관계로 혐의를 받습니다. 오해를 받습니다. 죄는 없지마는 어떻게 되어서 감옥에까지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혹 이렇게 명예가 땅에 떨어지게 될 때에는 사람들은 흔히 우리를 버립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적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말해주려고 하는 사람도 별로히 많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도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감옥에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무슨 일을 크게 성공할 때에는 문전성시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일조에 실패할 때에는 사람들은 우리를 떠나갑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이 과히 많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공할 때에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흔히 필요할 때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혹 돈이 다 없어진다던가, 혹 병이 난다든지, 혹 나이 많아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든지, 이렇게 더 이용 가치가 없어지게 되면 사람들은 흔히 떠나갑니다. 저버립니다.

마치 옷을 오래 입다가 다 낡아서 못 입게 되면 벗어 내어버리는 것처럼, 우리가 구두를 신고 다니다가 다 낡아서 못 신게 되면 버리는 것처럼 친구도 내버리고 친척도 내버리고 흔히 이렇게 사람에게 버림을 받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마지막에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는 그런 경우를 당했을지라도, 아무리 병들어 있어서, 아무리 늙어서 할 수 없을지라도 세상 사람은 혹 버리지마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저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지금도 잊히지 아니합니다. 서울이나 부산에도 화재가 많지마는 벌써 여러 해 전에 제가 신의주에 있을 때에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신의주 채소 거리에 큰 화재가 일어나서 백여 점포가 하루아침에, 특별히 정월초하루 명절날 아침에 전부 불타버렸습니다. 조사해 보니까 그 불은 그저 난 것이 아니고 방화하였습니다. 어떤 여자가 불질렀습니다.

그 때부터 十여 년 전에 어떤 촌에서 가난한 청년 부부 두 사람이 농촌에서 소작을 해서는 암만 살래야 늘 밥만 굶게 되니까, 어떻게 신의주 도회지로 들어가서 벌이를 해보자고 이사해 왔습니다. 그 채소 거리에 조그마한 방을 얻었습니다.

남자는 지게를 지고 바께 나가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여자는 그 집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만들어 놓고 콩나물과 두부도 팔고 채소와 과일을 파는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안 먹고 안 쓰고 새벽에 일어나고 늦게 자고 그저 아득바득 살시 위해 十여 년 동안을 고생을 하면서 이 여자는 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점점 장사가 잘 되어서 한 十년쯤 되니까 돈을 상당히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제 좋은 집을 다른 데 장만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이 남자는 가만 보니까 돈도 좀 있게 되니 의복도 잘 입을 생각이 나게 되고 가구도 좀 살 생각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가만 집에 와 보니까 옷도 잘 못 입고 화장도 잘 할 줄 모르고 밤낮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만 하는 이런 여자 그런 자기 여편네를 볼 생각이 점점 적어진단 말이요. 의복도 깨끗이 입고 화장도 잘할 이런 여자 얼굴만 자꾸 바라다 모인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 남자가 딴 여자 하나를 얻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아득바득 번 돈을 가지고 딴 여자를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남편을 책망도 해보고 달래도 보고 별의별 수단을 다해서 남편을 돌이키려고 많은 애를 쓴 줄 압니다. 그러나 이 남편이 돌이키지 아니합니다.

그 섣달 그믐날 밤인데 이날 밤은 꼭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눈물로 호소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일은 정월 초하루이고 오늘이 섣달 그믐날이니까, 그 날 저녁이야 집에 돌아와 자겠지 하고 밤새도록 기다렸다고 합니다.

열 시, 자정이 되어도 안 돌아옵니다. 이 여자가 너무 분하고 너무 화가 나서『이런 세상을 살아서 뭣해! 아예 이놈의 집에다가 불이나 놓고 나도 불타 죽겠다.』하고 문을 닫아걸고 불을 놓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세상입니다.

흔히 필요할 때에는 찾지마는 필요 없을 때에는 내버리는 세상입니다. 요새 가만 보니까 부모가 자기 아이를 버리는 부모도 상당히 많은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 불광동에 있는 홀트 영아원에 가보니까 전부 내다 버린 어린 아기만 四, 五백 명이 거기 있습니다. 부모가 내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홀트 씨 같은 이가 있어서 어린 아기를 잘 보양해 기릅니다. 거기서 깊이 느낀 것이 부모는 이 아이들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들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고 홀트 씨의 마음을 감화 감동시켜서 이런 좋은 일을 해서 이 아이들을 기르는구나!

혼례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철석같이 어떠한 환경에서나 어떻게 시대가 변하든지 참된 사랑을 가지고 피차에 사랑하겠노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몇 해가 되지 못해서 그 약속을 다 잊어버립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신랑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의 신부가 되는 우리 믿는 사람을 어떤 때에든지 저버리지 아니합니다. 떠나지 아니합니다.『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친구가 우리를 버릴 수 있지마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혹 친척이 우리를 버리거나 혹 부모도 나를 버릴 수 있지마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믿는 자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혹 남편도 나를 버릴 수 있지마는 우리 신랑이 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사실 인생의 최후 길에는 누구나 다 우리를 버리게 됩니다. 세상을 떠나는 길은 외로운 길입니다. 같이 갈 동무는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도 떠날 수밖에 없고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이사야 四十三장에 있는 말씀을 읽을 때에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아(이스라엘은 택한 백성이올시다)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올시다. 더욱이 감사한 것은 우리는 혹 하나님을 저버리나 하나님은 우리를 저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베드로의 생활을 잘 압니다. 베드로는 본의는 아니지마는 예수님께서 붙잡히게 되고 대제사장 아문에서 심문을 받게 될 때에 대제사장 아문까지 따라간 열심이 있는 것은 좋지만 그만 거기 가서 예수를 세 번씩 모른다고 죄를 지었습니다.

예수를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버리지 아니했습니다. 십자가가 다 지나간 후에 부활하신 후에 디배랴 바다에서 베드로와 일곱 제자가 고기를 잡을 그 기회에 주님께서 어떠한 아침에 나타났습니다.『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사랑을 물었습니다. 다른 것은 묻지 아니했습니다.

『예! 제가 주를 사랑합니다. 제가 주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께서 아십니다.』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내 어린양을 먹이라!』이렇게 세 번 말씀하시면서 베드로를 회복시켰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버린 적이 있지마는 예수님은 베드로를 버리지 아니했습니다.

우리가 요나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니느웨로 가라고 하는 것을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기 위해서 욥바에 가서 배를 탔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저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큰 풍파를 일으킨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풍파였습니다.

바닷물에 내던짐을 당하게 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고생을 당하게 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 깊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잊지 아니하였습니다. 요나로 하여금 위대한 선지자가 되도록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생활도 잘 압니다. 다윗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로 마음이 온전하고 좋은 사람으로서 성경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다윗도 실수했습니다.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저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나단을 보냈습니다. 죄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택한 백성을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에 여러분은 악한 마귀의 시험하는 말을 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다시 말하면, 그렇다고 택함을 받은 사람은 암만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택함을 받은 사람도 혹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으나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택함을 입은 사람은 죄를 깨닫는 대로 꼭 회개합니다. 죄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냥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것은 그 행동 자체가 택함을 입니 못했다고 하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다 장로교 교인이니까 말합니다. 칼빈 신학의 유명한 다섯 가지 조목이 있습니다.
一, 모든 사람은 다 원죄로 말미암아 부패하여 스스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二, 그리하여 다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서 구원할 사람을 택하였다.

三, 이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서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사를 드리게 만들었다.

四, 하나님께서 불하항력의 성령을 택한 사람의 마음속에 보내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만든다(성령의 감화입니다.)
五, 그런 까닭으로 택함을 받은 이 성도는 영원히 보존되며 반드시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 하시고 구원을 해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생각할 때에 마음에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은 어떻게 내가 택함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아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보면 분명합니다. 성신의 감화가 없이 예수를 주라고 할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게 구주가 되는 것을 깨닫고 예수를 믿을 마음이 생기고 예배당에 나올 마음이 생긴 그 사실이 벌써 내가 택함을 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八장에는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確信)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자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끓을 수 없으리라.』그러므로 우리도 담대히 말하십시다.『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찬송가에 있는 말씀과 같이『온 세상 다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아니 버리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존 웨슬리(John Wesley)가 임종시에 최후로 남긴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상을 떠나게 되어서 모든 사람이 다 모였습니다. 눈감고 거의 세상을 떠나갑니다. 그러다가 눈을 번쩍 뜨더니 입을 열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제일 귀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신 일이올시다.』이것이 존 웨슬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계신 것을 체험하는 최후의 설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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