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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2:6-12/ 건전한 신앙생활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41:53   read : 1560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二․六-七)

고린도 전서 十六장 十三절 한 절을 더 봅니다.『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믿음에 굳게 서서 강건한 신앙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나무로 말하면 뿌리를 깊이 박고, 집으로 말하면 기초를 튼튼히 닦아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강건한 신앙을 가지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이 시간 건전한 신앙생활이 어떠한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건전한 신앙에는 세 가지 요소가 구비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지적 요소,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정적 요소,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의지적인 요소, 행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 신앙의 내용은 아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시편 四十六편 十절에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 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혹은 이사야 四十장 二十八절 이하를 보면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않으시며 명철(明哲)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요한 복음 十七장 三절에는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영생은 다른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이신 참 하나님을 우리가 알고 그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건전 하려고 하면 이 지적인 요소가 건전해야 됩니다.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은 바른 종교적 지식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말씀인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물론 성경은 큰 책이어서 처음에 믿는 이가 갑자기 성경을 다 연구하기가 어렸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처음 믿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수원에 필요한 최소한도의 바른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 앞이 사도신경이라고 하는 신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아침 예배마다 사도신경을 외웁니다.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간단한 신조이지마는 그 가운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무엇을 믿는지, 꼭 알아야 될 지식의 내용이 있습니다. 거기 보면 제일 먼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어떠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말씀이 거기 있습니다.『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하고는 죽 내려가면서 예수는 어떠한 분이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기록해서 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성신을 믿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몸 된 거룩한 공회 곧 교회를 믿습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 죄 사함을 얻는 것을 믿습니다.

몸의 부활과 영생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최소한도의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우리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사도들이 믿는 신조를 간추려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무엇을 믿는지 그 신앙의 내용을 우리가 알아야 되고, 또 왜 믿는지 그 이유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반대자를 만날 때에 우리가 대답할 수가 있고, 반면에 여러 가지 미신과 사교와 그릇된 종교 사상에 유혹되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반드시 매일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매일 읽는 것은 마치 우리가 매일 음식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우리 영혼의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여러분, 매일 성경을 적어도 한 장이라도 읽습니까?
그것이 첫째 필요합니다. 건전한 신앙의 기초를 닦으려면 그것이 첫째입니다. 아직 여기에 미치지 못했으면 먼저 이것부터 시작하세요.

그러나 이것만은 부족합니다. 정적 요소가 있습니다. 감정으로 느끼는 요소가 있습니다. 곧 신앙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아는 것도, 어떤 사람이 어떤 분이라고 들어서 알 수 있어요. 그것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요.

우리가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면담을 해보고 서로 이야기를 하고 교제를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우리가 체험으로 그를 압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라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말씀을 들어서 머리로 먼저 알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머리로 아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심령이 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하나님과 접촉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인카운트」라고 합니다. 이「인카운트」가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가 젊었을 대에 성전에서 홀로 기도하다가 말하자면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났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길을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만났습니다. 혹은 성 프랜시스가, 성 다미엔이 작은 예배당 앞에서 홀로 기도하다가 거기서 그 심령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만났습니다. 사람마다 그 체험은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 의미에서 하나님을 우리의 머리로써 아는 것만은 부족합니다. 영적으로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과 면대를 해야 합니다. 만나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이와 같은 체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도 요한 은

『우리가 사귀는 것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영적으로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과 그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 생활에서 기도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이런 자리에 미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보면『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기도를 우리 육신의 생활에 비교해 보면 호흡하는 것과 같아서 영적 세계와 교통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이 기도에 대해서, 우리가 꼭 기도를 바로 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표준 기도를 하나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주 기도올시다. 그 기도가 간단하지마는,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꼭 그 기도대로만 항상 계속하면 아마 만족하실 것 같아요. 거기 보면 제일 먼저 아버지에 대한 기도가 있습니다.

『이름을 거룩하게 해 주세요. 나라이 임하게 해 주세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 이룩해 주세요.』

우리가 기도할 때에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위해서 먼저 기도합니까?
그 다음에 우리의 필요한 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일용할 양식, 죄 사함 받는 것, 시험에 들지 않도록, 악에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쳤어요. 마지막으로 그 은혜를 찬송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처음에 믿을 대에 내가 기도한 줄 알지 못하면 주 기도를 잘 외워서 뜻을 철저히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이것을 외우면 우리가 이 주 기도를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하여간 우리가 이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면하며 그에게서 사죄와 위로를 받으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며 기도를 통해서 성신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아침에도 해야 되고 저녁에도 해야 되고 식사랄 때에도 해야 되고, 무시로 기도는 해야 됩니다.

기도를 해야 능력을 받아서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호흡 없는 육신생활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호흡 안하고 산다고 하면 그것은 산 사람이 아니고 죽은 사람이올시다. 우리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기는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기도하는 시간이 없으면 그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분명히 아세요. 기도해야 됩니다. 개인으로도 기도를 힘쓰고, 모여서도 기도를 힘쓰고, 가정에서 기도를 해야 되겠고, 그런 까닭으로 할 수 있으면 새벽 기도회에 나오기를 힘쓰고, 삼일 기도회에 빠지지 아니해야 되겠고, 언제든지 우리가 반드시 기도를 힘써야 되겠습니다. 기도가 없이 건전한 신앙생활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면에 나 자신을 반성해 보십시다.

그 다음에 우리의 손과 발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실천 실행하는 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기 본문을 볼지라도『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맞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행하라」고 하는 말은「걸어가라」고 하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쳤습니다. 야고보 장로는 말씀하기를『목숨이 없으면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으면 믿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에게 경고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과연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이 하나님과 접촉을 하고, 이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내 생활에 일대 변혁을 가져와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우리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최저한도의 생활 기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열 가지 계명이올시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 기준이올시다. 최저한도의 생활 기준입니다. 거기 보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라, 무엇을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계명으로부터 넷째 계명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의무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다섯째 계명으로부터 열째 계명까지는 우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떠한 도덕적인 생활을 해야 될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면 제일 먼저 열 가지 계명을 꼭 배워서 이것부터 시작하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

그것만은 부족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을 기초로 해서 점점 사랑과 성결과 진실과 겸손과 인내와 용기와 절제의 생활로 날마다 날마다 진보하여야 될 것입니다.
내가 사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과 접촉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주를 봉사하고 선한 사업을 하고 이 세상에 살 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모든 일을 하도록 힘을 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건전한 신앙은 이 세 가지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많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연구해야 됩니다. 우리의 영적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수시로 우리가 기도를 힘써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손과 발로 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건전한 신앙은 이 세 가지가 구비된 신앙이올시다. 하나만 너무 힘쓰고 다른 것을 게을리 하면 건전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마치 머리만 크고 다른 부분이 발육되지 아니한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을「기형아」라고 합니다. 머리로 알기만 하고 기도의 체험이 없고 실행이 없는 사람은 머리만 큰 기형아입니다. 반대로 머리로 아는 것은 없고 행하는 것도 없고 단순히 기도만 힘쓰는 사람이라 하면 그 사람은 심장만 큰 사람입니다.

심장도 너무 크면 병납니다. 아는 것도 부족하고 체험도 부족하고 단순히 행하는 것만 힘쓰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손과 발만 큰 사람이올시다. 그 사람은 병신이올시다. 건전한 신앙은 이 세 가지 요소가 구비되어야 합니다.
내 신앙생활이 과연 건전한 생활인가, 혹은 기형적인 생활인가, 변태적인 생활인가를 이 표준에 의지해서 이 시간에 반성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힘쓰는 데에도 항상 우리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를 힘쓰는 가운데도 유혹이 있고 시험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됩니다. 가령 우리 신앙 생활의 지적 요소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어떤 분이 성경을 연구하고 철학을 연구하고 신학을 연구한다고 해요. 그것은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그 방면을 연구하는 가운데 조심하지 아니하면 지식의 교만의 시험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나는 다 안다. 다른 사람은 무식하게 믿더라』지식은 교만을 가져오기 쉽습니다. 전에 바리새인처럼 우리는 율볍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때 여기에 소위 정통주의가 들어오기 쉽습니다

. 혹은 이와 반대로 이성적 방면의 신앙을 너무 고조하다가 잘못되면 그릇된 합리주의, 이성에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믿기 어렵다고 하는 이런 사상, 혹은 자연주의 사상에 중독 되어서 그만 아주 신앙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연구할 때에도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겸해서 연구하고 항상 실천실행을 겸해서 연구해야지, 그 한 가지만 치중하다가는 이와 같은 시험에 빠질 염려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또는 우리 신앙의 체험이 귀하고 기도 생활이 심히 귀하지만, 이 기도 생활에도 유혹과 시험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미리 경계해야 됩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四十일 동안 기도하실 때에 누가 먼저 찾아왔습니까? 천사보다도 사단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기도할 때에 사단이 찾아와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실 때에 사단이 찾아왔거든 우리가 기도할 때에 사단이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지 않을 것입니까? 기도하다가 시험에 드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잘못된 길로 나가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그릇된 신비주의, 광신주의, 심지어 여러 가지 형태의 사교에 빠지는 사람이 없지 않아 더러 있는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권면(勸勉)을 하실 때에 은밀한 가운데 기도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홀로 하나님과 접촉하라고 하였습니다. 옛날도 그렇고 오늘날도 그렇지만, 기도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가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광고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더 위험한 자리에 들어갑니다. 전에 바리새인들은 심지어 길거리에서 기도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을 보라고… 요새 어떤 사람은 특별히 산에 들어가기도 하면서 나는 산에 들어가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알리면서 기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시험에 들면 안 됩니다. 기도하다가 정신을 잃어도 안 됩니다. 정신 차리고 기도해야 됩니다.

무슨 기도하노라 하다가 이상한 것을 보았다 하는 사람도 더러 있고, 무슨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 하는 사람도 더러 있고, 방언을 한다 하는 사람도 더러 있고, 예언을 한다 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 모양이고, 예수 님이 몇 해 후에는 꼭 오신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는 모양입니다.

옛날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언제나 그런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경계해야 됩니다. 이상한 얘기를 한다고 함부로 따라가면 안 됩니다. 언제나 기도는 자기의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서 기도할 것입니다.

산에서 기도한다고 하는 이를 이리저리 따라다니다가 신앙의 길을 잘못 드는 사람을 종종 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기도를 힘쓸 것이지마는, 이상한 것을 보기를 기대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이 음란하고 패역(悖逆)한 세대가 이적을 구한다』고 책망을 했습니다. 광신주의를 삼가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미치지 맙시다. 성경을 읽으며 기도를 할 것이요, 사랑의 생활을 실천하면서 기도할 것이요, 은밀히, 남이 기도하는 줄 모르게 기도 생활을 할 것이요, 모일 경우에는 자기 교회에 모여서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는 데 시험이 있는 것을 미리 알아서 경계해야 됩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 기도한다고 하는 사람 가운데서 종종 탈선하는 행동이 일어나서 교계를 어지럽게 하고, 교회의 위신을 사회에 떨어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기도를 힘쓰되, 성경적으로 기도를 힘써야 되겠습니다. 정신을 분명히 차리고 기도해야 됩니다. 시험에 들까 조심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실행적 방면에 있어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물론 선행이 필요합니다. 교회 봉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 없는 선행, 기도 없는 교회봉사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또 이와 같이 선행과 이런 방면에만 너무 치중해서 다른 방면을 게을리 하는 사람은 소위 사회복음주의 사상이라고, 지금은 별로 그런 말을 쓰지 않지만 十九세기 말엽까지는 많이 들었습니다. 사회만 잘 봉사하고 선한 행실만 하면 그만이다,

믿는 것은 아무렇게 믿어도 괜찮다고 하는 그릇된 사상에 빠져 들어가기 쉽습니다. 옳게 알고, 옳게 기도하고, 옳게 행하고, 좋은 일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 선행에 대해서도 우리가 항상 기억할 것은 은밀한 가운데 하라고 했습니다.

네 오른손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 선행과 봉사 방면에도 다른 방면에 은혜가 부족하면『나는 남보다 낫다. 나는 좋은 일을 더 많이 한다.』이와 같은 교만의 시험에 빠져서 타락하는 수가 종종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건전 하려고 하면 이 세 가지 요소를 구비해야 됩니다. 세 가지 요소를 꼭 같이 힘써야 합니다. 경경을 매일 읽고, 기도를 매일 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교회를 봉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것입니다.

어느 한 곳에 치우쳐서는 아니 됩니다. 불편불위(不偏不僞 )하고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신앙 생활을 하도록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언제나 자기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실수가 없습니다.

기도도 그렇고, 전도도 그렇고, 모든 선한 사업도 그렇습니다. 신앙의 기형아가 되지 마십시다. 병적 신앙을 가지지 마십시다. 변태적 신앙에 빠지지 맙시다. 길을 잃은 양이 되지 마십시다. 건전한 신앙을 가지도록 우리가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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