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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4:1-9/ 명랑한 생활의 비결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37:49   read : 17163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四․四)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의 여러 서신 중에서도 주옥같이 귀한 서신이올시다. 기쁨의 서신이란 말도 있습니다. 여기에『기뻐하라』는 말이 여러 번 나타납니다.

『기쁨으로 항상 간구(懇求)하노라.』『내가 기뻐하고』『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같이 기뻐하라.』『종말로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본서의 대지는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심령은 기쁨으로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사도 바울의 형편을 회상해 볼 때에 그가 이와 같은 서신을 썼다고 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우선 그는 그 때에 나이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흔히 웃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노년 시대에도 이런 기분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 그는 로마의 감옥에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쇠사슬을 차고 앉아있었습니다. 침울한 감방이올시다. 수감 생활은 또한 고독을 의미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 때에 그는 문자 그대로 사망의 그늘 속에 앉았던 것입니다. 언제 네로의 칼날이 그의 목에 임할는지 모르는 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심령은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 심령은 명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명랑한 서신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었겠습니까? 오늘 아침 이 명랑한 생활의 비결을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했습니다. 『주안에서』라는 말씀을 먼저 주목하십니다. 三장 一절에도『주안에서 기뻐하라.』 四장 四절에도『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했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보면『주안에서』혹은『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주안에 서라』,『주안에 갇힌 내가 너희에게 권면하노니』,『주안에서 증거하노니』,『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자녀들아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했습니다. 『주안에서 강건하여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문자 그대로 주안에서 산 것입니다. 그는 두 차원에서 살았습니다. 육신은 로마 감옥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심령은 주안에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권면하노니, 하고 말했습니다. 그 육신은 감방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은 갇히지 않았습니다. 그 영은 주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것을 주안에서 행한 것입니다. 그의 생각도, 말도, 행동도, 편지를 써도, 전도를 해도 주안에서 한 것입니다. 그의 인격 전체 곧 지, 정, 의의 생활이라 주안에서 행하여진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히 연합한 생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 二장 二十절에는 그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했습니다.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十五장 四절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항상 주안에 있을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는 생활의 특색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셨습니까? 몇 가지가 있는 줄 압니다.

우선 주 안에 사는 사람은 생의 목적이 다릅니다. 물론 전과 같이 의식주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전과 같이 공부하던 사람 공부하고, 사업하던 사람은 사업도 합니다. 그러나 생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전에는 오직 나를 위하여 산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를 위해서 삽니다. 같은 사업을 하지마는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합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합니다.

『살던지 죽던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노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였습니다. 생의 제일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게 됩니다.

또한 주안에서 사는 사람은 새로운 신령한 양식을 먹고삽니다. 예수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나는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는 자는 생명이 없겠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주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안에서 사는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간단없이 생명의 양식을 먹고 생수를 마시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인내를 배웁니다. 주님으로부터 은혜와 진리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는 생의 열매가 물론 다릅니다.

육체대로 사는 사람은 자연히 육체의 열매를 맺습니다. 갈라디아 五장 十九절 이하에 기록한 대로 육체의 열매는 현저합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토색(討索)하는 것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내는 것과 당을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사는 이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사랑과 기쁨과 화평(和平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모든 아름다운 덕을 맺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그 심령이 항상 명랑합니다. 왜? 천국이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고 말씀한 그대로 이런 이의 가슴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平康)과 희락(喜樂)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핍박을 받아서 풀무 속에 던짐을 받은 이야기는 여러분이 다 잘 아실 것입니다. 실상은 세 사람만 풀무 속에 넣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네 사람이 풀무 속에서 걸어 다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주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십니다. 환난 때도 같이 계시고 실패 때에도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지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늘 부르는 찬송의 한 절과 같이『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입니다.

이런 분들은 항상 하나님 안에서 삽니다. 그러므로 명랑합니다. 여기에 명랑한 생활의 비결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약을 보면 주안에 있던 그들은 핍박 중에도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감옥에서도 기뻐서 찬송을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재산의 손실을 보고도 감사하고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六장 十절에『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주안에만 명랑한 생활이 가능합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하였습니다. 여기『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다시 말하면 명랑한 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가르쳐 줍니다.

성경에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지킬 여러 가지 명령이 있습니다.『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회개의 의무가 있습니다.『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했습니다. 성결한 생활을 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했습니다. 사랑의 의무가 있습니다. 『서로 봉사하라』했으니 봉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깨어 기도하라』했으니 기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했으니 전파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에는『항상 기뻐하라』했으니 항상 기뻐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다른 여러 가지 명령을 복종하기를 힘쓰는 것처럼 이 명령도 복종하기를 힘써서 명랑한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여야 될 것입니다. 이 명령을 순종하지 않는 것도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단테의 신곡을 보면 지옥 맨 밑바닥에 많은 사람이 있는 광경이 나타납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짓고 왔느냐고 물으니까 다른 죄가 아니라 믿기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명랑한 생활을 못하고 늘 우울한 생활을 한 죄를 지은 까닭으로 여기에 왔다고 합니다.

명랑한 생활을 못하는 것은 죄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여야 합니다. 옳게 살 뿐더러 명랑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왜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였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성경의 말씀대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良藥) 이라고 하였습니다.

명랑한 마음은 좋은 약입니다. 몸에 유익합니다. 명랑한 마음을 가지면 소화도 잘되고 혈액 순환도 잘 된다고 합니다. 병이 저절로 낫는다고 합니다.

현대 의학계의 말을 들어보면 병 가운데 六할 내지 七할의 원인은 심리적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명랑하지 못한 마음을 가진 육체 가운데 많은 병이 생깁니다.

근심과 걱정, 공포심, 의심, 증오심, 분노라는 마음, 시기와 질투 같은 명랑하지 못한 마음 가운데 육체의 병이 생깁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명랑한 마음을 가져야 힘을 얻어서 일을 잘합니다. 『주의 즐거움이 너희에게 능력이 되느니라』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명랑한 마음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직공이 명랑한 마음을 가질 때에 일을 잘합니다. 주부가 명랑한 마음을 가질 때에 살림을 잘합니다.
학생이 명랑한 마음을 가질 때에 공부를 잘합니다. 선생이 명랑한 마음을 가질 때에 가르치기를 잘합니다. 군인들이 명랑한 마음을 가질 때에 국방을 잘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명랑한 마음을 가질 때에 전도도 잘 하는 것입니다. 봉사도 잘하는 것입니다. 명랑한 마음에는 마귀가 가까이 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시험을 못한다고 합니다.

왜? 햇빛 아래는 미균(黴菌)이 죽습니다. 명랑하지 않는 마음 가운데 시험과 유혹이 들어옵니다. 명랑한 생활에는 시험과 유혹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이렇게 다시 권면하는 것을 보니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의미입니다. 명랑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의미입니다.

내가 스스로 기뻐할 뿐더러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기쁨을 나눌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향기를 품는 백합화와 같이 어디로 가나 명랑한 분위기를 조성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二十세기를 혹은 우주 시대 혹은 원자 시대라고 하지마는 오늘날 세계 인류는 문자 그대로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한국의 형편은 더욱 심합니다. 三八선은 그냥 있습니다. 빈곤이 그냥 있습니다. 부정과 부패도 그냥 있습니다. 각종 범죄율은 자꾸 올라만 갑니다. 요사이는 삼선개헌 문제로 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사회는 더욱 어수선해집니다. 웃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사회이므로 백합화와 같이 어디를 가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 할 수 있는 명랑한 그리스도인들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빛은 밝아야 합니다. 명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본문이 있는 성경을 전부 한번 읽어보세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懇求)로 너희 쓸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드 지각에 뛰어나는 하나님의 평강(平康)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했습니다.

기억하십시다. 그리스도인은 물론 먼저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부족합니다. 한 걸음 더 나가서 명랑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옳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가서 명랑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를 보면 고대 로마 사회는 그 헬라의 찬란한 문화와 로마의 권세와 영광에도 불구하고 매우 침울하였습니다. 대다수의 민중은 허탈감, 좌절감, 절망감에 휩쓸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역경과 핍박 중에서도 기쁨과 소망이 충만한 명랑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로마 제국을 정복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계 정세와 오늘의 한국 사회의 정세도 이와 비슷합니다. 과학은 발전되었다고 하지마는 인간은 침울한 상태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안에서 기쁨과 소망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이라는 말의 근본 뜻은 기쁜 소식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물론 신앙 생활의 엄숙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과 비참(悲慘)과 사망을 볼 때에 예레이야와 같이 눈물을 흘릴 때도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것들을 정복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의 부활을 통하여 그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명랑한 종교입니다. 불교나 유교처럼 울상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쁨과 찬송의 종교입니다. 할렐루야의 종교입니다.

인도에 가서 선교하던 어떤 선교사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도에는 건조기가 있는데 어느 해 건조기에 어떤 촌락에 있는 교인 하나가 와서, 큰일 났습니다. 우리 동네의 우물이 말랐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려면 아직도 서너 달이 있어야 할텐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선교사가 가서 보니 우물이 정말 말랐습니다. 선교사는 우물을 좀더 깊이 파봅시다. 온 동네가 힘을 모아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을 파도 물이 안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반석이 나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반석을 깨뜨리고 계속하여 파게 했더니 이레 되는 날에 반석 아래서 생수가 솟아났습니다.

세상의 환경, 물질 혹은 사람에게서 오는 기쁨은 다 건조기와 같습니다. 마를 때가 있습니다. 주안에서 오는 기쁨은 깊은 데서 나는 생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 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이 약속하신 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충만히 마셔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명랑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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