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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2:1-11/ 한 마음, 한 뜻 / 한경직 목사 2014-08-23 07:36:28 read : 17168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빌 二․二)
빌립보서 一장 二十七절에도 역시 같은 뜻의 권면이 있습니다.『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일심으로 한 마음으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고 하는 권면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극진히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에 주신 권면 입니다.
공동생활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은 화평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글귀 가운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글귀가 있습니다. 집이 화평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가정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화평하면 만사가 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뿐 아니고 국가도 역시 그런 줄 생각합니다. 국가 안에 화평이 있으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1) 어떻게 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각인 각심(各心)으로 각 사람이 각각 자기의 마음이 있는데 어떻게 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권면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예수의 마음을 품으로고 권면합니다. 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다고 하면 그 비결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각 사람이 다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에 한 마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 八장 九절에『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고 기록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진정한 신앙이 있다고 하면 그리스도의 영이 그의 심령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와 같이 계실 때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또한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인가? 그는 계속해서 권면 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죽기까지 복종하셨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그 본체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종의 형상인 인간의 모습을 받으셨습니다. 말구유 위에 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죽기까지 십자가 위에서 복종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겸손 그대로입니다.
스가랴 九장 九절에는『그는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하는 글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十一장 二十八절 이하를 읽어보면 거기에 우리 주님께서 자기 마음을 친히 어떠한 마음이라고 말씀하신 곳이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계속해서 하시는 말씀이『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겸손하실 뿐더러 온유하십니다. 상한 갈대라도 꺾지 않으시고 꺼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사야 五十三장 七절에 기록된 대로『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대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 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그 입을 열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잠언 十六장 三十二절에 기록한대로『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리라』는 것입니다. 참된 의미에서 그는 온유하신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 온유과 겸손은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특색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이의 마음에는 독선주의나 교만이나 소위 고자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감정을 오래 품거나 다른 사람의 죄를 오래 용서하지 않는 증오의 마을을 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욕심을 오래 용납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것입니다. 독선주의, 감정, 욕심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다 참된 신앙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영을 받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에는 우리의 가족이 얼마가 되든지, 우리 교인의 수가 몇 천명이 되든지, 오직 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 때에만 우리가 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한 뜻이란 각 사람이 각각 뜻이 다른 것입니다. 왜 가정에서 어떤 때에 다툼이 일어납니까? 남편의 뜻대로 하려고 하고, 아내는 아내의 뜻대로 하려고 합니다. 거기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왜 어떤 때에 교회의 분규가 일어납니까? 목사는 목사의 뜻이 있고, 장로는 장로의 뜻이 있고, 집사는 집사의 뜻이 있으며, 각각 자기의 뜻대로 하려고 할 때에 교회의 분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내 뜻대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 그대로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행동에 실수가 없습니다. 그래야 참된 유익과 행복의 길을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꼭 지키신 생활의 원리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누가 내 모친이며 누가 내 형제며 누가 내 자매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가 내 형제요, 그가 내 자매가 아니냐?』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내일에 두고 자기의 당면한 큰잔을 앞에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도 그의 최후 기도는『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 주옵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든지 아버지 하나남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우리 주님의 지상생활에 있어서 유일한 원리였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하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을 때에, 우리가 백 명이건 천명이건 한 뜻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누구나 주님의 마음 곧 온유와 겸손한 마음을 품고 언제든지 무슨 일을 당할 때든지, 주님의 뜻을 바로 찾기 위하여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은 뒤에는 꼭 그대로 순복 하기 위하여 애를 쓸 것입니다.
물론 꼭 이와 같은 원리로 생활하는 이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이 하나님의 뜻이 분명치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우리에게 도와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몇 가지 은사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성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머리를 주셨습니다. 생각하는 힘, 이치를 미루어 생각하는 능력을 우리 인간에게 준 것입니다. 모든 방면을 잘 살피고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나의 편견이나 선입(先入) 주견(主見) 이나 감정이나 욕심을 버리고 냉정히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냉철한 이성으로 모든 문제를 바로 캐어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떤 때에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할 때가 있지마는 인간의 이성을 거슬러서 있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리하신 하나님은 아닙니다. 보통으로 합리적인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에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이성이 만물의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성은 어떤 때에는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해서 내 욕심이나 편견을 합리화하기도 쉽습니다. 우리가 이럴 때 쓰는 이성을 핑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와가 선악과를 떠먹은 후에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네가 이런 죄를 범했느냐 할 때에, 그녀는 뱀이 나를 꾀어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하고 핑계를 댄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이성이 죄의 종이 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이성이 타락되어서 오히려 인간의 욕심과 감정의 종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우리는 냉철한 이성을 보존하고 바로 생각하도록 힘써야 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 뜻을 바로 찾게 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은사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양심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자연계에서 움직일 때에 자연법칙으로 그것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서 나타나게 될 때에 도덕의 법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도덕의 법칙은 흔히 인간의 양심을 통하여 계시가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양심은 마음에 새긴 율법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양심은 거슬러서는 하나님의 뜻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양심의 명령을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양심의 명령을 거슬러서 하나님의 뜻이 있을 줄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양심도 홀 타락할 수 있습니다. 화인 맞은 양심이 되어서 양심의 역할을 제대로 못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아주 타락되어 양심이 전도가 되고 왜곡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지남철이 언제나 남쪽을 가리키도록 만들어졌지만 그 옆에 큰 쇠뭉치가 가까이 오면 그리로 쓰러지기 쉽습니다. 이것처럼 인간의 강한 욕심으로 말미암아 어떤 때는 양심이 어두워질 때가 있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글귀에 황금은 흑 사심이란 말이 있습니다. 누른 금은 선비의 마음을 검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의 마음은 특히 양심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양심에 거슬러서 우리가 무엇을 하면 안 됩니다. 내 양심은 관계치 않으나 이대로 해야 하겠다 하는 사고방식은 조심하지 않으면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가의 이 미급한 이성과 양심을 보충하고 이것을 시정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좀더 분명하고 객관적인 표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읽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도덕의 법칙을 좀더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과거 역사를 통해 환경과 여러 시대를 따라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하는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서 우리는 십계명을 읽을 수 있고, 우리는 산상보훈을 읽을 수 있고, 사도 바울의 귀한 교훈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도덕의 법칙이 어떻다는 것을 좀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좀더 분명히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어려운 문제를 당할 때에 성경의 교훈을 상고하며 성경이 보여주는 빛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읽는 성경이 六十六권의 방대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신구약 성경은 수천 여 년 동안 계속해 내러오면서 여러 가지 인물과 환경에 따라서 기록된 것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진리는 일시에 계시된 것이 아니고 점진적으로 완전히 계시되다가 예수 그리스도에 와서 온전히 계시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교훈과 그의 생활의 빛에 의해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에만 우리가 실수함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구약 가운데 어떤 한 구절을 찾아내면서,
이렇게 가르쳤으니 우리가 이렇게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셔서 그 뜻을 바로 찾도록 하는 것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약한 모든 것을 살피시고 도와주시기 위해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리해서 우리 주님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냉정한 이성과 맑은 양심으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 앞에 고요히 기도하는 가운데서 성령의 지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옳게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성령의 지도를 받는 데도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요한 一서 四장 一절에 보면『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일어나는 생각을 다 성령의 생각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들리는 음성이 다 성령의 음성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들리는 음성이나 생각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가? 이성에 합당한가? 양심에 거슬림이 없는가? 모든 다른 은사와 조화시켜서 성령의 지도를 바로 받도록 우리가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성과 양심과 성경과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도록 도와주시지마는, 근본적인 조건 하나를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의 준비입니다. 내 자신의 준비가 부족하면 이 네 가지 은사가 벌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내 자신의 준비란 내가 온전히 중생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온전히 죄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변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벌레가 변해서 나비가 되기 전에는 모든 것을 바로 살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해서 로마서 十二장 二저에는 이렇게 권면 하였습니다.『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먼저 변화를 받아, 양심과 이성과 성경과 성령의 지도를 바도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바로 분별하도록 해야 알 것입니다. 변화를 받아야 이성도 밝아지고 양심도 맑아지고 성경도 바로 읽고 성령의 음성도 바로 듣는 것입니다.
한 마음 한 뜻의 평화로운 생활은 가능합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한 마음 한 뜻으로 온전한 평화로운 가정생활을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천명, 만 명이 모인다고 할지라도 한 마음 만 뜻으로 평화로운 교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 한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그 한 뜻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뜻을 옳게 찾아서 순종할 때 교인이 천명이건, 만 명이건 문제가 없습니다. 온전한 평화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평화가 있을 때, 교회의 평화가 있을 때,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국가에도 한 마음 한 뜻으로 평화로운 국가가 될 수 있으면, 얼마나 감사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복잡한 세상에서, 여러 가지 개인주의 사상이 팽창한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그리스도가 같이 계시는 평화로운 가정생활, 평화로운 교회생활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집시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슨 일을 당하든지 내 뜻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같이 찾아야 합니다. 이 뜻을 찾아서 다 같이 순종하면 평화가 있고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온 우리 한국의 교회가 받기 위하여 다같이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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