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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9:19-27/ 그리스도인의 품격(절제) / 한경직 목사 2014-08-23 06:58:55 read : 10738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한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九․二十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여기 이기기를 다투는 자라고 하는 뜻은 운동선수를 가리켰습니다. 좋은 스포츠맨이 되려고 한다면 모든 일에 절제할 줄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 훈련을 할 때에도 절제를 배워야 하거든 하물며 썩지 않는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우리가 절제를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만 이렇게 권면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 아래 二十七절을 보면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항상 자기의 몸을 쳐서 복종케 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절제를 의미합니다. 절제라고 하는 뜻은 자기 자신을 다스린다고 하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관리한다는 뜻입니다.
혹은 극기, 자제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 몸 안에는 여러 가지 욕망과 본능이 있습니다. 이 욕망과 본능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절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을 근거로 하는 여러 가지 시험이 내 속에서 솟아날 때 이것들을 이겨야 합니다.
이것을 잊으려고 하면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리해서 여러분이 기억하실 줄 압니다만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후서 一장 五절 이하에 그리스도인의 품격의 요소를 열거할 때에 먼저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 그리스도인의 품격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인 절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옛날 헬라 사람들이 인간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덕을 말할 때에, 절제를 말한 사실은 제가 이미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옛날 헬라 사람들이 아덴에 있는 청년들에게 특별히 항상 권한 말씀은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 말씀입니다.
하나는『네 자신을 알라』하는 권면이요, 또 하나는『네 자신을 다스려라』하는 권면입니다. 이것은 절제입니다. 전에 플라톤이라고 하는 철학자는 인간생활이란『검은 말과 흰 말, 두 말이 끄는 한 수레와 같다』고 얘기했습니다. 흰말은 이성을 의미했고 검은 말은 욕망이나 본능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레가 너머 지지 않고 바로 가려고 하면 흰말이 수레를 어거(馭車)해서 나가게 해야지 검은 말에게 맡기면 수레가 아주 외딴 데로 떨어져서 부서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절제를 의미합니다. 우리 동양의 위대한 성현 공자께서도 군자유삼계(君子有三戒)라고 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고 우리에게 교훈 하여 주었습니다.
『소지시에는 혈기미정이라 계지재색(少之時血氣未定戒之在色)』하고 젊었을 때에는 혈기가 미정한 때인데 색에 특별히 경계하라고 하였습니다.
『급기장야 혈기방강 계지재투(及其壯也 血氣方剛 戒之在鬪)』라. 즉 커서 장년이 된 후에는 혈기가 아주 강한 때인데 싸움하는데 경계하라고.『급기노야, 혈기기쇠 계지재득(及其老也, 血氣旣衰戒之典)』하라고. 나이가 들면 혈기가 쇠한 때인데 그 때는 욕심이 많아지니 얻는 것에 주의하라고 우리에게 경계했습니다.
그 말씀도 한 마디로 말하면 절제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여기 보면 모든 일에 절제를 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먹는데, 입는 일에, 쓰는 일에, 거처에, 모든 욕망, 모든 본능을 잘 다스려서 절제의 생활을 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이것이 적절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 여러 가지 욕망 혹은 본능 가운데서 특별히 두 가지 면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먹는 것을 통해서 들어오는 욕망, 즉 식욕이요, 또 하나는 정욕, 즉 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욕망입니다. 왜 이 두 가지를 특별히 말하고자 하느냐 하면, 생의 파선이 거의 이 두 가지에 대한 절제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사실을 너무나 많이 목도하는 까닭입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아담과 하와가 시험에 빠진 얘기가 기록되오 있습니다. 거기에 기록된 대로 말해 보면 하와가 그 선악과나무를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기도 해서 그것을 자기가 따서 먹고 아담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 주의해서 보세요. 아담과 하와가 하와의 첫 시험이 먹는 것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악한 마귀가 우리를 시험할 때에 이 먹고자 하는 욕망을 통해서 우리를 항상 시험합니다.
둘째 아담이 되시는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양에서 시도를 하실 때에, 악한 마귀가 나타나서 예수를 시험한 경우에도 제일 먼저 먹는 것을 통해서, 식욕을 통해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 먹는 것을 통해서 악마가 우리 주님도 제일 먼저 넘어 뜨려 보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것은 다 옛날 얘기가 아닙니다. 오늘의 얘기입니다. 요사이 말로 전근재적 상황이 아닙니다. 최근대적 상황입니다.
여러분은 매일매일 신문의 三면을 배우는 뉴스를 항상 보십니다. 무슨 철도청 부저사건이니 노동청 부정사건이니 수도 국 부정사건이니 무슨 사건이 다 무엇에 대한 사건입니까? 안 먹을 것을 먹은 까닭으로 이런 부정이 생긴 것입니다. 이 먹고자 하는 욕망에 대하여 다스일 중을 알아야 합니다. 전제가 필요합니다. 먹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에서와 야곱에 대한 얘기도 너무 잘 아니까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에서는 효욕(好慾)한 남자였습니다. 사냥을 좋아합니다. 종일 산에 가서 사냥을 합니다. 아마 큰사슴도 몇 마리 잡아온 줄 압니다. 저녁에 돌아올 때에 물론 피곤하고 시장합니다.
마침 자기 동생 야곱이 팥죽을 쒀 놓고 앉아 있습니다. 오죽이나 먹고 싶었겠습니까? 시장한 터이라 야곱에게 하는 말이『야! 너 그 팥죽 좀 다고.』그러니까 이 기회를 이용해서 간교한 야곱이 무슨 대답을 했습니까?
『제가 형님에게 올리기는 올리겠지만 형님의 그 장자 명분을 저에게 주십시요.』이 우직한 에서가 하는 말이『내가 지금 배 곱아 죽게 되었는데 장자 명분이 무슨 쓸데가 잇느냐, 그 팥죽이나 어서 가져와라.』
이렇게 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고 하는 유명한 얘기를 우리가 다 압니다. 자! 여러분, 이것도 옛날 얘기로만 알지 마세요. 아주 초현대적인 얘기입니다.
오늘날도 팥죽 한 그릇으로, 돈 몇 천 원으로, 돈 몇 만원으로, 자기의 인격을 팔고 자기의 양심을 팔고 가지의 명예를 팔고 위대한 가정의 전통을 팔고 심지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 사람, 에서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미련한 에서와 같이 먹는 것을 삼가 하지 못하여 시험에 빠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식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먹는 문제를 생각하면 아주 안 먹어도 좋을 것을 먹는 이들이 더러 있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압니까? 술 혹은 담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새벽기도회 때 다니엘 서를 읽는 중에 있지마는 그 다니엘 五장을 보면, 바벨론 왕 벨사살의 얘기가 있습니다. 바벨론 왕 벨사살이 어떤 저녁에 큰잔치를 배설했습니다.
고관대작들 천 여명을 초대했습니다. 밤새도록 술을 나누어 먹습니다. 아주 취흥이 도도해서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하던 기명을 가져오라고 명령을 하고는 그 그릇에다가 술을 부어서 마십니다.
그러나 그 때에 이상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이상한 글을 썼습니다.『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그 날 저녁에 파사의 연합군이 바벨론 도성을 침략해 들어와서 술 취한 장교들, 술 취한 무사들, 출 취한 대신들, 술 취한 왕까지 전부 학살했습니다. 나라가 하루 저녁에 술로 망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옛날 이야기인 줄 압니까? 나라만 그렇게 망하는 줄 압니까? 회사도 이렇게 망하는 데가 많고, 공장도 술로 망하는 공장이 많고, 상점도 술로 망하는 상점이 많고 가정도 술로 망하는 가정이 많고, 귀한 재주 있는 청년들도 술로 망하는 예가 얼마나 많습니까? 먹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술의 영향이 우리 가정과 우리 사회에 어떠한가? 제가 여러 나라의 술에 대한 속담을 모아 놓은 것을 잠깐 보았는데 이런 속담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 번 읽을 때에 들어보세요.『물에 빠져 죽는 사람보다 술에 빠져 죽는 사람이 더 많더라.』독일의 속담입니다.『인간의 두뇌에 알코올을 붓는 것은 기계에 모래를 뿌리는 것 같으니라.』미국의 유명한 발명가 에디슨의 격언입니다.『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느니라.』이것은 중국 사람의 격언입니다.
『술은 악마의 피니라』서반아 사람의 격언입니다.『술상이 길면 목숨은 짧아지느니라.』불란서 사람의 속담입니다.『앞문으로 술이 들어오면 뒷문으로 지혜는 달아나느니라.』이탈리아 사람의 속담입니다.「술 먹는 개」이것은 한국 사람의 속담입니다. 속담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결과를 보고 자연히 그런 속담이 생기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은 구약 이외에 탈무드라는 책을 읽습니다. 구약 이후의 위대한 유대 랍비들의 교훈 집입니다. 거기에 무슨 얘기가 잇느냐 하면 옛날 노아가 처음으로 포도 원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포도 원을 만들고 포도를 심을 때에, 악한 마귀가 밤에 와서 양의 피와 사자의 피와 돼지의 피와 원숭이의 피를 비료로 주고 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포도나무는 잘 되었을 것입니다. 포도가 많이 열렸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 포도에서 나는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마다 처음에는 양과 같이 순해지고 좀더 마시면 사자와 같이 포악해지고 좀더 마시면 돼지처럼 비련해지고 그리고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별별 것을 다 한다고 합니다.
술 얘기가 나오면 술 먹는 거야 죄인가? 라고 얘기하지요.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술 먹는다고 그것은 죄가 아니지요. 그러나 문명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술이 백 죄의 어머니가 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이 먹는 얘기하면 담배도 생각나지요.
여기 대해서 한 가지 얘기만 하고 지나갑니다. 여러분도 아마 다 읽어보았을 거예요. 며칠 전 신문에 보니까 미국의 어떤 신문기자 마크 월러스라고 하는 분이 자기가 죽기 전에 자기 죽음에 대한 기사를 다 써놓고 죽었습니다.
그 기자는 매우 똑똑한 기자입니다. 그 제목이 무엇이냐 하면『나의 사인(死因)은 담배다』그리고서는 자기 얘기를 썼는데,『나는 열 네 살부터 담배 피우기를 시작해서 하루에 두 갑씩 四十二년을 피웠는데 결국은 폐암이 생겨서 나는 죽노라.』
이런 기사를 죽기 전에 써놓고 죽었습니다. 혹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아직도 답배를 피우는 분이 계시면 참고로 잘 들어주세요. 또 이 다음에 무슨 일이 잘못되면 한 목사가 이런 문제에 대하여 경고 안 했다고 원망하지 마세요.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먹는 것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강한 본능 가운데 하나인 정욕 혹은 성욕을 우리가 또한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식욕과 같이 정욕도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다운 가정의 기초 중의 하나는 이 정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못 씀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다스릴 줄 모름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더욱이 현대는 자유범람시대로서 소위 성의 제三혁명 운운해서 심지어 소년소녀의 난륜 시대를 초래한 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 본능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절제가 필요합니다.
우리 동양 사람에게는 누가 힘이 제일 센 사람이냐고 물로보면, 지금은 어떤지 모르나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얼른 하는 말이『그거야 항우지, 역발산 기개세 하던 항우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서양 아이들에게 힘이 누가 제일 센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얼른 다같이 대담하는 말이『삼손이지』라고 대답합니다.
여러분, 사사기를 읽어보시면 삼손의 얘기가 있습니다. 이 삼손의 힘은 장사입니다. 한 번은 어떤 골짜기를 지나가는데 수풀 속에서 사자가 으르렁거리면서 나옵니다. 맨손으로 이 사자를 잡아서 염소새끼처럼 찢어 죽였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입니다. 힘만 셀 뿐 아니라 날 세기도 한 모양입니다.
불레셋 사람이 자기를 괴롭게 군다고 여우 三백 마리를 맨손으로 붙잡아서 꼬리 꼬리끼리 붙들어 매놓고 그 꼬리에다 횃불을 달아서 三백 마리를 모두 불레셋 사람의 곡식 밭에 몰았단 말입니다. 그러니 그 곡식 밭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 불살라 버렸습니다. 불레셋 사람들이 수 천명의 군대를 조직해 가지고 삼손을 치려 옵니다.
삼손은 무기가 없습니다. 나러나 당나귀 죽은 턱뼈를 가지고 단번에 천 여명을 다 멸망시켰습니다. 이런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를 끝까지 보면 이렇게 힘세던 삼손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만 불레셋 사람에게 붙잡혔습니다. 왜? 전쟁에 져서요? 아니지요. 붙잡힐 뿐 아니라 손과 발이 밧줄로 꽁꽁 묶였습니다. 그뿐인 줄 압니까? 두 눈이 뽑혀 버렸습니다.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슨 일을 시켰는지 압니까? 연자 맷돌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그러다가 죽었습니다.
여러분, 삼손이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전쟁에 패했습니까? 무엇에 패했어요? 정욕을 다스릴 줄 몰랐단 말입니다. 들릴라 라는 불레셋 여자에게, 원수의 족속에 속하는 여자에게 매혹되어서 그만 그 여자 때문에 정욕을 못 다스려서 불레셋 사람에게 결박을 당하고 참혹한 최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삼손만 그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삼손처럼 지력이 있는 사람, 삼손처럼 지식이 많은 사람, 삼손처럼 지각 있는 사람, 삼손처ㅡ럼 모든 방면에 뛰어난 사람들이, 왜 일생을 망친 사람이 많은 줄 압니까? 이 정욕을 다스릴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강한 욕망, 본능을 다스려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여러분께서 제가 말씀하지 않을지라도 미리 다 짐작하실 것입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참된 믿음을 가지게 될 때에 내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내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서 성령의 충만한 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히 이런 모든 욕망은 제 본분을 지켜 적당하게 조절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결심하는 것도 필요하지요.
그러나 결심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인간의 의지는 약합니다. 인심도 조석변이지요. 내가 참된 신앙에 돌아와서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바쳐서 성령의 충만한 은사를 받을 때에는 자연히 이런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떤 술 많이 먹던 중독자가 회개하고서 하는 말이 은혜를 받으니까 술맛이 변합디다 라고 했습니다. 술맛도 변합니다.『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얻고』라고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예수를 증거 하는 권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임하시면 내 자신을 이기는 권능도 받습니다.『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모든 것을 절제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에 들어오는 것이 그 첩경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이는 언제나 기억할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내가 하시는 것을 보신다 하는 의식입니다. 시편 一三九편에 있는 말씀과 같이『나의 앉고 서는 것을 주께서 보시나이다.』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나의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이것을 기억합시다.
요셉의 얘기를 다 아시지요? 요셉이 애굽에 가서 종노릇하다가 보디발의 아내에게 유혹을 받았지요? 그 때의 경우를 보면 참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요셉은 젊은 사람이요, 요셉은 독신생활 하던 사람이요, 요셉은 고독한 사람이요, 이런 가운데 시험이 들어옵니다. 무엇으로 이겼습니까?
여러분, 창세기를 자세히 읽어보세요.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 악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는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산다고 하는 이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합니다.
또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할 것은 우선 우리 몸이 이렇게 부족하지마는 이 몸은 성령께서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몸은 성령께서 계시는 하나님의 전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를 멸하시리라.』하나님의 전이되는 이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우리를 멸하십니다. 기독교의 육체 관입니다. 이것을 언제나 잊지 않아야지요. 우리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전이라고 하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됩니다. 모든 죄가 더럽지마는 음행의 죄는 몸으로 짓는 죄입니다. 성전에 대하여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일에 절제하여야 하지만 특별히 두 가지, 식욕과 정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얼마 전에 신문에서 다 보셨지요? 일본 황제의 사위가 어떤 바 마담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나타났지요. 바의 마담도 시체로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어요? 그 기사를 읽어보니 그 날 저녁에 이 바에 가서 밤새도록 술을 먹었습니다. 식욕의 무절제입니다.
그 다음 새벽 한 시쯤 되어서 바의 마담과 같이 그의 아파트로 갔습니다. 정욕의 무절제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어요? 자기자신이 망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황실에 큰 치욕을 자져왔습니다. 대부분, 이 두 가지의 절제가 부족해서 인생의 파선이 일어납니다. 오늘 특별히 청년들은 주의 깊게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퀘이커 교회를 창립한 죠지 팍스가 본래는 어떤 구둣방의 직공으로 있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저녁에 친구와 함께 술집에 가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한 두 잔 마시니 취했습니다. 소로 많이 아시기 내기를 합니다.
그리고서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누구든지 돌아가면서 자꾸 마시다가 못 마시는 사람이 오늘 저녁의 술값을 다 낸다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쯤 돌아가다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합니다.
있던 돈을 다 내놓으면서, 나에게 가진 것이 이것뿐이니 이거나 받아라, 미안하지마는 나는 먼저 가겠다고 하고는 돌아왔습니다. 어두운 거리를 혼자서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면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오! 하나님, 이런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너 조지 팍스야 보지 않느냐? 요사이 젊은 사람들은 다 방탕으로 내려가고 늙은 사람은 다 흙으로 내려간다. 성결한 생활을 하여라.』그날 저녁에 온전히 회개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을 회개시킨 유명한 성경 구절에 로마서 十三장 二十二절 이하인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려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기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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