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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7:11-23/ 청년아 일어나라 / 한경직 목사
2014-08-23 00:10:29   read : 14644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 七․十四)

오늘 면려(勉勵)주일을 당해서 주님의 이 말씀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성경 가운데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다지 살리신 기사가 세 곳 있습니다.
첫째는 여기 있는 나인성 과부의 독자를 다시 살리신 이적, 또는 야이로의 어린 딸을 다시 살리신 이적, 또는 베다니의 나사로 라고 하는 청년을 다시 사리신 이적, 그렇게 세 번 적혀 있습니다.

다른 모든 이적과 같이 예수님의 이 부활에 대한 이적도 두 가지 뜻이 포함된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주님의 사랑과 동정심의 표시입니다. 유가족들을 동정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 가운데서 그 청년들을 다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둘째는 이보다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신령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생명의 근본이 되시어서 우리 모든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신다고 하는 진리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와 같은 부활의 이적을 행하신 줄 생각합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 가지 다른 종류의 청년들에게 일어나라고 외치셨습니다. 첫째는 죽은 청년에게,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에게, 베다니의 죽은 청년 나사로 에게 일어나라고 외쳐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인 줄 생각합니다. 둘째는 병든 청년들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네 친구가 메고 온 중풍병자를 향해서 일어나라고 하셔서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베데스타 못 가에서 三十八년 된 중한 환자를 일어나서 상을 가지고 가라고 하시면서 그를 역시 병 가운데서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인 줄 생각합니다. 셋째는 자는 청년들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는 밤을 세워 기도할 때에 제자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해서 잠을 잤습니다. 이 장자는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일어나라고 또한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영적 견지에서 볼 때에 지금도 이 세 가지 종류의 죽은 청년들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죽은 자들은 장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죽은 자들이라고 하는 말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가리킨 것입니다.

성경 말씀 가운데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생명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도 모르고 그 아들을 모르는 사람은 그는 육으로 살았지마는 영은 죽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이런 이들에게 청년아 일어나라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영으로 죽은 청년들을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병든 청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육체는 건강하지마는 그 심령에 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도 알고 예수도 아노라고 하지마는 그 심령에 아직까지도 어떠한 고질이 있어서, 얽매이기 쉬운 죄, 악한 죄의 뿌리를 뽑지 못하는 까닭으로 부용지물이 되어 있는 청년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처럼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마는 죄로 말미암아 천국에서는 멀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이와 같은 청년을 향해서 일어나라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지금도 잠자는 청년이 많이 있습니다. 이 청년들은 죽은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병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잠자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대적 각성이 없습니다. 자기가 사는 시대가 어떠한 시대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어떠한 환경에서 사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따라서 자기의 사명이 무엇이고 자기의 책임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 쓸데없는 잠만 자는 무용지물이 된 청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청년들을 향하여 일찍이 제자들을 깨우치듯이『청년들아 일어나라!』외치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청년들, 심령에 병든 청년들, 일할 것은 많은데 잠자는 청년들을 향하여 지금도 주님께서는 청년들아 일어나라고 외치십니다. 우리가 이 음성을 듣습니까? 왜 주님께서 이와 같이 일어나라고 외치십니까?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 동산에 할 일이 많습니다.『아들아, 포도 원에 가서 일하라.』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 아버지의 포도 동산에 할 일이 많습니다. 이 삼천리 무궁화 동산에 할 일이 태산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곡식이 이미 익어서 희어졌습니다. 지금이 곧 거둘 때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이 동산에 원수도 많이 들어 왔습니다. 이들은 동산을 노략질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동산을 황폐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적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원수들과 싸울 군인이 필요합니다. 십자군이 반드시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원수들과 싸울 십자군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아 일어나서 일하고 싸우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동산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먼저 복음의 전선을 돌아보세요. 사실 문자 그대로 곡식이 이미 익어서 희어졌습니다. 우리 민족의 심령 상태는 공허합니다. 비었습니다. 말하자면 빈집과 같이 되었습니다.

불교, 유교, 재래의 종교는 이미 지나간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영적 기갈을 채우게 위해서 생명의 말씀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기회를 노려서 온갖 미신, 거짓된 철학, 사교, 사이비 종파도 도량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습니다.

떡을 구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돌을 줄 수가 없습니다. 생선을 구하는 사람에게 뱀을 줄 수가 없습니다. 참된 복음을 전파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금년을 본 교회에서는 특별히 개인 전도의 해로 정하고 복음을 전파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청년아 일어나라!』예수 님께서 외치십니다. 청년은 청년들이 일어나서 구원해야 되겠습니다. 죽은 가운데 있는 청년들, 병든 청년들을 구해내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습니다.

또한 이 동산에서 사상 전선을 고요히 살펴보십니까? 四․一九혁명으로 우리 국민의 자유가 전에 보다 더 많아진 것은 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죄도 자유의 기회를 더 얻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깡패도 자유를 더 얻었습니다. 사창들도 자유를 더 얻었습니다. 그리고 공산당들도 자유를 더 얻었습니다.

얼마 전에 신물을 보니까 소련 수상 흐루시초프는 공산당 간부들을 모아 놓고 하는 말 가운데『우리 공산당은 이제는 전쟁을 할 필요가 없다. 왜 그런고 하니 우리가 전쟁하지 아니하고도 다른 방법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까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른 방법이란 두말할 것 없이 침투 작전입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가만히 살펴보니 공산당들아 달콤한, 소위 중립 통일, 평화통일의 사탕 마른, 겉은 희고 속은 새빨간 마취약으로 우리 민족을 취하게 하는 중입니다.
아무 딴 생각 없는 사람들도 단지 통일을 갈망하는 가운데서 이와 같은 사상에 도취되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깊이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도대체 빛과 어두움 사이에 중립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유와 노예 사이에 중립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다만 중립의 이름 아래에서 한국에 있는 유엔군을 이 남한에서 몰아낸 후에 다시 한 번 침략을 해보려고 하는 모략밖에는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내 들으니까 남한 어떤 지방에는 우리가 꼭 중립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하면서 심지어 유엔에 청원하자는 운동을 하면서 연판 장을 돌린다고 하는 말도 들립니다. 사실 중립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 자신은, 지금은 공산당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통일을 위해서는 이래도 저래도 좋다고 하는 저의가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럴 수는 없습니다. 공산주의가 무엇이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아는 우리는 그런 태도는 가질 수 없습니다. 통일이 필요하나 그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와 진리에 대한 확보입니다.

통일은 반드시 자유의 확보 아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사상을 선도하기 위해서 우리 기독 청년들이 총궐기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바로 이 때인 것입니다.『청년아 일어나라!』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외치십니다.

또 우리 사회의 실정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우리 사회에서 각계 각층에서 하는 일을 보면 각각 자기의 권익만 주장하고 국가 전체의 이익을 잊어버립니다.

심지어 어린 코 묻은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원들도 자기의 권익을 옹호한다고 해서 농성 투쟁을 합니다. 노조들은 자기의 권익을 위해서 투쟁을 합니다. 공무원은 공무원 자신의 권익을 위해서 투쟁합니다. 버스의 차주들은 자기의 권익을 위해서 또 투쟁을 합니다.

국민들이 전부 이런 정신으로 움직이면 어떻게 우리 나라가 유지될 수 있습니까? 이런 자기 중심주의,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먼저 두는 사상, 공보다도 사를 먼저 앞세우는 사상 대신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을 가진 청년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우리 국가를 유지하거나 건설할 수 없겠습니다.

미국의 새 대통령 케네디가 그 취임 연설에서 마지막으로 미국 국민들에게 부르짖는 말씀이『이 앞으로 여러분은 나라가 여러분을 위하여 무엇을 하겠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를 물으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도 그렇습니다. 우리 국민이 나라에 무엇을 하여 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내가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나라를 위하여 무슨 공헌을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생각하고 이와 같이 노력해야 우리의 나라는 유지되고 건설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멸사봉공의 정신을 넣어줄 자가 누구입니까? 십자가를 따르는 우리 청년이 아니면 누구겠습니까?

학생사이에 새 생활 운동이 일어나고 국회 의원들 사이에 청빈(淸貧)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다 국가를 위해서 경하로운 일입니다. 이러한 때에 빛과 소금으로 자처하는 우리 기독 청년만 어찌하여 잠잠하고 있습니까?

낮술은 그만 두고 밤술이나 먹자고 하는 절주(節酒) 운동, 고급 요리 집에 가서 술을 마시지 말고 대포 집에 가서 술을 마시자고 하는 대포 운동, 양담배를 빨지 말고 국산 담배는 먹자고 하는 절연 운동도 애국 운동으로 자긍(自矜)하는 이때, 왜 철저한 금주 단연(斷煙)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회 혁신의 봉화를 기독 청년들이 일으키지 못합니까?『청년아 일어나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이 사회는 십자군의 궐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안 믿는 학생들이 심지어 댄스 홀, 바, 카바레 같은 데를 찾아가서 이래서야 되겠는가고 외치는 이러한 때에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을 가진 기독 청년들은 왜 잠잠하고 있습니까 듣는 대로 종로 뒷거리, 도동, 양동, 이태원 근방의 저녁거리에는 사창, 양 마담들이 우굴우굴하고 그 죄악의 함정에 끌려 들어가는 산송장들로 길이 메었다고 하는데

왜 오늘날의 기독 청년들은 그런데 가서 옛날 휘크필드나 월리암 부드처럼 생명의 복음을 외치지 못합니까?『청년들아 일어나라!』오늘 면려 주일을 당해서 우리 주님께서는 외치십니다.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우리 한국 민족 반만년 역사상에 있어서 제일 위대한 시대가 어느 때였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때는 삼국 시대요. 삼국 시대 중에서도 고구려 광개토 대왕시대입니다. 만주에 가서 사시던 분은 광개토 대왕의 기념비가 一천 五백년이 지난 오늘에 웅장하게 선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 광개토 대왕은 十八세 나서 왕이 되어 三十九세에 별세했습니다. 그러나 十八세 난 제왕이 약 二十년 동안에 저 남북 만주를 다 점령하고 남으로는 백제까지 내려 와서 진번군을 침범하고 문자 그대로 전 동아를 한 손에 장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곧 젊은 청년 제왕인 광개토 대왕입니다.

여러분, 광개토 대왕 시대의 연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연호는 영락(永樂)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영락 시대라고 합니다. 광개토 대왕을 영락 대왕이라고도 합니다. 이 한국 역사상에 있어서 영락 시대야말로 가장 강하던 시대요. 가장 위대하던 시대요. 가장 웅비하던 시대입니다. 여기 앉은 영락교회 청년들은 이 말씀을 뜻 있게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년들아 일어나라.』 이 동산에 할 일이 많습니다.

『청년들아 일어나라.』 이 동산에 원수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어나는 청년들을 통해서 자기의 경륜을 이 땅에서 이루시고 온 동아와 세계에서 이루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일어나라 청년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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