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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0:17-24/ 이웃사랑, 전적 헌신/ 한경직 목사 2014-08-22 23:58:11 read : 17122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막 十․二十一)
오늘 아침에 읽은 이 말씀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기록을 우리가 다 읽으면 이 얘기의 전모를 좀 더 분명히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려 할 때에 한 청년이 급히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꿇어앉아 물었습니다.『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나이까?』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들으시고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네가 계명을 알지 아니하느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부모를 잘 공경하라 하는 계명을 모르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에 이 청년이 하는 말이『주여, 이 모든 계명들은 제가 어렸을 적부터 다 지켰습니다. 이제 무엇이 더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
그때에 성경에 기록한 대로『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청년은 복음서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이 얘기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슬픈 얘기입니다. 한 비극적인 영혼의 묘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청년의 심령이 눈은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을 동경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는 인간으로 물을 수 있는 가장 큰 질문을 하였습니다.『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그러나 그는 그 대가를 지불할 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결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슬픔을 안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슬픔은 영혼의 죽음에 대한 가장 처절한 비통(悲痛)이었을 것입니다. 그 청년은 말했습니다.『이 모든 계명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켰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사실 그는 세상적 견지에서 볼 때에 별로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재산으로는 부자이고 지위로는 관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그 뜻은 七十인 공회의 의원이든 가 혹은 지방 회당의 유능한 사회 직분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그의 연령은 젊어서 아직 청년이었습니다.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한 청년이었습니다.
이런 이가 달려와 예수님께 꿇어앉아서『착한 선생님이여』하는 말을 한 것을 보면 이분은 또한 선지자를 존경할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자만심이 없었습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열의가 있는 분이었습니다.『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는 인간이 물을 수 있는 가장 큰 질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영생은 길이 산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영원히 사는 분은 하나님밖에는 안 계십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진 선 미의 생명을 의미합니다. 선의 총체적인 생활을 의미합니다. 이분은 이와 같은 생명, 이런 생활을 탐구한 것입니다.
그는 요사이 말로 하면 지성인이었습니다. 신학자 혹은 철학자의 머리를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 계명들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다 지켰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물론 그가 이 계명들의 깊은 뜻을 다 깨달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양심에 비추어서는 자기 양심껏 이 계명을 지켰던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남을 해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은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우리가 읽은 마가의 기록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할 만한 청년이었습니다. 이런 분을 사랑치 아니하고 누구를 사랑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의 열심을 사랑하신 줄 압니다.
그의 겸손을 사랑하신 줄 압니다. 그의 경건한 생활을 사랑하신 줄 압니다. 그의 지성을 사랑하신 줄 압니다. 그의 진리 탐구의 열의를 사랑하신 줄 압니다. 영생에 대한 동경심을 사랑하신 줄 압니다.
그의 젊은 모습도 역시 사랑하신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그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를 참으로 사랑하셨기에 그에게 있어서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는 말씀하였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네 보화가 하늘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예수님께서 이런 요구를 부자라고 누구에게나 다 하신 것은 아닙니다.
가령 삭개오의 경우를 보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영접한 후에 자기의 죄를 다 회개하고 자진해서『내가 토색(討索)한 것이 있으면 四배자 갚겠습니다. 또 내 있는 재산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겠습니다.』
이런 고백을 할 때에 예수님은 잠잠히 들으시고『이 집에 오늘날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신 후에 다른 말씀을 더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요구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에게는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왜? 인간의 속을 꿰뚫어 보시는 우리 주님은 이 청년이 외모로는 부족한 것이 없는 듯하지마는 그 속에 돈를 너무 사랑하는 것을 아신 까닭입니다.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이 청년에게 있어서는 돈이 그의 우상이었습니다. 이 우성을 타파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이런 요구를 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청년이 지켰다고 하는 계명은 다 소극적인 계명들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하는 소극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청년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는 생활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이 계명의 뜻을 깨달아서 그의 재산을 희생해서 선을 행하는 일은 없었던 것입니다. 참된 신앙생활이란 남을 해하는 것을 중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를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 참 신자의 생활입니다. 이 모든 계명들의 결론으로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려고 할 것이면 내가 희생이 필요합니다. 물질이든 시간이든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청년은 영생을 탐구하였지마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각오는 없었습니다. 왜? 재물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말을 들을 때에 결단의 용기를 내지 못하고 얼굴에는 슬픈 빛을 띠우고 속에는 근심을 하면서, 돌아갔습니다.「히브리인의 복음」이란 신약 외경에는 한 구절을 더 넣어 손으로는 머리를 긁으면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영생을 얻을 마음은 간절합니다. 그러나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많아서 결단을 못 내렸습니다. 그러나 결단 내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므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 그림자는 영생의 길에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이런 청년이, 이런 사람들이 옛날에만 있은 줄 압니까? 이런 이가 이 청년뿐인 줄 압니까? 인생행로에서 이 한 가지가 부족해서 영생을 얻지 못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어떤 이는 한 가지 재물을 너무 사랑해서, 어떤 이는 한 가지 정욕을 너무 사랑해서, 어떤 이는 한 가지 허영을 너무 사랑해서, 어떤 이는 한 가지 거짓을 너무 사랑해서 진실치 못하였습니다. 한 가지가 부족하여 영생의 길에서 사라지는 영혼이 한 둘이 아닙니다.
아무리 금시계요 보석이 많은 시계라고 하지마는 한 가지 태엽이 끊어지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리 크고, 강철로 만든 배라고 할지라도 한 가지 나침반이 없으면 그 배를 가지고 어디를 갈 수가 있습니까?
한 가지 부족한 것을 고쳐야 합니다. 아무개는 재주도 있고 공부도 많이 하고 지식도 풍부하지마는 한 가지가 부족해서, 다시 말하면 진실치 못해서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흔히 듣습니다. 아무개는 그저 다 좋은데 절제가 부족해서 하는 이 한 가지 부족한 것을 고쳐야 합니다.
방금 이 시간에 이런 말씀을 듣는 영혼도 있을 줄 믿습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그것을 깨닫고 그 것을 꼭 고쳐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을 얻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결단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냐, 돈이냐? 그리스도냐 향락이냐? 그리스도냐, 정욕이냐? 그리스도냐 세상이냐? 둘 가운데 하나를 결단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합니다. 이 청년은 결단의 용기가 없어서 근심하면서 머리를 긁으며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사순절이올시다. 십자가가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용감한 주님의 말씀을 신령한 눈을 열어서 바라보세요.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생명까지 희생하셨습니다. 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주님은 우리에게도 전적 헌신을 요구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내 아들아, 네 마음을 달라.』전심을 요구합니다. 조각난 마음을 요구하지 아니합니다. 온전한 마음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마음을 주님께 바칠 용기가 있습니까?
주후 三세기말에 애굽의 어떤 부자집 청년이 홀로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十九장에서 이 부자 청년의 얘기를 읽었습니다. 이 얘기를 읽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히려『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는 말씀이 꼭 자기에게 하는 말씀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 부자 청년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슬픔으로 돌아갔는데 나도 부잣집 아들로서, 부자 청년으로서, 실패할 것이냐? 이 청년은 용단을 내렸습니다.
문자 그대로 실행하자고 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자기 있는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자기 손으로 벌어먹으면서 일생토록 남을 봉사하고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 분이 누군고 하니 교회역사에 나타나는 유명한 성자 성 안토니오라고 하는 분입니다. 수도원 운동의 선구자입니다.
사순절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전적 헌신을 요구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온전히 결단을 내리고 부활주일을 맞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습서고 세례를 받는 것도 결단을 의미합니다. 예배당에 十년을 나와도 세례를 못 받은 분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만 더 드립니다. 이 청년이 그 후에 다시 돌아왔겠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상상하는 주석 가들이 많습니다. 어떤 주석 가는 이 청년이 그렇게 간절히 원한 것을 보면 아마 그때는 실패했으나 돌아왔을 것 같다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청년이 다시 돌아왔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기록에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청년이 다시 돌아왔다고 하면 어떤 기독교 문헌에도 나타남직 한데 전혀 없습니다. 기회란 한번 놓치면 다시 만나기 어렵습니다. 결단은 현재에 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이 시간이 결단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이 시간에 작정하는 그것이 여러분의 일생의 운명을 작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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