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 2026년 11월 01일 (일요일)      로그인      회원가입
Home     설교 뒤에는 설교자가 있다 /죽음 기억하는 교회⋯ 생명·부활 체험 공간으로               신임 목사 114명 새출발 / 탈북어민 강제북송’ 항소심, 정의용·서훈 징역 1년 6개월               극동방송, 창사 70주년…국내외 인사 600여 명과 감사 나눠 /               스틸 대사·브런슨 한미연합군사령관, / 이민규 칼럼] 총회와 교회               예장고신총회장 신진수 목사 /내 노래는 사탄의 음악               젤렌스키 "북한군 포로 2명 한국 이송               “AI 시대, 인간은 누구인가”               제76회 총회 폐회…“복음으로 서로 위로하고 회복해야”               목사·장로 정년 연장, AI 활용 윤리 뜨거운 이슈 / 이민규 칼럼] 총회를 준비하며               교회건축 기행 새문안교회 / 자두, "나 목사 아내 될 수 없어" 오열하자.              

  홈     강대식     강문호     계강현     고신일     고재성     곽선희     곽창대     권오선     권오진     김경진     김광일     김기석     김도완     김명혁     김병삼     김삼환     김상복     김상수     김성광     김성수     김승규     김양인     김영훈     김용혁     김원효     김은호     김의식     김재곤     김정호     김종철     김진수     김진흥     김창규     김창진     김형익     김홍도     남수연     노창영     노환영     류영모     명설교(A)     명설교(B)     명설교(C)     문기태     박병은     박봉수     박신진     박요한     박일우     박진호     박한응     박형근     배영진     배의신     배진기     배혁     서명성     서진규     석기현     손재호     송기성     스데반황     신만교     신현식     안두익     안효관     양인국     양향모     염두철     오주철     오창우     옥한흠     우남식     원영대     유기성     유민용     유은호     유장춘     유평교회     이강웅     이건기     이국진     이규현     이기복     이대성     이동원     이동희     이백민     이삼규     이상호     이성우     이성희     이양덕     이영길     이영무     이영훈     이우수     이윤재     이은규     이익환     이일기     이재철.박영선     이재훈     이정원     이정익     이종철     이준원     이지원     이하준     이한배     이호준     임현수     장부완     전승문     정근두     정오영     정준모     조봉희     조상호     조성노     조영식     조용기     조학환     조향록     주준태     지성래     지용수     차용철     채수일     최동규     최인근     피영민     피종진     하용조     한경직     허창수     홍문수     홍순관     홍정길.임영수     홍종일     외국목사님     .     괄사(왕)     기도문     (1)새벽     새벽.금언     인물설교     상식/주일     장례,추도.심방     가정설교     영문설교     목회자료/이단     교회규약     예화     성구자료     강해설교     절기설교     창립,전도,헌신,세례.주례사     어린이.중고등부     << 창세기>>     출     레     민     신     수     삿     룻     삼상     삼하     왕상     왕하     대상     대하     스     느     에     욥     시     잠     전도     아     사     렘     애     겔     단     호     욜     암     옵     욘     미     나     합     습     학     슥     말     <<마태복음>>     막     눅     요     행     롬     고전     고후     갈     엡     빌     골     살전     살후     딤전     딤후     딛     몬     히     약     벧전     벧후     요일     요이     요삼     유     <<요한계시록>>     말씀별설교     제목별설교     A)행사,심방     B)행사심방     예수님행적설교     성구단어찾기     이야기성경     설교(틀)구성하기     자주사용하는본문     구약사건     신약사건     구약삽화     신약삽화  

Home > 기사메일보내기


제목
받는 사람 이름
받는 사람 Email
보내는 사람 이름

cancel


마13:1-9, 마13:18-23/ 파종과 추수 / 한경직 목사
2014-08-22 23:23:22   read : 13967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 13․23)

우리 주님께서는 아주 평범한 얘기를 통해서 우주와 인생의 깊은 뜻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얘기들은 흔히 비유라고 말합니다. 오늘 아침에 읽은 말씀은 예수님의 교훈 하신 비유 가운데 하나를 읽었습니다. 씨를 뿌리는 비유, 혹은 파종과 추수의 비유올시다. 이 비유는 농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실감이 있는 비유입니다.

나는 실상은 농촌에서 자라났는데 내가 어렸을 때에 보던 그대로입니다. 씨를 뿌리다 보면 어떤 때에는 길가에도 떨어지고 가시덤불에도 떨어지고 돌밭에도 떨어지고 대부분은 물론 좋은 밭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땅이 굳으니 그냥 그대로 남아있는 수밖에 없다가는 들새들이 와서 주워 먹습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오기는 나오지마는 흙이 얕아서 해가 내리쬐면 결국은 얼마 있다가 말라 죽어버리게 됩니다. 가시덤불 사이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고 자랍니다. 얼마동안 은 잘 자랍니다.

그러나 결국은 가시덤불에게 덮여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좋은 땅, 옥토에 떨어진 씨는 혹은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이 비유를 잠깐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비유 가운데서 네 가지 종류의 마음 밭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같습니다. 종자와 같습니다. 듣는 이의 마음은 밭과 같습니다. 그런데 네 가지 종류의 마음 밭이 있습니다.

첫째는 길가와 같은 마음 밭입니다. 길은 본래 부드러운 흙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굳어진 땅입니다. 본래는 어질고 부드러운 마음이었지마는 세상의 그릇된 사상 풍속 습관에 굳어져서 새 진리가 들어 갈 수 없는 굳은 마음이 된 것입니다. 진리의 씨가 겉에서 돌다가 결국은 새가 와서 주워 먹는 것처럼 사탄에게 빼앗기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굳은 마음이 있습니다.

둘째는 흙이 옅은 돌짝밭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속에는 바위가 있고 겉에만 엷은 흙이 덮인 밭이 있습니다. 이런 밭에는 씨가 싹은 트지만 뿌리가 없어서 얼마 있다가 말라 버립니다. 이런 옅은 마음이 있습니다.

감정에 휩쓸려서 얼른 새 진리를 받아들이지만 속에 깊은 깨달음이 없으니 진리로 말미암아 조금이라도 환난이나 핍박이 오게 되면 저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이런 믿음을「쟁개비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불 땔 때에는 오르르 하고 끓다가 불이 척 죽으면 식어져 버립니다. 이런 마음의 밭이 있습니다. 시작은 잘 하지만 마치지 못하는 믿음이올시다. 입학은 하지만 졸업은 못하는 믿음이올시다. 마라톤 경주 장에서 달리기는 시작했지만 조금 달리다가 쓰러지는 믿음입니다. 이런 마음 밭이 있습니다.

셋째는 가시밭 같은 마음 밭이 있습니다. 흙은 부드러운 좋은 흙이지마는 가시 뿌리가 많이 섞인 밭입니다. 그곳에 진리의 씨가 떨어지면 물론 그 진리의 씨가 자라납니다. 그러나 가시도 역시 자랍니다. 그런데 가시는 더 빨리 자랍니다.

결국은 곧 씨가 가시덤불에 쌓여서 열매는 맺지 못하는 땅을 의미합니다.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가시뿌리가 섞인 험한 마음, 가시덤불에 덮인 열매 맺지 못하는 마음 밭이 있습니다. 믿기는 믿으나 주님께서 지적하신 그대로 재산의 염려, 육의 유혹, 세상의 향락이 같이 성하여 오히려 우세하게 되어 결실을 못합니다.

야고보 장로는 이런 이들을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두 말을 한꺼번에 타려고 하는 자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려는 자들입니다. 한 발은 천국에 한 발은 지옥에 딛고 재간을 피우려는 이들입니다.

어떤 때에는 지길 박사입니다. 다른 때에는 하이드가 되는데 흔히 이런 이들은 마지막에는 하이드 박사로 끝을 맺고 맙니다. 십 년, 이십 년 교회 출입은 하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넷째로 옥토가 있습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이올시다. 열린 마음입니다. 진리를 받아들입니다. 깨닫는 마음이올시다. 진리를 깊이 깨닫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이올시다. 진리대로 삽니다.

행합니다. 꾸준한 마음입니다. 계속하여 진리의 생활을 하는 마음이올시다. 일편단심의 마음이올시다. 오직 주님만을 사랑합니다. 앞만 바라보고 옆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 밭에서야 결실이 꼭 됩니다. 백 배 육십 배 혹은 삼십 배.

이런 교훈을 생각할 때에 자연히 우리는 내 자신을 살펴보게 됩니다. 내 마음 밭이 어떠한가? 내 마음 밭에는 결실이 있는가? 내가 믿기는, 우리 가운데 대부분의 마음 밭에서는 결실이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혹 결실 치 못하는 마음 밭이 있을까 염려가 됩니다. 깊이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이 없는가. 돌짝밭 같은 마음 밭이 없는가 가시 밭 같은 마음 밭이 없는가. 성경에 보면 밭을 깊이 갈고 씨를 뿌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길가와 같은 밭이라도 깊이 갈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깊은 참회, 참 회개를 통해서 옥토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석산(石山)에 가보면 큰 바위라도 다이너마이트로 깨트려 버립니다. 성경을 보면 복음은 「하나님의 뚜나미스」라는 말을 썼습니다. 곧 다이너마이트란 말입니다. 아무리 마음속에 있는 바위가 굳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깨뜨려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불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가시밭이 성하였지마는 성령의 불이 살라버립니다. 뿌리까지 캐어서 살라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참된 회개와 신앙이 있으면 설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떤 마음이든지 부드러운 옥토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마음 밭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둘째는 씨뿌리는 일을 보세요. 이 비유에 씨 뿌리는 이는 누군가? 물론 예수님이올시다. 그러나 예수님만 씨를 뿌리신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도 계속해서 씨를 뿌렸습니다. 많은 사도들과 믿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씨를 뿌린 것이올시다. 사실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은 다 씨를 뿌리는 이들입니다.

인간의 생활은 매일같이 씨를 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루의 나의 생각, 하루 동안의 나의 말, 하루 동안의 나의 행동은 다 씨를 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 대한 추수가 따릅니다. 거둘 때가 옵니다. 내 성품에서 거둡니다.

내 가정에서 거둡니다. 내 사회에서 거둡니다. 내 사업에서 거둡니다. 내 교회 내 국가에서 거둡니다. 오늘에 뿌리는 씨를 내일에 거두고 현재에 뿌리는 씨를 미래에 거두고, 청년에 뿌리는 씨를 노년에 거두고, 부모가 뿌린 씨를 자손들이 거두고, 이 세대가 뿌린 씨를 다음세대가 거둡니다. 금생(今生)에 뿌린 씨를 내생에 거두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씨는 종류대로 거둡니다.

성경에 보게 되면 여러 가지 씨가 있지마는 간략히 말하면 두 가지 종류밖에 없습니다.

육체에 속하는 씨와 성령에 속하는 씨입니다. 갈라디아서 六장에 보면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여 줍니다. 육체를 좇아 씨를 뿌리는 자는 섞어질 것을 거두고야 맙니다.

정욕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은 음란과 부정으로 거둘 수밖에…악으로 뿌리는 자는 악으로 거두고, 불의로 뿌리는 자는 불의로 거두고, 마음으로 뿌리는 자는 마음으로 거두고, 거짓으로 뿌리는 자는 거짓으로 거두고 무자비로 뿌리는 자는 무자비로 거두고, 포학(暴虐)으로 뿌리는 자는 포학으로 거둡니다.

거둘 때는 더 많은 것으로 거둡니다. 전에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이더니 자기가 그 후에 자기 아들에게 속았습니다. 요셉이 죽었다고 오래 아들들에게 속으며 눈물 흘렸습니다. 전에 악한 여자 이사벨이 무고한 나봇의 피를 흘리더니 결국은 자기의 피가 흘림을 입어서 개들에게 핥기 우는 바가 되었습니다.

사람을 천대하면 자기가 천대를 받습니다.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 자기 가슴이 아픔을 당합니다. 속담에「남잽이 제잽이」란 말이 꼭 맞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대로 반호출호이자 반호이자라고, 네게서 나온 것이 네게로 돌아간다는 것이 꼭 옳습니다.

반면에 성령으로 심으면 반듯이 영생으로 거둡니다. 선으로 심으면 선으로 거둡니다. 덕으로 심으면 덕으로 거둡니다. 의로 씨를 뿌리면 의의 씨를 거둡니다. 사랑의 씨를 심으면 사랑으로 거둡니다.

친절로 씨를 뿌리면 친절로 거둡니다. 자비로 씨를 뿌리면 자비로 거둡니다. 화평으로 씨를 뿌리면 화평으로 거둡니다. 진리로 씨를 뿌리면 진리로 거둡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떡을 물위로 던져라 오랜 후에 도로 찾으리라.』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입니다.

6․25 직전에 어떤 의사가 한 가난한 과부의 아이를 돈이 없으니까 돈을 못 냈어도 거저 잘 고쳐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6․25가 생겼습니다. 의사가 공산당들한테 잡혀갔습니다. 꼭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어떤 젊은이가 오더니『이 사람은 아주 좋은 의사인데 이런 사람은 죽이면 안 된다.』

고 강력하게 주장하더랍니다. 이이도 공산당은 공산당이란 말이오. 그래서 살아났는데 그후에 알아보니까 그 어떤 때 아이를 고쳐준 과부, 실은 과부인 줄 알았더니 과부가 아니었지만 그 가난한 여인의 남편이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어떤 외지를 보니까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나치스 독일 때에 유대사람을 거저 학살을 할 때 어떤 비행장에서 독일의 어느 비행사가 자기 비행기에 연습하려고 올라타려는데 어떤 사람이 뛰어오더니『여보 날 좀 살려주시오. 난 유대사람인데 나치스들이 나를 죽이려고 따라옵니다.』

보니까 사실 먼발치로 나치스가 따라온단 말입니다. 그래 불쌍히 여겨 얼른 자기 비행기에 태우곤 공중으로 날아가 독일 국경을 넘어 폴란드까지 가서 이 사람을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 얼마 뒤에 세계二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이 독일 비행사는 독일 사람이지만 나치스의 하는 일이 너무 못마땅해서 자기 비행기를 타고 도망해서 영국으로 갔습니다. 영국의 비행사가 되어서 오히려 독일하고 싸우게 됐는데 전투 중에 중상을 입고 머리를 상해서 뇌를 상하는 중상을 입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때에 런던에는 유명한 외과의사 한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뇌수술을 잘해서 회복이 됐어요. 처음에는 의식이 물론 없었는데 점점 회복이 되어서 눈을 뜨고 자기를 간호하는 의사의 얼굴을 가만히 보니 아, 이상합니다. 의사의 낯이 익은데 어디서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의사는 여러 해 전에 나치스에 쫓기던 유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의사였습니다. 죽을 청년 하나를 살려 주었더니 그 청년이 자기를 살려 주었어요. 그래서 우리 동양에 옛날부터 유은덕이 필유양보(有隱德而 必有陽報), 숨은 덕이 있으면 반드시 양보가 있다고. 적선지가에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을 쌓는 집에 경사로운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따라 심어야 합니다.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진리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어디서나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서 오랜 후에라도 반드시 거둘 때가 옵니다. 그리고 이 파종과 추수의 원리를 생각할 때에 시편 一二六편 五절과 六절을 우리가 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눈물을 흘리며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 울며 씨를 뿌리려 나아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눈물의 파종이 있으면 기쁨의 추수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리로 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제나 선으로 씨를 뿌리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희생을 의미합니다. 인내를 의미합니다. 고통을 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낙심치 아니하고 꾸준히 성령을 따라 씨를 뿌리면 기쁨의 추수를 할 때가 온다는 그런 말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생활을 다 기억하시지요.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멀리 팔려갑니다. 남의 집에 종살이를 합니다. 그런 가운데도 요셉은 같이 미움으로 씨를 뿌리지는 않았습니다. 어디서나 성령으로 씨를 뿌렸습니다.

진리와 사랑으로 씨를 뿌렸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어도 진리로 씨를 뿌렸습니다. 눈물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기쁨으로 추수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사실 이러한 악한 세상에서 옳은 신앙 생활을 하며 진리의 씨를 뿌린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의 생활을 잠시 돌아보세요. 그가 진리의 씨를 뿌리는 중에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얼마나 핍박을 받았으며 얼마나 많은 환난에 봉착했는가. 결국은 순교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도들이 모두 그러하였습니다.

물론 순교자들의 생활이 그러하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도 옳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진리를 전파하다가 순교한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터툴리안의 말과 같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종자입니다.

교회의 씨입니다. 많은 추수가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내가 확실히 믿는 것은 앞으로 남북이 통일 될 때에는 북한의 교회는 문자 그대로 우후 죽순과 같이 일어나서 곧 재건 될 것이요 통일된 한국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나라로 될 줄 기대합니다.

왜? 이 땅에 많은 눈물의 씨, 곧 순교자의 피가 뿌려진 까닭입니다. 지금도 북한 성도들은 문자 그대로 눈물의 씨를 뿌리는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의의 하나님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올 자유의 한국을 반드시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특히 학습 받고 세례 받는 여러 교우들은 깊이 생각하십시다. 참 회개와 신앙으로 옥토의 마음 밭에 복음을 먼저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후에는 내가 진리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씨를 뿌리고 복음의 씨를 뿌리기를 바랍니다. 뿌리되 낙심하지 말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진리의 씨를 뿌리는 이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눈물로 씨를 뿌리나 결국은 기쁨으로 단을 거둘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으로도 그렇고 가정으로도 그렇고 국가로도 역시 그런 것입니다.







admin



프린트하기 독자한마디


이전으로

 | Home | 사이트맵 | 설교검색 | 설교전체보기 | 설교쓰기 |___ | 
Copyright by 본 설교신문 자료를 다른사이트로 무단복사 절대금합니다(추적장치가동)/ 김효자 /사업자번호831-29-0156/서울시강남구도곡로1길14 /통판:서울강남01470/문자로 질문바람010-4394-4414 /E-mail:v919@naver.com   Contact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