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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9:13-22/ 한국 청년의 결단 / 한경직 목사 2014-08-22 23:11:15 read : 985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쫓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쫓을지니라.』(왕상 十八․二十一)
이 주간은 YMCA 창립기념 주간으로서 특별히 기독청년들의 각성과 단결을 추구하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읽은 말씀은 한 청년이 주님께 나아와서 주님과 대담(對談)한 기록입니다. 그 질문한 내용으로 보아서 이 청년은 범상한 청년이 아닙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행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영생의 문제를 물은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네가 계명들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은 다시 물었습니다.『어떤 계명을 의미합니까?』
예수 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모든 계명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 때에 이 청년이 대답하였습니다.『주님이시여 그 모든 계명은 제가 이미 다 어렸을 적부터 지켰습니다.』 이 청년은 양심적으로 이 계명을 진실 되게 지키기를 힘쓴 것이 사실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만일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댄 네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또 와서 나를 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때에 그는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청년은 생각도 좋고 뜻도 좋았지마는 결단력이 부족했습니다.
주후 四세기에 애굽의 한 청년이 이 성경 말씀을 듣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주님의 이 말씀은 꼭 자기에게 하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부모에게서 상당한 재산을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가족이라고는 자기의 손아래 여동생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는 예수 님 당시에 재물이 많은 까닭으로 근심하며 돌아간 사람의 전철(前轍)을 다시 밟지 않기로 생각하고 주님의 명령하신 대로 꼭 실행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재산의 대부분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적은 재산만 남겨서 자기의 여동생의 생활비로 준 다음, 자기는 성경에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한 교훈과『항상 기도하라』고 한 교훈대로 자기 손으로 일해서 먹으며, 기도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애굽 광야에 나가서 손수 곡식을 심어서 거두어 먹고, 남는 시간은 오직 기도와 묵상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이 교회 역사상 유명한 성 안토니오 입니다. 수도사들의 아버지로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현대 청년들도 꼭 안토니오를 모방하라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결단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청년들이 아무리 성품도 좋고, 학식도 있고, 재주도 있다고 하지마는, 결단력이 없으면 무슨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 역사적 시점에 사는 우리 한국 청년들은 반드시 결단할 몇 가지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신앙의 결단입니다. 이따금 교회에 출석하지마는 신앙의 결단이 없이 우왕좌왕하면서 교회에 출입하는 청년들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엘리야 당시에 모든 국민들이 대부분 여호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입으로는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멜산에 모아놓고 엘리야가 그들을 향해서 솔직히 하는 말이『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만일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섬기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섬기라』고 결단을 재촉하였습니다.
여호수아도 자기와 같이 요단을 건너서 가나안 복지를 정복한 이스라엘 청년들을 벧엘에 모아 놓고 그들에게 전도한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 가나안 땅을 대부분 다 점령 했은즉 이제는 너희들이 장차 섬길 신을 작정하라. 오직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노라.』신앙에 대한 철저한 결단을 요구한 것입니다.
구약에 여자의 이름으로 된 책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룻기 입니다. 이 룻기는 넉 장밖에 없는데 읽어보시지 못한 청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 라고 하는 여자가 큰 흉년이 들어서 그 곳에서 살 수 없게 되니 동편으로 요단강을 건너서 이방 땅 모압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거느리고 그 곳에 간 것입니다. 그 곳에서 十여 년 동안 잘 사는 가운데 두 자부를 맞았습니다. 자연히 모압 땅의 여자를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큰 불행이 이 나오미에게 중첩되어서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설상(雪霜)에 가상(加霜)으로 두 아들마저 차례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지막에는 이역(異域)에서 외로운 몸이 더 머무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백골이라도 고향에 가서 묻히겠다고 하는 생각으로 간단한 보따리를 싸들고 고향을 향해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 때에 모압 여자인 두 며느리가 나오미의 뒤를 따라옵니다. 나오미는 돌아서서 이 두 자부들에게『나를 더 따라올 필요가 없다. 이제는 너희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간곡히 권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자부 오르바는 크게 통곡을 하고 돌아서서 자기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자부 룻은 계속해서 따라옵니다. 나오미는『돌아가라. 나를 따라와야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어서 돌아가 다시 결혼하고 잘 살라』고 강권했습니다.
그 때에 룻이 자기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한 말을 성경에 기록한 대로 읽어봅니다.『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이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여기에 우리는 젊은 여자의 가슴에 숨은 결단의 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세계에 중립은 없습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 바알이면 바알, 그리스도의 편이면 그리스도의 편, 벨리알의 편이면 벨리알의 편, 천국의 백성이면 천국의 백성, 악마의 나라에 속하면 거기 속하는 것뿐입니다.
중립이 없습니다. 두 사이의 분명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예수 님께서 이적을 행하시고, 굶주린 자를 많이 먹일 때에, 수다한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왔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일인가를 경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히 물러갔습니다. 이 때에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서『너희도 가려느냐, 너희도 가려느냐?』물었습니다.
베드로가 곧 대답했습니다.『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니 우리가 뉘께로 가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 줄 믿고 살았사옵니다.』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결단적 신앙의 표시를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한 번은 여호와를 배반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서『무릇 여호와께 속한 자는 다 내게로 나오라』고 외친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과연 여호와께 속합니까?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 편에서는 단호한 결심이 있습니까?
둘째는 이 역사적 시점에서 사상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모세가 어렸을 때에는 애굽 궁중에서 천진난만하게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장성해서 청년이 된 후에는 중대한 기로에 서서, 번민(煩悶)과 오뇌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민족을 노예에서 해방하는 자유의 편에 서느냐, 혹은 자기 민족을 노예화하는 애굽 편에 서느냐 하는 이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작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자유를 택하고 자유를 위해서 투쟁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청년들이 다 그렇지마는 특별히 이 시점에 사는 한국 청년들은 三八선을 경계로 해서 자유냐, 혹은 노예냐의 분기점에 서게 된 것입니다.『나는 자유를 택하노라』하는 분명한 사상의 결단이 요구되는 오늘입니다.
금년 올림픽에서 헝가리의 세 청년들이 고국을 떠나서 자유진영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우리가 신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자유에 대한 결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과거 수주간 동안에 세계적으로 큰 사건들이 몇 가지 일어났습니다.
소련에서 후르시초프가 실각을 하고 새 지도자들이 나온 모양입니다. 十여 년 동안 정권을 잃었던 영국의 노동당이 다시 선거에 승리해서 새로운 내각이 성립되었습니다. 중공에서 핵을 실험한 것이 또한 사실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이 장래의 세계 정세의 무슨 변동을 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구구한 억측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제 개인의 생각으로는 그렇게 흥분할 것이 없는 줄 알지마는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계기로 해서 우리 한국에서는 새삼스럽게 남북통일에 대한 이야기도 상당히 떠도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통일을 우리 한국 민족으로서 누가 원치 않겠습니까? 특별히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도 북한에서 피난하여 온 동포들이야말로 근 二十년 동안 이 통일을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통일문제에 대해서 제일 중요한 점은 어떤 통일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세 가지 통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붉은 통일.
하나는 자유 통일.
또 하나는 중립 통일이 있습니다.
북한 공산당이 붉은 통일을 하기 위해서 十여 년 전에 六․二五사변을 일으키고 그 결과로 이 땅에서 수백만의 청년이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 남한에서도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희생한 것입니다. 붉은 통일을 요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유 통일입니다. 자유의 승리로써 자유민주주의가 보장되는 통일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다 원합니다. 물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유엔에서는 유엔 감사 아래 남북한 총 자유선거를 하자는 것을 주장하고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되면 두 말할 것이 없는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형식의 통일이 빨리 오지 않으니 혹 다른 방법의 통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연히 중립 종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형제들이 아마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할 만한 심리상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다루어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가 중립을 하자는 견지에서 우리 한국을 생각해 볼 때에,
첫째는 지리적 조건이 대단히 불리합니다. 우리 한국이 저 아프리카에 있으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저 중동지대에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이 극동에 있습니다. 우리 북편에는 강 하나 사이에 두고 소련과 중공이 있습니다.
남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진영의 중요한 나라인 미국은 태평양 건너에 있습니다. 외국 군대를 이 땅에서 철수한다고 해도 소련이나 중공은 강 하나 건너가면 그만입니다. 미국은 태평양을 건너가야 됩니다. 그런 지리적 조건에 놓여 있다고 하는 현실을 우리가 바로 보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자유진영의 국가는 한 번 국제조약을 맺었으면 신사적으로 그 조약대로 실천합니다. 그러나 공산진영의 국가는 조약을 맺긴 맺지마는 그대로 실천한 예가 없습니다.
바깥으로 조약을 맺고 뒤로 암암리에 침투작전을 계속해 합니다. 또 언제든지 자기에게 유익하면 의용군의 형식으로 폐기할는지도 모릅니다. 월남사태를 보세요.
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귀해서 중립화 통일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마는, 이와 같은 일을 함부로 하다가는 결국 오늘날 라오스와 같이 우리 국내에 큰 혼란이 오고, 다시 민족상잔(民族相殘)의 피 흘리는 참극이 얼어나기 쉽고 결국은 자유를 이 땅에서 빼앗기지 않을까 크게 염려가 됩니다.
아무렇게 되든 통일은 해야 된다 하는 말은 우리가 종종 듣습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처럼 위험한 생각은 없습니다. 아무렇게 되든 통일은 해야 된다니 무슨 알입니까? 이 남한이 공산화하고 이 남한에 자유가 없어질지라도 통일을 하자는 말입니까?
자유가 없는 통일은 우리 남한 국민에게 있어서는 죽는 통일입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되든지 자유가 확보되는 통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통일은 이미 말했지마는 유엔의 공정한 감시 아래에서 남북한을 통한 자유선거로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한국의 이렇게 혼란한 형편을 보고, 공산당들이 이길 자신을 얻어서 그대로 하자 할 때가 오지나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 남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에 한국 기독청년들의 사명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사상에 대한 철저한 각오를 가지고 우리의 청년들에게 자유에 대한 계몽을 해야 되겠습니다. 특별히 공산주의 사회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지 못한 三十세 이하의 청년들에게 철저히 계몽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때가 올 것을 예상하고 남한의 민주진영이 단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이 시점에 있어서 사사에 대한 철저한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유를 무시한 어떠한 통일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기독 청년들은 실제 생활에 있어서 몇 가지 결단을 내릴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결한 생활의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남녀간의 성생활에 있어 그렇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소위 근대화한다는 미명 아래에서 선진국가들의 좋은 미풍양속은 배우지 않고 세기말적 퇴폐(頹廢)한 풍습을 영화, 텔레비전, 에로 소설 같은 것을 통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청년남녀들의 성도덕의 타락은 역사에 예가 없을 만큼 한심한 형편입니다. 이런 음란한 세대에 있어서 내가 과연 내 생활을 바르게 하고, 다른 청년들을 인도하려고 하면, 여기에 대한 철저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전에 요셉과 같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떠한 사람에게 어떠한 유혹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이 악한 일을 감행할 수 있느냐고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경제생활의 결단입니다. 다니엘이 청년시대에 바벨론 에 잡혀갔을 때에 바벨론 왕이 그들을 사랑해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다니엘과 같이 있던 청년들의 신앙 양심에 비취 볼 때, 그 음식을 먹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단호히 거절한 이야기를 우리가 압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있어서, 신앙적 견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인 견지, 도덕적인 견지 사회적인 견지, 가정의 평화적 견지 등 모든 견지에서 볼 때에 주초(酒草)하고 하는 것은 백해무익합니다. 백 번 해롭고, 한 가지 이로운 것도 없습니다.
오늘날 농촌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건대 농촌의 제일 큰 문제는 농한기만 되면 성행하는 술과 도박이라고 합니다. 농사를 암만 잘하면 무얼 합니까? 암만 쌀값을 높이 받으면 무얼 합니까? 술과 도박으로 다 허비하고 맙니다.
서울 같은 도시생활에도 혁명 이후에 제일 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석구석마다 심지어 예배당 근처까지 대포 집이 생겼습니다. 절제생활에 대한 결단을 내리기 전에는 사회의 지도자 노릇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진실한 생활의 결단입니다. 우리 민족의 민족적 결함이 많지마는 특별히 이 점이 제일 크지 않은가 저는 항상 느껴집니다. 말, 행동, 글, 상품 등 모든 것이 진실이 부족해서 어디 가든지 처음에는 환영은 받다가 마지막에는 배척을 받습니다.
정직한 사람을 구하기가 힘듭니다. 돈 맡길 사람을 구하기 힘듭니다. 돈을 맡아서 꼭 바로 쓸 사람을 구하기 힘듭니다.
또 돈주면 무슨 일이나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에 모든 부패와 부정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모두 돈에 움직이지 않는 국회의원들, 돈에 움직이지 않는 공무원들이 되어야 이 나라가 바로 섭니다.
이번 올림픽대회에서 우리편이 큰 참패를 해서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사람이 많지마는 제가 보건대 여기에도 진실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진실한 선택, 진실한 훈련이 부족했습니다.
경기에 요행은 없습니다. 진실한 훈련, 진실한 매니지먼트(management)등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올림픽에 간다 하니까 너도 가자, 나도 가자 하는 태도로 나섰던 것 갔습니다.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입니다.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진실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내가 진실치 않을 때 하나님이 지으신 온 우주가 나를 반격합니다. 서지 못합니다. 진실한 생활에 대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 역사적 시점에 서 있는 한국 청년들은 결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분명히 하나님 편에서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합니다.『자유가 아니면 내게 죽음을 달라』고 외친 페트릭 헨리와 같은 철저한 사상을 가진 자유의 청년, 실제 생활에 있어서 성결하고 절제가 있고 정직한 청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결단이야말로 천년 제군의 일생의 운명을 작정할 것입니다. 이런 결단성 있는 청년들이야말로 장래 우리 민족의 운명도 작정할 것입니다.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인물이 무슨 일을 성공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내일로 미루지 맙시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이런 모든 면에 있어서 머뭇머뭇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간 이 순간에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이 예배당을 나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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