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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4:13-21/ 예수와 굶주린 대중 / 한경직 목사 2014-08-22 21:44:36 read : 12908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 十四․十六)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벳새다 들에서 굶주린 대중을 앞에 놓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떡 다섯 덩이와 불고기 두 마리로 五천 명을 먹이신 이적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세례 요한이 순교를 당한 후에 예수 님께서 배를 타시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벳새다에 가까운 빈들로 가신 것입니다. 좀 쉬시기 위해서 가신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주님이 가신 것을 찾은 후에 여러 고을에서 모여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에워싸게 되었습니다. 예수 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 중의 병자를 고쳐주시고 그들을 위해서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어느덧 때가 저물게 되었습니다. 빈들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제자들은 마음 가운데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리해서 주님께 나아와서『곳이 빈들이요 때가 이미 저물었는데 이들이 시장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을 여러 마을에 보내서 아무래도 먹을 것을 사먹도록 해야 될 것 같습니다.』이런 진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에 예수님께서 얼른 대답하시는 말씀이『갈 것 없다. 너희가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할 있습니까? 이들을 다 먹이려고 하면 적어도 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도 오리려 부족할 텐데 그렇게 많은 양을 살수도 없고 우리가 돈도 없고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그 때 마침 어떤 아이가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안드레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우리에게 있는 것은 이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명해서 모든 무리들을 떼를 지어서 잔디밭에 앉히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축사를 하시고 떼어 나누어주시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는 그것을 가지고 五천 명이 넘는 많은 무리들을 먹이고 오히려 열 두 광주리가 남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떡이 어떻게 불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먹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것은 복음서에도 분명히 기록해 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은 없는 가운데서도 있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능치 못하신 것이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실상 자연계에서 보는 대로 어떻게 밀 알 한 알을 봄에 심으면 그것이 가을에 가서 많은 수확이 되는지 그 신비 자체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하시는 일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이적은 흔히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셔서 급한 그 요구에 응하시기 위해서요. 둘째는 그 이적을 통해서 보다 더 신령한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써 五천 명을 먹이는 이 이적도 이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왜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하셨는가?
첫째로 굶주린 대중을 먹이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빈들에서 굶주리는 대중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로 하여금 가다가 길가에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이적을 행한 것입니다.
주린 자를 먹이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이적까지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제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내실 때에 영혼만 내신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먼저 지으셨습니다. 우리 육신은 음식을 먹어야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사실은 우주를 먼저 지으시고, 모든 식물을 먼저 지으시고, 동물을 먼저 지으시고 오곡백과와 산 해 어 별로 다 준비를 해 놓으신 후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왜? 우리 사람은 먹어야 사는 것을 아시는 까닭입니다.
그리해서 성경에 보면 어떤 시장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밀밭을 만나서 그 이삭을 비벼 먹으면 그것은 도적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왜? 시장한 사람은 먹을 수 있습니다. 율법이 허락합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시장해서 과실나무를 만나서 그 과실을 따서 먹기만 하면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율법을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시장한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따서 주머니에 넣고 가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옛날 율법을 읽어보면 곡식을 거둘 때 전부 다 거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모퉁이 이 곳 저곳에 좀 남겨 놓고 거두라고 했습니다. 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그 이삭을 주워 다가 먹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감람나무를 털 때 아주 다 털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좀 남겨두어서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그것을 따서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옛날 나오미와 룻이 멀리 모압 땅에서 돌아와서 베들레헴에 왔는데 자기 땅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어떻게 살았어요? 이삭 주워먹고 살았습니다.
배고픈 이가 빵을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정당한 기본 권리입니다. 그러기에 성 프랜시스는『가난한 이가 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자기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하나님께서 먹고살도록 낸 것인데 먹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라는 말입니다.
우리 동양에도 옛날부터 나려오는 말 가운데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녹 없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셨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 비슷한 사상이 그 가운데 내포된 줄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굶주린 이들을 먹이는 것은 사회정의입니다.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이기를 거부한다고 하면 그것은 사회정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굶주린 이들을 먹이는 것은 인도입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잘 아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불한당을 만났습니다. 돈을 다 빼앗겼습니다. 많은 매를 맞고 넘어져서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어떤 레위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보고만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제사장이 또한 지나갔습니다. 그 역시 물끄러미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유대사람 아닌 사마리아 사람이 그 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외국 사람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서 도와준 이야기를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에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거리에 굶주려서 쓰러진 동포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람 아닌 미국 사람들이 구호 품을 가지고 오며 잉여 농산물을 보내서 이 굶주리는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애를 씁니다. 이런 때에 한 동포가 된 우리로서 더욱이 레위 사람과 제사장의 지위에 있는 한국의 교회가 이 광경을 보기만 하고 그저 지나간다고 하면 이것은 인도를 무시하는 것이고,
이웃됨을 무시하는 것이고, 정의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굶주리는 이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굶주리는 이에게 먹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할 일입니다.
또 기억하십시다. 굶주린 동포를 우리가 도와주는 것은 사실 주님을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二十五장에 유명한 세 비유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으로 하신 비유가 재 심판의 비유입니다. 면양과 산양의 비유입니다. 인자가 오셔서 모든 사람을 자기 앞에 갈라 세우기를 마치 목자가 면양과 산양을 세우듯 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른쪽 면양 편에 섰을 의인들을 향해서 인자가 하시는 말씀이『내 아버지께로부터 축복을 밭은 너희들은 창세(創世)전부터 너희를 위해서 준비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들이 마실 것을 주었고, 내가 헐벗었을 때에 너희들이 입을 것을 주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의인들은『주여 언제 주님께서 그런 일을 당하셔서 우리가 그런 일을 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굶주리는 우리 동포를 내가 돕는 것은 주님의 작은 형제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굶주리는 이를 먹이는 것은 우리 주님을 대접하는 것임을 우리가 언제든지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이 명령을 받고『우리가 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주님 말씀이『그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게 가져오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께 가져올 뿐입니다. 주의 명령에 순복 할 것뿐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한국 교회를 향해서도 이 말씀을 하시는 줄 압니다.『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오늘날 한국 교회도 제자들의 말로밖에는 대답할 다른 말이 없습니다.『우리가 무엇으로써 이 무리를 먹일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주님 하시는 말씀이『지금도 좋다 네게 있는 그것을 내게로 가져오너라. 그리고 가 나머지는 다 네게 맡기라』고 하십니다. 그 나머지는 주님께서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해서 주님께 바칠 수 있는 것을 정성으로 바친다고 하면 주님께서 이것을 가지시고 이적을 행해서 행하든지 어떻게 하시든지 자기의 백성을 먹이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깊이 생각할 것이 또 있습니다.
『굶주리는 대중을 도와주는 것은 곧 나를 돕는 것이라』하는 말씀입니다.『굶주리는 대중을 먹여서 살리는 것은 곧 내가 사는 일이니라.』여기 많은 대중이 굶주리는데 몇 사람만 먹을 것이 넉넉하다고 좋은 집 짓고, 좋은 옷 입고, 옛날 부자처럼 그냥 평안히 살아갈 것 같습니까?
동서고금에 그런 사회가 오래 간 예가 없습니다. 폭동이 일든지, 쿠데타가 일어나든지, 데모가 일어나든지, 혁명이 일어나든지, 무엇이든지 일어나고야 맙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를 살펴보면 굶주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은 큰 위기를 내포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은 돈이 있다고 하지마는 집을 잘 지을 생각을 할 때가 아닙니다. 돈 있다고 옷을 아름답게 입고 거리에 활개를 치며 다닐 때도 아닙니다.
돈이 있다고 잔치를 크게 할 때도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굶주리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쨌든 내 생활을 절약하고 내가 내핍생활을 하고, 내가 아껴서 같이 굶주리는 사람과 나누어 먹으면서 살아야 너도 살고 나도 살 수 있고, 이 위기를 극복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굶주리는 대중을 살리는 것이 곧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마 대략 아시겠지만 우리 본 교회에서는 당회에서 봉사 부와 많이 의논하다가 이와 같이 굶주리는 사람이 많은 이 춘궁기에 한 서너 달만이라도 우선 서울 주변에 있는 굶주리는 동포를 위해서 매일 우리 교회에서 급식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해서 五十만원 예산을 세워서 이 급식하는 일을 하자고 작정하고 이 목적을 위해서 다음 주일 우리가 헌금을 합니다. 기억하십시다. 예수님께서 굶주린 대중을 먹이기 위해서 이적까지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 명령에 순복만 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바치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주님의 능력으로써 우리 민족을 축복해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신령한 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이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요한 복음 六장을 읽어보세요. 우리 사회에 육신으로 굶주리는 대중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마는 깊이 생각해 보면 영으로 굶주리는 대중은 더 많이 있습니다. 옛날 아모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양식이 없어서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서 갈 함이 아니요……』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로 말미암아 굶주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은 떡만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영의 굶주림으로 말미암아 영의 먹을 것을 먹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죄를 먹고 마십니다. 향락과 허영만 따라다닙니다. 근심과 염려에 싸입니다. 불평과 싸움을 합니다. 미신과 여러 가지 사교에 미혹됩니다. 사실 영의 굶주림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양식을 먹지 못하므로 죽는 사람이 사회에 얼마나 더 많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영으로 굶주린 이 사람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영으로 굶주린 대중을 위해서도 오늘날 우리 교회에『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옛날 제자들처럼 오늘날 우리 교회도 흔히 이렇게 대답합니다.『우리가 어떻게 이 많은 사람에게 먹일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 많지 못합니다.』『옳다 너 있는 것을 내게 바쳐라. 네게 지식이 잇느냐? 그 지식을 내게 바쳐라, 네게 시간이 잇느냐? 그 시간을 내게 바쳐라, 네게 물질이 잇느냐?
그걸 내게 바쳐라, 네게 가진 게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지마는 그 있는 것을 나에게 바쳐라!』말씀하십니다.
한국교회가 가난합니다. 한국 교회가 미약합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아직도 다 초창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힘이 매우 약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네게 있는 것을 나에게 가져오너라.』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겸손하게 주님 앞에 온전히 바치면 주님께서는 이것을 가지고 굶주리는 대중에게 생명의 양식을 나누어 먹이고 우리 민족을 영적으로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여기 보니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五천 명을 먹이고도 부스러기가 열 두 광주리에 찼다고 했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사실 생명의 양식은 언제든지 나누어줄수록 더 붓습니다. 남에게 전도할수록 내 믿음이 더 커집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가르칠수록 내 지식이 더 많아집니다. 내가 남을 도와주면 내 힘이 더 커집니다. 내가 일할수록 내가 더 은혜를 크게 받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고, 전도하고, 일하면 일할수록 우리 교회가 더 은혜를 받습니다.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쳤지마는 열 두 광주리가 남은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이 달은 전도의 달입니다. 이 주간은 전국적으로 기키는 구호의 주간입니다. 우리 문밖에는 육으로 굶주리는 대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한 영으로 굶주리는 대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양식과 육신의 양식을 이들에게 줄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 보니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였던 一二0명이 성령을 충만히 받고 은혜를 풍성히 받은 다음에 한 것이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큰 능력을 받아서 베드로를 중심 하여 복음을 전파해서 생명의 양식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하루에 三천 명씩 구원하는 생명의 양식을 먼저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뿐입니까? 유무상통해서 내게 있는 것을 하나님께 바쳐서 베고픈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육신의 양식을 또한 나누어주었습니다.
과연 우리 영락교회가 성신을 받았습니까? 과연 우리 영락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았습니까? 은혜를 받았으면 이 두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생명의 양식을 널리 전하여 줍니까? 우리가 내게 있는 것을 바쳐서 굶주린 우리 동포를 먹일 수 있습니까?
이 큰 일을 위해서 각각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네게 있는 것을 바치라고 합니다.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라도 이것이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알아서 하나님께 정성껏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가지고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바로 오늘이 四월 十九일입니다. 四년 전 우리 젊은 학도들이 이 나라의 자유의 꽃이 피기를 간절히 원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친 그런 날입니다. 어제 저녁에도 우리 교회에서 청년들과 학생들이 모여서 본 교회 안에서 희생한 김치호 군의 추도예배를 드렸는데 저도 참석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써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十九영령들에게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여야 이들의 비원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로서 이와 같은 때 마땅히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선 이 굶주린 대중에게 우리는 먹을 것을 주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영으로 굶주린 이 대중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되겠습니다. 이것만이 이들의 비원을 이루어주고 이 민족과 국가를 옳게 세우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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