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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15-29/ 민족국가의 정신적 기초 / 한경직 목사 2014-08-22 21:40:26 read : 9920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七․二十四-二十七)
산상보훈(山上寶訓)의 결론으로서, 두 집 짓는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두 집이 비슷하였습니다. 다른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漲水)가 날 때에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든든히 그냥 서 있었지마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주님 말씀이 내 교훈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우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언제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관심이 없으리요 마는, 지금 이때는 더욱이 우리 국민들이 제三공화국을 세우기를 준비하는 때입니다.
국가는 문자 그대로 한 집이올시다. 집을 짓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그 기초입니다. 민주국가의 정신적인 기초가 무엇일까? 우익 독재도 아니고 좌익 독재도 아닌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정신적 기초가 무엇일까? 이 점을 성경을 통해서 생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민주국가가 잘 건설되려고 하면, 다음의 몇 가지 요소가 꼭 있어야 될 줄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첫째는 개인 존중 관념이 철저해야 되겠고, 둘째는 정당한 평등의 관념, 셋째는 정당한 자유의 관념, 넷째는 질서와 법의 존중 사상이 철저해야 되겠고, 다섯째는 자유를 바로 쓸 수 있는 국민의 도덕적 품격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한가지씩 간단히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째로「개인 존중 관념」이 철저해야 될 것입니다. 국민 하나 하나의 생명, 그 재산, 그 인격, 그 의견, 그 양심을 존중하는 관념이올시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사상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민주국가의 정부는 링컨(Abraham Lincoln)이 말한 대로 우리는 이 나라가 하나님의 뜻으로 자유의 새 삶을 갖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그리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이 땅에서 멸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목숨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국가가 개인을 위하여 있고, 개인이 국가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사상이 철저해야 될 것입니다. 이것은 독재국가의 사상과는 정반대 되는 사상이올시다. 국가를 위해서는 국민 혹은 개인을 얼마든지 희생해도 관계없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주국가에서는 그와 정반대로 국민 하나 하니, 그 개인 인격에 대한 존엄 사상이 철저하여야 건전한 민주국가로 발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깊이 고려해야 될 것은 이런 관념이 본래 어디서 왔는가, 이런 사상의 원천이 어디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국민 하나 하나를 정밀히 관찰하는 가운데서 이런 사상이 왔는가?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 국민 하나 하나를 따져보면 선한 사람도 그렇게 많지 못하고 지혜로운 사람도 사실 적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관념은 어디서 왔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늘 읽는 성경에서 왔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실 때에는 그의 형상으로 지으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짐승들과 육체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만이 아닙니다. 인격과 양심의 소유자로 창조를 했고 하나님과 능히 교제할 수 있는 존재로서 창조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작은 자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양 백 마리 가운데 하나를 찾기 위해서 애쓰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하나 하나를 사랑하셔서 그 하나 하나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개인 하나 하나의 생명을 구속하게 위해서 십자가에까지 희생을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우리 하나 하나의 생명이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인간이 존엄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민 하나 하나를 존중한다고 하는 이와 같은 관념은 본래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한 인간관계에서, 즉 인간 철학에서 온 것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신앙이 없는 사람은 이 같은 관념이 철저하지 못합니다.
가령 유물론적 사상을 가지고 인간을 본다고 하면,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물질 세포의 우연한 집합체로밖에는 볼 것이 못됩니다. 한 짐승이나 사람이나 별로 다른 것이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인간관을 가진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관념을 철저히 가지는 데는 먼저 기독교 신앙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정당한「평등 관념」(平等觀念)이 필요합니다.「평등」혹은「만인동등」이라고 하는 말은 만인이 동일하다고 하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람은 얼굴이 다르고 빛깔이 다르고 지력이 다르고 체력이 다르고 재능이 다릅니다.
그러나 누구나 인간으로서 동등한 인권이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같은 천부의 인권을 받았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민주국가에 있어서는,
① 누구나 평등한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정치를 해야 될 것입니다. 누구나 같이 배울 수 있는 기회, 활동 할 수 있는 기회,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정치를 하는 것이 민주국가의 요체일 것입니다.
② 누구나 범 아래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될 것입니다. 정의에 입각한 대우를 받아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 빈부나 귀천의 차이가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고, 직업으로 말미암아 차이가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고, 군경과 민간의 차이가 있어서도 아니 될 것이고, 공무원과 평민의 차이가 있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③ 그 다름은 평등한 권리와 의무인 것입니다. 똑같은 선거권, 피선거권, 똑같은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그 밖의 의무를 꼭 평등하게 질 수 있도록 민주국가에서는 모든 정치를 행하여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이론적으로는 말하기 쉽고 생각하기는 쉽지마는 실제로 이대로 행한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관념이 철저하고 정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평등 관념의 원천이 어디 있는가?
사실 인류의 역사와 사회사를 연구해 보면 오래 내려오는 동안 어떤 사회나 계급이 있었고 차별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 평등 관념이 본래 어디서 싹터서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게 되었는가?
여기에 있어서도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말과 같이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함을 받았다고 하는 성경의 교훈에 그 기초를 두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으로 창조함을 받은 까닭으로, 다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까닭으로, 인간 사이에 차별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는 사상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二장에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권면 하였습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고,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여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엄히 경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갈라디아 三장 二十八절에『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 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다 같이 하나님의 자녀인 까닭으로, 한 구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인간인 까닭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의 기회와 평등의 대우와 평등의 권리와 의무를 가져야 한다고 하는 이념인 것입니다.
셋째로, 정당한「자유관념」(自由觀念)이 필요합니다.
자유는 우리 민주국가의 한 표어처럼 되었습니다.「자유 진영」이란 말을 씁니다.「자유 사회」란 말을 씁니다. 이 관념도 결국은 개인을 존중하는 사상에서 오게 된 것입니다. 전에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四대 자유가 있어야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첫째는 신앙의 자유(信仰)
둘째는 언론의 자유(言論, 出版까지)
셋째는 공포에서의 자유(恐怖가 없는 世界)
넷째는 궁핍에서의 자유(窮乏 없는 世界)
미국의 트루블러드(Elton Trueblood)라고 하는 분은 민주주의 사상에 대해서 많은 글을 썼는데, 그는「자유의 선언」이란 저서 가운데서 여섯 가지 자유를 주장하였습니다.
첫째는 학문(學問)의 자유
둘째는 변론(辯論)의 자유
셋째는 신교(信敎)의 자유
넷째는 노동(勞動)의 자유
다섯째는 생존(生存)의 자유
여섯째는 봉사(奉仕)의 자유.
민주사회는 반드시 이 여섯 가지 자유가 있어야 되겠다고 그는 주장했습니다. 이 모든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 사회일 것입니다. 국민 하나 하나의 이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국가의 지상의 의무인 것도 우리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정당한 자유 관념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유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가진 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흔히 자유는 그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아니합니다. 자유라고 하는 것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방종이지 자유가 아닙니다. 자유라고 하는 것은 마땅히 행하여야 할대로 행하는 그것이 자유인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이 자유의 관념이 원천이 어디 있는가? 이것은 역시 근본을 더듬어 볼 것 같으면 성경에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자라난 나사렛 회당에 가서 그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게 될 때에 회당 장이 책을 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 六十一장 一절을 찾아서 이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 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복된 해를 전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읽으시고 하시는 말씀이『오늘날 이 말씀이 응하였다』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영적 자유와 거기 따르는 모든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해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후서 三장 十七절에『주의 영이 계신 곳이 자유 함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갈라디아 五장에『주께서 너희에게 자유를 주셨은즉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외쳤습니다.
자유의 정당한 관념을 옳게 가지라고 계속해 말씀하시기를『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히려 피차에 봉사하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자유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가지고 또한 그 원천이 어디 있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때에 우리가 이 자유에 대한 모든 행동을 바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질서와 법」에 대한 존중 사상이 꼭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합니다. 옛날 군주 시대에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임금에 대한 충성을 같이 보았습니다. 동일시했습니다. 그러기에 항상 유교에서 가르쳐 주기를 임금에게 충성하라, 부모에게 효도하라 했고 임금에 대한 충성은 곧 국가에의 충성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민주국가에 있어서는 그 이론이 다릅니다. 민주 사회에서는 질서와 법에 충성을 하는 것이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이올시다. 무슨 대통령이라고 하는 개인에게 충성할 것이 아닙니다.
법과 질서를 존중히 여기고, 이것을 엄수하고, 여기에 충성하는 것이 곧 국가에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월리를 바로 이해해야 때때로 정권이 교체되는 민주국가에 있어서 공무원 노릇도 바로 하고, 군인 노릇도 바로 하고, 국민 노릇도 바로 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질서와 법을 존중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자유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법 아래에서의 자유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고, 법을 자진해서 지키도록 힘써야 민주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사회를 보면 일반적으로 준법 정신이 박약합니다. 이것은 국민만 그런 것이 아니고 법을 만드는 사람, 법을 잡는 사람 가운데 오히려 이런 정신이 부족하지 아니한가 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질서와 법을 존중히 여기는 이 사상이 철저하지 못하면 자유 있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이 질서와 법을 존중하는 전통이 박약합니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로마 시대에 콘스탄틴 황제가 회개하고 주를 믿게 된 이후부터는 양대 질서가 확립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영적 관계를 관할하는 교회가 있고, 그 밖의 모든 세속의 일을 관할하는 국가 행정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교회의 법이 있고, 국가에는 국가의 법이 있어서 그 사람들은 수천 년 내려오면서 으레 내가 교회에 입교를 안 했으면 모르지만 입교한 다음에는 교회의 법을 존중하고 법을 꼭 지킨다고 하는 이런 정신이 함양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와 같은 과거의 전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체로 준법 사상이 약합니다. 또 이 준법 관념의 원천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근본이 기독교 신앙에서 발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자연 질서를 창조하셨습니다. 자연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가운데 법칙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자연 법칙이올시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자유가 있는, 양심이 있는, 양심과 자유를 겸한 인간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이 인간들이 옳게 살기 위해서 도덕의 법을 주셨습니다.
물질 세계에는 자연의 법칙, 인간 세계에는 도덕의 법칙을 주셨습니다. 이 법칙은 영원불변합니다. 자연계의 자연 법칙이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계의 도덕의 법칙이 변하지 아니합니다. 영원불변의 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알아야 내가 가령 국회의원이 되어서 법을 제정하는 데 참여할 때 법을 바로 제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국가의 법률도 어떻든지 하나님께서 본래 세운 도덕의 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헌정사를 잠깐 보면 정권이 한 번 바뀌면 헌법을 뜯어고칩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무엇을 설명하는 고 하니 헌법을 고치는 사람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법칙이 무엇인가 하는 이것을 찾아 그것과 같이 만들겠다고 하는 것보다도 자기 정권에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 뜯어고친다는 생각을 말합니다.
또 반면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고 하니 일반 국민에게는 헌법에 대한 존엄 사상이 적어집니다. 매일 고치기만 하니 그 무슨 놈의 헌법이냐고!
이 영원한 하나님의 법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법을 순종하는 정신도 많아질 것입니다. 결국 준법 정신도 하나님을 믿고 그 영원한 법을 믿느냐 안 믿느냐, 거기에 근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서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자유를 바로 쓸 수 있는 국민의 도덕적 품격이 이 민주 사회에서 절대로 필요합니다. 자유가 참 귀하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지요. 그러나 신상 자유라고 하는 것은 위험한 물건입니다.
어린애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습니까? 정신병자에게 온전히 자유를 줄 수 있습니까? 상습 절도범에게 온전히 자유를 줄 수 있습니까? 사실 어떤 사람들은 온전히 자유를 줄 수 없는 까닭으로 부득이 교도소에 감금해 둘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유가 이렇게 귀하지마는 이 자유를 바로 쓸 수 있는 국민이 많을수록 자유가 많은 민주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람이 적을수록 자유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외부에서 강제로 질서와 법을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한국에서 국민 개개인의 참 자유가 있는 평화로운 질서를 유지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우리 하나 하나가 하나님이 주신 자유, 국가의 법률이 보장하는 자유를 꼭 법대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국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법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대부분이 되면 자연히 그 사회는 자유가 많습니다. 결국 이런 품격이 어디서 왔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소위 인간 개조의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인간 개조를 어떻게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다시 성경에 돌아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고린도 후서 五장 十七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변하게 해서 새 사람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어디 잇느냐? 그리스도에게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사람을 만드는 곳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민주국가의 정신적 기초는 기독교 신앙입니다.
주님의 말씀이올시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에 말씀하신 대로『너희가 내 말을 듣고 이대로 행하면 집을 반석 위에 지을 수가 있다.
너희 한국 사람들아, 너희가 내 이 말을 듣고 이대로 믿고 이대로 행하면 너희 큰 집, 국가라고 하는 것을 진리의 반석 위에 세울 수 있다. 그렇지 아니하면 아무리 다른 방면에 애쓴다 할지라도 결국은 모래 위에 세우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 요사이 신문을 보면서 정당의 움직임에 주의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아침에 모였다가 저녁에 흩어져 버리는 정당에 눈을 파는 것보다도 우리 믿는 사람으로서 이 때에 꼭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이 민중에게 이 진리를 전파하고, 이 민중이 이 진리를 깨닫고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돌아와서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이 운동이 근본적으로 애국 운동이요, 우리 믿는 사람의 지상의 사명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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